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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소설 - 전우치전(田禹治傳)

지식창고지기 2009. 7. 31. 10:42

전우치전(田禹治傳)


미상

송도에 사는 전우치라는 사람은 신기한 도술을 얻었으나 재주를 숨기고 살았는데 빈민의 처참한 처지를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천상 선관으로 가장하여 임금에게 나타나 옥황상제의 명령이니 황금 들보를 만들어 바치라 하였다. 황제가 황금 들보를 바치자 그것을 팔아서 곡식을 장만하여 빈민에게 나누어주고 그 뜻을 널리 알렸다. 이를 알고 나라에서 그를 잡아갔으나 탈출하여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횡포한 무리를 징벌하고 억울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나라에 자수를 하고 무관 말직을 얻어 도둑의 반란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으나 역적의 혐의를 받자 다시 도망쳤다. 도술로 세상을 희롱하고 다니던 끝에 친한 벗을 위하여 절부(節婦)를 훼절시키려다가 강림 도령에게 제지를 당하고 서화담에게 굴복하여 서화담과 함께 산중에 들어가 도를 닦게 되었다.

● <전우치전> 이해하기
<전우치전>은 조선시대에
실재하였던 전우치라는 인물의 생애를 소재로 하여 쓴 소설인데 작자는 미상이다. 전우치는 중종 때의 인물로 도술에 능하고 시를 잘 지었는데 반역을 꾀한다 하여 1530년경 잡혀 죽었다고 한다. 도가의 이단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자주 일컬어지고 전설의 주인공으로 부각된 것이 <조야집요 朝野輯要>·<대동야승 大東野乘>·<어우야담 於于野談> 등 여러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은 실재하였던 전우치를 주인공으로 하여 쓴 소설이지만 그 도술 행각을 그린 내용이 대단히 비현실적이며 초인적이고 황당 무계하다. 그러나 작자는
당시의 부패한 정치와 당쟁을 풍자하고 그것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그러한 흥미 본위의 표현 형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작품의 내용은 이 소설의 주인공의 전우치가 의협심을 발휘하여 지방 정치의 부패성을 시정하고, 백성의 곤궁한 생활을 구제코자 자기의 도술을 사용하다가 나중에 서화담을 따라 태백산에 도를 닦고자 들어갔다는 이야기이다.  다분히 사회 혁명 사상을 고취하려고 기도 한 점 등에서 그 내용이 '홍길동전'의 그것과 매우 비슷한 데가 있다. 그래서 '홍길동전'과 '전우치전'의 작자는 같은 사람이 허균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없지 않다.
그 내용에 있어서 연대와 인물의 등장에 약간 통일성을 잃고 있는 경향이 있음은 미리 알아둘것이나, 전우치의 그 신묘한 도술과 가슴이 탁 트이도록 통쾌 무비한 거사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손뼉을 치고 쾌재를 부르게 하며, 그 저변을 흐르는 작가의 의도에 어느덧 머리를 끄덕이게 해준다.
한국 고대 소설 중에서 '홍길동'과 더불어 도술을 소재로 삼은 작품 중의 대표작이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다.

 

● <전우치전> 내용 정리
 * 작가 : 미상
 * 갈래 : 영웅소설, 군담소설, 도술소설, 사회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시점
 * 주제 :
전우치의 의로운 행적

 

● <전우치전> 본문 읽어보기
 조선 초에 송경(지금의 개성, 송악산 밑에 있던 서울이란 뜻) 숭인문 안에 한 선비가 있었으니 성은 전 이요, 이름은 우치라 했다.
일찍이 높은 스승을 좇아 신선의 도를 배우되, 본래 재질이 표일(성품이 세상 일에 별로 거리끼지 않고, 몹시 뛰어나게 훌륭함)하고 겸하여 정성이 지극하므로 마침내 오묘한 이치를 통하고 신기한 재주를 얻었으니, 소리를 숨기고 자취를 감추어 지내므로 비록 가까이 노는 이도 알 리 없었다.
이때 남쪽 해안 여러 고을이 여러 해 해적들의 노략을 입은 나머지에 엎친 데 덮쳐 무서운 흉년을 만나니 그곳 백성의 참혹한 형상은 이루 붓으로 그리지 못했다.그러나 조정에 벼슬하는 이들은 권세를 다투기에만 눈이 붉고 가슴이 탈 뿐이요, 백성의 질고는 모르는 듯 내버려두니 뜻 있는 이는 팔을 뽑아 내어 통분함이 이를 길 없더니, 우치 또한 참다 못하여 그윽히 뜻을 결단하고 집을 버리며 세간을 헤치고 천하를 집을 삼고 백성으로 하여금 몸을 삼으려 하였다.
하루는 몸을 변하여 선관이 되어, 머리에 쌍봉금관을 스고 몸에 홍포를 입고 허리에 백옥대를 띠고 손에 옥흘을 쥐고 청의 동자 한 쌍을 데리고 구름을 타고 안개를 멍에하여 바로 대궐 위에 이르러 궁중에 머물러 섰으니, 이때가 춘정월 초이틀이었다.
상이 문무 백관의 진하를 받으시니, 문득 오색 채운이 만천하고 향풍이 촉비하더니 공중에서 말하여 가로되,
"국왕은 옥황의 칙지를 받으라."
하거늘, 상이 놀라서 급히 백관을 거느리시고 전에 내리사 분향 첨망(멀리 우러러 봄)하니, 선관이 오운 속에서 이르되,
"이제 옥제 천하에 구차한 중 죽은 영혼을 위로하실 양으로 태화궁을 창건하실새 인간 각   나라에 황금들보 하나식을 만들어 올리되, 길이가 오척이요, 너비는 칠척이니 춘삼월 망일   (음력 보름날)에 올라가게 하라."
하고, 얼글에 하늘로 올라가거늘 상이 신기히 여기시며 전에 오르사 문무를 모아 의논하실새 간의대부(고려 문화부의 벼슬 이름으로, 후에 사의대부로 고쳐 불렀음)가 여쭈옵길,
"이제 팔도에 반포하여 금을 모아 천명을 받듦이 옳으리이다."
상이 옳게 여기사 팔도에 금을 모아 바치라 하고, 공인을 불러 길이와 너비의 치수를 맏추어 지어내니, 왕공 경사의 집안에 있는 것은 말도 말고 팔도에 금이 진하고 심지어 비녀에 올린 금까지 벗겨 올리니, 상이 기꺼워하사 3일 재계(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 하는 일)하시고 그 날을 기다려 포진하고 등대하더니 진시쯤 하여 상운이 대궐 안에 자욱하고 향내가 코를 찌르며 오문 속에 선관이 청의동자를 좌우에 세우고 구름에 싸였으니 그 형용이 극히 황홀하더라.
상이 백관을 거느리시고 부복하시니, 그 선관이 전지를 내려 가로되,
"고려왕이 힘을 다하여 천명을 순종하니 정성이 지극하지라. 고려국이 우순풍조하고 국태민안하여 복조 무량하리니 상천을 공경하여 덕을 닦고 지내라."
말을 마치며, 우편으로 쌍동제학을 타고 내려와 요구에 황금들보를 걸어 올려 채운에 싸여 남쪽땅으로 행하니, 무지개가 하늘에 뻗치고 비바람 소리가 진동하며 오색채운이 각각동서로 흩어지거늘, 상과 제신이 무수히 사례하고, 육궁비빈이 땅에 엎디어 감히 우러러 보지 못하였다.
이때, 우치는 그 들보를 가져다가 이 나라 안에서는 처치하기가 어려운지라 그 길로 구름을 멍에하여 서공지방으로 향하여, 먼저 들보 절반을 베어 헤쳐 팔아 쌀 십만 석을 사고 다시 배를 마련하여 나눠 싣고 순풍을 타고 가져가 십만 빈호에 알맞게 갈라주고 당장 굶어 죽는 어려움을 건지고 이듬해의 농량과 종자로 쓰게 하니, 백성들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다만 손을 마주 잡고 여천대덕을 칭사할 뿐이요, 관장들도 또한 기가 막히고 어리둥절하여 어지된 곡절인지를 몰라 하였다.
우치는 이러한 뒤에 한 장의 방을 써서 동구에 붙였는데 그 글에다,
"이번에 곡식을 나누어 줌으로써 혹 나를 칭송하지만 이는 마땅치 아니한지라. 대개 나라   는 백성을 뿌리삼고 부자는 빈민이 만들어 줌이어늘 이제 너희들 양순한 백성과 충실한 임   금으로 이렇듯 참혹한 지경에 이르렀건마는 벼슬한 이가 길을 트지 아니하고, 가멸한 이가   힘을 내고자 아니함이 과연 천리에 어그러져 신인이 공분하는 바이기로 내 하늘을 대신하   여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이리저리 하였으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이 뜻을 깨달아 잠시 남에   게 맡겼던 것이 돌아온 줄로만 알고 나의 힘을 입는 줄로는 일지 말지어다. 더욱이 자청하   여 심부름한 내가 무슨 공이 있다 하리요. 이렇게 말하는 나는 처사 전우치로다."
하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