[현대중국 정치학]
제4부 제2장 사회주의 초급단계론과 사회주의 시장경제론
1.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을 제기한 배경
1987년 10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3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시 총서기였던 조자양은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 노선을 따라 전진하자」는 정부공작보고를 하면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을 강조함으로써 중국내외에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은 조자양이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1979년경에 소소지(蘇紹智)와 같은 진보적 개혁론자들은 중국적 사회주의의 특징을 강조하면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을 제기한 바 있다. 또한 13차대회 이전의 당의 공식대회에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 언급되었다.
예를들면 1981년 6월에 통과․발표된 「건국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에서도 중국은 사회주의제도가 이미 확립된 사회주의 사회이지만 중국의 사회주의는 초급단계에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1982년의 12차 당대회에서 당시 총서기였던 호요방도 “중국의 사회주의 사회는 현재 초급발전단계에 있으며 아직 물질문명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1986년 9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2기 6중전회에서 통과된 「사회주의 정신문명의 건설에 관한 결의」에서도 중국은 아직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처해 있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서 노동에 따른 분배와 사회주의 상품경제의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은 당의 공식결의에서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소소지(蘇紹智) 이외에도 우광원(于光遠)이나 설막교(薛幕橋)와 같은 대표적인 개혁론자들을 중심으로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를 초급단계론적인 시각에서 분석하면서 개혁과 개방정책을 정당화하려는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자들의 주장을 간략히 정리하면, ⒧중국은 1956년에 사회주의 개조를 기본적으로 완성함으로써 사회주의 사회가 되었다는 것 ⑵그러나 중국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된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로 나갔기 때문에 장기간의 사회주의 초급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⑶따라서 중국은 여타의 많은 국가들이 자본주의 조건 아래서 실현한 공업화와 생산의 상품화, 사회화, 현대화를 사회주의하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것 ⑷그리고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는 공유제를 기초로 하는 사회주의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경제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이 사회주의 사회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면서도 발달된 사회주의 사회와는 다른 경제체제와 분배제도를 가지는 초급단계의 사회주의 사회라고 강조한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대한 보수파와 급진파의 비판을 모두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등소평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파들이 당의 주도권을 장악한 1978년의 제11기 3중전회 이후 중국은 모택동시대와는 엄청나게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사상해방, 체제개혁, 문호개방을 표방하면서 개혁파들은 ⑴모택동과 좌파의 계급투쟁론과 계속혁명론을 부정하고 생산력의 증강과 경제발전을 당과 국가의 최고․최대의 과제로 설정하였으며 ⑵유생산력론(唯生産力論)의 입장에서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제도와 정책에 대한 대담한 개혁을 단행했고 ⑶폐쇄적인 자력갱생론을 비판하면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자본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이와 같은 혁명적인 개혁․개방정책으로 말미암아 중국사회는 모택동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데올로기적인 다양성과 경제적 활력을 되찾았지만 동시에 사회주의에 대한 ‘신심(信心)의 위기’가 심화되는 결과도 초래하였다. 일부 반체제 지식인들은 사회주의체제를 부정하고 제5의 현대화, 즉 서구적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체제를 더욱 고감히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등소평이 말하는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가 과연 사회주의인가라는 회의와 비판도 강력히 제기되었다.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 1979년에 등소평은 3중전회에서 결정된 개혁․개방노선과 더불어 중국이 지켜야 할 4개 원칙, 즉 사회주의 노선, 공산당의 영도, 인민민주독재, 그리고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모택동사상의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중국적 사회주의는 1개의 중심(현대화와 경제발전)과 2개의 기본점(즉 개혁․개방과 4항 기본원칙)에 입각해 있다고 정식화되었다.
이와 같이 등소평이 추구하는 중국적 사회주의는 경제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 대담한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것은 사회주의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일견 모순된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은 바로 이와 같은 모순을 이론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2. 사회주의 발전단계론과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중국의 개혁론자들은 사회주의 초급단계가 어떤 단계인가를 규명하기 위해서 먼저 맑스주의 고전 이론가들의 사회주의 발전단계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즉 맑스의 「고타강령비판」에서 제시된 공산주의 1단계와 공산주의 2단계론, 레닌의 사회주의 단계론, 그리고 스탈린의 사회주의 과도기론을 분석하면서 중국적 사회주의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맑스는 「고타강령비판」에서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의 사이에는 전자로부터 후자로의 혁명적 전화기’가 놓여 있으며, 이 시기의 특징은 ‘이제 막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나타났을 뿐인 공산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그 자신이 빠져 나온 구사회의 태반의 흔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부르조아 권리를 폐지할 수 없으며, 노동의 등량교환원칙에 입각한 사회주의적 분배가 실시된다는 점에서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와 구별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맑스는 공산주의를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로 구분하였고,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에서는 구사회의 태반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 점차로 사회적 소유가 확대되고 생산과 분배가 직접계획에 의하여 통제․조절됨으로써 사회전체가 하나의 경제적 주체가 되는 진정한 공산주의 사회로 전화되어 갈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 공산주의 2단계론을 레닌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구별하면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과정에 대한 여러가지 구체적 정책과 제도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였다. 러시아혁명 초기에 레닌은 제국주의 단계에서 생산력의 사회화가 상당한 정도로 진척되었기 때문에 「직접과도(直接過渡)」가 가능하다고 가정하고 전시공산주의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국유경제의 확대, 상품생산과 교환기능의 축소, 전국적 범위에서의 생산과 분배의 조절과 통제를 시행하려 하였다. 그러나 전시공산주의의 실패는 레닌으로 하여금 러시아 사회의 현실적 제약조건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함으로써 ‘직접과도’에서 ‘간접과도’를 모색하게 했다. 즉 신경제정책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레닌은 사회주의 단계에서 국가자본주의의 역할과 상품경제, 그리고 물질적 자극의 필요성을 상당기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레닌이 말한 사회주의 과도기단계를 ‘사회주의+자본주의’의 공식으로 단순화하고 사회주의적 요소와 비사회주의적 요소간의 적대적 관계로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다. 따라서 스탈린은 1920년대 말에 소련사회에 잔존해 있는 자본주의적 요소에 대한 총공세를 단행하여 1936년 경에는 사회주의 사회로의 전화가 완결되었다고 선언했다. 스탈린에 의하면 사회주의 사회의 특징은 첫째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이 공업부문에서 독점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고, 둘째로 농업부문에서 최대 규모의 기계화와 현대적 기술로 무장된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의 체제가 확립되었으며, 셋째 상품의 유통구조가 국가와 합작사, 그리고 집단농장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고, 넷째 착취계급이 소멸되었으며, 다섯째 각자 능력에 따라 노동하며 노동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스탈린은 소련에 있어서 사회주의 발전단계를
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도단계
⑵ 도시와 농촌에서 자본주의를 소멸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단계
⑶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새로운 과도단계로 구분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주의 3단계론을 설명하면서 스탈린은 지속적으로 사회주의적 요소와 비사회주의적 요소의 대립과 갈등을 강조하였고, 생산자료의 공유제의 정도에 따라서 각각의 과도시기가 구별된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생산자료에 대한 공유제가 확대되면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실현할 수 있고, 그에 따라서 점차로 상품경제가 소멸되고, 공산주의적 분배를 실시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이와 같은 스탈린의 사회주의 발전단계론은 중국의 맑시스트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하겠다. 특히 과도기에 있어서 자본주의적 요소에 대한 총공세를 단행하게 한 것과 공유제의 정도와 규모를 확대함으로써 사회주의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좌파의 논리는 스탈린식 사고의 연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맑시스트들이 처음부터 레닌이나 스탈린의 사회주의 발전단계론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맑스주의 고전이론에서는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의 단계를 설정하고 있는 데 비하여, 건국초기까지 중국의 맑시스트들은 1940년에 모택동이 제기한 신민주주의론에 입각하여 신민주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의 단계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모택동은 신민주주의론에서 중국과 같은 반봉건․반식민지사회에서의 혁명은 부르조아민주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2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의 경우 부르조아 민주혁명은 부르조아계급이 주도하는 전통적인 형태의 부르조아혁명이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계급의 동맹을 바탕으로 한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주도하에서 추진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중국혁명이 사회주의 혁명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구민주주의 혁명과 구별되는 신민주주의 혁명이라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신민주주의 혁명단계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의 수립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며, 노동자와 농민, 소시민과 민족자본가 등 4계급 연합의 인민정권의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또한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사회주의적 요소와 자본주의적 요소의 공존을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같이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오랜 봉건적 전통의 영향이 잔존해 있는 사회에서는 상당한 기간동안 신민주주의 혁명단계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에 잠정적인 기본법으로 채택된 공동강령에서도 중국은 신민주주의국가, 즉 인민민주주의국가라고 규정하였고 사회주의적 요소와 비사회주의적 요소의 공존과 상호협력을 강조하였다. 즉 공동강령에서 설정한 신중국의 경제체제는 일종의 혼합경제체제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공사겸고(公私兼顧)와 노자양리(勞資兩利)의 원칙에 입각하여 사회주의적 성격의 국영경제, 반사회주의적 성격의 협동조합경제, 소규모의 개인경제, 자본주의적 성격의 사영경제, 그리고 국가자본과 개인자본의 협동체로서의 국가자본주의경제 등 5종(種)경제의 공존과 발전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건국 초기만 하더라도 중국의 주요 지도자들은 사회발전단계론에 있어서 중국과 소련과의 차별성을 명백히 인식하였고, 중국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신민주주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회발전단계에 대한 인식은 1953년에 모택동이 과도기 총노선을 제기하면서 대폭적으로 수정․조정되었다. 모택동에 의하면 중국은 1949년 이후 토지개혁, 항미원조․반혁명분자의 진압, 국민경제의 부흥 등 대규모의 투쟁을 성공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사회주의 사회에로 이행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 조성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때부터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때까지는 하나의 과도기라고 규정하였다. 다시 말해서 신민주주의단계는 1949년에 실질적으로 종결되었고, 1949년 이후 중국은 사회주의 사회에로 이행하는 과도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모택동에 의하면 과도기에 있어서 국가의 기본임무는 사회주의적 공업화를 일보 일보 실현하고 농업과 수공업, 그리고 자본주의적 공상업에 대한 사회주의적 개조를 일보일보 완성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53년을 기점으로 중국사회를 과도기사회라고 규정하고 「자본주의체제와 모든 착취제도를 완전히 청산하는」 혁명적 변혁을 요구하면서도 모택동은 ‘사회주의에로의 일보․일보 전진’을 강조하였고, 약 15년 이상의 시기를 경과해야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그러나 과도기 총노선이 선포된 지 불과 3,4년만인 1956년 경에는 기본적으로 공업과 농업 및 수공업분야에서 국유화와 집단화가 완결됨으로써 중국은 최소한 소유제도의 측면에서는 사회주의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된 후 모택동은 1958년에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을 선포하고 대약진운동을 전개했으며, 또한 1966년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하의 계속혁명론」을 제기하면서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에로의 이행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 모택동과 좌파이론가들은 「사회주의사회=과도기론」을 주장하면서 계급투쟁을 강조하고 자본주의적 요소의 척결과 공유제의 확대를 강조했다.
이와 같은 맑스와 레닌, 스탈린, 모택동 등의 사회주의 발전단계론에 대하여 중국의 개혁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첫째, 맑스의 고전적인 사회주의론은 ‘과학적 추론’에 불과하기 때문에 교조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맑스는 중국과 같이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사회에서의 사회주의에로의 이행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둘째 레닌의 신경제정책은 맑스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우회적 경로를 통하여 사회주의에로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주의에로 다양한 발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되지만, 그것은 스탈린에 의해 단순화․정식화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스탈린은 공유제의 확대를 곧 사회주의의 발전으로 인식하였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등과 대립을 강조함으로써 모택동과 좌파의 ‘一大 二公(一大二公)’의 논리를 낳게 했다는 것이다. 셋째, 모택동과 중국의 건국초기 지도자들은 중국의 사회적 조건을 고려하여 신민주주의론을 제기하고, 장기간의 신민주주의단계를 통해서 사회주의에로 이행할 수 있는 객관적․주관적 조건을 준비해야 한다고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1953년에 과도기 총노선이 제기되면서 무리하게 신민주주의 단계를 단축․종결했을 뿐만 아니라, 궁과도(窮過度)를 시도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중국적 사회주의의 좌절을 초래했다.
따라서 개혁론자들에 의하면 중국에서 사회주의적 개조가 기본적으로 완성된 1956년 이후를 사회주의 초급단계로 설정해야 하며, 이 시기의 과제는 신민주주의 단계에서 완성했어야 할 역사적 과제, 즉 경제발전과 생산력의 제고를 계속 추진함으로써 완전한 사회주의에로 발전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자들은 중국에서 상당기간의 신민주주의 단계가 필요했다고 지적하면서도 1953년의 과도기 총노선의 제기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추진된 사회주의 개조과정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주의 개조가 기본적으로 완성된 1956년경에 중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사회주의의 승리가 확정되었고, 사회주의 사회로 전화되었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1956년에 사회주의 사회에로의 전화는 생산의 사회화와 현대화가 충분히 발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룩된 것이기 때문에 초급단계의 사회주의라는 성격을 가진다. 이런 점에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는 과거의 신민주주의 단계와 과도기와도 구별되며, 일반적 사회주의 또는 발전된 사회주의와도 다르다. 즉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는 이미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사회주의의 승리가 확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세력과 자본주의세력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특징지워지는 과도기와 구별된다는 것이고, 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와 공유제의 사회주의경제가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신민주주의 단계와도 구별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는 정치적인 차원에서나 경제적인 차원에서 일반적인 사회주의의 특징,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와 공유제경제, 그리고 노동에 따른 분배의 실시 등을 공유하고 있지만 사회주의의 우수성을 모두 갖춘 그런 사회가 아닌 ‘미발달된 사회주의 사회’ 라는 점에서 일반적 사회주의 사회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모든 사회가 사회주의 초급단계를 거치는 것은 아니며,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만큼 물적 조건이 성숙되지 않은 사회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함으로써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게 되는 경우에만 거치게 되는 ‘특정한 단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3. 사회주의 초급단계론과 중국적 사회주의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자들은 중국적 사회주의는 모든 사회주의가 공동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보편적 목표, 또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사회주의의 보편적 특징이란 대체로 호요방이 1982년의 12전대회에서 지적한 다음의 7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즉
⑴ 착취제도의 타파
⑵ 생산수단의 공유 ⑶노동에 따른 분배
⑷ 계획적인 국민경제의 발전
⑸ 노동자계급과 근로인민의 정권
⑹ 고도로 발달된 생산력과 자본주의보다도 높은 노동생산성의 보유
⑺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정신문명 등은 모든 사회주의 사회의 보편적 특성이며, 중국적 사회주의도 어느정도는 이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적 사회주의는 초급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와같은 보편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인 형태와 내용성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초급단계론자들은 중국적 사회주의의 근본과제는 생산력의 발전에 있다는 전제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첫째, 공유제를 주체로 하면서도 다양한 경제 구성요소들의 공존과 발전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자들에 의하면 모든 사회주의 사회가 단일한 소유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마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적 소유와 더불어 공적 소유형태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 사회라고 해서 단일한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이 획일적으로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사회주의 사회에서 공유제의 정도와 범위는 사회적 발전정도, 특히 생산력의 발전과 성숙의 정도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있는 중국에서 공유제 경제만을 강조하는 것은 좌경적 편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초급단계론자들은 공유제경제가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사영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소유제형태가 공존․발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개체경제는 물론이거니와 자본주의적인 사유경제와 합작경제, 그리고 국가자본주의적 형태의 경제구성요소들이 국유제 및 집단소유제의 경제와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와 같이 다양한 소유제경제를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공유제경제부문에 있어서도 소유권과 경영권의 분리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다양한 경영방식을 도입․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농촌경제부문에서는 농업생산책임제의 실시와 더불어 이미 소유권과 경작권의 분리가 실현되었다. 즉 농토의 소유권은 여전히 집단소유로 남아 있으면서도 개별농가들에게 15년 이상의 경작권을 허용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경작권의 전매행위까지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개체경제의 영역을 대폭적으로 확대해 주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지역의 국유기업(國有企業)에 대해서도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리하여 경영의 합리화․효율화를 증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계약․임대․주식제도 등을 도입하고 있다.
셋째, 이와 같이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자들은 사회주의=공유제 경제의 도식적 해석을 비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계획경제라는 도식이나 또는 사회주의 경제=산품경제라는 도식도 수정하고 있다. 물론 이들도 마르크스․엥겔스가 예견했던 것처럼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이 사회전체의 소유가 되며 사회전체가 하나의 경제적 주체가 되어 계획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해지고 상품과 화폐가 사라진다는 것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스탈린에 의하여 인정된 바와 같이 사회주의의 조건에서의 생산은 산품생산이 아니라 여전히 상품생산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의 경우는 ‘계획적인 상품경제’의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1984년에 열린 제12기 3중전회에서 통과된 「경제체제의 개혁에 관한 결정」에서 계획경제와 상품경제를 대립적으로 사고하는 과거의 도식적 견해를 비판하고, 중국적 사회주의의 특징을 ‘공유제를 주체로 한 계획적 상품경제의 발전’이라고 규정한 바가 있다. 따라서 초급단계론자들은 지령성 계획을 위주로 한 경제에 대한 ‘직접관리’의 방식을 축소 지향하고, ‘국가가 시장을 조절하고 시장이 기업을 유도하는’ 간접관리의 방식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자들은 개별기업과 지방정부의 경제적 자율권을 확대하여 계획경제의 틀 안에서 시장․분업․경쟁을 촉진함으로써 활발한 사회주의적 상품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넷째,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자들은 사회주의=생산자료의 사회적 소유+사회주의적 상품경제+노동에 따른 분배라는 관점에서 분배에 있어서 평균주의적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 맑스는 「고타강령비판」에서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에서 실시하는 노동에 따른 분배는 등노동량교환원칙(等勞動量交換原則)의 지배를 받는 것이고 따라서 여전히 ‘부르조아적 권리(資産階級 法權)’가 인정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모택동과 좌파이론가들은 중국이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르조아적 권리를 비판하면서 노동에 따른 분배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평등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급단계론자들은 이와 같은 좌경적 평균주의를 극복하고 노동에 따른 분배원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파생하는 소득의 불평등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동부유’의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일부지역․일부계층이 우선적으로 부유해 지는 것’(先富)을 장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다종경제, 다종경영이 발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노동 이외의 소득에 대해서도 합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자본과 자금이윤으로부터 나오는 소득부문이나 경영이윤에서 파생하는 비노동수입의 합법적인 지위를 인정해야 하며, 부분적으로 잉여노동의 착취라든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부활문제에 대해서도 과거와 같이 교조적인 태도를 견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는 사유경제를 인정하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존재와 발전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경제적 불평등은 오히려 생산력의 증강을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역설하면서 ‘자본주의의 부활’에 대하여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공유제 경제가 압도적 우위를 점유하고 있으며,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독재체제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중국적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체제를 견지하면서 생산력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과감히 수용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의 한계와 문제점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은 유생산력론의 관점에서 모택동시대의 사회주의론을 비판하면서 등소평시대에 실시한 개혁과 개방정책을 계속 추진함으로써 중국적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개혁파의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등소평의 중국적 사회주의, 또는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은 몇 가지 논리적, 현실적 한계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모택동과 좌파의 계급투쟁론과 계속혁명론이 생산력에 대한 생산관계의 영향을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형이상학적 관념론의 오류를 범했다면, 생산력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초급단계론자들은 또다른 의미에서 경제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유생산력론의 관점에서만 중국혁명을 해석한다면 중국과 같이 낙후된 사회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설명할 수 없으며, 또한 생산관계의 역할을 인정한다면 사회주의의 승리가 확정된 중국사회에서 초급단계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100여년 간이나 초급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논리도 의문시된다. 따라서 조자양은 ‘근대중국의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 아래서 중국인민들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된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혁명발전 문제에 있어서 기계론이며, 우경적 착오의 중요한 인식근원’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생산력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않고서도 사회주의 초급단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혁명발전 문제에 있어서 공상론이며, 좌경적 착오의 중요한 인식근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양시론적(兩是論的)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양시론도 왜 생산력의 문제가 사회주의가 승리한 이후에야 비로소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지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둘째,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 다종경제와 다종경영이 발달함에 따라서 사회적 관계가 전면적으로 개편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와 같은 토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상부구조의 변화에 대해서 적극적인 논리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물론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약100년간에 걸쳐서 경제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중국경제가 최소한 중진국의 수준에 도달하계되면 초급단계가 끝나고 사회주의의 고급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이와 같은 생산력의 발전은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사회주의의 초급단계에서는 생산력의 발전과 더불어 정치적 민주화가 동시에 추진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경제중심적 사고는 정치체제의 개혁에 대해서 비교적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게 한다.
셋째,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모순, 이를테면 계획과 시장의 모순, 공동부유의 이상과 불평등의 심화현상 사이에서 나타나는 혼란, 그리고 소유구조의 다양화 과정에서 수반되는 계층적․계급적 분화와 갈등 등은 어떻게 보면 신․구체제의 마찰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중국적 사회주의가 안고 있는 기본적 딜레마의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즉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자본주의적 요소를 과감히 수용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하려는 중국적 사회주의가 당면하게 되는 필연적 딜레마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천안문사건은 중국적 사회주의의 한계를 극명하게 표출한 것이라고 하겠다.
5.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론
사회주의 초급단계론과 상품경제론이 1980년대 경제개혁 논리였다면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은 1980년대의 경제개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은 1992년 14차 당대회에서 제기되어 1993년 3월 29일 제8기 전인대에서 개정된 헌법에 명기됨으로써 중국의 경제체제개혁의 목표로 확립되었다. 1982년 헌법 제15조는 “사회주의적 공유제의 기초위에서 계획경제를 실시”하며, 국가는 “계획경제의 종합적 균형과 시장조절의 보조기능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을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다시말해서 1980년대에는 계획경제를 기본으로 하고 시장을 보조적 장치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2년에 개정된 헌법 7조에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실시”하며, 경제입법과 거시경제적 수단을 사용하여 경제룰 운영한다고 규정하였다. 즉 사회주의는 곧 계획경제라는 등식을 부정하고 사회주의의 틀한에서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해서 시장경제메카니즘이 중국에 처음으로 도입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계획적 상품경제시기에도 비록 제한성을 갖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계속 확대되어 왔다. 따라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선언은 지금까지 발달해온 중국경제내의 시장화를 반영한 것이며 개혁·개방의 실천경험과 인식의 심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강택민이 14차 당대회에서 “개혁개방을 실시한 10여년 동안에 시장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대다수 상품가격에 대한 통제가 해제되었으며 시장의 역할이 크게 강화되었다. 실천이 입증하는 것처럼 시장기능이 충분하게 발휘되는 곳은 경제활력이 비교적 강하고 발전태세도 비교적 좋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실천과 인식의 심화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를 수립함으로서 생산력을 더 한층 해방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요구하였다.”라고 언급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또한 중국적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개혁의 긍정성을 살리는 동시에 계획적 상품경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사회과학원(中國社會科學院)에 의하면 중국의 개혁전략은 점진적인 방식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중국의 실정에 알맞는 것을 실험해보고 그로부터 점진적으로 확산해 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혁의 점진적 방법으로 인해 “新· 舊 두 체제가 병존하는 시기가 생기고 이 시기에는 두 체제의 상호 작용으로 반드시 여러 가지 폐해가 일어나게 된다. 이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혁의 속도를 빨리하여 금세기말에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어느 정도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1978년 이후 추진된 15년간의 개혁경험의 귀결점으로서의 중국적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내용은 무엇인가? 14차 당대회에서 강택민이 제기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다음과 같다. ⑴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는 사회주의 국가의 거시적 통제 하에서 시장이 자원배분의 기초적 역할을 맡음으로써 이에 기초해 경제활동을 가치법칙에 따르게 하고, 수요-공급관계의 변화에 순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⑵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사회주의의 기본제도와 결합되어 있으며 소유제 구조에서 전인민적 소유와 집체소유를 포함한 공동소유를 주체로 하고 개인경제, 사영경제, 외자경제를 보조적 소유제로하여 여러 가지 경제요소를 장기간 같이 발전시켜야 한다. ⑶국가소유기업과 집체소유기업이 주도적 역할을 발휘하게끔 해야한다. ⑷국가계획은 거시적 조절, 통제를 위한 중요한 수단의 하나이다. 계획에 대한 관념을 바꾸고 계획의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 국민경제와 사회발전의 전략적 목표를 합리적으로 확정하여 경제발전에 대한 예측, 총량에 대한 조절, 중요 산업구조와 생산력 배치에 대한 계획을 원만히 하고 필요한 자금과 물력을 집중하여 중점건설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⑸분배 제도상에서 노동에 따라 분배함을 주체로 하고, 기타 분배방식을 보충으로하여 효율과 공평을 겸하여 고려한다.
이러한 내용의 중국적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기존의 공유제를 혼합형 경제의 틀안에서 유지시키면서도 기업경영과 노동자 채용 및 가격제도에서 자본주의 개념의 수용을 거의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국당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는 것은 경제개혁기 동안 지속된 시장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종결되었으며, 시장이 더 이상 정당화될 필요가 없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더 이상 개선된 계획체계가 아니라 완전한 시장체계이며 시장이 자원배분의 주요메카니즘으로 작동하기 시작하였으며, 국유기업과 비국유기업이 각기 다른 경제환경에서 작동하였던 이중적 경제구조가 철폐되고 소유권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같은 환경에서 운동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이론가들에 의하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의 일반적인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고 지적한다.
⑴ 어떤 법인 지위를 지닌 기업이든 불문하고 모두 자주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자주적으로 경영하며 스스로 이익과 손해를 책임져야만 한다.
⑵ 각종 생산품 서비스 화폐 자본 노동 등을 포괄하는 생산요소는 모두 가격원가의 유리성에 의거하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⑶ 가격 등 민감한 시장신호와 우승열패하는 경쟁 메커니즘이 시장의 주체가 일상적인 경제안정을 견지하게 어렵게 한다.
⑷ 시장구조 자체가 완전경쟁의 실현과 완전한 정보제공이 어렵고 또한 자발성과 후발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 시장경제 자체의 운영에만 의존할 경우 주기적인 경제위기와 양극분화를 생기게 하고 장기적인 경제안정을 어렵게 한다.
이상과 같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이론가들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본질적으로 그 성격을 다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먼저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경제에서는 공유제를 주체로 하는 것이고 정치에서는 공산당을 지도자로 하며, 이 두가지 모두가 함께 부유해지는 것(共同富裕)을 사회적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 시장은 사유제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기업생산의 유일한 목적이 잉여가치의 창출에 있는 것이라면,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사회주의 생산목적과 국유자산의 가치보존 및 가치증식을 실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 이다.
둘째,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정권의 성질이 사회주의라는데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사유제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필연적으로 개인자본의 무제한의 증대와 수입의 양극분화가 초래되는 반면 공유제를 주체로 하고 노동에 따른 분배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사회주의 정권이 ‘조절메카니즘과 사회정책을 통해 소득격차의 극단적인 확대를 저지해서 최종적으로는 함께 부유해지는 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적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성공할 것인가?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건설을 위한 일정을 대략 2000년까지는 초보적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건설하고, 2010년에는 비교적 완비된 시장체제를 형성할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파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계획대로 실현된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왜냐하면 시장경제로의 체제 개혁의 실무조정자인 주용기 부총리가 지적하고 있듯이 “중국은 경제체제 개혁에 있어 전통적인 계획경제의 저항에 직면하여 있으며, 또한 모든 불합리한 기득이익의 장애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며, 더욱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장경제를 수립하는 것은 이전에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사실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확립함에 있어 많은 문제를 안고있다. 먼저, 기업이 완전한 시장주체로 자리잡지 못하고 시장기능이 발달하지 못하여 각종 경제요소가 시장기능과 연계되지 못하고 있으며, 둘째 생산요소 시장이 정체되어 가격기능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행정수단과 시장기능사이에 마찰이 일어나고 있으며, 셋째 전국적인 통일된 시장과 지역성 시장이 병존하고 있으며, 넷째 시장기능에 대한 거시적 통제가 성숙되지 못하여 정부의 간접통제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중국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근간으로하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첫째, 국가소유기업 특히 대중형기업의 경영메커니즘을 전환하고 기업을 시장에 진출시킨다. 둘째, 시장체계 육성을 가속화 한다. 생산요소시장, 금융시장, 노동시장, 기술정보시장, 부동산 시장을 발전시켜 전국적으로 통일적이고 개방된 시장체제를 형성한다. 셋째, 분배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을 심화시켜 나간다. 넷째, 정부기능의 개혁을 가속화 한다. 정부는 법령에 규정된 기업의 직권에 대해, 정부가 기업에 이전한 권력에 대해 간섭해서는 안된다.
이상과 같이 중국이 인식하고 있는 문제점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계획과 시장의 공존이라는 경제체계의 이중성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의 해결방향 역시 계획과 시장이라는 상이한 환경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폐지하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제개혁의 방향 즉, 이중적 체계의 해체가 가지고 올 잇점에 관해 중국 경제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예컨데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지 않고 시장에는 시장가격만 존재하고 계획가격과 시장가격이 병존하지 않는다면 가격차이로 폭리를 취하는 행위는 불가능할 것이며, 또한 공정가와 암시장가의 차이를 해소한다면 외환투기는 근절될 것이다. 기업의 재산권리를 명확히 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독립, 자주적 책임을 지는 법인으로 만들면 기업은 정부의 행정통제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기업과 정부의 종속관계는 단절된다. 따라서 정부관료가 행정권력을 이용해 기업을 통제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현상은 일소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불공정 경쟁으로 조정된 사회집단과 개인간의 충돌과 모순은 완화될 것이다.
다시말해서 시장의 기능과 역할을 전면적으로 수용한다면 여러 가지 사회적․정치적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시장경제의 역할을 그렇게 확대하면서도 여전히 ‘사회주의’라는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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