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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 서동요(薯童謠)

지식창고지기 2009. 7. 4. 22:06

서동요(薯童謠)

서동(맛둥방)의 노래


서동

善化公主      

他密    

童房乙             

 

善化公主니믄
남 그즈지 얼어두고
맛둥바알
밤에 몰 안고가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해 두고
맛둥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위의 향찰 표기에서 붉은 글자는 향찰 표기 중에서 훈(뜻)에 해당하는 말이다.

* 옛글자가 표현되지 않아, 아래아는 ㅏ 로, 반치음은 ㅈ 으로 표기함 *

 

 

● <서동요> 배경 설화

  제 30대 무왕(서기 600-640)의 이름은 장이다. 어머니가 홀로 되어 집을 서울 남쪽 못가에 짓고 살았는데 못에 있는 용과 관계하여 그를 낳았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맛둥)이며, 도량이 한없이 넓었다. 항상 마(薯)를 캐어 팔아 생활해 나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로 왔다. 그가 서울의 동네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자, 여러 아이들이 가까이 따랐다. 그는 마침내 이런 노래(서동요)를 지어 여러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다. 이 동요가 장안에 퍼져 궁중까지 알려지니 모든 신하들이 탄핵하여 공주를 시골로 유배시켰다.
  공주가 대궐을 떠나려 할 때 왕비가 차마 딸을 그냥 떠나 보낼 수가 없어서 왕 몰래 순금 한 말을 주어 보냈다. 공주가 귀양가는 길에 서동이 나와서 절을 하고 모시고 가겠다고 하였다. 공주는 그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공연히 기뻐하며 동행하도록 했다. 동행하는 사이에 공주는 서동이 믿음직스러운 것을 알고는 그에게 마음이 끌렸다.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공주는 그제서야 그가 서동이라는 것과 자기가 쫓겨나게 된 까닭을 알 게 되었다. 함께 백제로 가서 어머니가 준 금을 내놓으며 이것으로 생활을 영위하자고 하였다. 서동이 크게 웃으며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공주는
"황금인데 백 년 동안 부자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미륵사지 구층석탑
라고 하였다. 서동은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려서 마를 캐던 곳에는 이것이 진흙처럼 쌓였었다."
고 하였다. 공주가 듣고 깜짝 놀라
"이것은 천하의 보배인데 당신이 금이 있는 곳을 알았으니 이 보배를 우리 부모의 궁전으로 보내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서동이
"좋소"
하고 금을 모았으니 그것이 구릉처럼 쌓였다. 용화산 사자사 지명법사가 머무는 곳에 가서 금을 보낼 계책을 물으니
"금만 가져오라."
고 하여 공주는 편지를 쓰고 금을 법사에게 가져다 주었다. 법사는 신통한 힘을 써서 그 금을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실어다 놓았다. 진평왕은 그 신통한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존경하고 항상 서신으로 안부를 물었다. 서동은 이로 인해서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하루는 무왕이 부인과 사자사(지금의 미륵산 사자암)에 가려고 용화산(지금의 익산군 미륵산) 밑 큰 못가에 이르자 미륵삼존이 못에서 나타나 수레를 멈추고 경의를 표하였다. 부인이 왕에게
"이 곳에 큰 절을 세우는 것이 소원입니다."
하자 왕이 허락하였다. 지명법사에게 나아가 못을 메울 일을 묻자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산을 무너뜨려 하룻밤 사이에 못을 메워 평지로 만들었다. 그 곳에다 미륵삼존의 상을 세우고, 회전(會殿)과 탑과 회랑을 각각 세 곳에 세우고 절 간판을 미륵사(국사에는 왕흥사라 했다)라 하였다.

 

 

● <서동요> 이해하기
이 노래는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백제의 무왕이 지었다는 4구체 향가로, 전래의
민요가 정착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백제의 무왕이 서동이라고 불리던 어린 시절, 신라의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지어 부른 노래라는 배경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이 설화에 따르면 이 노래는 서동의 계략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참요(예언하는 노래)로, 미모의 공주를 아내로 삼고자 하는 한 소년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교묘한 계획에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노래에는 국영을 뛰어넘고 신분의 귀천을 초월한 한 소년의 낭만적인 사랑이 담겨 있다. 또한 소년의 꿈이 별 어려움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당시 사회가 남녀 간의 사랑이 비교적 자유스러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설화의 내용은, 서동이라는 한 영웅이 시련을 극복하고 왕이 되기까지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귀족의 경우 연애는 자유로웠지만 결혼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랐었는데, 이러한 제약을 이기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룬다는 것은 영웅에게는 필연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 이야기이다. 서동은 용의 아들로 태어나 고난을 극복하고 왕이 됨으로써
영웅 설화의 일반적 과정을 밟고 있다.
한편, <서동요>의 배경 설화에는 다른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서동을 백제 동성왕의 이름이라 하고 그가 신라와 통혼(통혼)한 사실을 근거로 동성왕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으로 보는 경우와 익산 미륵사의 연기설화에도 <서동 설화>와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백제가 망할 무렵 왕실의 원찰(원찰)이었던 미륵사를 신라의 군졸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백제가 신라와 과거부터 깊은 관계가 있었음을 꾸미기 위해 퍼트린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  <서동요> 정리
* 시대 : 신라 진평왕(599년 이전)
* 작자 : 서동(맛둥방), 백제 무왕
* 갈래 : 4구체 향가(동요적 성격)
* 주제 :
선화공주에 대한 연모의 정 , 결혼 계략
* 의의 1)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신라의 향가
         2) 배경 설화는 신화적 가치를 지님
         3) 선화공주를 얻기 위한 참요 (예언의 형식으로 나타난 노래)
* 출전 : 삼국유사

 

 

●참요(讖謠)는 미래를 예언하는 말?
 선화공주가 서동과 결혼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서동이 지어부른 <서동요> 때문이다. 노래 때문에 쫓겨난 선화공주는 그 노래의 선량한 피해자일 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기한 것은 그로 인해 선화공주와 서동은 결혼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서동요를 통해 서동이 의도한 대로 실현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동요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예언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