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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색 잃은 겨울산, 도드라지는 파란 잎새

지식창고지기 2009. 7. 13. 15:05

색 잃은 겨울산, 도드라지는 파란 잎새
거제 망산
 
 아직은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한겨울 이지만 해가 바뀌니 봄과 함께 꽃소식이 기다려진다. 간혹 눈 속에서 귀한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는 다가올 봄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설렌다. 벌써 언 땅을 뚫고 나와 피는 야생화가 있다지만 정상적인 꽃소식을 듣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될 것 같다.

 야생초산행은 혹시 있을 꽃소식을 찾아 거제도에서도 최남단에 위치한 망산(望山 397m)으로 향했다. 망산은 이름처럼 조망이 빼어난 산이다. 망산이라는 이름은 나라가 어려울 때 왜구의 침입이 잦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산위에 올라 감시를 위해 망을 보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망산에 오르면 원근의 크고 작은 섬인 해금강과 매물도, 비진도, 한산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섬들이 그림처럼 바다위에 떠있다.

 망산은 높이는 낮지만 만만하게 볼 산이 아니다. 해수면에서 바로 올라야 하는 산이라 육지에 있는 1000m급산에 버금갈 정도는 된다. 여름이면 산의 남북에 위치한 여차몽돌해수욕장과 명사해수욕장을 찾거나 등산과 해수욕을 동시에 즐기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늘 푸른 식물 ‘콩짜개덩굴’

[img2] 야생초산행은 산행시작을 거제시 남부면 저구사거리-동쪽에 위치한 다포마을과 서쪽의 명사마을로 넘나드는 고갯마루-에서 시작했다. 고갯마루에는 주유소가 있어 위치를 찾기가 쉽고 등산로 입구에는 거제시에서 설치한 큼지막한 망산 등산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산에 들면 육지에 있는 여느 산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숲속은 추운 겨울인데도 푸른 잎을 지닌 식물이 가득하고 늘 푸른 덩굴식물은 바닥을 기고 키 큰 나무둥치를 감싸고 있다. 바위와 암벽도 예외 없이 이끼와 덩굴식물이 덮고 있다.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위 겉에는 늘 푸른 식물인 ‘콩짜개덩굴’이 뒤덮고 있다. ‘콩짜개덩굴’은 바위 겉뿐만 아니라 나무밑둥치에도 구르는 돌과 낙엽이 쌓이지 않은 맨땅을 덮을 정도로 많다. 마침 밤새 내린 비에 생기를 되찾은 동그란 영양엽은 푸른 윤기가 흐르고, 길쭉한 포자엽에는 두 줄로 늘어선 갈색 포자가 선명하다. 고란초과에 속하는 ‘콩짜개덩굴’은 근경이 옆으로 뻗으며 자라고 잎이 드문드문 달리는 고사리와 같은 양치식물로 남쪽 해안가 섬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한동안 소나무 숲을 오르면 전망이 빼어난 바위에 오르게 된다. 바위 위에서면 건너편으로 오늘 산행에서 가장 높은 곳인 망산 정상이 건너다보인다. 다시 숲으로 이어지는 길은 완경사의 내리막이 얼마간 계속된다.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숲에는 상록활엽수인 먼나무가 곳곳에 흩어져 자라고 있다. 망산 입구 도로변에는 거제시에서 붉은 열매가 매혹적인 먼나무 가로수를 심어 놓은 것이 이색적이었는데 망산에 자생하는 나무다. 숲 바닥에는 난초과의 보춘화와 약난초가 곳곳에 자생하고 있어 봄이 무르익으면 여러 종류의 난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완경사의 오르내림이 있는 길이 여차등까지 이어진다. 여차등에서 남쪽으로 하산하면 여차몽돌해수욕장으로 간다. 여차등을 지나 내봉산(359m)을 오르기 위해서는 급경사의 오르막을 차고 올라야 한다. 길은 뚜렷하나 두어 번 걸린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할 정도로 험하고 가파른 바위지대다. 힘든 오름 끝에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여차몽돌해수욕장과 그 뒤에 자리한 천장산 해안절벽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하얀 파도와 어우러진 풍경이 절경이다.

 내봉산을 내려서는 길이 조금은 까다롭다. 하지만 밧줄을 걸어놓아 어렵지 않게 내려설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둥그런 민둥산 같아 보였지만 막상 들어서니 바위와 암벽이 많아 만만하게 볼 망산이 아니다.
 

 #망산엔 모든 종류 마삭줄 자란다

[img1] 바위 겉 곳곳에는 잎이 좁고 가는 ‘좀마삭줄’이 즐비하다. 망산에는 모든 종류의 마삭줄이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잎이 넓고 대형인 백화등은 물론이고 그보다 작은 마삭줄, 아주 소형인 ‘좀마삭줄’까지 다 있다. 특히 ‘좀마삭줄’이 유난히 많아 숲속 낮은 곳에는 이들이 뒤덮고 있다. 협죽도과에 속하는 ‘좀마삭줄’도 봄이면 바람개비 같이 생긴 예쁜 꽃이 피고 향기도 좋아 분재용으로 많이 이용한다.

 망산으로 이어진 능선이면 어느 곳이던 눈부신 아름다움이 기다린다. 점점이 바다위에 떠있는 섬들과 오밀조밀한 해안선이 만들어내는 바다풍경이 그림 같다. 이것이 망산 산행의 백미다. 오늘따라 매서운 북서풍에 큰 물결이 일어나 해안선에 부딪치며 부서지니 선경이 따로 없다.

 암릉을 지나 안부에 내려서면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다. 곧바로 나아가면 망산 정상으로 이어지고 왼쪽은 무지개마을로 내려선다. 10여분을 조금 더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에는 정상석이 있고 건너편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사방 막힘없는 정상 ‘천하일경’

 정상에 서면 정상석 뒷면에 새겨놓은 천하일경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깎아지른 절벽위에 솟은 봉우리라 사방에 막힘이 없다. 바위섬들과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선이 연출하는 경관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정상 바로 옆 암벽 사이에는 키를 산 높이와 맞춘 듯한 ‘동백나무’ 숲이 자리를 하고 있다. 산길 곳곳에도 ‘동백’이 없지 않았지만 붉게 꽃이 핀 것을 보기는 이곳이 유일하다. 찬바람에 온전하게 보존된 꽃을 보는 것이 힘들 뿐 나무위로 붉은 빛이 드러날 정도로 여러 송이가 피어 있다. 차나무과에 속하는 ‘동백’은 꽃이 한 잎 두 잎 지지 않고 아직 아름다움이 남아 있을 때 꽃송이가 부러지듯 뚝뚝 떨어져 버린다. 떨어진 후에도 한동안 꽃빛을 잃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한 겨울에 핀다고 ‘동백’이라 했다지만 엄동설한에 붉은 꽃을 보는 것이 신비롭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계속 진행하면 칼바위능선을 넘어 가파른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경사는 심하지만 등산로를 잘 정비해 놓아 위험한 곳도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계속 내려서면 명사해수욕장에 이르게 된다. 명사해수욕장 옆 도로를 따라 오르면 출발지점인 저구사거리다. 어느 곳에서 출발하던 망산 산행에 걸리는 시간은 4~5시간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