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사/잡다한 것

세기의 엽기 재판 ( 5 편 - 첫번째 히어링 )|

지식창고지기 2009. 12. 7. 10:22

▲ 사우디 아라비아 국기

 

 

  세기의  엽기 재판   5 편  - 첫 번째  히어링 (사실심리 )

 

 

1978년 5월의 첫 번째 사실 심리( Hearing ) 는  어영 부영 얼떨결에 끝났으나  피고에게는
값 비싼 현장실습의 효과가 있었다.

 

이슬람 세계에도 법과 법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재판이라는 법의 집행 절차가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판사는 세 사람이고, 원고석과 피고석이  약간의
간격만을 두었을 뿐 나란이 앉도록  준비 되어 있는 것도 특이하다.   다만, 다른 나라의
재판 절차와 다른 점은 양측 변호사의 직접적인 논고나, 변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원고나 피고의 대리인이 법적 대리인 자격으로 심판부와 직접 대화 방식으로  재판이
진행되는 것이다. 물론 증인 채택, 증인 심문, 반대심문 등의 절차 없이 판사가 집적 피고와
원고를 상대로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하긴,  배심원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점은 이해가
간다.   다만  모르는 것은  법정 안에서 오고가는 사우디 언어의 대화 내용뿐인 것이다.

 

원고석에는  고소인  왕자 대신 법정  대리인 살라후딘 변호사가 앉아 있고,   피고석에는
H 건설사 대표이사 대리인 정 부장이 통역과 함께 나란이 앉아 있다. 그리고, 정 부장  뒷
자석에  압둘 변호사, M 변호사,  최상무가 자리를 같이 했다.

 

" 피고인!, 성명과 주소를 말 하시오, "
" H 건설회사 대표이사의 법정 대리인 정 OO 입니다. 주소는  대한민국, 서울시 ...... 입니다."

 

관계자 모두가 착석을 하자, 단위의 판사가  책상위에 쌓인 서류를 뒤적이며 피고인의 신분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 이어  원고의 변론이 시작되었다.

 

일단 원고가 판사에게 상황 설명을 하면, 판사는 피고인 정부장에게 사우디 언어로
질문을 한다. 정 부장은 즉시 옆에 있는 통역의 입을 주시한다. 무슨 말이 나올까?
통역을 기다리는 것이다. 통역이 끝나면 정 부장은 다시 뒤에 앉아 있는 M 변호사에게
우리 말로 설명을 한다.  M 변호사는 영어가 않 되기 때문이다.  M 변호사는 옆에 있는
최 상무와 상의하여  답변을 준비 한다. 정 부장은  압둘 변호사에게 동의를  구한다.
그리고 다시 통역에게 이 내용을 알려 준다. 통역은 다시 판사에게 사우디 언어로  판사의
질문에 응답 하는 것이다. 길지 않은 대화 내용이   뺑뺑이식으로  오르 내린다.

 

이 일련의 절차가  몇 번 되풀이 되자  이제는 기계적으로 고개들만  순번 찾아  돌아간다.
대화 소리만 제거하면  판사, 원고, 피고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고개 돌리기 게임을 하는것
같다. 다시 대화 소리를 살리면 이번에는  말꼬리 잡기 게임이 되는 것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재판 열기에 몰입되어 어느 누구도 이 우수꽝 스런 광경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판사나 원고측에서 피고의 답변이 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었다.
점차 시간이 걸리자, 원고측에서 짜증을 내기 시작 했다. 피고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판사에게 계속해서 변론을 펴 나갔다. 통역 할 시간도 없고 상의 할 겨를도 없다. 
피고 측에서는 멍 한 자세로 그들의 대화를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대화는 깊은
통 속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 처럼 들렸다.  그들은 어느 별나라 사람들인가?

 

매우 긴 시간이 흘렀다고 느낄 때 쯤,  판사 세사람이  앞에 놓인 재판 문건들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 선다. 통역이 일러 준다. 오늘 재판이 끝났고,  두번째 히어링이 다음 달에
있을 예정이라고.

 

그날  폐정이 된 후 최상무, M 변호사, 정부장은  압둘 변호사 사무실에서 대책 회의를
가졌다.  서로 얼굴만 처다 볼 뿐 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압둘 변호사가 오랜 침묵을 깬다.
이방인들이 생소한 분위기에 절망감을 느끼지는 않았나하는 우려의 목소리다.

 

"  우선 서두르지 않는 것이 중요 합니다.  오늘 법정 분위기도 경험 했고, 상대방의 태도도
   보았으니, 차분하게 대응 하여야 할 것입니다. "

 

최 상무가 말을 받는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목소리다.

 

' 오늘 분위기를 보니, 말도 않 통하고, 변론 시간도 짧아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생각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대처 해야 하겠습니까?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가? "

 

압둘 변호사는 원고측이 제출한 준비서면의 사본을 가리키며,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간다.

 

" 오늘의 재판내용을 정리 해 봅시다. 우선  원고측 변론에 따르면,  본인들 협조로 H 건설사가
  11건의 공사를 수주 하였기 때문에 그 이득의 일부분은 당연히 본인들에게 배당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읍니다.
  협력해서 이득을 얻었을 때,  공정하게 배분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라신의 가르침이고 그런
  사례가 하디스에 여러차례 기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제출한 준비서면에도 
  같은  내용이 서술되어 있읍니다."

 

" 알라 신 입니까? "
최 상무가 짧게 말을 끊는다.

 

" 예, 무슬림에게는 알라의 계시인 코란과, 에언자 마하무드의 언행이 담긴 하디스가 생활의
  기본이 됩니다. 재판에서도 코란과 하디스를 따르는 것이 철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코란과
  하디스를 외면하는 재판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코란과 하디스에 담긴 내용이 그대로
  수세기동안  원용되어 온  정당한  판례가 되는  것입니다. "

 

일행의 반응을 잠시 살핀 후,  압둘 변호사는  설명을 이어간다.

 

" 이미 설명 드렸다시피, 우리는 우리가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두가지 사항을 거론하여 
  이의를 제기  했습니다. 첫째는 원고측 내용이 전적으로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입니다. 
  둘째는 계약서의 아비트레이션 ( Arbitration  -분쟁 조정 ) 조항에 의하면, 분쟁 조정은
  국제 상공 회의소에서 ( 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 ICC )하도록  규정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원고측은  분쟁 조정을  사우디 법정이 아닌  국제 상공 회의소에  제소
  했어야  한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준비서면을 작성 할 당시 이미 충분히 논의 된 사항이다. 첫째 사항은 구체적인 내용없이
막연히 원고측의 내용을 부인하는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목적은 시간 벌기다.   생소한
재판 절차를 익히기 위하여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애매모호한 표현을 함으로서
히어링 횟수를 한번이라도 더 늘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연 작전만이 최선의 방법
이다.  혹시 아는가?  원고측에 변괴라도 생겨서 재판이 자연 소멸되는 일이라도 생길지?.

 

두번째 사항,  아비트레이션  조항은  목숨을 걸고 마자막까지  붙들고  늘어져야 하는
사안이다.   4절지 3 장으로  이루어 진 대리인 계약서( Agent Agreement )에  명시된
수 많은  계약  조항 중  유일하게 목숨을 걸고  매달릴 수 있는 조항이다.    알라 신의
계시인 것이다.

 

법의 공정한 심판이라면, 계약서에 명시 된 바와 같이 당연히 국제 상공 회의소에서 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 사우디이기 때문에 코란에 명시 된
바와 같이 발생주의 원칙에 따라 사우디 법원에 재판 관할권이 있다고 주장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하여 심판부는 불안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잠시 세 사람의 판사가 머리를
뫃으고 구수회담 하는 장면이 머리에 떠 올랐다.

 .
" 인 샬라 !"

 

압둘 변호사가  단호하게 결론울 내린다.

.

" 다음 번 히어링 때에는 정식으로 재판 관할권 심사 소청서를  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