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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에 수록된 작품 내용

지식창고지기 2009. 7. 14. 09:23

 <금오신화>에 수록된 작품 내용


/ 전기소설이란? / <금오신화>의 문학적 가치 / 현대소설로 쓴 <금오신화>를 읽어보기 /
 

작품명

내       용

만복사저포기

남원의 노총각 양생이 부처와 윷놀이를 하여 승리하고, 그의 소원을 성취하여 죽은 처녀와 사랑을 나눈 이야기

이생규장전

이생이 이 세상에서 다하지 못한 최처녀와의 인연을 죽은 뒤에 맺는다는 이야기

취유부벽정기

송도의 홍생이 부벽루에서 놀다가 기자 조선의 마지막 임금의 딸과 시를 읊으며 울분과 감회를 함께 나눈 이야기

남염부주지

경주의 박생이 염라대왕을 만나 세상에 대한 비판적 토론을 하고 나중에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이야기

용궁부연록

고려 시대의 개성 사는 문사 한생이 용궁의 잔치에 초대받아 대접을 받고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돌아온 이야기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만복사에서 부처와 저포놀이 하다

  전라도 남원에 양씨 성을 가진 서생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만복사 동쪽 방에 홀로 살고 있었다. 어느 봄날 그는 소매 속에 저포를 넣고 가서 부처님께 소원을 말했다. 저포놀이에서 부처님이 이기면 자기가 불공을 드리고, 자기가 이기면 아름다운 배필을 구해 달라는 거였다. 이렇게 빌고 나서 저포를 던지니 양생이 이겼다.
  그때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타나 부처님께 축원문을 드리는데, 아가씨의 원한과 외로움이 담겨 있었다. 왜구가 침범해 왔을 때 피난도 가지 못하고 숨어있으면서 정절을 지킨 이야기며 지금 자신의 처지가 외롭고 쓸쓸함을 한탄하는 이야기들이었다. 마음을 걷잡지 못하고 숨었던 곳에서 뛰쳐나간 양생은 곧 그 아가씨와 마음이 통해 만복사에 있는 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윽고 닭울음 소리가 들리고 날이 새려 하자 아가씨는 양생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고 권했다.   양생은 그 아가씨 집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꿈같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흘 뒤 아가씨는 양생에게 "이곳의 사흘은 인간세상의 삼년과 같다"며 이별을 고한다. 이별에 즈음하여 아가씨와 한 동네 사는 여인들이 와서 잔치를 벌이며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시를 주고 받는다. 잔치가 끝나자 아가씨는 주발 하나를 내어주며 다음날 자기 부모님들이 보련사로 올테니 그 주발을 증거 삼아 인사를 드려 달라는 거였다.
다음날 양생은 아가씨가 시키는 대로 주발을 들고 길목에 서 있다가 아가씨의 부모를 만난다. 알고 보니 그 아가씨는 왜구의 난리 때 죽었는데 장례도 치르지 못하다가 대상날(죽은 지 일년 되는 날)이 되어 재를 지내러 오는 길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아가씨가 나타났지만 양생의 눈에만 보일 뿐이었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절에 있는 한 방에서 지낸 뒤 아가씨의 영혼은 떠나야할 때가 되었다. 둘은 애끓는 슬픔 속에서 이별했다. 아가씨의 무덤을 찾아 장례를 지낸 뒤 양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재산을 다 팔아 절간으로 가서 재를 지냈다. 그랬더니 여인이 공중에 나타나, 양생의 은덕을 입어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양생은 그 뒤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살았다고 한다.

- 이 작품에서 남원 여인의 환신이 나타나서 삼세를 통해 서생을 받들겠다고 약속한 것은 김시습 자신이 세종에게서 받은 은총을 영원히 잊지 않고 끝까지 보답하겠다는 염원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이생이 담 안의 아가씨를 엿보다

 송도에 이씨 성을 가진 서생(글 읽는 선비를 가리키는 말)과 최씨 성을 가진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이생이 최처녀집 담밖에 있는 나무 아래서 쉬다가 문득 담 안을 엿보았다. 온갖 꽃들이 만발한 꽃 사이 누각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수를 놓고 있다가 시를 읋는게 아닌가! 자기의 외로운 마음과, 이성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였다. 이생도 그 시에 답하는 시를 지어 기와쪽에 매달아 담 안으로 던져보냈다. 두 사람은 그 날 저녁 최처녀집 뜰에서 만나 사랑을 약속한다. 그날부터 이생은 최처녀 집에 며칠을 머문다. 시간이 흐르는지 멈췄는지 모를 만큼 즐거운 나날이었다. 그 뒤로도 이생은 저녁이면 어김없이 최처녀를 찾았다.
  아들의 행실을 이상히 여긴 이생의 아버지는 농사 감독이나 하라며 영남으로 쫓아보냈다. 이 소식을 들은 최처녀는 너무나 상심하여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다. 딸자식이 죽게 되었다고 걱정하던 최처녀의 부모는 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이생 집에 청혼을 했다. 이생 부모도 마음을 돌리고 결혼을 허락했다. 끊어졌던 사랑이 이어져 부부가 된 뒤 두 사람은 서로 공경하고 극진히 사랑했다. 이생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나 홍건적이 서울을 점령하자 이생 가족도 피난을 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부부가 서로 헤어지고 부인 (최처녀)은 도적에게 사로잡혔다. 도적들을 꾸짖으며  정조를 지킨 부인은 한칼에 죽임을 당했다. 난리가 끝난 뒤 집에 돌아온 이생은 옛날 최처녀를 만나 사랑하던 작은 누각에 올라가 한숨지으며 지난 날을 생각해보았다. 그때 사랑하는 아내가 다가왔다. 아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생은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두 사람은 두서너해 동안 바깥 출입을 하지 않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부인은 이제 슬픈 이별이 닥쳐왔다고 말한다. 이생도 부인과 함께 황천으로 떠나길 바랐지만 그럴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인이 떠난 뒤 두서너 달 만에 이생도 세상을 떠났다. 

- 최낭자가 도적의 칼날에 쓰러지면서까지 그 정조를 지키어 이생을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김시습 자신이 세조 정권에 지조를 팔지 않고 단종에게 충성을 바치려고 한 굳은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홍서생이 취하여 부벽정에서 놀다

  조선조 세조 초년에 송도의 부상(富商)인 홍서생이 평양을 유람하였다. 친구와 어울려 놀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좋은 경치에 이끌려 홀로 부벽정에 올랐다. 달빛은 끝없이 밝은데 지나간 역사를 생각하니 무한한 감회가 솟아 흥망성쇠를 한탄하는 시를 읊었다.
이 때 한 귀부인이 나타나서,
"나는 기자의 후손으로서, 나라가 망한 후에 신선 세계에 와서 살고 있다"
고 말하였다. 그들은 시를 주고받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귀부인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고향으로 돌아온 홍서생은 그 귀부인을 생각하여 병들어 누웠더니 꿈속에 그 귀부인의 시녀가 와서
" 선녀의 추천으로 상제께서 그대를 부르신다"
고 했다. 꿈에서 깬 서생은 목욕재계하고는 미구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 이 작품은 평양을 배경으로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남녀간의 사랑을 제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만복사저포기>나 <이생규장전>과 같지만, 정신적인 사랑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기자 조선의 멸망을 다룬 것은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역사적 사건의 우의(愚意)라고 보기도 하고, 선녀와의 연애와 하늘로 올ㄹ간 것은 현실도피로 보기도 한다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남쪽 염부주의 이야기

   경주에 사는 박생(朴生)은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으나, 번번이 과거에 실패하자 벼슬에의 꿈을 포기하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는 귀신, 무당, 불교 등의 이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 유교 경전에 전념하여 세상의 이치는 하나뿐이라는 내용의 <일리론(一理論)>을쓰기도 하였다.
  어느날 꿈에 저승사자를 따라 염부주라는 세계에 이르러 염라대왕과 사상적인 담론을 벌였다. 유교, 불교, 미신, 우주, 정치 등 다방면에 걸친 문답을 통하여 자신의 지식이 타당한 것임을 확인하였다. 염라대왕은 박생의 참된 지식을 칭찬하고 그 능력을 인정하여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선위문(禪位文)을 내려주었다.
  꿈에서 깨어난 박생은 가사를 정리하고 얼마 뒤 병이 들어 죽었다.

  - 주인공이 꿈속에서 겪은 일을적은 몽유 구조의 소설로서, 작자의 철학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작품에 나타난 사상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유교가 불교보다 우위에 있음을 주장하고, 불교의 타락상을 비판하고 있다. 유교 사상은 주인공의 기본사상었다.
  둘째는 세계에는 현실 세계만 존재할 뿐 천당, 지옥, 저승 같은 별세계가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세상의 이치도 하나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즉 미신적,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부정하고 현실적 비합리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는 폭력과 억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곧  유능한 인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릇된 세상을 은연중 비판하고 있다.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용궁 잔치에 초대받다

  송도에 글 잘하는 한생이 살고 있었는데, 푸른 옷에 복두를 쓴 사람이 나타나 송도 천마산의 박연 못에 있는 용왕의 명령으로 그를 모시러 왔다고 했다. 한생이 그들을 따라 용궁으로 가니 용왕이 맞이하며, 출가하게 된 딸을 위해 새 궁궐을 짓는 중인데 상량문을 지어달라고 했다. 한생이 상량문을 지어주니 용왕은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어 주는데, 물 속의 모든 물고기로부터 이매, 망량까지 모두 나와 춤을 추며 흥을 돋구어주었다.
한생이 돌아올 때 용왕이 구슬 두 개와 비단 두 필을 주어 이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득 깨어 보니 꿈이었다.
  놀라 주머니를 만져 보니 구슬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는 그 후 산 속에 들어갔는데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아무도 알 지 못했다.

- 이 작품은 김시습 자신이 세종대왕의 은총을 받은 과거를 추억하면서 현재의 방랑생활에서 인생 행로의 종착점을 모색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곧 글 잘하는 한생은 김시습 자신을, 용왕은 세종대왕, 용녀는 문종과 단종을 의미한다. 또 강하의 군장과 곽개사, 현선생 등이 등장하는데 이는 조정의 백관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용왕이 한생에게 구슬과 비단은 세종이 자기에게 상으로 주신 비단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용왕국에 초대받은 꿈에서 깨어난 한생이 세상의 명리를 버리고 산 속에 숨은 것은, 세종대왕의 은총을 받은 김시습이 과거의 화려했던 추억을 되뇌이면서 방랑의 길을 떠났음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