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소수민족의 삶에 취하다
울고 있었다. 미얀마 인레호수에 발을 내디딘 지 사흘째. 음영 짙은 호수는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새벽이면 발로 노를 젓는 인따족이 고기잡이를 위해 나섰고, 언덕 위 황금사원에서는 낮은 읊조림이 파문처럼 흩어졌다. 이방인의 가슴을 쓸어 내리는 불경 읽는 소리였고, 나지막한 삶의 소리였다.
인레 In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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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북동쪽 샨(Shan) 지방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인레(Inle)호수는 낯선 풍경으로 여행자의 시선을 빼앗는다. 호수의 터줏대감인 인타(Intha)족은 노를 발에 걸어 젓고 다닌다.
호수가 넓어 방향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인데, 그들의 장딴지 굵기는 씨름선수 부럽지 않다. 나룻배 위에 도열해 긴 장대로 물을 쳐 고기를 쫓는 풍경은 파노라마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수상사원의 불경소리까지 물 위에 깔리면 몽환적 분위기마저 감돈다. 인레호수가 세간에 알려진 것도 그들의 생경한 삶 때문이다. 인타족은 호수 위에 수상가옥을 짓고 수경재배를 하며 살아간다.
호수에서 태어나 수상학교에 다니고 물 위에서 생을 마감한다. 해발 875m에 위치한 산정호수(길이 22km, 폭 11km)에 수상마을만 17곳. 마을 곁으로는 수상재배지가 늘어서 있는데, 이들은 호수에서 자라는 갈대를 이용해 밭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뒤 토마토나 무공해 야채를 재배해 자급자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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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도 들어서고, 등유도 팔고…. 없는 게 없다. 해가 뜨면 장터로 몰려드는 다양한 부족의 행렬은 장관을 이룬다. 그 고요한 호숫가가 유일하게 북적거리는 날이다. 어깨에 광주리를 멘 샨족 아낙네는 이방인과 마주치면 먼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태국·중국·라오스 접경에 거주하는 순박한 소수민족을 이곳 5일장에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미얀마에 거주하는 160여 소수민족 중 고산지대의 대표 부족은 카렌(Karen)족이나 샨족이다. 이들은 붉은 두건을 쓰거나 긴 목에 금빛 굴렁쇠를 차고 미모를 자랑한다. 외딴 촌구석이라고 만만하게 봐서는 곤란하다. 카렌족 여인은 이방인 사내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오똑한 코와 살인미소를 지니고 있다.
바간 Ba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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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탐스러운 유적을 만나려면 내륙 바간(Bagan)으로 가야 한다. 바간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3대 불교유적 중 한 곳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드르 사원과 어깨를 견주는 불교 성지로 1,000여 년 전 건설한 2,500여 개의 정교한 탑과 사원이 황토 빛 땅 위에 끝없이 늘어서 있다.
11세기 바간왕조가 들어서면서 전국에는 400만 개가 넘는 사원이 들어설 정도로 미얀마의 불교문화는 번성했다. 지금도 인구 5,000만 명 중 86%가 불교신자다. 거칠고 오랜 생채기를 지닌 바간의 탑들은 외형만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탑의 꼭대기는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을 통해 속세와 이어진다.
담마양지사원·아난다사원 등 웅대한 사원도 많지만 인적 뜸한 돌탑에서 홀로 맞는 휴식이 거룩하다. 여행자들은 거미처럼 벽을 기어올라 한 뼘도 안 되는 공간에서 드넓은 평원과 시선을 맞춘다. 누구나 감탄하는 바간 여행의 클라이맥스는 쉐산도(Shwesandaw)사원에서 바라보는 일몰이다.
수백 개의 탑 너머로 해가 지는데, 장엄한 순간을 맞기 위해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사람도 있다. 해넘이로 이어지는 그 시간만큼은 탑 위에 기대선 사람들은 말이 없다. 종교와 피부색에 상관없이 얼굴이 발갛게 물들 때까지, 눈가가 젖어들 때까지 뭉클한 감동을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그 얼굴 위로 미얀마의 천진난만한 표정이 슬며시 덧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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