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죽지랑이란 화랑을 사모하는 노래
득오곡
|
간봄 그리매 |
간 봄을 그리워하매 |
* 옛글자가 지원되지 않아, 아래아는 ㅏ 로, 반치음은 ㅈ 으로 표기함 *
● <모죽지랑가> 배경 설화
제 32대 효소왕 때에 죽지랑의 낭도 중에 득오실(득오곡이라고도 함)이라는 급간이 있었는데 화랑의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날마다 나와 정진하고 있었는데 열흘이 되도록 보이지 않자 죽지랑이 그 어머니를 불러서
"그대의 아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
라고 물었다. 그 어머니가
"당전으로 있는 모량부의 익선 아간이 제 아들을 부산성 창직으로 차출시켜 급히 달려가느라 미처 낭에게 하직 인사를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죽지랑은
"그대의 아들이 만일 사사로운 일로 거기에 갔다면 찾아갈 것이 없지만 이제 공적인 일로 갔으니 찾아가서 대접해야겠소."
하고 떡 한 합과 술 한 동이를 가지고 좌인(방언으로는 개질지라 하니 종을 말함)을 데리고 갔다. 낭도 1백 37명도 모두 의례를 갖추어 따라갔다.
부산성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득오곡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묻자
"지금 익선의 밭에서 관례대로 부역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죽지랑이 밭으로 찾아가서 술과 떡을 대접하고 익선에게 휴가를 청하여 같이 돌아오려 하나 익선이 굳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 사리 간진이 추화군에서 조세 30석을 거두어 성 안으로 수송하다가 죽지랑이 선비를 중히 여기는 정을 아름답게 여기고 변통성이 없는 익선을 야비하게 생각하여 거둔 벼 30석을 주며 청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간진이 타던 말과 안장을 주니 그제야 허락하였다. 이러한 후의를 입은 득오곡이 죽지랑을 사랑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
조정에서는 화랑을 관장하는 이가 그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익선을 잡아다가 그 추한 짓을 씻어주려 하였는데 익선이 도망하여 숨어 버려 대신 그 맏아들을 잡아갔다. 동짓달 극히 추운 날 성 안의 못에다 목욕시켜 얼어 죽었다. 대왕이 듣고 어명으로 모량리 사람으로 벼슬하는 자는 쫓아 버리고 다시는 공적 기관에 들이지 않았고, 승복도 입지 못하게 하였다. 만일 승려가 된 자가 있어도 큰 절에는 들지 못하게 하였다. 또 사람에게 일러 간진의 자손을 평정호의 자손으로 삼아 특별히 표창하게 하였다. 원측법사는 해동의 큰 스님이지만 모량리 사람이므로 승직을 주지 않았다.
● <모죽지랑가> 이해하기
신라 제 32대 효소왕 때 득오곡이 죽지랑을 사모하여 지었다고 전해지는 8구체의 노래이다.
삼국을 통일한 이후 화랑도가 세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암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노래이다.
노래를 보면 지나간 봄을 그리며 시름에 젖고, 또 죽지랑의 아름답던 모습이 쇠함을 바라보는 득오곡의 낭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정서가 작품의 주된 정조를 이루고 있다. 한때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하는 데 큰공을 세웠고 이후 여러 대에 걸쳐 대신으로서 존경과 찬미를 한 몸에 받았던 노화랑의 쇠잔한 모습을 안쓰러워 하는 득오곡의 심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한 변하지 않는 존경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계속된다면 저 세상에서라도 함께 만날 날이 있으리라는 윤회 사상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작품의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죽지랑의 생존시에 지어진 작품이라는 설과 그의 사후에 그를 추모하여 지은 노래라는 설이 학계에 제기되어 있다. 전자에 따를 때 이 노래는 죽지랑이 앞서 익선에 끌려갔을 때가 아니면 그 일이 있은 뒤 낭을 사모하여 지은 노래가 되고, 후자의 경우는 죽지랑이 죽은 뒤 그의 덕을 사모하여 추모한 추모가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어쨋든 이 작품은 지난날 위대하였던 노화랑 죽지랑이 일개 아간 벼슬의 익선에게 수모를 당할 정도로 그 위엄과 위의를 상실한 화랑도의 실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이 작품은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함께 화랑을 그린 시로서 쌍벽을 이루고 있지만, 시의 감정 표현이 여성적이라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이 점에서 후대의 고려 가요 <정과정>이나 가사 작품인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과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기도 하다.
● '죽지랑'은 어떤 사람인가?
처음 술종공이 삭주 도독사가 되어서 장차 임명받은 곳으로 가려하니 때마침 삼한에 병란이 일어나 기병 3천명으로 그를 호송하게 하였다. 일행이 죽지령에 이르렀을 때 한 거사가 고개의 길을 닦고 있어 공이 보고 찬미하였는데, 거사도 역시 공의 위세가 혁혁함을 좋게 여겨 서로의 마음이 감동되었다.
술종공이 부임지에 간 지 한 달이 되었는데 꿈에 거사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으므로 더욱 놀랍고 이상히 여겨 이튿날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었더니,
"거사가 죽은 지 며칠이 되었다."
고 하였다. 돌아와 말하니 죽은 그 날이 꿈꾼 날과 같았다. 공이 생각하되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날 것이라 하고 군사들을 보내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장사하게 하고 돌미륵 하나를 세웠다. 그 아내가 꿈꾸던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죽지라 하였다. 자라서 벼슬에 나아가 유신공과 함께 부원수가 되어 삼한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무의 4대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 <모죽지랑가> 정리
* 출전 : 삼국유사
* 연대 : 신라 효소왕 때
* 작자 : 득오
* 형식 : 8구체
* 성격 : 찬양적, 흠모적
* 주제 : 죽지랑에 대한 사모
* 의의 1) 8구체 향가로서 화랑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
2) 주술성이나 종교적 색채가 없는 순수한 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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