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금오신화> 읽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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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제2편 내가 하늘나라에 다녀온 이야기
내가 직업도 없이 방구석에 틀어박혀 소설이라는 걸 쓰기 시작한 지 이미 몇 해가 되었다. 그러면서 어머니께서 푼푼이 벌어오시는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책을 사보고 침식을 해결하는 처지라 그 애닳기가 여간치 아니하였다. 몸도 마음도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인데다가 글쓰기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아니하고, 그나마 맥이 빠져서 하루에도 두 번씩 세 번씩 잠을 자는데 어떤 날은 진종일 자기도 했다. 몸은 더욱 허약해져 요즘 들어서는 원고지 앞에 앉기만 하면 졸음이 쏟아지고, 졸다가 잠이 들면 늘 악몽에 시달렸다. 이미 제대한 지 네 해가 지났건만 꿈속에서는 또다시 해병대에 입대하여 무거운 의낭을 둘러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안절부절못하고 돌아치는 것이었다. 그런 안타까운 꿈을 거푸거푸 꾸었다. 커다란 의낭을 둘러멘 채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분명히 제대한 사람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하소연도 하고 애원도 하면서 불안스레 휘돌아치는 꿈이 그치질 않았다. 또한 어떤 때에는 생시에 내가 구성했던 소설 속에 내 자신이 등장하여 천방지축 날뛰는 얄궂은 꿈도 꾸었다.
그러자니 몇 달이 지나도록 작품은 한 편도 마치지 못하고 늘 가위눌리는 일뿐이었다. 써야 한다 써야 한다 하는 강박관념은 꿈결에도 계속되어 급기야는 꿈속에서조차 글을 쓰는데, 꿈의 내용을 낱낱이 원고지에 적는 신기한 꿈을 또한 연이어 꾸었다. 소설을 써보지 않은 사람이 들으면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요, 십여 년을 낙방 소설가로 지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허탈한 몽후의 감회를 도저히 짐작치 못할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며칠 전 어느 날 초저녁이었다. 그날도 나는 원고지 앞에 앉아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어떤 산중의 낡은 정자 옆에 가 서 있었다. 허물어진 팔작지붕 끝은 오래 묵은 이끼에 덮여 있었고 부서진 난간은 새똥으로 더럽혀져 있었으며 풍우에 썩은 누하주는 금방 넘어질 듯한 낡디낡은 정자였다. 단지 처마에 붙은 현판만이 청결한데, 천계루(天界樓)라는 추사체의 글자만이 의연했다. 나는 그 현판을 쳐다보면서도 이상스럽고 불안한 마음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잠시 그러고 있으려니 홀연히 선비 한 분이 내 앞에 와 서는 것이었다. 갓이며 도포를 말끔하게 정제한 수려한 용모의 어른이었다. 내 가슴은 마냥 떨리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기개를 잃지 않으려고 목에 힘을 준 다음 두 손을 앞으로 모으면서 그 선비께 말하였다. “저는 진주(眞珠) 심(沈) 아무개로 신재공(信齋公)의 이십세손이온데, 외람스럽게도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가 어딘지 통 짐작키 어려우니 귀인께서는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그러자 그 선비는, “심생(沈生)은 아무 염려 말게나. 생을 이곳으로 초청한 사람이 바로 날세. 나는 풍산(豊山)이 관향으로 심의(沈義)라는 사람일세. 일찍이 생을 보고자 했더니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가웁기 그지없네” 하면서 두 손을 내밀어 내 양쪽 어깨를 힘주어 움켜잡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엎드려 절하며, “몰라뵈어서 죄스럽습니다. 저 또한 일찍부터 대관(大觀) 선대인을 흠모해온 터라 이렇게 만나뵈니 깊이 즐거울 따름입니다. 불미한 저를 이처럼 불러주셔서 더없이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하고 예를 차렸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내가 하늘나라에 온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쿵덕거리는 앙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몰랐다. 대관 어른은 앞서서 나를 이끌었다. 대관 어른의 뒤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서서 몇 걸음 나아가니 사방에서 향기가 진동했고 오색 구름이 너울거리며 우리 곁으로 흘러다녔다. 어른의 도포 자락을 쫓아 한참 더 나아가자 옥패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드디어 천상계에 들어섰다. 아물아물하던 채운이 걷히고 금옥같이 빛나는 누각과 저택이 즐비하게 늘어선 고을이 바라보였으며 기화요초로 꾸며놓은 꽃밭이 큰길을 따라 사통팔달로 뻗어 있었다. 앞서가던 대관 어른이 몸을 돌려 내게 말했다. “상계에 왔으면 으레 옥황상제를 만나뵘이 첫 순서이겠으나 마침 상제께선 출타중이라, 우리는 우선 봉래산 청류정(靑柳亭)으로 가세나.” 나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지라, “옥황상제는 대체 어떠한 분이옵고 청류정은 또 어떠한 곳입니까?” 하고 물었다. 대관 어른께서는, “암, 궁금할 테지” 하시더니, “지금 이 천상계의 옥황상제는 우리나라의 안중근 의사이시라네” 하시면서, “이전에는 온 나라 온 민족이 모두 옥황상제의 통솔하에 있었으나, 얼마 전 전격적인 개편이 이루어져 지금은 각 나라 각 민족이 제가끔 천자를 두고 자치를 하고 있다네. 그러니 옥황원도 상징적인 옥황원이요 옥황상제도 상징적인 옥황상제라 하겠네. 그렇긴 하나 우리나라의 안 의사가 옥황상제가 되었으니 이 어찌 나만의 기쁨이겠는가. 그리고 봉래산 청류정은 생이 뵙고 싶어하는 분들이 주유하는 곳이라 가보면 자네도 기뻐할 걸세. 어서 가세나” 하고 나를 재촉하였다. 옥석과 대리석으로 무늬 지어 깔아놓은 도로는 그지없이 청결했고 그 너른 길 하나 가득 수많은 미녀들이 줄줄이 지나다녔다. 나는 그 미녀들의 꽃다운 얼굴을 훔쳐보느라 눈은 가자미눈이 되었고, 그러자니 발걸음이 어긋나 발은 거푸 땅을 헛디뎠다. “옥황원에 있는 각 나라 대표들이 어떤 분들인지 궁금하지 않은가?”하고 대관 어른이 뒤따르는 내게 물었다. “그 어찌 궁금치 않겠습니까” 하고 내가 몹시 궁금해하자 어른께선 각 나라의 대표들을 하나하나 일러주셨다. 그런데 그중에는 세상계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가 반이요 그렇지 않은 이가 반이라 나로서는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로소 세상계에서 말하는 인간의 역사란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계의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의로운 삶을 사셨던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새삼 절실히 깨달았고, 또한 그러한 분들이 정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 하늘나라의 질서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그분들 중에는 케말 파샤, 자와하랄 네루, 라몬 막사이사이, 윈스턴 처칠, 쑨원, 판초빌라, 카말 낫세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에이브라함 링컨, 앙드레 말로, 조셉 가리발디, 후즈밍, 토머스 마사리크, 시몬 볼리바르, 볼테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알버트 슈바이처, 요한 페스탈로치, 니코스 카잔차키스, 에드워드 제너,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루트비히 반 베토벤, 엔리코 페르미, 콜베, 월트 디즈니, 한스 안데르센, 잔 다르크, 찰스 다윈, 니콜라이 그룬트비, 아라비 파샤, 아웅 산, 헬렌 켈러, 알버트 아인슈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앙리 뒤낭, 사임당 신씨, 주떠, 요셉 티토, 마틴 루터 킹, 토머스 에디슨, 바슬라프 니진스키, 마크 트웨인 같은 분들이 있었는데, 근세의 위인들이 많은 걸로 보아 천상계에 세대 교체가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이름은 이 정도뿐으로, 전체의 반의 반도 못 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가슴 아팠다.
우리는 높지 않은 몇 개의 언덕을 넘은 다음 푸르른 바다를 건너서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에 올랐고, 곧 그 섬에 있는 한 풍유스러운 정자에 다다랐다. 그 정자가 바로 대관 어른이 말씀하시던 청류정이었다. 절벽 끝에 지은 부채꼴의 정자인 청류정에 오르니 마치 배를 탄 듯한 느낌이었다. 정자 주위에 늘어선 버드나무는 줄기마다 푸르르기 그지없었고 절벽 아래 암벽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푸르른 버드나무 이파리를 흔들며 아스라이 들려왔다. 청류정에는 두 분의 어른이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 계셨다. 그중에서 머리카락은 다 깎고 수염은 기르신 분이 매월당 김시습 어른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시원찮은 얼굴에 단구였다. 그러나 듣던 대로 그 호탕하고 고매한 기상이 두 눈에서 번뜩여, 좌우로 훑어보는 눈빛에는 사람을 쏘는 듯한 광휘가 서려 있었고 몸에서는 청랑한 신기가 솟아올라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한편 매월당 어른 맞은편에 망건도 벗고 버선도 벗은 채 새하얀 머리카락을 풀어 늘어뜨리고 앉아 계신 분은 연암 박지원 어른이었다. 연암 어른께선 정자 난간에 등을 기대고서 한쪽 다리가 부러진 갈매기새끼를 껴안고 밥알을 먹이는 중이었다. 나는 대관 어른이 소개도 하기 전에 얼른 마룻바닥에 엎드려 두 분께 절을 올렸다. 내가 인사를 차리고 고개를 들자 매월당 어른은 유난히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그래, 자네는 무얼 해서 먹고사는 사람인고?” 하고 다짜고짜 물으셨다.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나이 서른을 먹도록 언제나 두려워하는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간신히 입을 열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에……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옵니다” 하고 대답을 올렸다. 그러자 어른께선, “그래? 그럼 조밭은 몇 번이나 김을 매고 벼 한 이삭에는 낱알이 몇 알이나 열리는지 아시는가?” 하고 재우쳐 물으셨다. 내 등에는 이미 식은땀이 흠씬 했다. “아직 거기까지는 공부가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고 내가 대답하자 어른께선 진노하여, “예끼, 이놈! 그래, 제 입에 들어가는 음식의 근본도 모르는 놈이 글을 쓴단 말이냐? 에이…… 쯧쯧……” 하며 혀를 차시는 것이었다. 어른께선 얼른 술잔을 들어 툭 털어 잔을 비우더니, 그러고 나서도 책망하는 얼굴을 펴지 않고서 빈 두 팔을 쳐들어 나를 향해 화살을 당겨 쏘려는 시늉을 하며 힐난을 멈추지 않으셨다. 그뿐만 아니라 대 작대기를 들어 마룻바닥을 딱딱 두들기며 나를 데려온 대관 어른까지 나무라는 것이었다. “아무렴, 자네가 데리고 다니는 위인이 그럴 테지 여부가 있겠는가. 자네처럼 밤낮 꿈이나 꾸는 놈일 테지.” 그 말씀은 대관 어른의 글인 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을 두고 하는 말씀이었다. 그 꾸지람을 들은 대관 어른과 연암 어른은 함께 빙그레 웃으셨다. 그러더니 대관 어른이 나를 두둔하여, “그래도 우리나라 말로 글 쓰는 사람 중에는 여기 이 심생이 가장 나은 줄로 압니다” 하고 나를 손짓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연암 어른께서도 밥알을 먹이고 있던 갈매기새끼를 난간 너머로 날려보내면서 한마디 거드셨다. “제 생각으로도 대관 어른의 말씀이 옳은 듯합니다. 동봉 어른께서도 결국은 남의 글을 흉내내셨고, 대관 어른께서도 남의 글을 더 높게 치셨으며, 저 또한 결국은 남의 글자로 뜻을 적었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두고 볼 만한 이는 심생뿐이라 하겠습니다” 하자 매월당 어른은 한 번 크게 헛기침을 한 다음, “내가 보기엔 창구멍으로 하늘 보기야” 하고 나를 원천적으로 비웃었다. 나는 울화가 치밀어올라 참을 수 없었다. 하늘나라에 올라와서도 욱하는 성격은 여전히 걷잡을 수 없는지라 나는 평시에 품고 있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어버리고야 말았다. 나는 머리를 꼿꼿이 세워들고서, “저 비록 어리기는 하지만 매월당 어른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고 시작하였다. “제가 얻어들은 바 어른께서는 일찍이 품으셨던 오세의 뜻을 내던지고 한때나마 수양의 내불당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효령이 불러서 그리했다고는 하나 종당에는 수양의 사업에 대하여 칭송하는 시를 짓기도 했으니, 이 어찌 후세에 칭송받을 일이겠습니까. 그에 비하면 저는 아직 나이 어리고 배움이 없어 부족하기는 하지만 한 번 세운 뜻이라면 가벼이 하지 아니하였으며 한 번 그르다고 생각한 일에는 절대 몸을 굽혀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무지몽매한 치기로 당돌하게 치고 들어가자 매월당 어른은 이마에 굵은 핏대를 세우며, “반항만이 처세의 전부가 아니야!” 하고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도 지는 성미가 아니었다. “산중에 들어가 고매한 척하다가도 못 이기는 체 수양의 부름에 응했으며, 머리카락을 잘라내던 기상을 일순에 팽개치고서 그 곧은 붓을 놀려 ‘성상의 은혜는 말로써 표현키 어려우니’ 하는 시를 지었을뿐더러, 거짓 미친 척하며 세상을 조롱하고 제 마음대로 산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푸른 바다에 낚싯대 던져 큰 자라를 낚고, 하늘과 땅, 해와 달을 손 안에 감추었노라’라는 시항과 ‘귀를 씻으러 동쪽 시냇물을 찾았고 주린 배를 달래려 북산 고사리를 캐었네’라는 시항의 모순은 어떻게 변명하신단 말씀입니까?” 내가 그렇게 옹골차게 따지고 들자, 어른께선 거푸 술 석 잔을 들이킨 다음 이번에는 얼굴을 하나 가득 수심으로 채우고서 무겁게 입을 여는 것이었다. “그래, 그건 자네 말이 맞네. 그러나 나라고 왜 생각이 없었겠는가. 생각은 있었네마는, 하지만 숱한 쥐새끼들 등쌀에 하나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엔 그렇게 부끄러운 꼴만 보이고 말았네. 그러니 내 오늘 자네에게 이렇게 질타를 당하네그려. 그 다 내 못난 탓이니 선인은 아무 할말이 없네” 하며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 듯 눈과 입을 지그시 닫으시는 것이었다. 나는 머쓱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다른 것을 탓하는 게 아니라 왜 실패하셨냐 하는 것입니다. 실패는 변절보다 더 더러운 것이며,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른께서 더이상 대답을 않으시니 대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술상을 사이에 두고 술잔이 몇 차례 돌았다. 연암 어른은 듣기와는 달리 자신이 드시기보다는 남에게 술을 권하는 성미였는데 특히 내게는 두터운 술인심을 보여주셨다. “내 자네를 기다린 지 아주 오랠세.” 연암 어른께선 내게 연달아 석 잔이나 술을 권하였다. 나는 황송하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여 잔이 오기 무섭게 바닥난 잔을 어른께 되돌려드리곤 했다. 금방 취기앙양해진 나는 세 분 선대인을 모신 영광도 잊은 채 겁없이 고담준론에 끼어들어 난설을 토해냈다. 내가 매월당 어른께 이렇게 물었다. “저는 글을 쓰면서 늘 ‘어떻게 쓰는가’보다는 ‘왜 쓰는가’에 더 깊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께서는 ‘왜 쓰는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걸 좀 말씀해주십시오.” 그러자 어른께선 수염을 쓰다듬으시며, “마음과 세상이 서로 어긋나니 시를 짓지 않고서는 즐거운 일이 없다네” 하고 말씀하셨다.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 뜻을 새기고 있으려니 어른께서 내게 묻기를, “그럼 자네는 자네가 생각하는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 말해보게나” 하셨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대답하였다. “어른의 「금오신화를 지으며」라는 두 수의 칠언절구에서 그 낙구는 ‘사람들 못 보던 글 한가롭게 지어내네’와 ‘풍유스러운 이야기를 자세히 찾아내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저 글자나 아로새기는 저 같은 사람이 보통 사람의 뜻을 멀리 넘어서신 어른과 어찌 비교가 되겠습니까마는, 대개 저의 뜻도 그와 같습니다.” 나의 답변을 들으신 어른께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날 들으라는 듯 이렇게 읊조리는 것이었다. “시의 법은 차가운 샘물과도 같은 것, 돌에 부딪치면 흐느끼는 소리도 많지만 연못에 가득 차면 고요하여 떠들지 않네.” 나는 그것이 나를 꾸짖어 경계하는 말씀인 줄 알아차리고 깊이 부끄러워졌다. 더이상 방약무인한 태도로 요설을 이어갈 염치가 없어졌다. 내가 가만히 있자 눈을 뜬 어른께선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산중에 돌아다닐 적엔 시를 써서 여울에 띄우는데 하루에 지은 시만 해도 기백 수가 넘었다네. 그래 심생은 이제까지 얼마나 썼는가?” 물으시는 매월당 어른만이 아니라 세 분이 다 나를 건너다보시니 나는 참으로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게 되었다. 그래서 술기를 빌려 단지 이렇게 대답하였다. “단지 어줍잖은 글 몇십 편을 썼을 따름입니다.” 그러자 어른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래 글이라면 어떤 글을 쓰는가?” 그래서 나는 또 간신히 말했다. “그저 소설 비슷한 걸 근근이 쓸 뿐입니다” 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남의 비웃음을 살 뿐 돈이 되지 않으니 견디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요즘 세상계에는 장사치나 모사배들만 기세를 부리는 형편이라 저같이 글 쓰는 사람은 어디 가 글 쓴다는 소리조차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나의 넋두리를 들으신 대관 어른이 탄식하여 가로되, “그래? 거참 몰상식한 세상이로고. 대체 글 쓰는 사람을 천대하는 그런 몰상식한 세상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놈의 세상이야말로 망할 놈의 세상이 아닌가. 그렇게 막돼먹다 보니 『매월당집』을 팔아먹고 〈몽유도원도〉를 도둑맞고 하지 아니하는가. 내 오늘 심생의 말을 듣고서야 그 파국 지경이 몰상식의 결과임을 짐작하겠네” 하고 한숨을 토하셨다. 이어 연암 어른께서, “생활이 넉넉지 못한데 어찌 마음을 곧게 지닐 수 있으리요마는, 글 쓰는 사람은 곤궁하더라도 본분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네. 자고로 글 쓰는 사람이란 하늘이 정해준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런 사람이 가당찮은 글재주로 뭇 사람을 기롱하거나, 부질없는 세리에 탐닉하거나, 치사한 싸움판에 끼어든다면 그 한낱 장사치와 무엇이 다르다 하겠는가”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저 역시 글품팔이를 하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 할 짓이 없어 글을 팔아 입을 살리겠습니까.” 그러자 대관 어른께서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시며 곤궁하게 살아가면서도 시를 짓던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하셨고, 그 이야기 끝에 연암 어른이 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보게 심생, 글이란 사람 사는 일이거늘 괜스레 관념과 현학에 탐닉하기보다는 패관잡설과 속자속어를 기록함이 오히려 뒷날 가치 있는 글이 될 것일세. 또한 글이란 사실로 적을 적에 참맛이 있는 것이니, 글 쓰는 사람은 오직 그 ‘참’을 쓰면 될 것이야.” 나는 어른의 가르침에 이렇게 답하였다. “제가 생각기로도 그러합니다. 우리 글은 우리 삶을 쓰는 것이니 다른 나라 글을 흉내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 어찌 우리나라에서 즐겨 쓰는 문투가 있겠으며, 남의 글에 어찌 우리 뜻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나의 말을 듣고 있던 매월당 어른은 무릎을 치며 기뻐하시더니, “천 년 뒤에 나의 뜻을 알아줄 사람이 있기를 바랐더니, 내 오늘 심생을 만나 보니 심생이야말로 바로 내가 기다리던 사람일세그려. 참으로 기쁘고 반갑기 그지없네. 내 간곡히 부탁하노니 생은 부디 그 뜻을 저버리지 말고 깊은 바다로 나가 큰 그물을 던지시게” 하면서 거듭거듭 나를 칭찬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는 중에 먼 데서 오신 손님 한 분이 청류정을 찾으셨다. 그분은 다름아닌 사르트르 선생이었다.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사르트르 선생은 몹시 기쁜 얼굴로 내 두 손을 어루만지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문학인은 시대의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창작이나 행동에 있어서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지고 전진적인 자유의 실현에 협력해야 할 것이야. 문학이 사회적 요구를 가장 깊이 표시할 때에 문학은 비로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이지.” 그래서 선생께 내가 물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의 실현’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선생은 낚아채는 듯한 내 질문에 당황했던지 두터운 안경 뒤의 사시를 꿈뻑이면서 빠른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자유란 책임을 포함하고 있는 실존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며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라네. 그러니 그 실현이란 개인과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의 보다 나은 삶의 추구를 말하는 것이지. 인간은 악과 선을 함께 인정하면서 선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그 악의 세력이 확장됐을 때는 누군가 그에 맞서서 저항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 선두에 문학이 위치해야 한다는 것일세.” “그것은 자유의 실현이라기보다는 생에 수반하는, 태어날 때부터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인간의 의무가 아닐까요?” 하고 내가 의문을 표시했다. 그러자 선생은 나를 얕잡아보고 아주 비웃는 투로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은 무의미한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라네. 존재한다 함은 그냥 그 자리에 있다는 뜻이야. 그러한 존재에 어떤 뜻을 부여하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자유가 필요하지. 인간은 그 자체의 본질이나 내용을 선험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의식작용을 통해서 자신을 구성해나가는 존재니까 말이야. 사람은 자신을 재발견해야 하며, 사람 자신 외에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며, 그래서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나가야 하는 것이라네. 어떠한 인간이든지 그가 만들어야 하는 장래가 있다든가 그를 기다리는 장래가 있다면 자네 말이 옳아. 그러나 그렇다면 인간은 고독할 것이 아닌가? 왠가 하면 삶의 끝은 죽음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인간 존재에 무슨 뜻을 부여해야 한다면 그 생각을 밑받침하고 있는 것은 결국 인간 존재에는 아무런 뜻도 없다는 말씀인데, 알에서 깨어나 무인도에서 산다손 치더라도 존재에는 반드시 그 의미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내 말은 그러한 인식, 그러한 자유의 획득까지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이야. 그 고통은 물론 집단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인의 고통이지. 나의 주장은 허망한 자유를 지배하는 자유로 변화시키자는 것이지. 이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낙관론이고 행동의 이론이야. 인간을 무의미와 절망 속으로 떨어뜨리려는 게 절대 아니야.” “선생님이나 저나 모두 낙관으로 귀착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인간을 위한 인간의 행동, 그리고 그 행동에 이르는 자유의 규명이 왜 고통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즐거운 자유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참다운 실존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자네의 그 ‘즐거운 자유’란 대체 어떠한 것인지 말해보게.” 이렇게 하여 나는 가소롭게도 내 우매한 생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선생님의 철학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켜야 하는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얼마든지 가변적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부단한 고통으로 이루어졌다손 치더라도 그러한 지식과 과학으로서 얻어진 자유는 한낱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절대적 삶을 당당하게 받아들였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야말로 전적인 삶, 전적인 실존의 의미 규정, 그리고 즐거운 자유의 실현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그들만을 대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닐세. 나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것이지. 관습과 기존질서라는 각본에 따라 그들은 모두 어릿광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야. 잉여물에 지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기 기만과 타인의 지옥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야.” “인습과 기존질서를 거부한다고 해서 인간이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연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안경을 밀어올리며 웃어 보였다. 진지한 열변과는 달리 쾌활한 웃음이었다. 그 쾌활한 웃음이 그치자 선생은 또다시 열띤 논설 속으로 들어서서 누군가 정지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멈출 줄 몰랐다. 선생은 훌륭한 청취자이기도 하지만, 자기 주장에 있어서는 상대방의 정신을 뽑아놓는 무서운 논전자라는 건 내가 일찍이 알고 있던 바처럼 사실이었다. 또한 선생은 굳건한 신념의 소유자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유머와 웃음을 아는 사람으로서 코미디언 기질마저 풍부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다시 문학으로 되돌아왔고 선생이 내게 말했다. “부르주아지는 작가를 전문가로 본다네. 작가가 사회질서에 관해 파고들면 그들은 그를 귀찮고 두려운 존재로 여기지. 그들은 다만 사람의 심리에 관한 실재적인 경험을 다루어줄 것만을 바란다네. 그럼 그러한 사회에서 작가는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하겠는가? 그때 작가는 계급적 규정을 피하려는 헛된 노력을 하고 거만을 떨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나 연대성에 의해서 피압박 대중과 결부되어야 한다네. 자신이 부르주아지라는 망상을 버려야지. 오히려 부르주아지 앞에 나서서 그들의 부정을 증언하는 한편, 노동자의 의식을 일깨워주려고 노력한다면 그 작가의 작품은 전 세계를 반영하게 될 거야.” 그래서 내가 말했다. “선생님은 자주 민중과의 일체를 들먹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한다’는 의미지 ‘함께 한다’는 의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야 할 존재’가 아니라 민중 속에 ‘있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선생은 코끝을 긁었다. “그래 그건 옳은 말이야. 그리고 그러한 의식 또한 오직 민중 혁명과 일체가 됨으로써 가능하다네. 궁극적으로 예술에는 타자를 위한, 타자에 의한 예술이 있을 뿐이니까.” “그러나 글 쓰는 사람, 곧 창조자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아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그러자면 그 무엇에 대해서도 늘 당당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쪽에 대해서도 저쪽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그래, 그건 자네 말이 옳은 것 같아. 단지 어떻게 쓰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선생은 말을 이었다. “작가는 분노할 수도 침묵할 수도 있는 존재니까. 그러나 그가 쏠 것을 택한 이상 어른답게 정곡을 겨누고 쏘아야지 되는 대로 눈을 감고 그저 폭발하는 소리를 듣는 재미로 쏘는 어린애처럼 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고 내 코앞으로 권총의 총열 모양을 한 검지를 내밀어 흔들어댔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면 의도적으로 독자를 약올리고 어지럽히고 감질나게 하는 수법을 사용하여 명료한 뜻을 오히려 혼란하고 애매하게 만들었으며, 말장난을 거듭하는가 하면 애써 신기하고 성가신 용어와 복잡한 논리, 과도한 역설을 구사하여 단순한 사실을 온갖 있을 법한 복잡성으로 언급했습니다. 그런 난삽한 글이 어떻게 민중 혁명과 일체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선생님의 글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필요 이상으로 관념화하여 결국에는 의문과 혼란을 가중시키는 오류를 범한 게 아닐까요?” 내가 그렇게 들이치자 선생은 자신의 볼을 꼬집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보게, 서재의 판자 위에 늘어놓은 조그마한 관들을 펼쳐보게나. 혼란치 않은 이론과 모순되지 않은 사상이 어디 있는가?” 나는 맥이 빠져버렸다. 그래서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서양의 사상이라는 것은 결국 발견하려는 것이었고, 이제는 그러한 발견하려는 사고로써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어떠한 이해와 해결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인류는 이제 그러한 ‘콜럼버스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르트르 선생은 나의 방자한 말에 대해서도 시종일관 진지하게 답해주며 과분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선생은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부아르 여사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임박했다는 것이었다. 선생이 자리를 뜨자 청류정에는 다시 세 분 어른과 내가 남았다. 매월당 어른께서 나를 건너다보며, “그래, 요즘 세상계의 우리나라에는 어떠어떠한 사람들이 어떠어떠한 글을 쓰고 있는가?” 하고 물으셨다. 나는 이러이러한 분들이 저러저러한 글을 쓴다고 본 대로 일렀다. 내 말을 다 듣고 난 매월당 어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시더니, “어찌하여 그런 얼간이 같은 놈들이 글을 쓰게 되었더란 말인가” 하며 손을 들어 술상을 두드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보게나 심생, 요즘만이 아니라 옛적에도 그러했다네. 세상이란 언제나 그런 것이니 자네는 괜히 그런 일에 마음 아파할 까닭이 없네. 어차피 당대의 구 할은 삼류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자네는 오직 자네의 글만을 아끼고 지킬 일일세”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술 한 모금으로 마른 목을 축이고 나신 어른께서 다시 내게 물으시기를, “그럼 요즘 세상계의 우리나라에는 어떠어떠한 사람들이 나라 일을 돌보고 있는가?” 하셨다. 나는 내가 보고 들은 대로 이러저러한 분들이 저러이러한 자리에 앉아 있다고 알뜰히 고했다. 내 말을 듣고 난 어른께선 두 손을 들어 술상을 내리치며, “우리 백성이 무슨 죄가 많아서 그런 잡놈들이 그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나” 하고 통곡하셨다. 그러자 대관 어른께서도 깊이 탄식하며, “어이 해서 세상계에는 그런 쥐새끼들이 그다지도 많단 말인가. 어진 사람은 굶어서 말라 죽고 어질지 못한 놈들이 어깨를 겨루며 세상에 이름을 날리니, 참말 세상계의 조화는 알 수가 없네” 하셨다. 이어 매월당 어른이 긴 한숨을 토해내며 말씀하셨다. “그것이 인간세계의 조화이려니. 늘상 쥐새끼들이 찍찍거리며 농사를 해치고 사람을 괴롭히니 언제나 사나운 고양이를 얻어 한꺼번에 쥐새끼들의 씨를 말릴까. 아아 슬퍼라, 예전이나 오늘이나 슬기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괴로움을 당하는구나.” 나는 괜스레 죄스러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자 매월당 어른께서는, “심생은 앞으로도 자주 하늘에 와서 고소를 하게” 하셨고, 연암 어른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보아 하니 심생 자네는 시운을 잘못 만난 것 같으이. 내 자네 말을 듣자 하니, 참말 자네의 처지야말로 준마가 소금수레를 끌고, 조랑말이 꼴풀에 퇴비를 내며, 봉황이 가시덤불에 살고, 올빼미가 정원에서 노는 격일세. 허나 때가 되면 운도 따를 것이니 생은 부디 낙망치 말고 차후에도 오직 글 쓰는 일에만 힘을 기울이게.” 그 말씀에 나는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려 감사했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오랫동안 설왕설래하던 끝에 우리는 또다시 반가운 손님 두 분을 맞이하였다. 한 분은 서포 김만중 어른이셨고, 또 한 분은 낡은 삿갓에 해진 미투리를 신고 대지팡이를 짚으신 난고 김삿갓 어른이셨다. 서포 어른은 술을 드실 적에는 어머니가 계신 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나서야 술잔을 입에 대시니 나는 글에서만 보아오던 어른의 효성을 비로소 목격할 수 있었고, 그 곁에 앉으셔서 그런 모양을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입가에 비치시는 난고 어른의 심경도 헤아릴 만했다. 한글 소설문학의 큰길을 처음 여신 서포 어른을 뵈자 내 마음은 마냥 부풀었다. 그래서 내가 한 말씀 가르쳐주시길 소원하니 어른께서는, “글이란 많은 대중이 읽어야 하는 것이니 난삽하지 않고 뚜렷해야 하네. 그리고 글이란 대중을 감동시키려 쓰는 것이니 주장하기보다는 고백하는 마음으로 써야 함이 옳은 법이라네” 하셨다. 내가 감복하여 말씀 올리기를, “서포 어른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죽어라 고민하겠습니다” 하자 다섯 어른께선 모두 유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의기양양해져 다시 난고 어른께 말씀을 올렸다. “저는 동서고금을 통해 아직 어른보다 나은 시인은 보지 못했습니다. ‘모래는 모래, 갈매기는 갈매기가 되누나’ 하는 시구나, ‘나는 지금 청산을 찾아가는데, 푸른 물아 너는 왜 흘러오느냐’ 하는 절창은 세상 어디에서도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어른의 시를 찬양하자 어른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어찌 시재가 따로 있겠는가. 천재의 게으름이란 둔재의 부지런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요, 절묘한 감각이라 부르는 푸르른 나무는 탐구라는 거친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하시더니, “그래, 요즘 세상계에는 그다지도 시인이 없더란 말인가?” 하고 물으셨다. 나는 내가 보고 느낀 대로 말하였다. “시인이라 자처하는 자는 지렁이처럼 우글거리나, 그자들의 시재란 하나같이 잔박하기 그지없어서 감히 어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설령 비교한다 하더라도 썩은 이빨 하나 남아날 자가 없겠습니다.” 나의 아부가 지나쳤는지 좌중은 모두 통쾌하게 웃으셨고, 난고 어른은 즉시 시 한 토막을 읊으셨다. 아이의 익살은 취흥에 와 박히고 푸른 티 박힌 갈매기똥은 주춧돌에 떨어져 박히네 나 또한 술이 들어가면 방자해지는지라 거기에 답하여 이렇게 읊었다. 시선(詩仙)의 시심은 천공에 가 어룽지고 옥색 무늬 어룽진 과공(過恭)은 천장에 피어올라 어룽지네
- <계간 문학동네 1999년 봄호>에서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