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 삼국(위) - 조비/조조/감녕

지식창고지기 2009. 8. 9. 00:34

조비 曹丕


187~226.


중국 한(漢 : BC 206~AD 220)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를 퇴위시키고 위(魏 : 220~265/266)를 세운 군주.


시호는 문제(文帝). 한의 장군이자 승상이었던 조조(曹操)의 아들로, 220년에 아버지가 죽자 한을 찬탈했다.

그의 찬탈과정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즉 한의 마지막 황제가 자발적으로 그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방식으로 황제를 퇴위시키고 황제의 두 딸과 결혼했다.

조비가 세운 위나라는 50년도 채 못되는 동안 중국 북부지방에 해당하는 지역만을 지배했다.

 

 

조조 曹操


155~220.


중국 한대(漢代 : BC 206~AD 220) 말기의 유명한 장군.


그는 한대 말기에 조정에서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환관의 양자였다.

한말에 나라를 위협한 황건(黃巾)의 난을 진압하면서 장군으로서 고위직에 올랐다.

한은 황건의 난으로 인해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그 뒤를 이은 대혼란 속에서 중국은 군벌들이 통치하는 3국으로 분열되었다.

그는 한의 황제가 있던 수도 뤄양을 중심으로 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북방지역을 점령하고 점차 제국의 대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조조의 지략과 한때 100만 명이 넘었다는 그의 대군은 중국 역사에서 오랫동안 악명이 높았다. 

유교적인 소양을 갖춘 중국의 역사가들이 기술한 역사서와 대중에게 인기 있는 전설 속에서 그는 빈틈 없고 대담하며 무도한 악당의 대표적 인물로 묘사되었다.

그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14세기의 위대한 역사소설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에서 윤곽이 잡혔고, 그 이후로 그는 중국의 민간전설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전설 등에서 그는 여러 가지 사악한 마술적인 힘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근대의 역사가들은 그를 노련한 장군이자 실제적인 정치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가 죽은 후 아들 조비(曹丕)가 한의 제위를 찬탈하여 위(魏 : 220~265/266)를 세웠다.

 

 

감녕 甘寧

? ~ 222


오나라의 수군 용장. 자는 흥패.

파군 임강사람으로 관직은 절충장군, 양자강을 오르내리며 수적질을 하여 용명을 날리다가, 황조에게 갔으나 강도 출신이라고 써주질 않아 손권에게로 항복했다.

하구 싸움에서 능조를 소아 죽인 일이 있었던 때문에, 그 아들 능통과 늘 재미가 없었으나 뒤에 조조와의 싸움에서 능통이 낙마하였을 때, 적장 악진의 얼굴을 쏘아 맞혀 구해준 때문에 겨우 화해가 이루어졌다.

손권이 가장 아끼고 자랑하는 용장으로, 조조의 남침을 유수구에서 맞이했을 때는 불과 백 명의 기병으로 기습하여 위의 진중을 무인지경같이 휩쓸었던 때문에 강좌호신 이라고들 불렀다. 

유비가 관우, 장비의 원수를 갚으러 출병하였을 때 병을 무릅쓰고 종군하였다가 남만의 만왕 사마가가 쏜 화살을 맞고 나무 밑에 앉아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