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충 賈充
217 ∼ 282
진나라 사마씨의 모신.
건위장군 가규의 아들로 자를 공려(公閭)라 하였다.
사마소의 심복으로 그의 찬탈을 도와, 먼저 제갈탄의 심중을 떠보아서 이를 궁지에 몰아넣어 모반하게 하였고, 뒤에는 황제 조모를 시하기까지 하였다.
조모는 사마소가 자신의 잠룡시의 시의를 한하게 되자, 신변의 위험을 깨닫고 근위병만을 이끌고 짓쳐 나왔던 것인데, 가충이 이를 막아 수하 성제를 시켜 창으로 찔러 죽인 것이다.
뒤에 사마소를 도우며 그를 움직여 종회로 하여금 등애를 죽이게 하는 꾀를 내었다.
동오를 멸하도록 까지 살아남았다가, 항복한 손호에게 조롱을 받기까지 하였다.
그의 딸은 혜제의 황후가 되었다.
가범 賈範
? ~ 237
위나라 요동 태수.
공손연의 충신.
그가 반하였을 때 극력 사리를 들어 반대하다가 노염을 사 저자에서 베임을 당하였다.
사마의는 공손연을 멸한 뒤 두 사람의 충성을 갸륵히 여겨 무덤에 봉토 하여 자손을 명예롭게 하여 주었다.
가규 賈逵
? ∼ 228
위의 문신.
하동 양릉 사람으로 자는 양도(梁道).
홍농군 태수로 있다가 조조에게 인정받아 간의관으로 작전에 임했고, 문제(조비) 때는 예주를 다스려 명자사로 이름을 날렸다.
조조가 죽자 그의 아들 사이에 자칫 갈등이 생길 뻔했는데, 스스로 둘째 아들 조창을 달래고 세력을 꺾어 무사하게 마물렀다.
사마의를 도와 동오들 쳤을 때 조휴가 주방의 거짓 항복을 믿는 것을 간하였다가 노염을 사서 소외되었었으나, 패군 했을 때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조휴는 그를 의지해 죽을 고비를 벗어났다.
이후 많은 공을 세우고 병으로 죽었다.
조식
曹植
192~232.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시인.
자는 자건(子建). 시호는 진사왕(陳思王). 중국의 가장 위대한 서정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아버지는 유명한 장군 조조(曹操)이다.
아버지가 중국의 1/3에 해당하는 북부지방을 지배하고 있을 때 태어났다.
형이며 경쟁자로서 조조의 후계자가 된 조비(曹丕)는 나중에 한(漢)나라를 찬탈하고 위나라를 세웠다.
시인 가문(조조와 조비도 시인으로 유명했음)에서 태어난 조식의 재능은 곧 아버지와 형의 재능을 능가했다.
실제로 조조는 조식이 일찍부터 보여준 시적 재능에 깊은 감명을 받아 한때는 맏아들 조비 대신 조식을 세자로 봉하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조비가 동생 조식을 더욱 괘씸하게 여기게 된 것은 당시 소년이었던 조식이 나중에 형의 아내가 된 견(甄) 부인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220년 조비는 문제(文帝)가 되자 동생의 생활을 되도록 고달프게 하려고 했다.
그에 따른 조식의 좌절과 불행은 그가 지은 시 대부분의 주제가 되었다.
그는 당시의 정형이었던 오언시로 글을 썼지만, 이 형식을 좀더 확대·강화하여 그의 다양한 감정을 좀더 유연하면서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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