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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육담과 구전 육담에 담긴 성의식 (4)

지식창고지기 2009. 5. 22. 11:42

한국 육담의 세계관

 

   문헌 육담과 구전 육담에 담긴 성의식 - 신동흔(건국대 교수)


  1. 머리말


 
성적 관심의  문학적 표현은 여러  양식을 통해 이루어져  왔지만, 그중에서도
'
이야기'가 담당한 몫이  특별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성에 얽힌 갖가지

견문이나 상념을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엮어서 널리 전승해  왔다. 이른바 '육담
'
또는 '음담'이다.(1:이 논문에서는 이 중 '육담'을 대표  명칭으로 사용할 예정이

. 그 정확한  개념이 문제가 되겠는데, 일반적인  관점을 따라 '[내용과 표현의
양 측면에서] 성적 관심과 흥미에 초점이 놓이는 이야기'로 규정해 둔다
.)
 
우리의 전통적 육담은  구전과 기록의 두 가지  형태로 많은 자료가 전해지고

있다. 그중 원형에 해당하는 것은 구전 육담이라 할 수 있지만, 문헌 육담(2:

헌설화집에 기록돼 있는 육담을  '문헌 육담'으로 지칭하기로 한다.)의 위상 또는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문헌에 축적해온  육담은 이야

기 종류 면에서 구비전승되는 육담을 능가할 정도다.
 
육담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 또한 문헌 육담에 집중돼 왔다구전 육담에 대

한 본격적 연구를 찾아보기 힘든  데 대하여 문헌 육담을 집성한 '고금소총'(3:
[
고금소총] 이본 가운데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는  것은 1958년에 민속학자료간

행회가 펴낸 유인본이다. 여기에는 [태평한화골계전], [어면순], [속어면순], [촌담
해이], [명업지해], [파수록],  [어수신화], [진담록], [성수패설], [기문], [교수잡사]
11종류의 소화집이 한데 묶여 있다.   안에는 총 789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

는데 이 중  3분의 1 가량이 육담에  해당한다. [어면순], [속어면순], [촌담해
], [기문등은 거의 육담으로 채워져  있고, [어수신화], [진담록],  [성수패설],
[
교수잡사]에서는 육담이 전채의  3분의 1내지 2 정도를 차지한다반면 [태평한

화골계전], [파수록],  [명엽지해]에는 육담이 거의 실려  있지 않다.)에 대해서는,
또는 [고금소총]에 포함된 개별  설화집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
그 연구는 문헌을 해제하고 내용을 개관한 것 외에 편찬배경과 편찬의식에 관한

, 장르적 특성에 관한 것, 자료에 담긴  사회의식에 관한 것, 역사적 변천과 문

학사적 위상에 관한 것 등 다양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4:이 방면의 주요 
의를 내용에 상관없이  연대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장덕순, [한국의  해학
--
문헌소재 한문소화를 중심으로], [동양학] 4, 1974 ; 조수학, [골계전 연구], [
선전기의 언어와  문학], 형설출판사, 1976  ; 이석래, [문헌소재 한문소화  연구],
[
성심어문논집] 7, 1983  ; 이신성, [고금소총에 대한 일고찰--교수잡사의 경

], [논문집] 19, 부산교대, 1983 ;  김문규, [조선전기소화집연구], 서울대 교
육대학원 석사논문, 1987 ; 김영준, [조선조 문헌소화와 사회의식], [원우론집
15
, 연세대 대학원,  1987 ; 김현룡, [촌담해이고],  [한실이상보박사 회갑기념논
], 형설출판사, 1987 ;  정용수, [사숙재 강희맹 문학 연구], 국학자료원,  1993 ;
김근태, [골계작품류의 성향과 소설사적 관련양상], [고소설사의  제문제], 집문당
,
1993 ;
김영준, [우리나라  소화의 사적 전개 양상], [논문집] 14기전여자전

문대, 1994 ; 이강옥, [태평한화골계전연구],  [인문연구] 16 1, 영남대 인문
과학연구소, 1994 ; 황인덕, [한국소화사론(1)], [논문집] 43, 충남대 인문과학연
구소, 1994 ; 황인덕, [1400년대 필기소화사의 전개--한국소화사론(2)], [초전장관
진교수 정년기념국문학논총],  세종출판사, 1995 ;  황인덕, [17세기  소화사의 전
], [고전문학연구] 11, 한국고전문학회, 1996.)
 
그렇지만 그간의 연구를 종합해 볼 때우리의 관심대상인 '육담'에 관한 본격

적인 연구는 뜻밖에도  부진한 형편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육담에  초점을 맞
추어서 그것이 ''을 다루는  이야기로서 특유하게 지니고 있는 표현 내지는 의
미상의 특징을 밀도있게  연구분석한 논문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을 금기
시하는 시각이 연구에까지 작용한 탓일까.
 
이제 육담에 대한 하나의  작은, 그러나 정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해 본다. 육담

의 핵심적 요소에 해당하는  ''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육담에 내재한 의미의
층위를 단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이번 작업의  과제다. 과연 육담의 전승자들이

성적 욕망에 대하여혹은 그 주체(또는 객체)로서의  인간에 대하여 어떤 의식

(
또는 무의식)  지녔었던가 하는 문제다. 거기에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측면과
사회적 관념이라는 측면이  한데 맞물려 있거니와, 이 논문은 양자를  함께 규명

하는 입장을 취한다.(5:육담에 담김 의식을 살핀 대표적인 선행 연구로  김영준
의 연구[앞의 논문, 1987]  들 수 있다. 그는 육담을 비롯한  소화자료 속에 민
중의식이 어떻게 반영돼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점검하였다그 연구는 값진 것이
지만 사회적 측면에 관심이 기울어  있고 문헌육담의 주요한 전승자라 할 수 있
는 양반의 관점을 논외로 하고 민중적 시각만을 부각시킨 것이어서 논의의 보완
이 요청된다.)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 구전  육담과 문헌 육담이 모종의 공통점과 함께 차이

점을 드러내리라는 예상을 해볼 수 있다양자는 인간보편의 문제인 ''을 공통
적 주제로 삼고  있는 한편으로, 전승 주체  면에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구전
육담이 일반 민중을 중심으로  전승돼온 것인데 대하여 문헌 육담은 양반사대부

의 개입을 통하여  정착된 특수한 육담인 것이다. 과연 이러한  차이가 성의식에
어떠한 편차를 가져오고 있는지, 흥미로운 논제가 아닐 수 없다
.
 
그 구체적인 분석대상으로는  문헌 육담의 경우 [고금소총]  (6:구체적인 [

금소총] 이본으로는  1958년에 민속학자료간행회가  펴낸 유인본을 기본  자료로
삼기로 한다. 이하 문헌육담 자료를 인용함에 있어서는  별도의 주석 없이 이 유

인본에 실린  제목을 설화집 명칭과  함께 제시하기로 한다참고로, [고금소총]
자료를 살핌에 있어 조영암 역,  [고금소총], 신양사, 1962 및 이가원, [골계잡록
],
일신사, 1982를 참조했음을 밝힌다.)에 실린 육담 전반을, 구전 육담의 경우 임석

재 선생이  엮은 [한국구전설화](  12) (7:임석재, [한국구전설화](임석재전
), 12, 평민사, 1987-1993.)  실린 육담 전반을 기본 자료로 삼고자 한다.
그 자료수는 각기 300편 가량에 이른다. 이 중 [한국구전설화]의 자료가 구전 육

담을 대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의문시될 수 있겠으나,   무리는 없다고 본
. 이 자료집에 실린 육담 자료에는 전통적  구전 육담의 주요 이야기유형이 두
루 망라돼 있기 때문이다.(8:임석재 선생은 육담의 수집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
인 것으로 알려져 있거니와그 결과로 많은 자료가 집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
. [한국구전설화]에 실린 육담은 50  이상의 장기간에 채록된 것으로서, 북한
지역을 포함한 전국 각지의 자료가 포괄돼 있다.)
 
우리는 자료를 검토함에 있어 이야기 전체를 총괄적으로 살피기보다는 중요한

자료예들을 뽑아 특성을 분석하고 그것을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논제가  만만치 않은데다가 다르어야 할 자료가 많은  데 대한

일종의 편법이다.   논의 결과가 설득력 있게 일반화되기 위해서는  폭넓고 치

밀한 후속작업이 필요할  터인바, 본고는 하나의 시론에 해당함을 미리  밝혀 둔
.

  2. 육담의 성격과 의미 층위
  '
'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참으로 지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물론 예외가 아니어서
,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던 전통적 관념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성을 주제로 한 수

많은 이야기들이 형성 전승돼 왔다.
 
특기할 것은 성에 대한 이야기의 전승이 계층의 장벽을 넘어서는 면이 있다는

점이다. 민간에서는  물론 양반사회에서도  육담이 활발히 향유되었음을  수많은

문헌 육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거니와, 주목되는 것은 양자간의  상호 소통의

양상이다. 양반 사대부들이  문헌에 정착하여 전한 육담의 상당 부분은  본래 민

간에서 전승되던 것들로  이해되는 바, 편자 스스로가 이러한 사실을  밝히고 있
.(9:[촌담해이] [어면순] [속어면순] [어수신화]   여러 설화집의 서발문에서
민간의 이야기를 채록했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구전 육담 가운데

문헌에 있는 내용을  옮긴 것들이 또한 적지않게 발견되고 있다전체적으로 볼

때 구전육담과 문헌 육담이 겹치는 부분은  전체 자료의 20-30%에 이르는데,

는 다른 설화 영역과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의 이
러한 '열린 관계'는 성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인간의 보편적 본성임을 새삼 확인
시켜 주는 한편으로육담에 대한 고찰이 인간 본성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함
을 시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에 대한 관점이 또한 이야기 전승자의 사회적 처지에 따라서

성격을 달리하는  면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극단적인 비교이긴

하지만, 처첩을 거느리고 기방에 수시로 출입하는  사람과 결혼은커녕 평생 여자

구경을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의 성의식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구전
육담과 문헌 육담은 구체적인 성의식 면에서  적지않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니
,
이야기 레파토리의  70-80%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암시한다
.
결국 우리는 육담을 살핌에 있어  인간 본성의 측면과 사회적 처지의 문제를 함

께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한 유명한 자료 예를  통해 육담에 여러 의미가 얽히는 양상을 살펴보기

로 한다.
 
어떤 양반이 예쁜 첩을 두었는데 하루는 이  첩이 본가에 다녀오게 되었다.

반은 음양의 이치를 모르는 자로 첩을 호행시키리라 생각하여 종들을 모아 옥문
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한 응큼한  종이 나서서 양미간에 있다고 대
답하였다. 선비가 기뻐하며 그 종으로 하여금 첩을 호행케 하였다.
 
첩과 종이  길을 떠나 한 냇가에  당도하였다. 잠깐 쉬면서 종이  미역을 감게

되었는데, 첩이 보니 조의 양물이 매우 크고 좋았다. 첩이 희롱하여 "네 다리 사

이에 고기로 된 막대기  같은 것이 무엇인가?"하고 물으니 종은 "어려서부터 
던 혹이 점점 커져서 이만해졌습니다"라고 하였다. 첩이 "나도 양다리 사이에 옴
폭한 틈이 있던 것이 점점 커져 깊은  구멍이 되었는데, 그 고기방망기로 깊이를
재보지 않겠니?"하여 마침내 사통하게 되었다
.
 
첩을 보낸 양반이 안심이 안  되어 산꼭대기에서 살피니 첩과 종이 한참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양반이 크게 노하여 소리치며 ㅉ아가니 종이  송곳과 노

끈을 꺼내 무엇을 고치는  시늉을 하면서 태연히 말하기를 "아씨가 말에서 떨어
져 온몸을 살펴보니 배꼽 아래에 한치 가량 째진 데가 있기로 풍독이 나면 안될
것 같아서 꾸며드리려고 하는 중입니다" 하였다양반이 그 말을 듣고 안심하면

"그 구멍은 날 때부터 있는 것이니 그냥 놔두거라" 했다고 한다. <[촌담해이]
[치노호첩] / [한국구전설화] 5, 369-370, [첩과 종] (요약
)>
 
이러한 육담을 놓고 거기 담긴  성의식을 살피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짚고 넘

어갈 사실은 그것이  일차적인 존재근거를 '재미'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스
꽝스럽고 과장된 상황  설정을 통하여 '잠을 쫓아내는또는 '턱이 빠지게 하는'
웃음이 우러난다.(10:'어면순'  '어수신화' '성수패설' '촌담해이' 같은  육담집 명

칭 자체에 이러한 흥미에 대한 지향이 내재해 있다.) 그 재미는 이러한 이야기가
창조 전승된, 그리고 기록으로 옮겨지게 된 기본 바탕을 이룬다
.
 
그런데 육담이 유발하는 재미는 일반 소화가 다른  면이 있다. 그 재미의 바탕

에는 성의 문제가 놓여 있다. 성적 호기심이며 또는 성적 만족이다. 위 이야기가
흥미 속에 전승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성적 관심에 효과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남녀 단  둘의 원행이라는 설정이 성적 호기심을 유발하며  그들이 음

탕한 수작을 거쳐 성행위로 나아가는 모습이 성적 흥분 내지는 만족감을 불러일
으킨다. 이른바 잠재된 욕망의 대리충족이다.(11:이러한 성적 흥미는 두 측면에
서 문제성을 지닌다하나는 그 흥미에 상하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성에 대한
관심은 그야말로 인간  보편의 것이다. 위 이야기가 양반을 농락하는  내용을 담

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반에 의해  기록된 것도 실은 이러한 보편적 성향 때문
이라 할 수 있다다른 또 하나는 그것이 대개 윤리명분에  반하는 성격을 지닌
다는 점이다. 윤리적 관념이란 욕망을 억제하는 차원에서 설정되게 마련인데,
적 흥미는 욕망을 노출하는 차원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육담에 있어 성이 유발하는  흥미는 '인식'과 상관없는 무색 무취한 것이 아니

. 그 속에는 성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인식적 의미가 깔려 있는바, 특히 인간의
감춰진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위 이야기의

두 주인공은  본능적인 성적 욕망에  따라서 사고하고 행동한다관습이나 윤리

허울을 벗어던진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이다이러한 설정을 통해  위 이야기는

'
인간이란 본래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을  자연스럽게 제기하면서 그에 대한

인식을 환기한다. 육담의 기본적인 의미층위이다
.
 
그렇지만 이러한 육담이 환기하는  인식이 모든 전승자에게 있어 동일한 것일

수는 없다. 전승자  개인의 성격에 따라서, 또는  그 사회적 처지에 따라서 서로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양반 전승자의 입장에서  볼 때 위 이야기는  성적 관심과 흥미를 충족시키는

진진한 이야기인  한편으로(이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승  향유된 바탕을 이룬다
),
상당히 불쾌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만한  측면이 있다. 종이  교묘하게 양반을

속여넘기고서 첩과 사통한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이러한 불쾌감은  평성에서 구

체적으로 표명되고 있는바, [촌담해이]의 편자인 강희맹은 종의 간사함을 질타하
면서 아랫사람을 신중히 다스려 속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라고 하는 내용을 이야
기 뒤에 덧붙이고 있다.(12:태사공왈  지인최난 대간고신 기치노지위호. 구사사
인 정가이법  변간어조즉 필불계치노지독난의장어가이멸기하자 기불여소계재)
이 외에, 직접 문면에 표명된 것은 아니지만, 종이 뛰어난 성적 능력으로 양반의

첩을 차지한다는 설정 속에는  하층민에 대한 양반들의 성적 열등의식이 잠재하

고 있다는 식의 해석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에 대하여 위 이야기의 본래의 전승자라 할 수 있는 일반 평민의 시각은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은 작중인물 가운데 종의  자리에 자신을 환치시킴으로서 성적

욕망의 대리충족을 보다  뚜렷이 경험하게 된다. 종이 커다란 양물로  양반의 첩

을 유혹하여 질탕한 정사를 벌인다는 설정은 하층민의 입장에서 보면 양반에 대
한 성적 우월감의  주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와 함께 종에게  거듭 속아넘
어가서 첩을 뺏기고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양반의 모습을 통하여 양반의 무
능에 대한 조롱과 풍자의 의미가 구현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구전과 기록으로서 동시에 전해지고 있는, 일반  평민과 양반이 함께 향유했던

이야기에 이처럼 서로 다른 의미가 얽히고 있다고  할 때, 서로 레파토리를 달리

하는 이야기에 있어  그 이상의 편찬가 나타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예측이다. 문헌 육담과 구전 육담이 성의식면에서  어떠한 편차를 나타내고 있는

, 이제 절을 달리하면서 차근히 짚어 나가기로 한다.

  3. 문헌 육담의 인간관
  3.1. '
성적 인간'의 형상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육담은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는 이야기로
서의 특성을 지닌다. 육담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감추고 금기시하는 ''이라는
문제를 전폭적으로 노출함으로써 사람들이 쓰고 있는  관습의 포장을, 윤리의 가

면을 벗겨낸다.(13:육담에 있어 이러한 '벗기기' 작업은 ''  화제로 삼는다는
것 이외에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인물의 관계를 희극적으로 과장 전도하며
,
반윤리적인 상황을 서슴없이 도입하여 통념을 깨뜨린다. 성기나 성욕, 성행위 등

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 또한 중요한  '벗기기'의 기법이다. 이러한 형상화 방
법에 대해서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본고의  주제와는 거리가 있으므로 생
략한다.) 문제는 그렇게 벗겨진 인간의 모습이 과연 어떠한가 하는 점이다.
 
문헌 육담에  등장하는 여러 벌거벗은 인간군상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른바 '성적 인가'이라  할 만하다. 오로지 성을  위하여 존재하는,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때와 장소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이다. 그들은

성행위를 성사하기 위해 갖가지의 기기묘묘한 술수를  동원하며, 성적 만족을 높

이기 위하여 또한 갖은 방법을 쓴다. 성행위를  벌임에 있어 상대방을 별로 가리
지 않으며, 또한 시간과 장소를  따지지 않는다. 극단적으로는 옆에 다른 사람--
특히 배우자--이 있는 상태에서 질탕하게 성행위를 벌이는 일도  허다하다. 하여

간 성에 대한 집착은  아주 대단하여, 성적 만족이 가히 인생  최고의 가치로 자
리잡고 있다.
 
한 노파가 병으로 죽게  되어 세 딸의 소원을 물었다. 첫째  딸은 남자의 신낭

을 옮겨서라도 양경을  크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고, 둘째 딸은  남자의 양경이
항상 커진 상태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셋째  딸은 남자의 두 엉둥이에 큰

혹이 나게 해서  행사시에 붙잡고서 힘을 써봤으면 좋겠다고 하였다노파가 셋

째 딸의 말에 탄복하면서  남편에게 그런 물건이 있었더라면 여한이 없었으리라
하고는 손을 잡고서 맹렬히  잡아당기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기문] [양비

육류](요약)>
 
세 딸이  가슴에 묻어둔 소원이란  것도 그렇지만,   죽어가면서까지도 성적

욕망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노파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아주 희극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처절하기까지 한 느낌을 주고 있다.(14:이 예화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래도 덜한  편이다. 성병에 걸린  상태에서 커다란 과일로  자위행위를 하면서

더 큰 과일을 찾는 여인의 모습([어면순] [과요음양])이나, 총각을 유혹하여 

행위를 하면서  뼈가 부러지는 것을  달게 여기는 칠십  노파의 모습([진담록]
[
쇄율피]) 등은 말 그대로 기괴한 느낌을 준다) 성적 인간의 단면적 형상이다
.
 
문헌 육담에 등장하는  인물 군상에 있어 사회의  제반 관습이나 윤리는 성적

만족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아니, 귀찮은 걸림돌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그들은  때로는 그것을 교묘히 피하고 때로

는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성욕의 충족을 추구한다.
 
행상 한 사람이  인간에서 자다가 집주인이 아내와  일을 치르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그가 주인에게 운우의  품격을 그럴듯하게 설파하니, 그 말을 들은 여인

이 마음이 동하였다그녀는 남편에게 산돼지가 밭을 짓밟는 꿈을  꾸었다면 남
편을 내보내고는 행상을 유혹하여 극도의 환락을 이루었다.
 
행상의 성적 능력에 반한 여인은  살림을 챙겨 무작정 행상을 따라 나서는 것

이었다. 이에 후환을 두려워한 행상은 여인을 속여  집에 가서 솥을 지고 오라고
보내고는 내빼고 말았다마침 집에서 남편을 만난 여인은 행상이  물건을 훔쳐

달아났다고 둘러대고는  남편을 이끌고 뒤를  쫓았다. 끝내 행상을  놓친 여인은

통곡을 하고서 돌아왔다고 한다. <[어면순] [부부적도](요약
)>
 
행상과 여인은 위에 보듯이  교묘한 속임수를 동원하여 질탕한 혼외정사를 벌

인다. 그것은  물론 제도상으로나 윤리상으로 금지돼  있는 것이지만, 두 남녀는
일을 치름에  있어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윤리적 갈등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여인이 통곡을 하는 것은 살림을 잃어버린 것이 아까워서도 아니고,

편에 대한 죄책감 때문도 아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켜 줄 남자
를 놓쳐 버린 것을 한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한두 예만을 들었으나, 문헌 육담에 있어  ''에 의하여 사회적 관습이나 윤리

가 깨뜨려지는 일은 그야말로 비일비재하다. 육담에  나오는 수많은 성행위의 거
의 대부분이  혼외정사이거니와(그중 상당수는 '겁간'이다)(15:혼외정사를  다룬
이야기에 대하여  부부간의 성행위를 화제로  삼은 이야기는 반도  되지 않는다
.
그나마 부부간에 관한 이야기의 상당수는 신랑.신부라는  낯선 인물간의 일을 내

용으로 삼고 있다),  그를 통해 남녀가의 윤리는 결정적으로 허물어진다그런가
하면 부자나 장유  간의 윤리가 정면으로 부정되는 예도 허다하다부모의 정사
가 자식의 놀림감이 되고조손 벌의 남녀가 서슴없이 성행위를 벌인다. 반복되
는 지적이지만, 이들 '성적 인간'에 있어 관습이나 윤리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성적 만족에 대한  애착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 면에서 문헌 육담이  그려내고 있는

성적 인간의 형상이 인간의 진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문

제는 그 형상이 '상식적인  ' 또는 '정상적인 것'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고 있다
는 데 있다그것은 단순히 '희극적으로 과장된 것'으로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성을 내포하고 있다
.
 
문헌 육담에 등장하는  성적 인간의 비정상적인 요소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
이들이 속성 면에서  '인간적'이라기보다 '동물적'인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
그것은 이들의 행동양상이  '윤리'와 거리가 먼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본질적

인 것은 그것이  '애정'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참으로 우리는 문헌
육담에 등장하는 인간군상에게서  '애정'이라고 할 만한 요소를 좀처럼 찾아보기

가 어렵다. 이성에  대한 애정도 없으며, 인간에 대한 애정도  없다. 차고 넘치는
것은 단지 '성적 욕망'일 뿐이다
.
 
이러한 동물적인 성적 인간의  형상이 이야기 전승자들의 잠재적 성의식의 반

영이라고 할 때, 우리는 큰 의문에 부딪치게 된다. 조선사회는 유난히 윤리와 명
분을 중시하는, 인간다움과  정신문화를 지향하는 사회였으며, 그것을 앞서 주창
하고 이끌었던 이들은 바로 양반 사대부들이었다그런데 어찌하여 양반들이 전
승하고 향유한 육담에서는 오히려 동물적 차원의비윤리적 차원의 욕망만이 두
드러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문헌 육담에 등장하는 비정상적인 성적 인간의 형상은 기실 사회

적 모순의 산물이라는  것이 우리의 관점이다. 육담 속의 인물들이  보이는 성에
대한 맹렬한 집착은그리고 지나칠 정도의 반윤리적 성향은 성을  억누르고 금

기시하는 사회의 경직성이 낳은  하나의 반작용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윤리적 관념과 명분이 일방적으로 내세워지는 가운데, 성적 욕망은 음성적

으로 부풀려지고 왜곡된 형태로 해소되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조선 사회에 있어 성과  윤리를, 또는 성과 애정을 자연

스럽게 매개하는 통로가  막혀 있었음을 주목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결혼제도의
모순과 관련이 있다. 주지하듯이 조선사회에 있어  남녀간의 성적 결합은 혼인을

통해서 가능하도록 제도화돼 있었다. 그런데 그 혼인이란 어떤 것이었던가. 집안

끼리의 계약에 의하여 서로 일면식도 없는 남녀가 부부로 만나서 그날로 성행위
를 치른다. 그리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를 박탈당한  채 그렇게 평생을 함께 살아
간다. 타의에 의해 만난 낯선 남녀의 성적 결합, 거기에 자연스러운 인간적 감정
, '애정'이 개입될 여지는 거의  없다. 그저 동물적 본능이 있을 뿐이다(16:
담 가운데는 첫날밤의  성행위를 소재로 한 것들이 있는데, 참으로  엉터리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거나 또는 한쪽이 아주  어리석다거나 하

여 문제가 발생하는데겉보기에는 우스운 일이지만 당사자로서는  기막히는 일
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 혼인제도의 모순을 단
적으로 보게 된다). 요행히 마음에 흡족한 상대를 만난다거나 살아가면서 애정이
생겨난다면 좋겠지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짝을 만나 평생

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고역인가.
 
한편, 체면과 염치를 중시하는 양반사회의 관념은  남녀 관계를 더욱 부자연스

럽게 만들었다고  여겨진다. '남녀칠세부동석'의 관념에 의해  남녀관계를 차단당
한 상태에서의 성장은 이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태도와 감정을 저해한다. 그리고
집안간의 계약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혼, 그리고 결혼 뒤에 부부  사이에 놓여있

는 많은 규범들-지키자닌 까다롭고 지키지  않으면 경망한 사람이 되는-이 또한
자연스럽고 편안한 부부간의  애정을, 성생활을 가로막는다. 이래저래 쌓이는 것

'욕구불만'이다.
 
남녀가의 자연스러운 애정의 부재, 그리고 그  당연한 결과로서의 애정과 성을

연결시키는 능력의 부재, 그것은 본질적으로 성적  욕망을 동물적 차원으로 격하

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된다그런가 하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적 욕구불만을
해소할 길이 없는 상황은  혼외정사나 겁간과 같은 비정상적인 방식의 욕구충족

을 유도한다고 여겨진다. 바로 문헌 육담에서 나타나는 그러한 특징이다.
 
우리는 지금 중세  조선사회의 이면에 깔려있던 핵심적  모순의 한 면을 보고

있는 셈이다. 정상적인  남녀관계의 통로를 막아놓았던, 정상적인 욕망의 출구를

막아놓았던 중세의 경직된 이데올로기는 그 반작용으로서 욕구불만과 함께 왜곡

된 인간관을 낳았던 것이다. 인륜의 이념의 반인륜성이라고나 할까.
 
문헌 육담은 이렇듯 중세적 모순의 산물이라 할 만한 왜곡된 성의식을 내포하

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이야기가 지니는 긍정적 의의가  전적으로 부
정되는 것은  아니다. 성적 욕구불만을  엄떤 식으로는 적나라하게  노정한 것은
그 자체 중요한  문제제기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그런가 하면 육담이  성적 욕구

불만을 중화하고 해소하는 하나의  안전한 통로로서의 역할을 해온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육담을 통해 이루어지는 다분히  음험한 심리적 대리충족의 경험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되짚어 성찰하고  정화하도록 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
어쩌면 육담집 편자들이 내세운 '경계'의 진정한 의미는 이것이 아닐는지
.......
 
그런가 하면 우리는  다분히 동물적인 성적 인간의  군상 한켠에 이와는 다른

'
인간적인 성적 인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비록 그 숫자는 소수지만,

헌 육담 가운데는  부부를 비롯한 남녀가 애정을  전제로 하여 성행위를 벌이는
모습을 흥취있게 그린 이야기들이 없지 않다
.
 
한 부부가 서로 싸워 남편이 아내를 때리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분이 풀리

지 않은 상태에서 잠자리를 들게 되었는데, 남편이  잠못 이루는 아내를 보니 측
은한 생각과  함께 가까이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가 자는 척  팔을 아내
가슴에 얹으니 아내가 '자기를 때린 손'이라면  물리치고 말았다. 다시 그가 발을

엉덩이에 올리니 이번에는 '자기를 차던  '이라며 집어던지는 것이었다. 남편이

웃으며 양물을 뻗어 아내  배에 대니 아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양민이니,

야 나에게 어찌했겠니." 하는 것이었다. <[진담록] [양민찬](요약)>
 
이러한 이야기가 주는  웃음은 유쾌하며 또한 건강하다(남편이 아내에게  폭력

을 쓴 대목은 예외지만). 실로  성이란 이렇게 남녀를 애정으로 화합시키는 매개
, 나아가 애정의 결정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의식을 선양하는 육담
은 어떤 면에서 보면 반중세적 담론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고까지 말할 수도 있
을 법하다. 이런 이야기들이 전대보다  후대의 설화집에서 더 많이 보이는 것(
17:[
진담록]이나 [기문] [교수잡사등의 후대 소화집에 이런  류의 육담이 많다.
이 소화집들에는 육담이  아닌 진진한 애정담이 육담과  함께 실려 있기도 하다

(
그러한 애정담은 물론 이  시기의 야담이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류의 것이다), 물론 더 면밀히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단순한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3.2.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
 
앞서 지적한  대로 육담은 관습이나  윤리의 탈을 벗어던진  인간상을 그린다.
그렇게 벌거벗은 상태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서로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제로 육담에서는 여러 종류의  인물이 두루 '성적 인간'으로서 등장하여 성적 능
력으로써 승부하는 평등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서로 동등한 존재가 되는가 하면 그렇

지는 않다.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 요소가 있으니, 사회적 처지의 차이가 그것이
. 그 가운데도 신분의 차이와 남녀의 차이는 특히 중요한 것들이다. 이제 문헌
육담이 '남성 양반'에 의해  결산된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사회적 불평등 내지는

사회적 편견이 개재하는 양상을 단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
 
문헌 육담에 등장하는 인물의 신분구성은 매우  다양하다. 고위 양반 사대부에

서부터 천민인 종에 이르기까지 서로 사회적 처지가 다른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
.   중 서로 신분이 다른  인물간에 성행위가 시도되는 경우에  성적 욕망의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가 서로 얽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우리는 이를

특히 양반과 여종의 관계를 다룬  여러 이야기에서 단면적으로 볼 수 있다(
18:
문헌육담 가운데는 주인과  여종의 사통을 소재로 삼은 것들이 매우  많은데,

것은 실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종은 양반이 성적  욕망을 충족
할 수 있는  가깝고도 만만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밖에 양반과  상민의 성관계
로서 양반과  여종의 관계만큼이나 많이  보이는 것이 양반과  기생의 관계이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으로 공인된 관계임으로 해서 전자만큼의 문제성을 지니지는

않는다
).
 
이씨 성을 가진 선비 하나가 자못 음사를  좋아했다. 하루는 두어 선생과 친구

집을 찾아 술잔을 나누는데 분금이라는 침선비가  있어 용모가 수려하였다. 이씨
가 좋아하여 욕정을 참지 못하던  중 반쯤 취한 상태에서 방안에 붙들어다가 다
만 오른쪽 신발만을  벗은 채로 겁탈하여 기쁨을 누렸다.   선생이 창구멍으로
이를 보고는 좌중을 향하여  웃으며 말하기를 "분금이 아들을 낳으면 필시 사류

일 터이니 왈  '의관자제'로라" 하였다. 만좌가 절도하였다.  <[어면순] [의관자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기 집도  아닌 친구 집에서 남의 이목에 개의치 않고

여자를 겁탈하는 바이는 물론 자기는 양반이고 상대는 여종이라는  신분적 차

이에 기초한 것이다. 이른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성적 침탈이라고 할 만하다.
 
주목할 것은 그의 성적 침탈이  그 자체로 전혀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사

실이다. 다만 의관을  벗지 않은 상태에서 성행위를  한 것이,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하여 '의관자제'라는 교묘한  조롱이 나온 것이 화제일  뿐이다. 좌중의 한바탕

웃음 속에 여종에 대한 선비의 일방적인 성행위는 묵인되며, 나아가 조장된다(

19:
여종과 사통을 하면서 양반이 꺼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내의 '투기'.
반은 아내의  눈초리를 피해 갖가지  방법으로 여종에게 접근한다그 방법으로
이른바 '십격전술'이라는  것까지 등장하는  ([속어면순] [십격전술]),  여종과

사통하는 열 가지 전술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왜곡되고 불평등한 인간관계를 조

장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일반 평민의  입장에서 보면 불온하기 짝이 없는, 불평
등하고 비인간적인 양반적 시각이다.
 
그러나 문헌 육담에 있어 양반의 여종 사통이 위에서처럼 뜻대로 성사되는 것

만은 아니다. 여종을 범하려던 양반은 때로 엄청난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이월이란 여종을 마음에 두고 있던  선비 하나가 하루는 종들이 잠든 틈에 내

실에 들어가 이월의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이월이 엉겹결에  주먹으로 세
게 치니 선비가 놀라  뛰어 나와서는 남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땅을 기었다.
침 아이 오줌을 누이던 종이 이를 개로 오인하여 '반반'하고 어르니 선비가 개소
리를 내면서 도망갔다. <[어면순] [반반태](요약)>
 
이 이야기 속의 양반은 종에게  얻어맞고 개 노릇까지 하는 엄청난 봉변과 망

신을 당한다양반으로서의, 주인으로서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짐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는 양반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모욕적인 이야기이지만일반 평민

의 입장에서 보면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 있어  이 이야기는 양반
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공격하는 의미를 구현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과연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반명제로서 힘을 발휘했던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야기가 문제삼는 것은 양반이 여종을 범하려  한 일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벌어진 황당한 사단이다곧 뜻밖에 매를 맞고  개 노릇을

한 사연이 화제를 이루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양반 전승자들에게 있어 어

처구니없는 한때의  망신을 웃고 즐기자는  것일 뿐, 근본적인  도덕적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돌이켜 반성하고 경계하는  면이 있다면 일을  소홀히 진행하다가

위신을 잃은 부분이 곧 그것일 터이다. 만약  이 양반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그는

더욱 교묘한 방법-이를테면 '십격전술'(19 참조) 같은-을 써서 끝내  여종과 사

통하고 말았을 것이다요컨대 아랫사람의 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식의 차
별적 통념은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본질적으로 부정되지 않고 있다.
 
다음 이야기는 성에 대한 양반의 왜곡된 시각을 가히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

.
 
한 양반이 젊고 어여쁜 이웃집 상민 아내에게  항상 뜻을 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그 여자가 물동이를  이고 가는 것을 보고 달려가 귀를 잡고 입을 맞

추었다. 그러자 여인이  소리를 치고 그 가족이 달려나와 양반을  꾸짖어 욕하였
.
 
여인의 남편이 관가에 호소하여 이 일을 법으로  다루게 되었다. 그런데 그 판

결은 양반이 한  행위는 법에 죄로 나와 있지  않고 오히려 상민이 양반을 욕한
일이 죄가 된다면서 그 남편을 귀양을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
 
형벌을 면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여인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양반을 찾아가

용서를 빌게 되었다. 그러자 양반은 여인을 방에  들게 하고는 입을 맞추고 합환

을 꾀하는 것이었다. 여인 또한 기꺼워하며 응하였다.
 
그후 양반이 관청에 가서 남자의 죄를  용서해주기를 청하니, 관장이 말하기를

"
이제야말로 가히 일이 이루어졌음을 알겠도다하였다. 양반 역시 웃음을 머금

었다. <[성수패설] [모욕빈색](요약)>
 
위 이야기는 사회적 불평등이  일방적이고 비열한 성적 침탈을 어떻게 정당화

하고 있는지를 설명이  필요 없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건전한 양식을
거스르는 모순된 상황이거니와, 문제는 그것이 전승자에  대하여 잘못에 대한 비

판보다는 '공모의식'을 환기하는  논리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데  있다. 상민 여인
이 양반의 합환  요구에 기꺼이 응하여 즐거움을  누렸다는 설정은 양반의 성적
침탈을 마치 '시혜'나 되는 것처럼 미화하여  조장하고 있다. 양반 전승자들은 이

야기 끝의 양반과 관장의  웃음에 동참하면서 자기자신에게도 그러한 일이 벌어
지는 상황을  꿈꾸게 된다. 어찌 이를  잠시 웃고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겠는가
.
 
앞서 문헌 육담이  '양반 남성'의 관점을 담고 있다고 했는데성에 얽힌 차별

적 관념은 '양반'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남성'의 입장에서도 만만치않게  부각되
고 있다. 남녀간의 관계와 관련해서도 신분간의  관계에서와 유사한 왜곡된 관념
이 얽히고 있는 것이다.
 
육담은 곧 남녀관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남녀의 관계 양상을 다

양하고 풍부하게 형상화하고  있거니와, 일견 그 관계는 서로 동등한  것처럼 보
인다. 문헌 육담 속의  남녀는 같은 '성적 인간'으로서, 양반이 다 적극적으로 성
적 만족의 추구를 지향한다. 여성의 행동양상은  오히려 남자들보다 더욱 적극적
인 면이 있어서 성관계를 여자가 주도하는 것으로 돼있는 이야기들이 자주 보인
.
 
여성에게 가해진 성적  억압을 염두에 둘 때, 그리고 그것이  성적 욕구불만을

낳았으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성에 대한 여성들의  집착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육담  속의 여성의 형상은 상당  부분 남성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성에 대한 남성의 시각이 일방적으

로 여성에게 투영되고 있다는 것으로, 특히  '겁간'을 화제로 삼고 있는 이야기들
로부터 그러한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한 중이 길에서 여인을 만났다. 중은 욕심이  달랐으나 계책이 없어 그저 여인

의 뒤를 쫓던 중 "네 어찌  방귀를 뀌느냐?" 하고 꾸짖는 것이었다. 여인이 노하
여 중을 심하게 욕하였다중이 재삼 꾸짖었지만 여인은 오히려 굴하지 않았다.
그러자 중이 "저기 신령한 부처가 있으니 함께 가서 물어보자"고 하였다. 여인이

사실을 가리고자 하여 중과  함께 그리고 갔다. 중은 부도 앞의  으슥한 곳에 이

르러 여인을 강압하여  극음을 누렸다. 함께 돌아오는 길에 여인이  중을 돌아보
고 말하는 것이었다. "스님. 방귀 한번 더  뀔까요?" 중이 웃으며 갔다. <[속어면
] [여청재비]>
 
이 이야기는 악의  없는 재미있는 육담으로 받아들일 만한 소지가  있다. 중의

속임수도 그러하지만 '방귀 한번 더 뀔까?' 하는 여인의 말이 너털웃음을 자아내

는 면이 잇다. 확언은 할  수 없지만, 실제 이 이야기의 전승자들은 이를 하나의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는 함정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야기  속의 남성

이 여성을 '겁간'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중의 겁간은 속
임수를 수반한 교묘하고  부당한 성적 폭력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
한가? 수모를 당하고 겁간까지  당한 여인이 오히려 그것을 달갑게 생각하여 다
시 한번 일을 벌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성적 인간'의 모습이거니와,
문제는 그러한 설정  속에 남성의 왜곡된 성의식이 투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들은 일방적이고 비인간적인 성적  폭력을 은연중에 자연스럽고 정당한 일로 탈
바꿈시키고 있는 것이다그것은 여성을 성적 쾌락을 위한 정복의  대상으로 보
, 성적  만족의 수단으로 보는 태도를  정당화하고 조장하는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 속에서 여성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남성이  마음대로 농락할 수 있는 성

적 노리개로 격하되고 만다.
 
이런 예가 그저  한두 개만 보인다면 어쩌다  그런 이야기까지도 생긴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문헌 육담에서 남성의 비정상적인 성행위-겁간
,
그리고 간통-이 은연중에  정당한 것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그리고  그것이 재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습을 너무 자주  만나게 된다(앞에 인용한 [성수
패설] [모욕탐색]에도 양반의 비열한 겁간이 화간으로 변질되는 내용이 들어있
으며, [어면순]  [의관자제] 또한 겁간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담고 있다).  남성
중심의 왜곡된 성의식이 하나의  사회적 편견으로 뚜렷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좌라 하겠다. 사회적 불평등은 참으로  성이라는 본성적인 문제에까지 작
용하면서 그것을 뒤틀고 있다.

  4. 구전 육담의 성의식 -문헌 육담과의 거리-
 
지금까지 우리는 문헌 육담에 담긴 성의식을 살펴보았는데 그 결과는 여러 측

면에서 건전한 양식을  벗어나는 왜곡된 요소가 발견된다는  쪽이었다. 그렇다면
주로 민간에서 전승돼 온 구전 육담에 있어서는 사정이 어떠할까? 과연 어떤 본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문헌 육담에 대한 구전 육담의  유사성 내지 변별성을 살핌에 있어 먼저 전반

적인 성관계의 양태를 비교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육담에는 여러 인
간군상이 등장하여  다양한 사단을 일으키거니와그 사단은 성의  문제에 얽힌
것들로 돼있다. 그 사단을  좀더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면, 남녀의 갖가지 성관계

를 화제로  삼은 것 외에 자위와  동성애 같은 성행위가 화제에  오르기도 하며,
그밖에 성기.성욕 묘사, 성적 흥미를 유발하는 말장난  등도 간간히 보이고 있다
.
그 유형을 도표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성행위 - 남녀관계{부부관계, 혼외관계;사통(단순정사), 간통, 겁간(20:사통은

배우자 없는 남녀간의 성관계를 뜻하고, 간통은  배우자 있는 남녀의 상호교감에

의한  성관계를 뜻하며겁간은 일방적.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관계를 뜻한

.)}, 그밖의 성행위(자위, 동성애, 이물교합 등), 기타(성에 관한 어희, 성욕.성기
묘사 등)
 
구전 육담과 문헌 육담은 이중 어느 것을 주요 화제로 삼는가 하는 문제에 있

어 주목할 만한  편차를 보인다. 관계의 성격에  차이가 있으며, 그 주체에도 큰
차이가 있다
.
 
문헌 육담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화제는 '혼외관계'특히 간통에

관한 이야기가 전 자료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으며, 겁간-그중 상당수는

'
화간'으로 변질되지만-에 관한  이야기도 적지않은 부분을 차지한다이에 비하

면 부부관계나  사통(단순정사)을 화제로 삼은 이야기는  희소한 편이다. 이밖에
남녀관계 이외의 성행위를 다룬  것이나 '기타'에 해당하는 것들 또한 드물게 보

인다.
 
이와 달리 구전  육담에 있어 간통이나 겁간을  화제로 삼은 이야기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문헌에 있는  내용을 이야기로 옮긴 것을 제외할 경우 

욱 그러하다). 부부관계를 다룬 이야기와  사통을 다룬 이야기가 이들을 훨씬 능
가하여, 구전 육담의  주요 이야기종목을 이루고 있다한편, 성행위를 직접적으
로 다룬 것  외에 성에 얽힌 말장난이 다양하게  보인다는 것 또한 구전 육담의
특징이다. 이외에 자위나 동성애[계간따위를 다룬 이야기의 비율이 문헌 육담

에 비해 다소  높게 나타나고 있다.(21:구전육담 자료 가운데는 문헌육담에 
하여 동일 유형이  거듭 채록된 각편들이 많은데, 자료의 빈도를  정리함에 있어
유형이 아닌 각편수에 초점을  맞추었다(이하 마찬가지임). 한 이야기가 여러 화

자에 의해 거듭  구연된다는 것은 그만큼 대표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
.)
 
문헌 육담에 있어 성에 얽힌 사단에는 흔히 양반(선비)이 등장한다. 양반은 문

헌 육담의 가장 두드러진 남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양반이 여종이나 기생,
, 촌녀(유부녀/과부), 아내 등을 상대로  하여 성 행각을 벌이는 이야기가 문헌

육담의 주류를 이룬다. 양반 외에 장사꾼이나  머슴, 촌사람, 중에 관한 이야기도

적지는 않지만, 그것을 다  합쳐봐야 겨우 양반에 관한 것에 미칠까  말까 할 정

도다.(22:실은 양반의 기록에  촌인에 관한 이야기가 이만큼 수록된 것만  해도
특기할 일이다. 아마도  이는 ''에 대한 보편적 관심으로써 설명할  수 있을 것

이다.)
 
이와 달리 구전  육담에 펼쳐지는 다양한 성적  사단에 있어서는 양반은 거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구전 육담의 주요 남성 주인공은 촌사람, 총각

머슴, 장사꾼(소금장수, 생선장수, 옷감장수  ), 중이며, 그 상대역은 주로 시골
아낙, 과부, 처녀(시골처녀/양갓집 처녀등이다. 특히 촌사람 부부(신랑.신부 포

),  총각모슴-과부, 총각(머슴)-처녀홀아비-과부, 장사꾼-아낙장사꾼-처녀,
-아낙 등이 주된 짝을 이룬다
.
 
문헌 육담과 구전 육담이 나타내는 이러한 차이는 전승자층이 다른데 따른 자

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일 만한 소지가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주목할 만한
문제성이 있다
.
 
그 하나는  성관계의 윤리성 문제다. 혼외정사를특히 간통과 겁간을 집중적

화제로 삼는 문헌 육담이 성윤리와 관련하여 주로 어둡고 음란하며 착잡한 느낌

을 유발하는  데 대하여, 부부관계나  처녀.총각(또는 과부-홀아비)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는 구전 육담은 이야기가 주는 느낌부터가 전반적으로 훨씬 밝고 유쾌

하다. 구전 육담에  있어 성적 욕망과 윤리의 문제는 문헌  육담에서와는 양상을
달리한다
.
 
다음으로 주체의 사회적 성격 문제다. 구전  육담의 주인공인 하층민들은 양반

들과는 다른 차원의  성적 억압과 결핍을 절박하게 겪고 있음이  주목된다. 나이
가 차도록 결혼을 못한 노총각은 그 단적인  예이거니와, 그 외의 주인공들 또한
사회적 처지와 관련하여 크고작은 성적 억압을 겪고  있음을 보게 된다. 문헌 육

담과 변별되는 이러한 특징이 의미상의 편차로 이어짐은 또한 당연한 일이다.
 
앞서 문헌 육담  속의 인간군상이 '성적 인간'  형상을 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거니와, 구전 육담에 있어서도  ''에 부여되는 가치는 막대하다. 성적 만족에

비하면 윤리도덕 같은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
 
옛날에 한 늙은 내외가 두 아들과 며느리를  두었는데 모두 효자 효부였다.

런데 할멈이 병이 나서  아무리 약을 써도 안 낫는 것이었다이때 강원도에 용
한 의원이 있어  약을 지어주면서 '좃모가지'(조이삭)를 달이라고 하였다. 식구들
이 이를 남자의 양물로 잘못 알아들어 큰  사단이 일어났다. 큰아들이 자기 물건
을 자르겠다고 나서자  이를 들은 큰며느리가 제사  모실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펄쩍 뛰었다. 다시 작은아들이  물건을 자르겠다고 하자 작은며느리

가 시집  온 지 몇 달밖에  안됐는데 그것 없으면 못산다면서  말리는 것이었다.
이에 화가 난 영감이 자기것을 베어서 달이겠다고 하자 늙은 마누라가 병석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  내 병  다 나았다"  했다고  한다. <[한국구전설화
]  8,
392-94
, [내 병 다 나았다](요약
)>
 
남편의 물건을 애지중지하는  두 며느리의 모습에서, 그리고  늙은 시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성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본다. 그것은 '효성'이라는 윤리를 무색

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육담이 주장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성적 욕망이란 본래  사회의 관습 내지 윤리에 반하는 성향이  있거니와, 우리

는 둘이 맞부딪치는 모습을  여러 구전 육담 자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자식에
게 들통난 부부의  성행위를 통해 부자간의 질서가 깨지며, 남편의  눈을 속이며
외간남자와 사통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남녀간의  성윤리가 깨진다. 처녀를 속

여 범하는 소금장수나 여색을 밝히는 중 또한 윤리를 파괴하는 데 한몫 하는 이
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다수  구전 육담 자료에 있어  동물적 차원의 성적 욕망만이

홀로 우뚝하지는 않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성적 욕망은 흔히 인간적, 윤리적 고

민과 함께 맞물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위에 인용한 [내 병 다 나았다]만 하더
라도 윤리의식은 그리  간단히 무시되지 않는다. 두 아들은 성을  포기하고 효성
을 선택하는 결단을  내리고 있다. 며느리들이 이를 막아서지만 이  또한 윤리적
가치를 저버린 것이라기보다는 성생활을 차단당할 절박한 상황에서 본성이 윤리

의식을 앞선 것일 뿐이다. 그것은 성적 만족에  대한 극단적 집착과는 다른 차원
의 자연스러운 인간적 반응이다.
 
다음 이야기는 욕망과 윤리 사이의 고민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
 
예전에 한 부자  과부가 있었다. 한 총각이 머슴으로 들어왔는데  새경도 필요

없고 불을  켤 기름만 달라고 했다총각은 부지런하고 모든 일을  잘하여 과부
마음에 흡족하였다. 이 머슴은  밤마다 방에 불을 환히 켜두었는데, 궁금한 마음

에 그 방을 엿본  과부는 심병을 얻고 말았다. 총각은 반듯이  누워 큼직한 물건
을 세워  벌떡거리고 있었던 것이다과부는 마음을 진정시켜  돌아왔으나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다시 머슴의  방으로 가서 물건을 훔쳐본 과부는

다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는  다음날 자기도 모르게  다시 머슴방으로

이끌려간 과부는 결국  머슴의 몸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총각은  과부와 결혼하

여 잘 살았다고 한다. <[한국구전설화] 10, 348-49, [과부와 머슴](요약)>
 
이 이야기에서 수절  과부가 겪는 성적 욕망과  윤리 사이의 갈등은 진솔하고

절박하다.(23:이 이야기의  각편은 10편 가량 되는데한결같이 과부의 심리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그 갈등은 그녀를 오히려 인간적인 존재로  부각시킨다
.
이야기 전승자들은 그녀의 갈등에 공감하며, 그녀의 선택을 이해한다. 이 과부와

총각의 결혼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잘 된 일, 축복받을 일이다
.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경직된 윤리도 아닌, 또한 동물적인  욕망도 아

,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인간의 한 진면목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진지한 갈등을 거쳐서 이루어진 선택을 어느 쪽이든 소중한 인간적 가치를 지닌

. 위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중 욕망을 선택했고, 그것은 인간적인 것으로 긍정
된다. 본연의 욕망을 건강한 인간성으로 긍정하는 시각이다. 구전설화의 전승 주
체로서의 민중이 가다듬어온  인간관이다.(24:이 이야기는 널리 구전되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로서, [한국구전설화]에만도 여러 편의  각편이 실려 있다. 이는 이

이야기에 담긴 관념이 사람들의 폭넓은 동의를 얻고 있음을 시사한다
.)
 
앞서 구전 육담은  이야기가 주는 느낌이 밝고 유쾌하다고 했거니와위의 두

예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느낌은  인물들의 행위가

'
정상적인 것'의 범위  안에 있다는 것과 함께, 아마도 이야기  속에 인간적 체취

가 담겨있다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한 예를 단편적인 것으
로 하나 더 들어 본다.
 
어떤 성지(형제)기 아침밤 먹고  어디 함께 가기로 약속얼 ㅎ넌디 성언  갈 채

비럴 다 허고 바깥이 나와서 지달코(기다리고) 있넌디  동생놈이 통 나오지 안히
서 성언 그만 화가 나서 동생 방문얼 왈칵 열고 "멀 허니라고 이때꺼지 안 나오
?" 험서 소리질르다 보니 아 이거 야단났단  말이야어어 이거 이거 쯧쯧 허
고 있었다. 그건 그럴 수밖에동생놈언 제수허고 그 짓얼 한참 허고 있어서 말
이다.
 
동생놈언 그만 성헌티 그런 꼴얼 당히서 어쩔 줄 몰라 각시 배 우그서 엉겁절

에 헌단 말이 "성님도  한 번 허시지요." ㅎ다. 그렁께 성도 엉겁절에 헌단  말이
"
오냐 어서 히라, 나도 허고 왔다." <[한국구전설화] 8, 374-375, [나도 했다
]>
 
아주 민망한 상황에서 은연중에 주고받는 형제의 말이 주는 웃음이 아주 유쾌

하다. 아마도 그것은 상대방의  처지를 감싸주는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전승자들의 심리 속에 또한 인간적 체취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그것은 구전

육담에서 다양한 성적 사단에 '애정' 내지는 '인간적 정감'의 요소가 얽혀들고 있

다는 점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위가 그러하며,(25:한가지  보충하면,
앞에 든  [과부와 머슴]에서 과부가 머슴에게  끌린 데는 단순한  성적 욕망뿐만

아니라 머슴에 대한 인간적 호감이 전제돼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전승자의 시각이 그러하다. 이러한 '인간적  배려'를 잘보여주는 또 다른 이야
기를 하나 보기로 한다.
 
옛날에 소금장수  하나가 날이 저물어서  어떤 집 외양간에  유숙하게 되었다
.
그런데 한밤중에 한 사람이 문앞에서 배회하는  것이었다. 소금장수가 그 사람을

내쫓고 문앞에서 배회하니  주인여자가 끌고 들어가 사통하였다다음날 여자가

일어나서 보니 샛서방이 아닌 엉뚱한 남자이므로일을 무마하느라고 음식을 챙

겨주고 떠나 보냈다.
 
마침 그 여자의  남편이 우연히 그 소금장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

, 그 와중에 자기 아내가  음행을 저지른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는 집에 와서
어머니 사당에 가서 어머니 말소리를 흉내내어 아내의 음행을 낱낱이 이르는 것

이었다.   모습을 본 며느리는 남편이  나간 틈에 사당에 가서  시어머니 욕을
해댔다. 그러자 그 모습을 정탐한 남편이 다시  사당에 가서 어머니로부터 그 사

실을 듣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보고 놀란  며느리는 사당에 가서 용서를 빌고는
다시는 나쁜 행동을 안했다고 한다. <[한국구전설화] 1, 245-247, [아내의 음행

을 고치다](요약)>
 
이 이야기를 주목하는  것은 음행을 저지른 아내에  대한 남편의 태도 때문이

. 샛서방을 두고 있고 소금장수하고도 정을 통한 아내, 그 아내에 대하여 남편
은 뜻밖에도 직접 책망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대신 아내 스스로 잘못을 깨달아
뉘우치도록 인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코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은, 인내심

있고 너그러운 행동이다. 이와 같은 인간적  배려를 우리는 일종의 '애정'으로 규

정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성에 얽힌 갈등을 해결하는 하나의 유력한 해법이다.
 
앞서 우리는  문헌 육담을 살피면서 전통사회에  있어서의 혼인제도의 모순을

지적한 바 있거니와그것은 일반 평민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

. 평민들 또한 대개  낯모르는 남녀가 만나 부부생화을 엮어나갔던 것이다.
런데 구전 육담에 있어 문헌 육담과 달리  인간적 정감의 요소가, 애정의 요소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간단히 답할 성질의  문제가 아

니지만, 평민들의 삶에  있어 적어도 명분과 체면의 허울이 덮여  있지 않았다는
점을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다고 본다. 그들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서 삶을

함께 엮어가는 길을 찾아  나왔던 것이다. 육담은 그 자신 그러한  삶의 한 과정

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구전 육담에 있어 성과 관련한 사회적 불평등의 양상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를 살필 시점이 되었다. 구전 육담은 그 전승 주체의 사회적 처지가, 또한

등장인물의 사회적  처지가 문헌 육담에서와는 다르다는  점을 앞서 지적했거니

, 그것은 성의식의 측면에서 어떠한 차이를 낳는 것일까?
 
앞서 문헌 육담에 있어 신분차별의 관점남성위주의 관점이 성의식을 왜곡시

키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는데, 구전 육담에서는 양상이 크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여, 그러한 요소가 거의 없거나 또는 희미한 편이다
.
 
먼저 남성  위주의 관점을 보자면, 앞서  살핀 구전 육담 자료들이  이미 이에

대한 답변을 웬만큼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과부와  머슴] 같은 이야기에 있어

남성과 여성은 각기 주체적 인간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한다. 여성은 성적 만족의

일방적인 수단이 아니라, 인격을 지닌 '상대방'이다. 이런  사정은 [아내의 음행을

고치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의 다른 자료들을 두루 사펴보아도 성에

얽힌 남녀차별의 관념은 그리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구전 육담에 있어 '겁간
'
을 화제로 삼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으며(물론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겁

간이 화간으로  둔갑하는 식의 이야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26:이런 예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드문  예로 [한국구전설화] 5, 389-390,  [봉변당한

여자]를 들 수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한 사냥꾼이 색시를 데리고  산길

을 가다가  칼을 찬 도적을 만났다도적은 응큼한 생각이 들어  사냥꾼더러 그
활고 자기 칼을  바꾸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활을 차지한 도적은  활로 사냥꾼을

위협하여 칼을  버리게 하고 나무에  묶어놓은 다음 색시를  겁탈하였다. 색시는

처음에 저항하다가 나중에 기분이 좋아져 갖은  재주를 부리는 것이었다. 도적이

사라진 후 사냥꾼이 색시를 꾸짖어  욕하니 색시는 오히려 칼을 활과 바꾼 사람

이 잘못이지 무슨 소리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물론 비윤리적.비정상
적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이야기의 초점이 겁간의 정당화에 놓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적반하장 식의  여인의 뻔뻔한 태도에 초점이 놓인다. 그런  점에서 남성

중심의 시각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육담 일반의  특징이 아닌,
문헌 육담 특유의 설정이었던 것이다
.
 
다음 신분차별의 요소는 구전 육담에 있어 애초에 크게 문제될 소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육담의 대다수 등장인물이 일반  하층민들로 돼있고 이들 사이의 성

적 결합이 화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양반과 하층민이 함께 등장하는 이
야기들이 보이지만,   관계의 짝은 주로 '하층 남성 대  양반집 여성'으로 설정
돼 있어 문헌 육담과는  상반되는 의미를 구현하고 있다. 앞서 [첩과 종]에서 본
바와 같이  양반에 대하여 도전하면서  일종의 우월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
다음 이야기 또한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
 
옛날에 한 정승이  뒷간을 가다가 하인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들어보닌

그 중 하나가 "대감님  소첩을 불이 나게 한바탕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는 것이었다. 정승이 그 하인을 불러서 "어디 한번 불나게 해봐라. 불이 안 나면
목을 베겠다"고 호령하였다하인이 정승 앞에서 소첩과 일을 시직하는데한참

일을 벌이다가 말고 갑자기 소첩을 때리면서 "남 목이 달아나라고 이게 무슨 짓

이냐"고 욕하는 것이었다. 정승이 왜 딴소리냐고 꾸짖으니  하인이 말하기를, "
년이 한참 불이  나려고 하니 물을 싸서  꺼버리잖아요." 하는 것이었다. 정승이
과연 사내라고 감탄하면서 소첩은 물론 재물까지 주어  보냈다고 한다. <[한국구

전설화] 5, 360-361, [불이 나려는데]>
 
이상의 논의는 구전 육담에 있어  사회적 불평등이 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

여주는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구전 육담의 성의식 또한 전승자들이  처한 사
회적 조건과 관련하여 나름의 문제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소홀히 넘길 수 없다.
 
먼저 성의 은폐에  따른 왜곡된 성문화의 문제로서, 이는 구전  육담에도 영향

을 미치고 있다. 성을  덮어두는 사회적 관습이 낳은 결과는 곧  성적 무지로 나
타나는바, 그로 말미암아 겪는 엉뚱한 사단이 구전 육담에 흔히 보이고 있다.
큼한 남자의  속임수에 넘어가 처녀가  혼전에 몸을 내준다거나결혼한 부부가
성행위를 겁내 피한다거나  하는 따위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스꽝스러운

한편으로 한심하고 착잡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육담이 그  자체로서 이

러한 성적 무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성에 관한 인식의 통로를 열고 있다
는 데 의의를  부여해 보지만,(27:육담 가운데는 이야기 내용 자체에  성교육적
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있다. 방사를 할 줄 모르는  신랑을 위하여 밖에서
친척이 '탈의-진퇴진퇴' 등으로 방법을 일러주어 신랑이 따라 하게 했다는 것 등

이다.) 그 역시 성인남자드의 은밀한 수군거림에 가깝다는 면에서 개방적인 공론
과는 거리가 있지  않음을 부정할 수 없다.(28:이러한 이야기들이 미혼  남녀들
사이에서 전승되면서 성교육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지만구체적으로 확인

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때도 '은밀한 것'임은 변치 않는다.)
 
다음 비합리적인  제도에 의한 성적  억압의 문제이다. 불합리한  혼인 제도에

의해 욕구불만이 쌓이는 것이나 개가를 막는 제도 때문에 과부가 무조건 욕망을

넉눌러야 하는  것 등은 서민들에게  있어서도 큰 고역으로  작용했던 것으로서
,
구전 육담에서 자주 화제에 오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육담에 자주 등장하는,

예 결혼의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노총각의 모습은 성이라는 기본 욕구에서조
차 소외된 민중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층민들의 성적 결핍은 기실  사회적 불평등의 소산으로서 아주 본질적인 문

제이거니와, 그에 대한 대응이  주목된다. 육담은 성적 결핍에 대한 대응을 크게
두가지 형태로 그려보이고  있다. 하나는 그 욕구불만을 자위나 동성애  등의 방

법으로 해소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물론  비정상적인 것이지만, 달리 욕구를
채울 수 없는 처지를 고려한다면 '상놈의 천한 짓'이라는 식으로 질타할 수는 없

는 노릇이라고 생각된다또하나는 적절한 배필을 짝지어주어서  문제를 해결하
는 형태이다. 앞서 본  바 있는 [과ㅜ와 머슴] 같은 경우다이쪽이 훨씬 원만하
고 바람직스러운 형태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그 상황
은 기실 현실이라기보다는 '공상'에 가까운 것이고그러기에 공허할 수 있는 것
이다. 그 공상은 다음과 같은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진사집과 나란히 있는 집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이 있었다. 하루는

총각이 어머니에게 진사딸에게 장가를 보내 달라고 하니 어머니가 그런 소리 하

지도 말라며 꾸짖었다총각은 돈이 있어야 장가를 간다는 생각에  짚을 구해다
가 굵다란 새끼를 서  발을 꼬았다. 밤중에 그 새끼를 쳐놓았더니  새가 한 마리
걸렸는데, '홀련만년 풍덕새'였다. 총각은  꽁지 깃털을 하나 뽐고서 새를 놓아주

었다.
 
어느날 총각은 진사  딸이 담모충이에 오줌을 눈  자리에 새 깃털을 꽂아놓았

. 그랬더니 그 처녀가 걸어가면 밑에서  '흘렁만렁 풍덕궁'하는 소리가 나는 것
이었다. 진사집에서 아무리 용한  의원을 써도 고칠 수가 없었는데, 그때 총각이
나서서 딸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병을  고쳐주기로 하였다. 총각은  가짜 환약을

만들어준 다음 깃털을  뽑아 처녀의 병을 고쳤다. 그러자 진사댁에서는  딸을 내

줄 수 없다고  딴전을 하는 것이었다. 총각은 다시 깃털을  꽂았고 처녀한테서는
다시 '흘렁말렁 풍덕궁'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결국 진사는 딸을 총각과 결혼

시키게 되었고, 총각은  처녀의 병을 고쳐 함께  살았다고 한다. <한국구전설화]
8, 315-317
[이상한 새털로 장가들다](요약
)>
 
참으로 꿈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꿈 속에서만, 공상 속

에서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러한 이야기가 있어 심사를  조금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공상적 대리만족이  어찌 성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욕구불만을 제대로 해소시켜 줄 수 있었겠는가위 이야기는 재미있는 이야기라

기보다는 오히려 슬픈 이야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끝으로 경제적 곤핍한 하층민의 처지  또한 성의 문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

. 구전 육담은  가난과 관련하여 생겨나는 갖가지의 웃지 못할  희극을 보여주
고 있거니와, 그 가장 흔한 예로 단칸방  생활에서 빚어지는 부부와 자식간의 민
망한 사달을 들 수가 있다이런 류의 이야기는 아주 많은데,(29:문헌육담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몇 편  있지만, 수적으로 구전육담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전 육담은 그 상황에서의 다양한  사단을 재미있고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중 두 편만을 들어 본다
.
 
한 머슴이 겨우  장가들어 단칸방에서 사는데 자식을 숱하게 낳아  놓았다.

부는 서로 정답게 잘  기회를 못 찾던 중, 어느 여름날  마당가 대추나무 밑에서
일을 벌이기로  하였다. 아이들 잠든 틈을  보고 남편이 아내에게  '꼬끼오' 하고

신호하니 아내가 '꼬꼬' 하면서 나왔다. 그러자 아이들이 잠에 깨서 '삐요삐요'

면서 엄마 두리르 따라나오는 것이었다. <[한국구전설화] 6, 477 [삐요삐요](
)>
 
한 가난한  집에 있는데 아이까지  많아서 살기가 어려웠다아이보기에 지친

큰자식들이 의논하여 부모가 밤일을 시작하면 불을  켜서 막기로 하였다. 부모가

성냥과 부싯돌을 다  감추자 자식들은 화로에 숯불을  담아 불을 켜대는 것이었

.
 
오래도록 밤일을 하지 못하던 부부는 어느날 화로에 무를 묻어놓고 일을 시작

했다. 자식들은 일어나서 화로를 쑤시며 불을 키려고  했으나 무 때문에 불이 붙
지를 않았다. 그러자 한 녀석이 소리치는 것이었다. "어떤 놈이 무를 묻었어?
묻은 놈이 이번  애기를 보아라." <[한국구전설화] 3,327,  [무 묻은 놈이 애봐

](요약)>
 
단칸방 살림에  자식의 눈을 피하여 일을  벌여야 하는 부부, 그리고  그 일을

방해하는 자식들. 참으로 엉뚱하고 비정상적인 형태로  성이 노출되고 있는 상황

이다. 그 민망하고 속상한 것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팔자 편한 사람이
보기에는 미련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일로 보일지 모르나실제로 이런 일을 겪으

며 살고 있는 고단한 평민의 입장에서는 한숨이  절로 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웃지 못할 희극이다. 삶의 절박성이 거기 배어 있다
.
 
성은 인간 보편의 것이라는 명제는 타당하다. 그러나  모든 성이 다 같은 성이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 절의 논의 결과는 이를 단적으로 부여주고 있다
.
 
조선사회에 있어 윤리 관념을 사회의 지표로서 힘주어 내세운 것은 양반 사대

부들이었다. 그러나 그 가면 뒤에 비인간적이고 차별적인, 왜곡된 성관념이 도사
리고 있음을  우리는 문헌 육담을 통해  단면적으로 볼 수 있었다이에 비하면
일반 민중들이 구전 육담을 통해 가다듬어 온 성의식은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인

간적인 것이었다. 윤리적  고민이 담겨 있고, 인간적 정감이 배어  있다. 여러 가
지 사회적 억압이 성생활을 억누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성에 얽힌 문
제를 한편으로는 유쾌하게 또 한편으로는 절박하게 형상화하면서 그것을 헤쳐나
갈 길을 찾고 있다. 고단한 처지 속에서 힘들여 지켜온 민중의 삶의 방식이다.

  5. 인간의 길 찾기 - 결론을 대신하여 -
 
이 논문에서는 문헌 육담과 구전  육담을 서로 견주어 보는 방식으로 우리 전

통 육담의 성의식을 살펴보았는데그것은 아직 많은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분히 많은 사례를 세밀하게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이 논문의 결론은 아
직 잠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특히  문헌 육담과 구전 육담의  차이를 선명히
드러내고자 한 의도가 때로 문제를 단순화시킨 면이 없지 않으리라고 본다
.
 
그러나 이 논문의 논의 결과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성의식을 이해하는 데 있

어 하나의 유효한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또한  오늘날의 성문제
를 돌아보는 데 있어서도 유효한 면이 있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오늘날 성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더욱 크고 복잡한 문제를 낳고  있는 바,

중에는 근대 이후에 새롭게 발생하거나 확장된 문제들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근래에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대중매체를 통한 '성의
상품화' 같은  것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현재 우리의 성문화는

여러 측면에서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
 
먼저 성을 금기시하고  억압하는 현상은, 과거보다는 다소 나아졌지만, 여전히

우리 성문화의 중요한  특성을 이루고 있다. 성이 무언가 음험한  것으로 치부되

는 가운데  음지에서 왜곡된 성의식이 자라고  비정상적인 성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 성문화의 현주소다
.
 
이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건전한 성윤리의  확립 또한 아직 요원한 것으

로 보인다. 근래 이래로 '애정'의 인간적  가치가 강조되고 애정에 기초하여 남녀
의 성적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고가 보편적 공감을 얻게  되었지만, 그것
이 현실에 있어 명실상부하게 실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애정과 무관한 동물
적 차원의 성관계가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바, 물질적.육체적 쾌락을 중
시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새롭게 그것을 조장하고 있다.
 
성에 얽힌 사회적 불평등은 해소되었는가 하는 데 대해서도 또한 자신있게 말

하기 어렵다. 양반의  여종 겁탈 대신 직장  내 성추행이 빈발하고 있고, 권력과
돈을 가진 집단의  기생파티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많은 남성들이  아직도 여

성을  성적 종속물 내지는 성적 쾌락의 수단으로 보면서 성적 결합의 성취를 위
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과연 바람직한 성문화는 어떠한 것이고 어떻게 거기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
성에 관한 참다운 '인간의 길'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을 찾는 것은 필자

혼자만의 몫이 아닐  것이다. 이 문제를 성찰하는 하나의 작은  계기를 마련하는

데 이 논의의 의미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