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민족 영토

세계 명산 트레킹 백두산과 고구려 답사기 <3>

지식창고지기 2009. 7. 31. 09:36

[경남일보]

세계 명산 트레킹 백두산과 고구려 답사기 <3>
 

우리 민족사의 중요한 부분인 고구려사가 우리들에게 다가온 것은 드라마 때문이었다. 역사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픽션이 가미된 드라마로 우리들 가슴 속에 기억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 ‘동북공정’이란 용어로 인해 고구려의 역사가 왜곡돼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자는 이번 답사에서 고구려 성 위에 중국식 형태의 성을 쌓은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고구려성 위해 쌓은 중국식 성으로 인해 고구려 성은 영원히 보존될 것 같았다.
요즘 인터넷에 고구려 유적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이번 경남일보 답사팀이 보고온 것 역시 기존 인터넷에 소개된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인 고구려의 유적을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본보에 소개한다. 참고로 사진은 지리산 여행사 대표 강덕문씨가 촬영을 했다.<편집자 주>


압록강 철교 야경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동(丹東) 간에 놓여진 철교로 길이 944m이며 한·중 국경의 명물로 1908년 8월에 착공하고 3년 동안 연인원 5만 명을 동원하여 1911년 10월에 준공하였다고 한다. 불빛은 중국 국경까지만 있고 북한쪽은 암흑 그대로이다. 압록강에 비친 철교의 모습이 아름답다.

 

국내성 모습: 고구려 수도 국내성 성터. 지금은 거의 허물어지고 일부분만 남아있다. 가까이 보이는 것은 중국 측에서 새로 쌓은 것이고 멀리 옛날 고구려 성돌이 보인다. 국내성에 남아있는 고구려 유적들은 200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돼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유적으로서 관리가 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장수왕릉.고구려 20대 장수왕릉. 장군총으로 알려진 고구려의 대표적인 고분이다.

 

 

기원전 37년 동명성왕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역사적인 현장이다. 멀리서 보아도 천연요새임을 알 수 있다.  졸본성 성문으로 지키던 병사들이 보초를 섰던 자리.

 

 

비사성: 고구려 천리장성의 시발점이며 해안 방어의 요지 비사성 성문.

 

광개토대왕릉: 요동과 중원까지 호령했던 광개토대왕의 릉은 현재 모두 도굴돼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무덤 주위 돌 무더기 사이에서 '호태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나왔는데 이것을 유력한 근거로 현재 이 무덤을 광개토대왕릉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