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동장유가> 본문 읽어보기 /
김인겸이 일본통신사 조엄의 수행원(삼방서기)으로 일본에 갔다가 그 다음 해 돌아올 때까지의 견문을 기록한 기행 가사이다. 일본의 문물, 제도, 풍습 등을 사실적으로 기록함은 물론, 여정이 정확히 나타나 있으며, 작자의 견문과 비판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이는 당대의 사실적 사고를 잘 반영하고 있다. |
* 연대 : 영조 40년(1764)
* 작자 : 김인겸(金仁謙)
* 종류 : 장편 기행 가사(8,000여구)
* 형식 : 4음보(3.4 또는 4.4조)
* 제재 : 일본의 풍속, 제도, 인정
* 주제 : 일본의 풍속, 제도, 인정 등 일본 여행에서 얻은 견문
* 출전 :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 의의 : 총 4책으로 8,000여 구나 되는 장편 기행 가사이며, 조선 말 외국 기행 가사로서 <연행가>와 쌍벽을 이루고 있어며 기행 가사의 백미에 해당된다. 정확한 노정과 일시를 적고, 날씨, 자연 환경, 일어난 사건, 작자의 느낌등을 과장없이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날카로운 비판과 유우머가 곁들여 있어 기행 문학의 본령(本領)을 충분히 발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일동장유가>의 노정(路程)
영조 39년(1763) 계미(癸未)에 일본측에서 수교를 청하여 왔으므로 우리 나라에서 통신사를 보내게 되었다. 이를 속칭 계미 통신사라고 한다.
영조 39년 8월 3일 서울을 출발, 8월 20일 부산 도착, 10월 6일 부산항 출발, 대마도를 거쳐 일본 본토를 가로질러 이듬해 1월 20일 오오사카(大阪) 도착, 목적지인 에도(江戶,지금의 동경)에는 2월 16일에 도착하였으니 얼마나 긴 여행이었는지 알 수 있다. 돌아오는 길도 이와 같았다. 에도를 떠난 것이 3월 11일, 부산에 도착한 것이 6월 22일, 서울에 돌아와 경희궁에 복명(復命)한 것이 7월 8일이었으니 11개월의 기간에 걸친 장거리 여행이었다.
● <일동장유가>의 구성
제 1 권(여행 동기와 행장 212구)
일본에서 친선 사절을 청하여, 여러 수속 끝에 8월 3일 서울을 출발하여 용인, 충주, 문경, 예천, 안동, 영천, 경주, 울산, 동래를 거쳐 부산에 이름.
제 2 권(동경까지의 노정과 견문 소감 5845구)
10월 6일, 부산에서 승선하여 발선(發船)하는 장면에서부터 대마도, 일기도(壹岐島), 축전주(築前州), 남도(藍島)를 거쳐 적간관(赤間關)에 도착하여 머묾.
제 3 권(동경에서의 관경 소감 368구)
정월 초하루 적간관의 명절 이야기로부터 오사카, 교토, 와다오라, 시나키와를 거쳐 에도(江戶)에 들어가 사행(使行)의 임무를 마침.
제 4 권(돌아오는 노정과 창작 동기 1818구)
3월 11일 귀로에 올라, 6월 20일 부산에 귀환, 7월 8일 서울에 와서 영조께 복명(復命)함.
● <일동장유가> 이해하기
<일동장유가>는 조선 영조 때 작자가 계미통신사의 삼방서기로 발탁되어 일본을 다녀와서 지은 장편의 기행 가사이다. 긴 노정(서울 - 부산 - 대마도·대판성 - 애도)에 따라 보고 들은 사건, 일본의 풍속, 제도, 인정 등 실제 답사에서 얻은 경험을 소상하게 기록하였고, 여정이나 지명, 인명 등은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나, 일본의 풍속과 문물을 묘사하는 부분은 일본의 낯선 문물에 경도당하지 않고 객관적인 관찰과 주관적인 판단을 개입시켜 작자의 통찰력과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길이가 총 3,500여 구에 달하는 장편이어서 당시 외교사절단의 규모와 일본의 풍속, 한일 양국의 외교 방법 등 한.일 외교사의 측면에서도 귀중한 자료이다. 또 시가 문학사에서는 초기 가사의 정형성을 여정에 따른 자연스러운 서술로 바꾸면서 그 길이를 늘려 나가는 후기 장편 가사의 극단을 보여주는 예로 평가된다.
<일동장유가>와 같은 성격의 가사 문학은 조선 초기의 송강 정철의 가사 중 <관동별곡> 기행가사의 맥을 잇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관동별곡>과 <일동장유가>는 구조나 작자 의식의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두 작품이 기행가사라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관동별곡>의 경우 작자 의식은 철저히 주자학적 이데올로기에 바탕하고 있다. 때문에 작자가 접하는 사물 역시 그러한 이데올로기 안에서 새로이 환치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일동장유가>의 작자는 대상을 자체로 바라보고 그에 대한 관심을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사용 자체의 서술과 작자의 느낌이 더불어 표현되므로 나열·병치의 서술 경향을 드러낸다. 이 같은 작자 의식의 차이는 형식에도 영향을 주어 <관동별곡>이 '서사 - 본사 - 결사'라는 정형화된 구조를 지니는 데 비해, <일동장유가>는 그러한 정형성에 구애됨이 없이 여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열거해 나감으로써 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보인다. 이러한 장편화 경향은 조선 후기에 두드러진 산문 정신의 확대와 실학 정신의 영향, 그리고 작자층의 확대 및 견문의 다양화 등으로 인하여 더 이상 짧고 정형화된 형식으로는 사물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모두 담아 낼 수 없었다는데 이유가 있다.
이 작품은 홍순학의 <연행가>와 더불어 후기 기행가사의 쌍벽을 이루는 작품으로 기행가사의 백미에 속한다. 그리고 정확한 노정, 일시, 날씨, 환경, 사건, 작가의 느낌을 과정 없이 묘사하였으며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곁들여 있어 기행 문학의 본령을 확립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일동장유가>는 일본사행기의 전통 속에 놓인다. 그러나 기존 사행기와는 달리 가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행기가 한문으로 된 교술 산문이라면 이 작품은 국문으로 된 교술율문이다. 즉 교술 산문으로만 되어 있던 사행문을 국문의 교술 율문으로 바꾼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더욱이 이 작품으로 인하여 조선후기 가사는 그 외연을 더욱 확대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세 단락으로 나뉘는데 첫째 단락은 한양에서 출발하여 부산에 이르는 동안이고 둘째 단락은 부산에서 에도에 도착하여 국서를 바치기까지, 셋째 단락은 에도에서 한양까지이다. 첫 단락에서 주목되는 사건은 '호반과 선비'의 싸움으로 서얼 신분인 서기들에 대한 군관, 서리배의 얕잡아 봄이 그 사건의 빌미다. 둘째 단락은 일본 도회의 번성함에 대환 사실적 서술과 함께 작자의 이용후생적 관심이 주목된다. 즉 작자는 화이론이나 명분론이 아닌 현실을 수용하는 경험론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김인겸은 반일에 대한 감정은 있었으나 그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대로 직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때문에 일본 체험을 비교적 풍부하게 제시할 수 있었다. 더욱이 사물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자세하다. 이는 작자의 정밀한 관찰의 결과이다. 즉 이용후생적 관심의 표출인 셈이다. 나아가 일본 문사들과의 교류를 비교적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로 인해 작자는 일본인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다소간 시정하고 새로운 이해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일본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나 일본 민중에 대한 관찰, 일본의 학술이나 기술 문명의 수준에 대한 관심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때그때 견문한 것을 경험적 차원에서 성실하게 기술하는 데 그치고 있다. 따라서 19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길목에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 형성이 이미 배태되고 있던 당시에 일본의 위상과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 자세 등이 진지하게 성찰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1763, 4년 당시의 일본 사정을 요모조모 국문으로 기록하여 국내에 알렸다는 점, 조선 후기 가사에 일본 체험을 부여하면서 그 외연을 확대시켰다는 점이 작품의 의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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