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깔모자를 쓴 용의 삼국시대 암각화 | |
암각화가 그려진 바위면 오른쪽 하단에 그려진 용은 분명히 고깔모자를 썼다. 이 특이하게 생긴 용 그림은 누가 어떤 의도로 그린 것일까?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도 많은 용 그림이 있지만 이 같은 모습의 용은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용의 기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기원을 알면 이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용의 문화사적 기원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화가 인도와 인도네시아, 중국의 해안지역을 거쳐 울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천전리 암각화에 보이는 용은 아무래도 신라왕족과 관련해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듯하다. '구당서'와 '신당서' 신라전을 보면 '신라국은 본디 변한의 후예이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변한(弁韓)이라 함은 '고깔모자를 쓴 한'이라는 말이다.
이집트 파피루스 문헌 속 그림. | |
신라왕족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이씩 적석묘 고분에서 발굴된 고깔모자를 쓴 황금인간과 관련이 있다. 그 고분은 기원전 5~4세기의 사카족 무덤이다. 이들 사카족의 무덤 조성 방식은 신라의 적석목곽묘의 그것과 동일하다. 이란 고원에 있는 유명한 '비시툰 비문'에는 다리우스(기원전 521~486년)왕이 동쪽으로 진출하여 잡아들인 소국 왕들의 모습이 새겨져있는데, 사카족왕만 고깔모자를 썼다. 이는 고깔모자를 쓰는 것이 당시 사카족 고유의 풍습이었음을 의미한다.
사카족이 천산 동쪽으로 진출한 사실은 암각화나 고고학적 발굴로도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다. 천산 동쪽에 있는 신강 호도벽현의 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에는 고깔을 쓴 사카족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들이 요서지역까지 진출한 흔적이 문헌에 보인다. 전국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산해경'에는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조선과 천독(天毒)이라는 나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보이는 '천독'을 중국학자들은 천축(天竺)으로 해석하면서도 잘못된 기록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사카족이 천산 동쪽으로 이주한 고고학적 흔적이나 암각화가 발견되기 이전에 행해진 것이다.
천전리 암각화의 '고깔모자를 쓴 용'의 모습을 의외의 지역에서 발견하였다. (사진2)는 이집트 왕릉에 그려진 것과 같은 주술적 장면이 묘사된 장례용 파피루스 문헌이다. 이 장면은 죽은 왕이 지하 세계를 지나 여행하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그림 중앙에는 왕관을 쓴 날개 달린 왕의 영혼이 지나가고 있다. 천전리의 용에도 날개가 달려있다. 그렇다면 천전리의 용도 저승으로 간 신라왕의 영혼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천전리의 고깔모자를 쓴 용은 천산 너머의 세계와 문화사적 고리가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한 듯하다.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