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산이 짙푸른 여름 산으로 바뀌었다. 녹음이 짙은 숲 속을 걷는 것이 여름산행의 묘미다. 여름산행은 잎이 좁은 침엽수보다 넓은 잎을 지닌 낙엽활엽수로 채워진 산이 제격이다. 이런 숲을 찾기 위해서는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사람의 간섭이 적은 곳을 찾아야 한다. 수해라고 일러도 좋을 만큼 짙은 숲은 뜨거운 여름햇볕을 가려줄 뿐 아니라 공기의 흐름도 좋아 언제나 쾌적한 상태를 유지한다.
#산 높고, 계곡 깊어 여름산행 최적
야생초산행은 때 이른 더위를 식히고 야생화도 만날 수 있는 곳을 찾아 운문산으로 향했다. 운문산(雲門山·1188m)은 흔히 일컫는 영남알프스에 속하며, 경남 밀양과 경북 청도의 경계를 따라 가로누운 산으로 높고 계곡 또한 깊어 여름산행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겉보기와 다르게 산에 들면 우거진 숲이 하늘을 가리고 가파른 바위절벽과 계곡마다 수량이 풍부한 폭포가 산재하여 볼거리와 쉼터를 제공해준다.
산행은 석골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억산갈림길~범봉갈림길~상운암계곡~상운암~정상~함화산~서릉전망대~석골폭포~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회기산행을 했다. 짐을 챙겨 폭포 쪽으로 발을 옮기자 암벽 곳곳에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찔레를 닮은 용가시나무의 하얀 꽃과 기린초의 노란 꽃이 무더기로 피어 반긴다. 둘 다 건조한 바위틈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석골폭포는 아직 물줄기가 가늘다. 지난봄과 여름 동안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폭포를 타고 내린 물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하다.
석골사를 지나 계곡을 계속 따라 올랐다. 숲 속 바닥은 푸른빛이 사라졌을 정도로 비어있다. 다만 이제 사 꽃이 핀 노루발풀과 매화노루발풀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높이를 더하여 나무가 울창한곳에 이르자 그늘에서 자라는 십자고사리를 비롯한 고사리 종류가 숲을 메우고 있다. 이웃하여 자리했지만 작고 여린 노루귀와 개별꽃, 개울가 바위틈을 차지한 괭이눈은 흔적만 남았다. 계절마다 자라는 식물이 달라 모습을 달리하는 숲 속이다.
범봉 갈림길을 지나 계곡을 건너고 상운암이 점점 가까워지면 등산로는 경사를 더한다. 안내 팻말에 씌어진 거리가 무척 멀게 느껴지고 인기척이 들리면 곧이어 상운암이다.
#산 정상 북쪽 기슭에 자리한 '상운암'
상운암은 운문산 정상 북쪽 기슭에 자리한 암자다. 기왓장 한 장 지붕에 얹지 못한 임시 거처쯤으로 여기지는 소박한 절이다. 넓은 절 앞마당에는 각종야채를 가꾸고 있다. 마당 끝에서면 억산을 비롯한 서북방향으로 넓게 펼쳐진 전망이 빼어나다.
암자 주변은 햇빛이 잘 드는 뻥 뚫린 공간이라 각종 야생화가 잡초와 함께 자란다. 노란 꽃을 피우는 산괴불주머니를 비롯하여 민들레, 기린초, 누군가 옮겨 심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돌나물, 한 모퉁이 후미진 곳에는 ‘큰뱀무’가 차지했다. ‘큰뱀무’ 는 물기가 많은 냇가에 주로 자라지만 적당하게 수분이 유지되고 햇빛이 풍부한 높은 산의 능선에서도 흔히 자란다. 장미과에 속하는 ‘큰뱀무’는 뱀무와도 닮았지만 줄기와 잎이 더 두툼하고 털이 많아 한번만 보고나면 누구나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암자 입구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8부 능선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니 정상이 멀면 얼마나 멀겠는가. 산허리를 휘돌아 능선에 이르면 여러 방향에서 오는 길이 하나씩 모이며 정상으로 이어진다. 아직 하얀 꽃이 예쁜 함박꽃나무와 그 아래를 지키는 둥글레만 남아 길손을 맞는다. 낮은 곳에서는 벌써 꽃이 지고 씨앗이 무르익었을 시기다.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에 봄꽃은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그늘사초와 같은 파란 풀이 채우고 있으니 한결 아늑하다.
정상에는 커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정상주변은 펑퍼짐한 흙으로 이루어진 초원이다. 둥근이질풀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어 장마가 끝나면 연분홍 꽃밭으로 변할 것 같다. 그 주변으로 아직은 꽃망울이 덜 열린 ‘좀조팝나무’가 오늘내일 이면 터트릴 채비다. 완전히 열리지 않은 꽃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의 팝콘 같기도, 먼 곳에 자리한 은하세계의 별무리처럼 예쁘다. 장미과에 속하는 ‘좀조팝나무’를 다른 산의 중턱에서는 큰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으나 환경이 열악한 운문산 정상에도 자라고 있으니 신비할 따름이다. 다만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아도 활짝 핀 꽃을 발견할 수 없으니 아쉬울 뿐이다.
정상에 잠시 머무는 사이 바람이 일고 안개가 몰려오며 기온이 급감한다. 날씨가 돌변하며 추워지고 안개까지 순식간에 몰려오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같은 날씨를 두고 구름이 지나가는 문이라고 운문이라 했던가. 하던 일을 빨리 끝내고 정상을 가로질러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희고 노란 씀바귀들 예쁘게 장식
하산은 능선을 타고 함화산을 지나 계속 서쪽으로 나아갔다. 운문산의 산세는 예외 없이 남쪽은 급사면을 이룬 반면 북쪽은 완만한 편이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하산 길 능선도 남쪽 사면은 급경사의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암벽이 즐비하여 조망이 빼어나다. 쉬어갈 수 있도록 적당한 길목에 일부러 전망대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정구지바위로 가는 길과 나누어지는 곳에 위치한 바위는 특별하게 우뚝하여 아름다움과 위압감을 준다.
곳곳에 암봉이 산재한 능선을 가야 하는 길이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길이 나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많은 등산객이 이용하지 않는 길이라 편의시설과 안내판이 없어 방향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주변 바위 위와 암벽에는 부처손과 넉줄고사리가 어울려 자라고 있다. 둘 다 최근에 분재의 소재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것들이다. 햇볕이 잘 드는 헬기장이나 나무가 없는 빈터 주변에 가야만 야생화라도 볼 수 있다. 헬기장이 없는 이 곳 능선에서는 묏등이 있었던 곳이 유일하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씀바귀 종류가 꽃을 끊임없이 피어내고 있다. ‘흰씀바귀’는 노란 씀바귀와 어울려 빈터를 예쁘게 장식하고 있다. 아마 노란 꽃이 피는 씀바귀만 있었다면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이다. 드물게 뒤섞인 흰 꽃이 있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국화과에 속하는 ‘흰씀바귀’는 씀바귀와 이웃하여 자라는 비슷한 식물로 먹을 수 있다.
서쪽능선은 마지막이 까다롭고 험하다. 석골폭포의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곳에 이르면 석골사와 계곡을 조망할 수 있는 바위가 나타난다. 낭떠러지처럼 위험한 곳이지만 조심해서 살펴보면 내려서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바위를 내려서면 곳이어 숲이 끝나고 폭포 바로 위 계곡이 나타나며 산행은 끝난다. 이렇게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운문산 산행은 10km로 5시간 정도가 걸린다.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진영 IC > 25번국도 밀양 > 24번국도 산내면 > 석골사 입구 > 석골사
(농협중앙회 거창군지부장)
꽃사진설명=맨 위부터 좀조팝나무, 큰뱀무, 흰씀바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