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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체 - 화왕계(花王戒)

지식창고지기 2009. 8. 4. 21:05

화왕계(花王戒)


/ 의인체 소설 <화사>란 작품이 있다는데 /

                                                                                                                  설총

우리 나라 최초의 창작 설화로, 신라 신문왕 때의 설총(薛聰)이 한문으로 지은 우언적(寓言的)인 단편 산문이다.
어느 날 무슨 신기한 이야기를 하라는 신문왕의 명을 받고 들려 준 이야기라고 하는데,
꽃을 의인화하여 임금을 충고한 풍자적인 내용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소설적인 기록이며, 후대의 가전체 소설은 이 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모란꽃 신문왕이 여름 5월에 높고 명랑한 방에 앉아 설총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오늘 비도 오고 바람기도 신선하오. 비록 좋은 찬과 애절한 가락은 있지만 고상한 이야기와 좋은 웃음거리로 우울한 가슴을 푸는 것만 같지 못하오. 그대는 반드시 야릇한 패설을 많이 들었을 터이니 나를 위하여 이야기해 주지 않겠소?"
하니, 설총은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였다.

신이 듣건대, 화왕(花王-모란)께서 처음 이 세상에 나왔을 때,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휘장으로 둘러싸 보호하였는데, 삼춘가절을 맞아 예쁜 꽃을 피우니, 온갖 꽃보다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여러 꽃들이 다투어 화왕을 뵈러 왔다. 깊고 그윽한 골짜기의 맑은 정기를 타고 난 탐스러운 꽃들이 다투어 모여 왔다.

   문득 한 가인이 앞으로 나왔다. 붉은 얼굴에 옥 같은 이와 신선하고 탐스러운 감색 나들이 옷을 입고 아장거리는 무희처럼 얌전하게 화왕에게 아뢰었다.
   "이 몸은 백설의 모래 사장을 밟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났습니다. 봄비가 내릴 때는 목욕하여 몸의 먼지를 씻었고, 상쾌하고 맑은 바람 속에 유유자적하면서 지냈습니다. 이름은
장미라 합니다. 임금님의 높으신 덕을 듣고, 꽃다운 침소에 그윽한 향기를 더하여 모시고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 이 몸을 받아 주실런지요?"
   이 때 베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르고, 손에는 지팡이, 머리는 흰 백발을 한 장부 하나가 둔중한 걸음으로 나와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 몸은 서울 밖 한길 옆에 사는
백두옹(白頭翁-할미꽃, 머리가 센 노인) 입니다. 아래로는 창망한(넓고 멀어서 아득한) 들판을 내려다보고, 위로는 우뚝 솟은 산 경지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옵건대, 좌우에서 보살피는 신하는 고량(膏梁 : 기름진 고기와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차와 술로 수라상을 받들어 임금님의 식성장미꽃을 흡족하게 하고, 정신을 돕고, 금석의 극약(劇藥-독약보다는 약하나 적은 분량을 쓰면 병을 다스릴 수 있는 약)으로써 임금님의 몸에 있는 독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르기를 '비록 사마(絲摩 : 명주실과 삼실-좋은 것)가 있어도 군자된 자는 관괴(질경이-궂고 하찮은 것)라고 해서 버리는 일이 없고, 부족에 대비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서도 이러한 뜻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한 신하가 화왕께 아뢰었다.
   "두 사람이 왔는데, 임금님께서는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시겠습니까? "
   화왕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장부의 말도 도리가 있기는 하나, 그러나 가인을 얻기 어려우니 이를 어찌할꼬?"

   그러자 장부가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제가 온 것은 임금님의 총명이 모든 사리를 잘 판단한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뵈오니 그렇지 않으십니다. 할미꽃 무릇 임금된 자로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정직한 자를 멀리 하지 않는 이는 드뭅니다. 그래서 맹자(孟子)는 불우한 가운데 일생을 마쳤고, 풍당(馮唐 :
한 나라 안륭 사람, 어진 인재였으나 벼슬이 낭관에 그쳤음)은 낭관(廊官-낮은 벼슬)으로 파묻혀 머리가 백발이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이러하오니 저인들 어찌하겠습니까?"
   화왕은 마침내 다음의 말을 되풀이하였다.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다."

 

● <화왕계> 정리

작가 : 설총(薛聰)
연대 :신라 신문왕( 681∼693)
구성 : '도입-전개-절정-결말'의 소설적 구성
성격 : 우언적(寓言的), 풍자적(諷刺的)
제재 : 꽃(모란꽃)
내용 : 꽃을 의인화하여 임금에게 충고한 풍자적 이야기
주제 :
임금에 대한 경계(또는 간언)
의의 :
① 우리 나라 최초의 창작 설화이다.
② 이 설화의 가전적(假傳的)요소가 고려 시대 가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③ 구토설화(龜土設話)와 함께 의인화 설화의 효시가 됨.
출전 〈삼국사기(三國史記)〉

 

●<화왕계> 이해하기
   
우리 나라 최초의 창작 설화로, 신라 신문왕 때의 설총(薛聰)이 한문으로 지은 우언적(寓言的)인 단편 산문이다.
어느 날   신기한 이야기를 하라는 신문왕의 명을 받고 들려 준 이야기라고 하는데, 꽃을 의인화하여 임금을 충고한 풍자적인 내용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소설적인 기록이며, 후대의 가전체 소설은 이 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한 에피소드로, 왕에게 신하를 가려 뽑는 슬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진 임금 밑에는 어진 신하가 모이고 폭군 밑에는 간신들이 모인다는 역사적 교훈을 꽃에 비겨서 상기시키는 이 작품은 반드시 왕이나 지체 높은 사람에게만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평범한 속담과도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교훈은 군주와 신하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교우관계, 사제 관계 등 모든 인간 관계에 적용되는 것이며,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의 갈등, 가치 판단, 도덕적 책임에도 관련된다.
특히 작품의 전개에서 왕의 심리에 갈등을 도입하여 위기를 설정하는 장면은 뛰어나다.

 

의인화 소설의 흐름
① 고려 때 : '삼국사기'의 <화왕계>와 <구토지설> --한국 의인화 문학의 효시.
② 고려 때 :
가전체 소설 등장
        임춘의 <국순전>, <공방전>, 이규보의 <국선생전>, <청강사자현부전>, 이곡의 <죽부인전>,
        이첨의 <저생전>, 석식영암의 <정시자전>
③ 조선 초기 : 허구성과 창의성이 가미되고 현실을 반영한
의인화 소설이 나옴.
       식물을 의인화한 작품 - 남성중의 <화사>, 이이순의 <화왕전>, 정수강의 <포절군전>
       마음을 의인화한 작품 - 김우옹의 <천군전>, 임제의 <수성지>, 정태제의 <천군연의>
       동물을 의인화한 작품 - 미상의 <장끼전>, <별주부전>, <서동지전>, <섬동지전>
       그 외 작품 - <규중 칠우 쟁론기>, <꼭두각시 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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