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의 마지막 황제

지식창고지기 2009. 7. 14. 08:47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중국 최후의 황제는 부의이다.
1908년 등극하여 1911년 새정부가 서기까지 부의는 3년간 중국 최후의 황제자리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중국 최후의 황제가 부의라는 사실을 영화 "마지막 황제"를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누가 진정한 마지막 중국왕조 최후의 실권자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청나라가 외세의 거센 도전과 삼민운동 열풍에 무너져갈때때까지 중국왕조 마지막을 지킨 청나라 실권자는 자희황후(서태후) 었다. 그녀에 관한 야사가 상당하게 전하고 있는 것도 그녀가 보인 행태에 기인한다. 프랑스 대혁명당시 루이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백성이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을 달라"는 성난 군중들의 외침에 그녀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한 것 처럼 서태후도 역사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했다.


청나라 왕조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던 손문(孫文)은 수차례에 걸친 무장봉기를 했으나 실패로 돌아간 뒤 마침내 1911년 신해(辛亥)년 중화민국(中華民國)의 건국을 선포했다. 이를 "신해혁명"이라 부른다. 청나라가 건립된지 267년만에, 진시황이 서안에서 처음 제정한 황제제도가 2132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중화민국이 성립된 후 20여년 동안도 개혁과 구제도가 혼재하는 혼돈의 기간이었다. 황제 제도로 복벽을 시도하는 구세력과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혁명세력은 여전히 대치상황이었다.

손문은 초창기 대총통(大總統)의 자리를 원세개(袁世凱)에게 양보했다. 혁명군을 진압할 능력이 있었던 청나라 신식 군대는 당시 원세개의 손아귀에 있었기 때문이다. 원세개는 개인적인 욕심으로 황제 자리에 올랐으나 전국적인 반대에 부딪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손문은 일본으로 가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