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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의 문학적 가치

지식창고지기 2009. 7. 14. 09:24

<금오신화>의 문학적 가치


- 김시습 <금오신화>

● 환상적 사랑과 현실적 장벽

<금오신화>에는 유달리 사랑 이야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이생규장전>과 <만복사저포기>가 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저승과 이승을 넘나드는 사랑을 한다. 이 점에서 이 책에 실린 사랑은 가히 환상적이며, 이 때문에 적잖은 시비가 돌출한다. 소설에는 무언가 있을 법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배운 독자들이라면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좀 주저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런 것이 소설이라면 <삼국사기> 열전에 있는 '김유신'이 훨씬 더 소설에 가까울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금오신화>의 경우, 이런 비현실적 요소는 현실적 요소를 만나 적절하게 제어된다.  가령 <이생규장전>의 이생과 최랑의 사랑은 양쪽 집안의 지체 차이로 말미암아 갈등을 빚는다. 이생 집안이 보잘것없는 선비 집안인 데 비해서 최랑 집안은 대단한 세력가 집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맺어지지 못하는 데에는 사회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또 그런 장벽을 극복하고 결혼할 수 있게 되는 원동력 역시 목숨을 건 최랑의 사랑 때문이었으니, 그 역시 지극히 현실적인 일이다. 그뿐인가. 천신만고 끝에 한 결혼이었지만 홍건적의 침입으로 종지부를 찍게 되는데, 여기에 두번째의 사회적인 의미가 담긴다. 그만큼 이 소설은 비록 인간과 귀신과의 사랑이라는 환상적 소재를 택했으면서도, 초현실적 세계의 신비한 힘이 아닌 인간 의지와 사회 현실에 기대고 있다 하겠다.

<만복사저포기>도 마찬가지이다.
전라도 남원 땅에 사는 양생이 일찍이 부모님의 여의고 늦도록 장가를 들지 못했다가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해서 여자를 얻었지만, 그 여자는 이승의 사람이 아닌 저승의 귀신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 때문에 그게 옛날 이야기이지 소설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태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남원은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이 때문에 왜구가 침입하면 가장 심한 공격을 받는 곳이었다. 만복사 터와 지척 거리에 있는 만인의총(萬人義塚)이 그 사실을 잘 말해 주는데, 이 곳은 정유재란 때 왜적과 맞서 따우다 죽은 2천 명의 병사와 1만여 명의 백성을 함께 묻은 무덤이다. 물론 소설의 시간 배경은 정유재란 훨씬 전이지만 작가는 처녀가 죽은 이유가 왜구의 침입 때문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으며, 이 점이 작품의 현실성을 높여 준다.
<이생규장전>이 그랬듯이 <만복사저포기>의 여주인공이 원귀가 된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즉 귀신과의 환상적인 사랑에만 집중하여 본다면 영락없는 3류 귀신담이지만, 현실적 장벽에 가로막힌 여주인공이 원귀가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소설로서의 '그럴듯함'을 포착할 수 있게 된다.

● 주장하기와 이야기하기

<금오신화>의 대표작 하면 대부분 <이생규장전>과 <만복사저포기>를 꼽을 뿐더러 교과서에도 이 두 작품만이 부각되는 통에 혹시라도 이 작품들이 <금오신화>의 전부라고 착각하기 쉽다.
<취유부벽정기>는 주인공 홍생이 부벽정에서 놀다가 기자(고조선 시대 전설상의 나라인 기자 조선의 시조)의 딸과 만난다는 내용이 중심 줄거리이므로 앞의 두 작품과 엇비슷하게 볼 수는 있지만, 나머지 두 작품, <남염부주지>와 <용궁부연록>은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인다. 
성화(성화-중국 명나라 헌종의 연호) 연간 초에 경주에 박생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유학에 뜻을 두어 스스로 힘썼다. 일찍이 태학관(성균관)에서 공부했지만 한번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늘 불평이 있었으며 기개가 높았기 때문에 권세를 보고도 굽힐 줄 몰라서 사람들은 그가 교만하고 편협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여 이야기할 때는 부드럽고 순후한 까닭에 온 동네 사람들이 그를 칭찬했다. 그는 일찍이 승려나 무당, 귀신의 설에 대하여 의심을 품었지만 확실히 결단을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중용>을 연구하고 <주역>, <계사>를 공부한 후로는 의혹이 전혀 없음을 자부했다. 그는 일찍이 <일리론(一理論)>이라는 글을 써서 스스로를 경계했는데 이는 대개 다른 이단적인 견해에 의해 미혹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 글은 이렇다.
"일찍이 들으니, 천하의 이치는 한 가지뿐이라고 한다. 한 가지란 무엇인가?"
무슨 재미난 내용이라도 나올까 기대했던 독자라면 퍽 실망했을 것이다. 맨 처음부터 그는 열심히 공부했으나 뜻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풍류 남아가 아니라, 학식은 많았지만 뜻을 펴지 못한 선비이다. 이 인용 뒤의 내용은 '일리론'이라는 제목의 짤막한 논문으로, 세상 이치를 유교 철학 한 가지로 설명하고 잇다. 이런 투철한 신념의 소유자인 주인공이 '남염부주'라는 저승에 들어가 저승의 대왕과 논쟁을 벌이는데, 정확하게는 제 주장을 거의 일방적으로 토로하는 것으로 일관된다.

<용궁부연록>도 마찬가지이다.
박생처럼 논리가 아니라 글재주를 편다는 것이 다를 뿐, 이 작품 역시 주인공 한생이 용궁에 초대받아 가서 한껏 글 자랑을 하고 용왕의 인정을 받고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일정한 스토리와 플롯을 가지고 무언가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로서의 소설을 연상하는 독자들은 당혹스럽다. 두 작품은 주인공이 저승이나 용궁에 간 다음부터는 줄곧 주장을 펴거나 시를 쓰는 것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두 작품을 일러 소설이 아니라고 하든 소설성이 떨어진다고 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보는 이의 관점이겠지만, 정말 중요한 사실은 그 내용이 작가 김시습을 그대로 표상한다는 점이다. 즉 박생과 한생이야말로 능력이 있으나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논리적 사고와 문학적 감성을 두루 갖춘 작가 김시습의 분신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두 작품은 작가의 분신들이 현실에서는 힘을 못 쓰지만, 자기를 일아주는 다른 세상에 가서 응어리를 풀고오는 이야기이다.

● <금오신화>의 바탕

<금오신화>를 최초의 소설이라고 재단하다 보면, 자꾸 이전의 설화나 전기(傳奇-기이한 일을 세상에 전함) 작품과는 다른 무언가 새로운 것이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강박관념에서 벗어난다면 사실 그 이전의 다른 작품들에서 그 바탕을 이루는 여러 요소를 찾기란 쉬운 일이다.
중국의 <전등신화(명나라 시인 구우가 지은 단편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니 새삼 거론할 게 없겠지만, 우리나라의 <삼국유사>나 <수이전>이 그 바탕이 되었을 것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그중 <수이전>의 '최치원'이란 작품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작품 역시 최치원과 처녀 귀신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가서 과거에 급제한 뒤 놀러 갔다가 쌍녀분(雙女墳)이라는 무덤가를 지나게 되었다. 그는 불쌍한 마음이 들어 시를 적어 거기에 붙여 두었는데, 그 인연으로 무덤의 주인들과 만나게 된다. 그녀들은 어느 부잣집의 자매로 원치 않은 혼인을 강요한 아버지 때문에 원통하게 죽은 귀신들이었다. 최치원은 그 귀신들과 함께 즐기다가 새벽녘에 헤어진다. 그 뒤 그는 귀국하여 쓸쓸히 지내다 죽는다.
이 작중 인물을 <금오신화>의 인물과 비교해 보면 세세한 차이가 없을 수야 없겠지만 대체적인 윤곽은 비슷하다. 글 잘하는, 재주 있는, 또 아주 외로운 선비가 원통하게 죽은 여자와 만나서 자랑을 나누고 끝내는 헤어진다. 작품에 깔린 기본 정서는 절절한 외로움이다. 외로우니까 누구를 만나야 하고, 그래서 외롭고 쓸쓸하게 죽은 귀신을 만나게 된다. 지금도 그렇듯이 소설의 주인공은 대체로 고독하다. 애인이 없어서 고독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뜻을 펼쳐 보고 싶지만 도무지 세상아 그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고독하다. 어느 소설이든 소설이라고 하면 주인공과 세상 사이의 불화가 중심인 법인데, <금오신화>는 그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금오신화>를 최치원 같은 전기(傳奇) 작품과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금오신화>는 최치원보다 훨씬 더 풍성한 내적 장치를 갖추어서 이전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는 생동감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특히 작품 속에 빼곡히 들어선 시들을 통해서 등장 인물의 심리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작품 바깥의 정보에 의지하지 않고 작품 안에서 모든 것을 완결 짓는 수법 등은 확실히 최치원 류의 질적으로 구분되는 점이다.

● <금오신화>와 김시습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김시습을 빼다 박았다. <만복사저포기>의 양생은 조실부모한 고아로 외롭게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김시습 역시 열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중병을 앓는 불우함을 겪었다. 또 <남염부주지>의 일리론이나 문답들 역시, 상당 부분은 김시습의 주장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용궁부연록>에서 용왕의 부름을 받고 용궁을 다녀오는 한생은 세종 대왕의 부름으로 어린 나이에 궁궐을 다녀온 김시습의 모습이다.
이렇게 보면 김시습은 허구적인 인물들을 내세워서 '자기 이야기'를 했던 셈이다. 상대적으로 볼 때, 종래의 최치원 같은 작품에서는 작가가 전달자에 머무는 성향이 강했다고 한다면, <금오신화>에 이르러 비로소 창작 의식을 분명히 했다고 하겠다.
작가 김시습은 개인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매우 불우한, 그래서 더욱 고독한 자신의 처지를 작품에 투사하면서, 능력이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제대로 쓰일 수 없는 딱한 처지를 은근히 드러내어 사회를 비판했다. 그는 이런 주제를 재미있고 돋보기게 하기 위해 종래의 설화 등에서나 보이던 귀신을 사랑한 이야기를 끌어들임은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시와 논설을 적적히 구사하면서 주제 의식을 한껏 키워냈다.
결론적으로, <금오신화>는 그 이전의 여러 문학 작품들을 참조하여 거기에 자신의 처지를 투사하고, 사회 현실에 적극 대응하면서 만들어진 명작이다.

- 이강엽, 고교 독서평설(통권 105호)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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