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국 정치론]
제5부 제5장 탈냉전시대의 한․중관계
1. 서론
1995년 11월에 강택민(江澤民) 주석이 중국의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한-중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탈냉전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대국간의 복잡한 상호경쟁과 견제가 예상되는 싯점에서 한-중관계는 한반도의 통일은 물론이거니와,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번영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한-중관계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긍정적인 요인과 억제적인 요인을 규명함으로써 한-중관계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 대한 조망을 하고자 한다. 모든 나라들간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한-중관계도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한-중관계의 성격과 발전방향도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국제정치 질서, 지역적인 차원에서의 복잡한 국가간의 갈등구조,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국내 정치상황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냉전시대의 한-중관계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전개되었던 체제와 이념의 대결상황, 그리고 지역적 차원에서 남북한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미국-일본의 남방 3각관계와 북한-중국-소련의 북방 3각관계의 대결구도, 그리고 중국과 한국의 경직된 국내정치질서로 말미암아 적대적이며 대결적인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세계적, 지역적인 차원에서 냉전질서가 이완되고, 중국과 한국의 국내정치도 체제와 이념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자율적이고 개방적인 대외정책을 모색하면서 한-중관계는 과거의 적대적 대결관계에서부터 점차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980년대 후반이후 탈냉전적 신국제질서에 적응하기 위하여 한국과 중국이 모두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추진하게 되면서 한-중관계는 공존-공영의 원칙에 입각한 상호 협력관계를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중관계가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모두 해방된 것은 아니며, 또한 탈냉전의 신국제질서에서 한국과 중국의 국가이익이 언제나,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상호 보완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1980년대이후 한-중관계의 발전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서, 한-중관계의 발전을 추동하는 요인과 한-중관계의 장애요인이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는 어떤 것인가를 전망하고 몇가지 정책 대안도 제시하였다.
2. 냉전질서의 이완과 한-중관계의 변화
냉전시대의 적대적인 한-중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였다. 1970년대까지 한국과 중국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단절되어 있었다. 그러나 1983년 중국 민항기 납치사건의 발생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은 비공식적인 차원에서의 접촉을 개시하였고, 양국간의 교역도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여러가지 정치적 장애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간의 교역량은 해마다 증가하여 1985년경에는 이미 11억 6천만 달러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으며, 1987년에는 16억 8천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1980년대초에 비교적 조심스럽게 추진되었던 양국간의 접촉과 교역은 1988년을 계기로 그 이전과 비교하여 대폭적으로 증가되었다. 1988년의 한-중간의 교역양은 30억 달러를 초과하였고, 1989년에는 중국의 천안문사건에도 불구하고 양국간의 교역양은 31만 4천만 달러수준으로 증가하였으며, 그 이후에도 매년 확대되었다.
이와같이 1980년대에 한-중관계가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도 국제적인 차원에서 냉전체제가 이완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한반도 주변 4강간의 대결과 대치상황이 해소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다시말하면 1979년 미국과 중국의 국교정상화와 1980년대의 중-소화해 모색 등으로 동북아시아의 냉전질서가 변질되기 시작하였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들 4대 강대국간의 이해관계도 한반도의 안정과 현상유지라는 차원에서 대체로 일치하게 됨으로써, 한-중관계는 과거와 같은 냉전적 대결상태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여지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 한국의 국내외정책은 모두 한-중관계 개선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중국의 경우, 1978년 11期 3中全會 이후 적극적으로 경제발전 제일주의노선을 추구하면서 과거의 양대진영론을 폐기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대한 대대적인 문호개방과 체제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한국을 인식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한국정부도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6ㆍ23선언 이후 사회주의국가들과의 교류를 허용하고 간접적인 형태로나마 소련을 비롯하여 중국 등 사회주의국가들과의 경제및 문화교류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한국정부의 사회주의국가들과의 관계개선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산출하지 못하였고, 1980년대에 들어와 비로서 한-중관계를 비롯하여 한-소관계가 변화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980년대 후반에 한국은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민주화, 그리고 88올림픽을 통하여 국제적 위상이 제고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중국을 비롯하여 소련과 동구사회주의국가들도 대담한 개혁, 개방을 추구하면서 한국과 중국, 그리고 다른 사회주의국가들과의 교류가 대폭적으로 확대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1989년 천안문사건으로 말미암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중국의 관계는 긴장국면으로 전환되었지만, 한-중관계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오히려 확대,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미-중관계는 소련 견제라는 공통적인 안보이익을 바탕으로 긴밀한 정치적-경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소련의 위협이 실질적으로 감소, 또는 소멸되면서 미-중간의 소련 견제라는 공통적인 안보이익이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과 미국은 각기 탈냉전시대에 들어서면서 상대방의 패권주의를 경계하는 경향마저 보이게 되었다. 다시말하면 중국은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패권주의를, 그리고 미국은 소련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쇠퇴한 이후 아시아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부상하고 있는 강력한 중국의 등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서 서로를 경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1989년의 천안문사태는 미국과 중국간에 잠복해 있던 체제와 이념의 이질성을 자극함으로써 미국내에서 기존의 미-중관계를 비판하는 여론을 형성하게 하였다. 천안문사건으로 말미암아 미국민들 사이에서 중국적 사회주의의 실체를 새롭게 해석하게 되었고, 또한 중국적 사회주의도 조만간 소련이나 동구에서와 같이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팽배하게 됨으로써 미-중관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와같은 미국내 여론의 영향을 받아 미국정부는 중국의 인권과 민주화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중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위협하였으며, 이러한 미국의 정책에 대하여 중국은 미국의 ‘내정간섭’(內政干涉)과 ‘화평연변’(和平演變)전략이라고 강력히 반발함으로써 미-중관계는 탈냉전시대에 오히려 긴장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처럼 천안문사건와 소련 및 동구에서의 사회주의체제 붕괴 이후 중-미관계가 갈등적인 측면을 노출하는 과정에서도 한-중관계가 계속 확대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물론 천안문사건 이후에도 미국과 중국정부가 각기 양국관계를 냉전시대와 같은 대결적 관계로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했기 때문이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한국과 중국은 모두 미-중관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양국관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물론 두 나라의 경제가 상당히 높은 상호보완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인 경제교류의 확대를 통하여 양국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한국과 중국정부가 탈냉전시대에 양국간의 관계개선이 양국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와 부합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 더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하겠다.
실제로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과의 관계개선은 북방정책의 중요한 목표중의 하나였다. 특히,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의 변화는 대단히 중요한 조건이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경제적 손익계산을 떠나서 한-중관계의 개선을 추구하였다. 또한 중국의 입장에서도 한국과의 경제적 관계개선은 천안문사건 이후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대중국 제재를 완화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탈냉전시대의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였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중국은 천안문사건 이후 미국과 서방세계의 압력에 대항하여 한편으로는 ‘전방위외교’를 구사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중국 주변의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따라서 중국은 1990년대초에 아세안 국가들은 물론이고, 베트남이나 몽고와 같이 중국과 적대적, 갈등적 관계에 있던 주변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이었다. 한국과의 관계개선도 이와같은 중국의 전략적 외교정책의 맥락에서 추진되었다고 하겠다.
이처럼 천안문사건에도 불구하고 한-중간의 비정치적인 차원에서의 교류와 협력의 범위는 오히려 확대, 발전하였지만, 한국과 중국간의 정치적 관계는 여전히 정상화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북한과의 ‘특수 관계’를 의식한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에서 정-경분리의 정책을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중국의 태도도 1990년의 한-소수교, 한-중간의 경제적 상호 보완성 증대, 그리고 중국에서의 개혁, 개방정책의 심화라는 국내외적인 여건 변화에 부응하여 수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1989년 동구의 대변혁과 더불어 동구 사회주의국가들과 한국과의 관계개선이 잇달아 이루어지고, 마침내 1990년 9월 30일에 한-소수교가 공표됨으로써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의 보다 현실적인 수정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더구나 중국 내부에서도 1992년초 등소평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계기로 보다 적극적으로 개혁, 개방정책을 추진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한-중 국교정상화를 지연하는 것이 오히려 중국의 국익에 손해가 된다고 판단하게 됨으로써 마침내 1992년에 한국과 중국은 역사적인 국교정상화에 합의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3. 탈냉전시대의 한-중관계 : 보완적 측면과 갈등적 측면
한-중수교 이후 양국간의 교류와 협력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양국간의 경제교류는 양국 경제의 높은 상호 보완성을 바탕으로 놀라운 속도로 증대하고 있다. 한․중수교가 채결되었던 1992년 당시 한국의 대중국 수출입 규모가 약63.8억달러이었던 것이 연평균 40%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1994년 현재 쌍방의 직접, 간접 교역규모는 약 117억 달러를 기록하였고, 1996년 현재에는 198억 5,000만 달러의 수준으로 급성장 함으로써, 한국은 중국의 6대 교역상대국이 되었고, 중국은 한국의 3대 교역 상대국이 되었다.
인적 교류도 수교 첫해인 1992년에는 총 출입국인원이 8만 8천명에 불과했으나, 1993년에는 거의 두배인 15만여명으로 증가되었고, 1994년에는 30만명을 초과하였다.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한-중수교 이후 양국 외무부 장관의 교환방문, 의회및 정당 차원의 교류등도 점차로 활성화되고 있으며, 1994년 3월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중국방문에 이어, 이붕(李鵬) 중국총리와 교석(喬石)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공식 방한, 그리고 마침내 1995년 11월에는 강택민(江澤民)주석의 한국방문이 실현됨으로써 양국관계는 점차로 협력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와같이 양국 정치지도자들의 상호 교환방문과 더불어, 주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양국정부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협력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예를들면, 한국정부의 남북한 UN동시가입안에 대하여 중국은 호의적인 협력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서도 중국은 소극적이나마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1996년 한-미 양국이 제기한 4자 회담에 대해서도 중국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사실, 탈냉전시대에 한국과 중국은 경제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인 차원에서도 상호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양국은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평화 유지에 공통적인 정치적-안보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으며, 동시에 탈랭전시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양국은 모두 경제적-외교적인 차원에서 다변화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앞 장에서 지적한 바와같이 중국은 천안문사건 이후 미국과 서방세계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른바 ‘전방위외교’(全方位外交)를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한국과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중국의 대미, 대일관계가 악화되고, 북한이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과의 균형된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하겠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에 대한 불만이 축적되면서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동시에 한국도 일본의 강대국화에 대한 경계심을 중국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탈냉전시대의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는데 협력할 수 있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탈냉전시대의 한-중관계는 경제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외교-안보적인 차원에서도 상당한 정도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러한 공동인식은 지난 95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된 김영삼 대통령과 강택민주석의 정상회담의 다음과 같은 주요 의제에 반영되었다.
첫째, 김영삼 대통령과 강택민 주석은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하여 상호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특히,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양국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하였고, 한반도문제는 남북한간의 대화와 타협에 의하여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김영삼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문제는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을 통하여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당사자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이에 대하여 중국의 강택민 주석은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평화체제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현재의 정전체제가 유지되어야 하며,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남북한은 물론이거니와 미국과 중국 등 관련 당사국들의 참여와 이해에 입각하여 추진되어야 한다는 중국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은 비록 남북한 당사자간의 합의를 주장하는 한국의 입장이나 북-미간의 협상을 고집하는 북한의 입장과 다르지만, 장기적으로 남북한관계의 개선 및 동북아 지역질서의 안정에 중국이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중국은 1961년에 북한과 체결한 ‘조-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을 폐기하거나 개정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밝히면서도 그것이 군사동맹조약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명백하게 밝힘으로써 한반도문제에 대한 중국의 군사개입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둘째, 양국 정상은 과거 침략전쟁 행위에 대한 일본의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공동으로 대처해 나갈 것임을 합의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비록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과거문제라는 특정한 사안에 대하여 공동 협력하기로 한 것이었지만, 탈냉전시대에 이 지역에서 급속하게 부상하고 있는 일본의 영향력을 견제한다는 차원에서 한국과 중국 간의 협력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특히, 중국은 앞으로 점점 더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강화되고, 일본의 정치-군사 대국화 경향이 적극화 될 것으로 판단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 한국을 비롯하여 주변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중시하고 있다. 한국도 탈냉전시대에 일본의 패권주의에 대하여 경계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과 중국은 이 지역에서 일본이나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주의’를 견제한다는 점에서 공동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겠다.
셋째, 양국 정상은 한-중간의 경제관계가 단순한 교역관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방면에서의 산업협력 단계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점에 합의하였다. 사실 한-중 양국은 1994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에 이미 산업협정을 체결하고, 자동차, 전자 교환기, 항공기, 고화질 텔레비젼 등 4개 분야에 걸쳐 산업협력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이번에는 한-중간의 산업협력의 범위를 더 한층 확대 심화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본격적인 산업협력시대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하겠다. 특히, 강택민 주석은 중국의 9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 (1996-2000)과 2010년까지의 장기 발전계획에 한국이 적극 참여, 투자해 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향후 중국에 대한 한국 기업의 진출 기회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와같이 탈냉전시대에 한국과 중국은 경제교류와 협력이 확대될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유지와 이 지역에서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협력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양국간의 관계가 항상 보완적인 것만을 아니다. 이미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한국과 중국경제는 부분적으로 경쟁적이고 갈등적인 측면을 노출하고 있다. 중국의 빠른 경제발전으로 중국은 한국에게 ‘거대시장’이면서도 동시에 ‘무서운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이나 대외정책이 반드시 한국의 대북정책이나 통일정책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한-중수교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계속 유지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정권의 불안정이 중국의 국가이익에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북한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지원은 북한경제의 위기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북한의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일례로 중국은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란 명분에 동조하여 1994년 9월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중국대표단을 철수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한국측의 우려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은 최근 북한에 대해 수재피해 복구 명목으로 경제원조를 제공하고, 북경에서 개최된 북한 노동당 창당 50주년 기념행사에 강택민을 비롯한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하고, 강택민 주석의 한국 방문에 대한 북한의 불만을 무마시키려고 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은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견지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중국의 두 개의 한국정책이 반드시 한국의 대북한 및 통일정책과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이 남북한의 평화공존과 남북한 당사자들간의 대화와 협력, 그리고 4대 강대국의 남북한 교차승인과 한반도에서 평화체제 구축에 있다면, 한국정부가 제창하고 있는 평화통일 정책기조와 상당히 보완적일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만일 중국의 대북한 지원이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오히려 지연시키고, 북한 내부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자연발생적 변화를 무리하게 저지하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한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될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민에게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은 ‘기대와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4. ‘중국위협론’와 한중관계의 미래를 위한 한국의 대응방안
최근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과 미국 등 서방세계에서는 강력한 지역패권국가로서의 중국의 등장에 대하여 우려하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경제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중국경제는 아마도 총량적인 측면에서 미국이나 일본을 능가할 것이며, 이와같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이 지속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한다면, 21세기에 중국은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할 것이란 예측과 우려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중국의 개혁과 개방이 심화ㆍ확대되는 과정에서 중국사회에서 등장하고 있는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고려한다면, 탈냉전시대의 중국은 과거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자국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중국의 국내적인 불안이 대외 강경노선으로 표출할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현재의 중국 지도부는 이와같은 ‘중국위협론’을 경계하고 있다. 사실, 중국경제는 총량적인 측면에서 엄청나게 발전하였고, 또 앞으로도 발전하겠지만, 중국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고려한다면, 중국경제가 일본이나 미국, 또는 한국경제의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앞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될 것이며, 중국의 군비증강도 아직은 위협적인 수준이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또한 중국 사회에서 민족주의적인 성향도 확산되고 있지만, 동시에 중국의 국제적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국제주의적인 세력도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지역패권국가로서의 중국의 ‘위협’을 과대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탈냉전시대의 동북아시아 질서개편 과정에서 중국으로 하여금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방향에서 한-중관계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지속적인 개혁, 개방정책을 지원하면서 동북아시아에서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경제발전에 중국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중국과의 ‘동반자적 관계’를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과 중국은 앞으로 북한문제로 파생될 수도 있는 양국간의 갈등요인을 가급적 극소화하면서 탈냉전시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될 동북아시아에서의 지역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그리고 새로운 지역안보협력체제의 형성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은 방향으로 한-중관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인 측면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1) 신뢰관계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한-중관계는 수교이후 5년이란 짧은 기간에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였고, 앞으로 상당기간 경제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분야에서도 한-중관계는 계속 확대, 발전할 것이다. 그것은 양국간의 국가이익의 높은 상호 보완성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단순한 국가이익에만 기초한다면 양국간의 관계는 불안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장기적으로 발전하려면 양국간의 신뢰 구축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한국과 중국은 역사적 유대가 깊지만, 동시에 여전히 큰 체제와 이념의 이질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은 이러한 이념과 체제의 이질성을 극복할 수 있기 위하여 다방면에 걸쳐 구체적인 신뢰 조성 대책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각 방면에서 인적 교류를 확대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첫째, 양국의 지도자들간의 인적 유대강화를 위한 방문 및 초청외교를 강화하는 일,
둘째, 양국 정부와 의회 및 정당 간부들간의 정기적인 회합,
셋째, 각 분야의 민간단체간의 교류 확대등을 통하여 다방면에 걸쳐 인적교류를 통하여 양국간의 이해와 신뢰의 폭을 넓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2)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대중국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은 탈냉전시대의 전개와 더불어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를 철회하고 중국의 국가이익의 차원에서 한국과의 폭넓은 협력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지정학적인 이유로 북한을 순치관계(脣齒關係)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으며, 북한의 체제안정이 중국의 안보와 정치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체제의 붕괴나 북한체제에 대한 위협을 경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한국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중국에게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단절하라는 것과 같은 무리한 요구를 제시하거나, 남북한간의 경쟁과 갈등과정에서 중국으로 하여금 한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다. 오히려 중국이 북한에 대하여 어느 정도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장기적인 차원에서 남북한간의 화해와 협력에 유리하다는 입장에서 북한의 개혁, 개방을 촉진할 수 있도록 중국과 협력하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예를들면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나진, 선봉지역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합작투자를 시도함으로써 북한의 경제개방을 간접적으로 촉진할 수 있으며, 또 중국측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환발해권(環渤海圈) 경제발전계획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점차로 북한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도 있다.
또한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북한 핵문제와 같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 한국은 중국의 영향력을 기대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중국의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한-중관계는 중국과 북한의 특수관계, 그리고 한국과 미국 및 일본과의 특수관계를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3)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동반자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탈냉전시대의 동북아는 경제적으로 무한한 발전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면서도 동시에 탈냉전시대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지역이라는 이중성을 띠고 있다. 한반도와 대만문제와 같이 냉전시대의 갈등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는가 하면,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등 강대국들간의 견제와 경쟁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동북아에서 한중관계의 정상화를 바탕으로 우리는 동북아에서 강대국간의 안정적인 세력균형에 기초한 다자간 협력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은 중화주의적 패권주의도 경계해야 하지만, 탈냉전시대에 동북아에서 태동되고 있는 미국과 일본 주도의 새로운 패권적 질서에 대해서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중국카드’는 이 지역에서 미국이나 일본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팽창하는 것을 견제하는 데에도 유용하지만, 동시에 중국과 협력하여 이 지역에서의 다자간 안보협의체를 발전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와같은 정치-외교-안보상의 협력을 모색하면서 동시에 한국과 중국경제의 높은 상호보완성을 바탕으로 동북아에서 새로운 지역적 경제협력체제가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해서 한국과 중국은 세계경제의 블럭화에 대비하면서도 동북아의 공동 번영을 추진할 수 있는 동북아지역 경제권의 형성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4) 중국의 변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현재 중국은 등소평사후의 권력구조가 불투명한 정치적 과도기에 처해 있다. 따라서 중국의 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게 될 것인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하겠다. 특히, 개혁, 개방과 더불어 축적된 내부적인 모순과 갈등이 정치적 과도기에 폭발하여 큰 혼란에 휩싸일 수도 있기 때문에 기존의 정책노선이 그대로 전개된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의 국내정치 현황은 물론이거니아 중국의 대미, 대일관계 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중국과의 쌍무적인 관계와 더불어 다자간 관계로 확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다양한 계층과 지역과의 접촉과 교류를 확대하면서 국제기구와 다자간 관계 속에서 중국과의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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