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일본)

센고쿠 시대

지식창고지기 2009. 10. 20. 12:56

센고쿠 시대


과도적 상태에서 쇼군가(家) 내부 문제로 분쟁이 일자 전국이 내란상태에 빠져들었다.

오닌[應仁]의 난으로 불리는 수도 교토에서의 어지러운 상쟁은 11년이나 끌었다.

고도(古都)가 잿더미로 화했고 쟁란은 지방으로 확대되어 정치적 통일력이 사라졌다.

바쿠후를 비롯한 일체의 기존 권위가 떨어지고 도처에서 하극상(下剋上)이 일어나 힘이 곧 정의(正義)가 되었다.


15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약 1세기를 지속하는 이 센고쿠 시대[戰國時代]는 신구 세력이 각지에서 다투어 세력을 넓혀 이른바 센고쿠 다이묘[戰國代名]가 대두했다.

저마다 분국법(分國法)·가법(家法)을 제정하고 서양에서 막 전래된 철포를 도입하는 등 부국강병에 힘썼다.

가신단을 성채에 집주시키고 이들을 수발할 상공업자들이 모이게 되어, 교토·나라[奈良]· 가마쿠라 등 재래의 정치·종교적인 도시와는 달리 무사와 상공업자가 득실거리는 새로운 형태의 군사·상업 도시인 조카마치[城下町]가 발달해 각 영국(領國)의 중심을 이루었다.


혼란중에도 농촌에서는 이모작과 목화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상공업자들은 일종의 동업조합인 자[座]를 조직해 생산과 판매의 독점을 꾀했다.


명(明)과의 무역은 15세기초부터의 중국에서 허가받은 감합(勘合)무역의 형태였으며, 자본은 주로 서부지역 상인들의 자금과, 바쿠후·다이묘·사사(寺社) 소유의 선박이었다.

도검·동·유황을 주고 동전·비단제품을 받아오는 일종의 조공무역의 형태였다.

그러나 제한된 공식무역마저 1550년 이후 끊기게 되자 왜구(倭寇)가 발호하게 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도 대륙으로부터의 문화적 유입은 끊이지 않았다.

신유학은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 들어왔고, 임제종(臨濟宗)·조동종(曹洞宗) 등 선(禪)불교가  들어와 난세에 지친 무사들을 사로잡았다.

뿐만 아니라 재래 일본 불교도 혼란한 시류를 타고 누구나 '나무아미타불'만 외면 극락정토 왕생이 가능하다는 정토종(淨土宗) 등을 만들어내어 무사들과 의욕을 잃은 서민들을 달래었다. 

몽골 침략 때 활약하던 니치렌[日蓮]은 새로운 법화종(法華宗)인 니치렌종[日蓮宗]을 열었다. 

또한 난세 속의 내면적 성찰과 사색의 요구를 채우 듯, 추상적인 안뜰과 차를 마시며 수면을 건너 바라볼 수 있는 전각 건축이 유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