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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로 읽는 이야기 -장화홍련전 (薔花紅蓮傳)

지식창고지기 2009. 7. 31. 10:38

송사로 읽는 이야기 -장화홍련전 (薔花紅蓮傳)


계모와 전처자식 갈등, 가부장제 문제점 부각
결손가정 급증하는 현대사회에 교훈적 메시지


<장화홍련전>은 그 이본이 30여편에 이를 정도로 익히 알려진 작품이다.이 작품을 송사 소설로 다루는 까닭은 장화 홍련 자매의 죽음에 얽힌 전후의 사연이 관장(평북 철산 부사)의 사건 인지, 조사 및 판결에 의해 비로소 밝혀지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즉 가정 내적 갈등에서 빚어진 살인 사건이 송사라는 법적 절차를 통해 사회 문제로 파급되면서 이야기의 심각성을 더해감은 물론 강한 전승력을 수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사건의 발단은 배좌수의 전처인 장씨가 장화 자매만 남기고 죽자, 대를 이을 자식을 얻기 위해 허씨를 후처로 맞이하면서부터 비롯된다. 배좌수는 허씨의 용렬함과 심술을 알면서도 달리 마땅한 상대가 없었기에 '후사를 아니 돌볼 수 없다'는 생각에 부득이 그녀를 후처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딸이 부정을 저질렀다(계모 허씨는 큰 쥐를 잡아 그 껍질을 벗기고 피를 발라 영화 <장화홍련전> 포스터-1928년장화가 낙태한 것처럼 꾸밈)고 오해하기 전까지 배좌수는 장화 자매만 편애하고 허씨에게는 냉랭하기 그지 없었다.
남편의 무관심에다 전처 자식으로부터도 어미 대접을 받지 못하자 허씨는 강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뿐만 아니라 후처가 되기 이전에 빈한했던 그녀는 배좌수 집안의 풍족한 재물에 욕심이 있었기에 장화 자매를 없애고 자기 소생이 그 재물을 물려 받을 수 있게끔 음모를 꾸미게 된다.
이 살인사건으로 원귀가 출현하자 부임하는 본읍의 관장이 모두 기절하여 죽고 마침내 철산 고을이 폐읍이 되는 지경까지 이른다. 일이 이렇게 되자 조정에서는 난감해 하는데, 정동우라는 인물이 철산 부사로 자원하게 된다. 부사는 원귀의 호소를 듣고 배좌수와 허씨를 문초하자 그들은 거짓을 둘러댄다.두 사람의 거짓 증언에다 증거 불충분으로 인하여 사건의 진위를 가리지 못하자, 장화 자매의 원귀가 다시 부사에게 출현하여 낙태의 증거물(죽은 쥐)을 찾아 그 배를 갈라보면 진위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일러줘 비로소 장화자매의 죽음이 허씨의 흉계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한 가정에 새로운 구성원(후처)이 들어올 경우에 가장의 처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좌수는 전처 자식과 계모 사이의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감정을 부드럽게 중재하여 가족 구성원이 서로 신뢰하면서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 결과 전실 소생의 두 딸을 죽음으로까지 몰아 넣는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장화 자매의 비극적 죽음의 원인을 계모 허씨의 인성 결함 탓으로만 돌려 이 작품의 주제를 권선징악 일변도로 파악하려는 태도는 가부장 중심의 가족제도가 안고 있는 이러한 이면의 문제점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게 아닐까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장화홍련전이 계모와 전처 자식의 갈등으로 인한 중세적 가족 제도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무능한 가부장으로 인해 파멸되는 가정의 비극적 모습을 암암리에 담아 내고 있는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화홍련전은 '원귀 출현'을 해결하지 못해 허둥대는 지배층의 무능한 모습을 그리는가 하면, 끝내는 비범한 인물의 영웅적인 활약상을 통해 이를 명쾌히 해결하는 모습도 아울러 그리고 있다. 요컨대 송사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두루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결손 가정의 비율이 급증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는 장화홍련전과 같은 고전 작품이 발산하는 메시지에 슬기롭게 다가서야 하지 않을까 한다.    

- 이헌홍(부산대 교수)<송사(訟事)로 읽는 옛얘기> 부산일보/ 2000. 10.27. 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