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낙동대교를 건너 김해시로 가다 보면 '가야고도'라고 쓴 큰 바위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지나 왼쪽으로 400여 m 지점에 나지막한 봉우리 하나가 있다. 담시선인이 노닐었다는 초선대(招仙臺)다. 가락국의 거등왕은 칠점산의 선인 담시를 이곳으로 초대하여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두며 서로 즐겼다고 하며, 또한 담시선인은 거등왕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오늘은 초선대 바위에 새겨진 커다란 발자국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이곳 마애불 앞 바위에 새겨진 발자국은 우리나라 선사시대 발자국 중 제일 크다. 발의 길이는 107㎝, 폭은 55㎝나 된다. 언제 누가 무엇 때문에 바위에다 거대한 발자국을 새겼을까? 선사시대의 암각화에 표현된 그림이 가지고 있는 상징들을 이해하면 한민족 초기 공동체의 사유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구성원의 뿌리도 가늠해 볼 수 있다.
필자는 10여 년 전 초선대를 처음 답사했다. 그때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마애불을 비롯한 바위들을 살피고 있을 때,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올라왔다. 그런데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장수 발자국 바위"를 보러 왔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소풍을 왔었고, 그때의 기억이 오늘 아침에 문득 떠올라 그곳에 왔다는 것이다. 그는 "옛날 장수 한 분이 여기 초선대에 한 발을 딛고, 송산에 한 발짝 딛고 명지 쪽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할머니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발자국이 크니 장수의 보폭도 대단히 컸던 모양이다.
■치우족의 족휘(문장)
이러한 발자국은 선사시대 암각화에 많이 보인다. 경주 석장리나 포항 칠포리, 안동 수곡리 발자국은 다른 암각화들과 함께 그려져 있으며 작은 편이다. 필자는 초선대의 발자국과 같이 단독으로 새겨진 발자국도 여럿 확인하였다. 일반적으로 발자국은 성자의 표시나 그의 방문을 의미한다. 초기 불교미술에서도 석가모니의 존상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보리수, 보좌, 법륜, 불탑, 불족적 등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즉 부처의 발자국으로 부처를 표현했다.
뱀 문양과 발자국 문양이 그려져 있는 치우족의 문장(紋章). | |
북경 서북쪽에 있는 판천 들에서 중국의 시조로 삼는 황제와의 전투에서 치우가 패하고 그들의 일부가 동으로 이동했다면, 선사시대 바위에 새겨진 발자국은 동이 치우족의 성소로 뇌신이 강림하는 곳이 아니었을까. 그곳에서 우리 어머니들은 명석하고 훌륭한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