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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연구가 정형진의 고대문화 새로 읽기 <6> 금정의 유래와 신선도(상)

지식창고지기 2009. 8. 7. 08:11

역사연구가 정형진의 고대문화 새로 읽기 <6> 금정의 유래와 신선도(상)
금정산 정상의 석정은 공공족의 삼신산 위 물동이와 비슷
아이 낳거나 농사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
불교문화 유래됐다는 기존학설 뒤집어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금정산의 금정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 정상 부근에는 여러 개의 석정(石井)이 있다. 그 중에서 금정(金井)으로 불리는 석정이 있어 금정산이라는 산 이름이 생겼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금정 주변에는 석정만이 아니라 남근석과 여근석 등 많은 고대인들의 신앙유적이 있다. 이는 이곳이 고래로부터 부산지역의 신앙 중심지였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금정은 과연 언제 누가 무엇 때문에 파 놓은 것일까? 일반적으로 이 석정을 신선이나 불교와 관련시켜 이야기 한다. 영조 22년(1746년)에 동계(東溪)스님이 쓴 '범어사창건사적'에서는 금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금정산 산정에는 높이 50여 척이나 되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바위 위에 우물이 있어 항상 금색으로 사시사철 언제나 가득차고 마르지 않는다. 그 곳에는 범천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온 금어(金魚)가 헤엄치며 놀고 있다'.

'범어사창건사적'에서는 금정을 불교문화로 윤색하여 전하고 있다. 불교문화로 윤색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우선 금정산과 가까운 양산 천성산에만 해도 금정보다 더 큰 석정이 있으며 통도사 자장암에도 석정이 있다. 뿐만 아니라 속리산 문장대, 영암의 월출산 구정(九井), 장흥의 천관산 구정, 남해의 금산 구정, 서울의 북한산 등 전국 도처의 명산에 석정이 있다. 이 석정은 한반도를 넘어 요동에서 제일 높은 산인 천산(千山)에도, 요하 상류 지역의 청산(靑山)에도 있음을 확인하였다.

 
  고깔모자 모양으로 표현된 삼신산이 그려진 앙소문화시대의 채색도자기(앙소채도).
이렇게 많은 석정이 모두 불교와 관련하여 조성되었을 리 없다. 이 석정들은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은 우리조상들이 어떤 종교적 상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해답을 조심스럽게 추론해 보자. 금정산 최고봉인 고당봉에는 고모(姑母) 할머니가 산신으로 계신다. 고당봉 안내판에는 '정상 부분이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는 이 봉우리는 하늘에서 천신인 고모 할머니가 내려와 산신이 되었다하여 그 이름이 유래하였는 바, 이는 고대 신선사상에 기초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이는 금정산 지역이 고래로부터 신선사상과 결부되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 신선사상은 우리 고유의 신선사상일까 아니면 중국의 도교가 유입되어 형성된 신선사상일까?

금정산 지역에 전해오는 신선사상은 우리 고유의 선도와 관련 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석정이 한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석정은 요하 상류와 요동반도, 그리고 한반도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이러한 지리적 분포 외에도 중국의 신선전설에서는 석정이 탄생할 문화적 배경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석정은 우리 고유의 신선사상과 결부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도교에서 말하는 신산에는 석정이 없다. 다시 말하면 신선이 산다는 오신산(五神山)이나 삼신산, 또는 곤륜산에는 석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도교경전에 따르면 오신산은 '발해로부터 동쪽으로 몇 억만리인지도 모르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엄청나게 커서 바닥이 없는 골짜기가 있고, 그 골짜기 가운데 대여·원교·방장·영주·봉래라고 하는 다섯 개의 높은 산이 있다'고 한다. 경전은 이어 그 산들의 정상에는 선인이 사는 황금어전이 있다고 하면서 주변 경관을 설명하고 있는데, 석정에 비유될 만한 것은 없다.

또 다른 도교 신산으로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도 마찬가지이다. 그 산에는 서왕모의 궁전이 있으며 궁전 왼쪽에는 요지(瑤池)라는 연못이 있고 오른쪽에는 취수(翠水)라는 강이 있으며 산 밑에는 약수라는 강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요지가 석정의 탄생 배경이 될 수도 있으나 문화사적으로 보았을 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국의 중원이나 동쪽 지역의 명산에는 석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주요 산 정상부분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석정의 문화사적 배경은 무었일까? 그것은 필자가 환웅세력으로 상정한 공공족의 앙소 문화유산에서 찾을 수 있다. 앙소채도를 보면 금방 이해하겠지만 그들은 삼신산에 생명수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앙소채도에는 삼신산 위에 물동이를 따로 마련하고 있다. 이 도상에서 삼신산을 금정산이라고 생각하고 물동이를 석정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바로 금정산의 금정이 된다. 그들이 요서를 거쳐 한반도로 이동해 오면서 명산에 석정을 파고 아이를 낳게 해 달라거나 농사가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이것이 조상들이 금정(金井)을 파 놓은 진짜 이유이다.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저자
  입력: 2009.05.21 20:55 / 수정: 2009.05.2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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