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일본)

무로마치室町 > 시마즈 家 - 시마즈

지식창고지기 2009. 10. 20. 12:41

시마즈

島津氏


일본의 유력한 무사가문.

12~19세기 규슈[九州] 남단을 지배했다.

일본의 변경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봉건가문으로서는 유일하게 중세와 근대를 통틀어

일본사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 : 1603~1867]에 이 가문의 영지였던 사쓰마 한[薩摩藩]은

일본에서 3번째로 큰 봉건영지였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에서 시마즈 가문의 무사들은 조슈 한[長州藩]의 모리 씨[毛利氏]에

충성하는 무사들과 함께 1867년 도쿠가와 정권을 전복하고 천황정부를 수립했다.

사쓰마 한 출신의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 정부를 지배했으며

그뒤에도 계속 일본 해군을 장악했다.


시마즈 가문은 12세기말 규슈 남부지역의 통치자로 임명된 뒤 시마즈라는 성(姓)을 쓰기

시작한 시마즈 다다히사[島津忠久 : 1179~1227]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조선 및 류큐[琉球]와의 교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다.

16세기 무렵에는 일본 남서부의 주요세력이 되었고 규슈 대부분의 지역을 지배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 1537~98]가 일본을 통일해가고 있던 1587년

마침내 시마즈 가문도 히데요시에게 패하고 말았다.

히데요시는 이 가문으로 하여금 그들의 영지인 남부지방을 계속 지배하도록 했으며,

그뒤 시마즈 가문은 히데요시의 강력한 지지세력이 되었다.

1600년 시마즈 가문은 일본 서부의 대영주들과 협력하여 히데요시의 계승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 1543~1616]의 집권을 막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전투가 끝난 뒤에 이에야스와 강화(講和)했으며 자신들의 영지를 계속 보유해도 좋다는

보장을 받았다.


1609년 시마즈 가문은 류큐 제도를 정복하여 사쓰마 한에 조공을 바치도록 강요했다.

류큐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중국과 조공무역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사쓰마 한에서는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중국 사치품을 접할 수 있었다.

도쿠가와 바쿠후는 이후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점차 쇄국정책을 강화했지만 시마즈

가문은 류큐와 무역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한편 도쿠가와 가문에 대해서는 계속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적대감을 키워나갔다.

1867년 사쓰마는 도쿠가와 바쿠후를 무너뜨리는 운동을 이끌었으며 그뒤 메이지

신정부하에서 가고시마 현[鹿兒島縣]으로 개편되었다.

시마즈 가문의 상속자에게는 세습적으로 공작작위가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