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신화와 불교
유, 불, 도의 고등종교사상이 중국으로부터 우리 나라에 들어오고, 한문자가 보급되면서 문화사적 일대 혁신이 일었다고 하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이런 문화사적 패러다임의 변혁이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집약이라고 할 수 있는 건국신화에까지 영향을 미쳤음 직한 사정도 알 만하다.
예를 들면, 주몽신화의 하백은 중국에서 하신을 지칭하는 신명을 빌려서 표기해 놓았고, 단군신화의 천부인이라는 것도 기실은 도교나 불교의 용어를 차용해서 추상화시켜 놓은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비록 불교나 도교의 용어로 바뀌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는 이미 불교나 도교의 전래 이전부터 믿어졌던 것이라는 점이다. 스키타이계통은 왕의 신보로 배, 전부, 경구를 가졌고, 일본의 왕실에도 경, 검, 옥의 삼보가 전한다. 고구려나 신라에도 궁중에 삼보가 있었던 것처럼 고대왕실에서 지니고 있던 삼보가 신화적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이렇듯 신화 文面에서 고등종교의 영향이 읽어지는 것은 신명 또는 신기의 명칭 등으로, 신화의 구조 자체와는 무관하다. 신화의 구조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바뀌는 경우라고 하여도 대개는 전대의 신화구조에 근간을 두고 변형될 뿐이다. 유, 불, 도 삼자 중에서 우리 나라 건국신화의 구조에 변화를 초래한 것은 불교만을 꼽을 수 있다.
가락국기의 수로신화가 바로 그 예다. 단군, 주몽, 혁거세신화 모두는 신혼이 건국의 전제적 요소가 되었다. 신혼은 난장(orgy)과 상응한다. 제의적 또는 신화적 사실로서 난장은 질적 변환의 분기점이다. 이는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분기점이라는 말이 되기도 하며, 따라서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여 질서를 세우는 것은 창조적 행위로서 결혼에 의해 아이를 출산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나 수로신화는 그런 궤도를 벗어나 있다. 수로가 건국을 한 연후에 허황옥을 맞아 왕비로 삼은 것이다. 건국신화의 일반적 구도에서 벗어나 하나의 변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저나름대로의 어떤 필연적이고 문화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로는 신성원리에 의해서 인간화한 존재임에 비해서 허황옥은 아유타국의 공주로서 세속적인 인간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건국신화의 인격으로 자리를 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즉 신의 현몽을 통한 계시에 의해 왕비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계시란 근원에 있어 초월적이면서도 결과적으로 실재에 영향을 주는 행위로서 계시의 수용자는 신화적 인물로 전환되기도 한다.
{삼국유사} 권3에 실린 소위 탑상출현인연설화의 유형에 있어 해안표착형식은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탈해신화의 상주표류형과 일치되는 형식을 지닌다. 그러나 형식의 일치에도 불구하고 탈해는 수로에 의해 거부되는 대신 허황옥은 받아들여지는 내용의 차이가 보인다. 신화에서는 탈해가 수로에게서 왕권을 노렸기 때문에 거부되고, 허황옥은 수로의 왕비가 되기 위해 도래했기 때문에 수용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을 문화사적으로 해석하여 탈해가 회이족 또는 회이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허황옥은 불교의 표상으로 대응시킬 수 있다.
우선, 수로신화가 우리 나라의 일반적인 건국신화의 구조적 틀을 훨씬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불교 때문이었다는 가설을 전제로 한 후 문제에 접근하여 보도록 하겠다. 기존의 신화적 틀에서 남신은 천신이며, 천상에서 강림했고, 여신은 동물에서 인격전환을 하여 국모가 되었다. 수로신화의 수로는 이런 공식에 맞아떨어지면서도 여신의 격에 들 허황옥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동물이 아니라 불교가 여성화해 버린 것이다. 역사적으로 수로시대에 불교가 우리 나라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훨씬 후대에 일어난 불교의 수용과 관련하여 신화의 내용이 뒤바뀐 것이다.
허황옥이 배를 내려 들어올 때, 입고 있던 비단 바지(능고)를 벗어 산령께 바쳤다. 여자의 바지란 속곳을 말하는 것으로 女性性을 대표하는 것이다, 한자에서도 바지 “袴”가 사타구니 “과”로도 쓰이는 것은 이런 사정을 말한다. 바지를 벗어버린 허황옥은 여성성을 송두리채 노출시킨 알몸이다. 여성의 발가벗는 행위는 신혼을 위한 전단계로써 치루어지는 입사식의 신화적, 제의적 표현이며, 성혼을 위한 인격전환이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탄생과 등가적인 의미를 가진다.
허황옥이 바지를 벗은 것은 수로가 알을 깨고 나온 것에 대응되는 이중탄생의 모티프가 읽어지는 내용이다. 동물이 그 피각을 벗고 여성지향을 성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허황옥도 유사한 전철을 밟아 수로와의 성혼에 이른 것이다. 이때 허황옥이 속곳을 벗어던진 사실이 웅녀, 유화, 알영 등과 등위의 인격전환의 항목이라면 이는 분명히 어떤 신화적 전철을 밟고 있는 사례의 하나라고 간주된다. 신화 구조가 어떤 변환에 대해 자동제어(autoreglage)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불교의 도래라는 새로운 사실까지도 점검하여 일반적 신화구조에 알맞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불교문화에 의해 분식된 수로신화지만 구조의 불변성에 기대어 그 원형적 구조를 재구해낼 수는 있었다. {삼국유사} 권3 어산 불영조에 수로가 부처의 영력으로 독룡을 퇴치하고 어룡을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신화에서 독룡이나 어룡은 불교 팔부상 중의 하나인 호법룡과는 전혀 다른 부정적인 존재다. 다시 말해 불교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부정적이라는 뜻이다.
{삼국유사} 권5에는 그것이 왜 부정적으로 파악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사가 있다. 밀본최사조에 승상 김양도가 어려서 병이 들었을 때 무당이 치유치 못하던 병을 큰스님인 밀본이 퇴치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기존의 무당 자리에 불력이 뛰어난 승려가 대신 앉은 모습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무당은 부정적이다. 고등종교인 불교가 토속적인 무속을 부정시하게 되는 흐름 또는 대체 현상이 수로신화의 전승과정에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특히 허황옥이 파사석탑을 싣고 가락에 왔다고 하는 연기설화에 대해 일연 자신도 회의를 나타내고 있듯이, 수로신화가 훗날 불교의 영향을 받아 재편성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다.
수로신화가 원형으로부터 훨씬 멀어져버린 것은 불교의 수용과 함께 불교설화 또는 불사연기설화들이 대거 신화에 삽입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이렇듯 불교는 유교나 도교에 비해 우리 나라 설화형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또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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