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가 郭嘉
? ~ 208
조조의 모사.
자는 봉효(奉孝).
순욱과는 동향인 영주 영음사람으로, 정욱의 천거로 그의 막하에 들었다.
여포와 복양에서 싸워 패했을 때는 조조가 화상으로 죽었다고 거짓 발상하여 여포의 추격군을 크게 파하였다.
원소를 멸한 후 잔당을 소탕하기 위하여 멀리 사막까지 침공하였을 대 종군하여 계책을 들였으나, 도중 풍토가 맞지 않아 병이 들어 역주에서 요양하다 진중에서 죽으니 때는 38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관직은 군제주이고 시호는 정후(貞侯).
공손연 公孫淵
? ∼ 238
요동의 호걸.
공손강의 아들.
228년, 강이 죽고 숙부 공손공이 위에 나가자 위나라 명제로부터 요동태수에 임명. 조예는 연에게 대사마 낙랑공을 줌.
오의 손권과도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위나라는 그 배신에 문책의 사신을 파견했으나 공손연은 무력으로 이를 격퇴하고 연왕을 자칭하며 자립했다.
이에 위나라가 사마의를 총대장으로 삼아 토벌군을 파견하자 공손연도 요수를 따라 방위선을 구축했으나 사마의의 양동작전으로 패하고 본거지인 양평으로 물러갔다.
한때는 위의 포위 공격을 막아냈으나 마침내 총공격을 받고 항복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도망가다가 잡혀 아들 수와 함께 베임을 당하였고 그 수급이 낙양에 표시되었다.
공손강 公孫康
? ~ ?
위의 장군.
요동의 태수.
양평 사람으로 무위장군 공손도의 아들.
원소의 아들 원희와 원상이 조조에게 쫓기어 의지해 들어왔을 때, 조조는 곽가의 유탁으로 공격하지 않고 대치만 하고 있었더니 과연 공손강이 두 사람의 목을 베어 보내고 귀순하여 평화를 유지하였다.
가후
147 ∼ 223
조조의 모사.
무위 고장사람으로 자는 문화(文和). 어려서부터 장량, 진평 등에게 재사로 인정받았고, 권모술수와 정치에 능했다.
처음 동탁 막하에 있다가 동탁이 패하여 잔당이 지리멸렬하려 할 제, 이들을 이끌어 도성을 회복하고 서량태수 마등과 병주자사 한수의 근왕병이 이르렀을 때는, 지구전을 건의하여 이들을 물리쳤다.
이각과 곽사를 도와 장안을 회복하였으나 서로 화목치 못하고 자신의 건의를 듣지 않으매 단신을 빼쳐 도망하였다가, 장제의 조카 장수를 도와 완성에서 조조를 크게 파하였다.
나중에 패하여 유표에게 있을 때도 조조의 토벌군의 계책을 역이용하여 크게 파하니, 오합지졸을 이끌고도 군사 부림이 이와 같았다. 뒤에 조조가 유엽을 보내어 권하는 바람에 장수와 함께 귀순하였고, 조조도 그전 일을 혐의 두지 않고 중하게 썼다.
마초가 장안을 빼앗고 동관에서 장시일 대전하였을 때, 상대편 강화 안을 묵살하고, 마초·한수 둘 사이에 반간계를 놓을 것을 건의하여, 그 바람에 마초는 결국 패하고 말았다.
조비가 즉위한 지 얼마 안 있어 병으로 죽었다.
관직은 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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