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 부인은 왜 스스로 후실을 들였을까?
<사씨남정기>를 읽다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온다. 바로 사씨가 스스로 청하여 얻은 후실 교씨에게 사씨가 쫓겨가는 대목이다. 어떻게 해서 제 스스로 후실을 들일 것을 청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쫓겨가기까지 하는가 말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사씨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사씨의 말을 들어보자.
첩이 존문(尊門-상대방의 가문을 높여 일컫는 말)에 들어온 지 벌써 십 년이 지났으되 아직 한낱 혈육이 없사오니 고법(고법)으로 말하오면 군자의 버린 바 되더라도 두 말을 못할지어늘 어찌 감히 첩 등을 꺼리리까?
사실은 여기에 모든 답이 들어있다. 아내가 자신을 첩으로 남편을 '군자'로 부르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당시에는 자식(정확하게는 아들)을 낳지 못하면 내쫓겨도 말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 존귀한 남성 가부장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을 수만 있다면 첩을 얻는 일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고도 투기하지 않는 것이 현숙한 아내의 도리이기도 했다.
언뜻 보면 이 작품의 모든 문제는 간악한 교씨 때문에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살면서 생기는 폐해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교씨의 악행이 극악해지는 부분이 어디인가를 따져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교씨가 아들을 낳은 뒤 희한하게도 사씨 역시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 때부터 교씨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사씨가 아들을 낳아 자신의 아들은 적통(정실 아내가 낳은 자손의 계통)을 이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교씨의 자식이 적통을 이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사씨를 내치고, 사씨의 아들을 죽이는 길밖에 없다.
이렇게 이 작품은 근본적으로 선한 여성과 악한 여성의 대립을 다루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대립을 이끄는 제도적인 모순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 이강엽, 고교 독서평설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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