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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rk of Genius : 생각의 탄생

지식창고지기 2009. 10. 14. 10:38

Spark of Genius : 생각의 탄생
2009.07.28 l 김지수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허구’와 ‘허위’는 어떻게 다를까요?
‘보기’와 ‘관찰’은 어떤가요?

우리나라 경영자들이 최근 탐독하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쉽지 않지만 그 책의 흡입력은 대단합니다. 이어령 석좌교수는 그 책을 ‘한국을 창조해나갈 21세기 인재들의 손에 쥐어줄 보물지도 같은 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바로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입니다.

로댕은 점토로 형을 뜨기 전에 조각하고 싶은 주제를 여러 번 그렸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눈으로 보는 것을 손이 어느 정도까지 느끼고 있는가를 측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회고록에서 “형을 뜨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인체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인체의 모든 부분에 대한 심원한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인체가 가지고 있는 선들을 통합해서 나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댕의 유명한 조각작품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고유 수용감각적 상상력에 육체적인 형태를 부여한 것입니다. 로댕의 말을 빌자면 모든 시인과 화가, 발명가를 상징하는 ‘한 벌거벗은 남자가 긴장감을 주는 자세로 바위 위에 앉아서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 이 작품인 것입니다. 로댕은 “내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머리, 찌푸린 이마, 벌어진 콧구멍, 다문 입술만이 아니다. 그의 팔과 등과 다리의 모든 근육, 움켜쥔 주먹, 오므린 발가락도 그가 생각 중임을 나타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음악을 듣고 그림을 봅니다. 하지만 창조적 천재들은 그림을 ‘듣고’ 음악을 ‘봅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피아노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머릿속으로 음악을 ‘그리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청각적 형상화라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패턴인식을 이용해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는 산과 강, 바위를 보며 전투장면이나 기이한 얼굴을 연상하는 등 한 가지 형상에서 무한히 다양한 대상을 그려냈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눈으로 관찰하고, 머릿속으로 형상을 그리며, 모형을 만들고, 유추하여 통합적 통찰을 얻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리처드 파이먼, 버지니아 울프, 제인 구달, 스트라빈스키, 마사 그레이엄 등 역사 속에서 뛰어난 창조성을 발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13가지 생각의 도구들을 생각의 단계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도구들’은 이들이 발휘한 창조성의 핵심으로,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그리고 통합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처음에는 관찰을 통해 습득됩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를 맡는 것, 몸으로 느끼는 것들이 그런 것들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사람들은 ‘보기’가 아닌 ‘관찰’을 체화한 사람들입니다.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도 보는 그런 것들입니다. 이렇게 습득된 느낌과 감각을 다시 불러내거나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을 ‘형상화’라고 합니다. 실제로 보지 못한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세상에 없는 노래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것들의 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각적 형상은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창조적인 사람들은 필수적인 생각도구로서 ‘추상화’를 활용합니다.이것은 복잡한 사물들을 단순한 몇 가지 원칙들로 줄여나가는 것이며,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잘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단순화는 패턴화와 짝을 이룹니다. ‘패턴’을 안다는 것은 창조의 첫걸음으로, 단순한 요소들을 예상 외의 방법으로 조합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패턴은 스스로 패턴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또한 패턴 속의 패턴을 인식한다는 것은 ‘유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어와 상징 이전의 고유한 의미를 알아내는 ‘몸으로 생각하기’, 자기 자신을 잊고 생각의 대상과 하나가 되는 ‘감정이입’, 지구에서 우주로, 평면에서 3차원으로, 시간을 뛰어넘어 다른 세계로 상상력을 옮기는 ‘차원적 사고’, 자동차 엔지니어들이 소형 모형 작업을 하는 것이나 로뎅이 스케치하는 것과 같은 ‘모형 만들기’가 또 다른 생각도구들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는 이유로 기존의 한계에 도전하는 ‘놀이’, 하나의 생각도구와 다른 생각도구 사이나 공식적인 언어전달의 과정에서의 변형이 또 다른 생각도구입니다. 우리 생활에서 몸으로 느껴진 불편함이 언어를 통해 표현될 때 생기는 단계가 ‘변형’인 것입니다. 마지막 열세번째 생각도구는 ‘통합’입니다. 어떤 소리는 색채를 유발하기도 하고, 어떤 맛은 촉각이나 기억을 불러내기도 합니다. 기억, 지식, 상상, 느낌 이런 것들이 따로따로가 아닌 전체로, 그리고 몸을 통해서 이해되는 것입니다. 열세번째 ‘통합’은 생각도구를 학습하는 최종적인 목표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생각도구들을 학습하면 과연 우리가 ‘창조적’이 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이런 생각도구들을 학습하고 체화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방기구들(생각도구들)을 능숙하게 다룬다고 해서 창조적인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요리사도 주방기구 다루는 법을 연습하지 않는다면 창조적 요리에는 접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도구를 바로 알고 이를 연습하는 것은 창조성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문’을 생각해 봅시다.
문이 단순하게 경첩에 매달려 있는 나무판은 아닙니다. 문은 회전력과 토크 크기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본보기이고, 또한 목재에 손재주를 더했으며 실용적 목적을 결합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문으로 인해 안과 밖이, 사무실과 휴게실이 구분되기도 하며, 문 자체가 예술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문을 생각한다는 것은 또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지각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놀라운 이야기를 생각의 탄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