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계 6억 무슬림들의 성지인 메카를 지나 타이프로 가는 길. ( 해발 1700 m ) |
세기의 엽기 재판 6 편 - 왕가 별장지 방문
6월의 찜통 더위가 서서히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는 사우디인도 외국인도 일상 생활에서 잠시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다.
오후 1 시 부터 4시까지 오수를 즐긴다. 관공서도 이 시간대는 휴무다.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 있는 왕가와 정부의 주요 기관들은 이 더운 한 철을 성지인
메카의 동쪽, 해발 1700 m 고지에 있는 유일한 여름 휴양지인 타이프에 하기(夏期)
정부를 열어 집무를 한다. 이 곳은 인구 30 만명의 소 도시로 년 중 평균 기온이
섭씨 15도에서 25 도 내외로 여름 한철 보내기는 안성 맞춤이다. 년 중 강우량도
있어 채소와 과일 등 농산물 재배와 목축업이 가능한 지역이다.
정 부장은 마하믇이 모는 차 뒷 좌석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을 스치는 야외 풍경에
시선을 맡긴 채 상념에 빠져 있다. 하염없이 뻗어 나가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하기( 夏期) 정부가 열려있는 타이프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제다에서 타이프까지의
거리는 270 km. 3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새로 뽑은 미제 승용차 1977년 형
올스 모빌의 엔진 소리가 부드럽다. 시속 140 km 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어도 차의
진동은 거이 느낄 수 없다.
새로 포장 된 도로위를 달리다 보면 한 순간, 시간과 공간이 정체 된 듯 한 착각을
일으킨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정경은 한없이 펼쳐지는 사막일 뿐, 표적이 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아무리 달려도 사막 한 가운데 정지 되어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1973년의 제1차 석유 파동과 1978 년의 제 2차 석유 파동 이후 대부분의 중동 산유국은
갑자기 불어 난 오일 머니로 자국내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다.
덕분에 사우디의 도로망도 근래에 세계적인 수준의 시설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2 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에 이르는 도로는 백년을 견딜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자재를
사용 하였다고 했다. 차가 흔들리면 도로의 하자가 아니라 차 자체의 하자 때문이라고
한다. 제다에서 타이프에 이르는 도로는 중간에 메카를 경유하게 된다. 꿈의 도로인
것이다.
정 부장은 어제 오후, 최 상무와의 통화 내용을 떠 올리며, 왕자를 면담 할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 예측을 해 본다.
" 최 상무님!, 법정에서 어려운 싸움만 할게 아니라, 제가 왕자를 한번 만나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특별한 결과는 기대 할 수 없겠지만, 상대방 정탐도 할겸."
" 적극적으로 해 보겠다는 말이지?. 그래, 그럼, 위에 보고해서 결심을 받을께,
기다려 봐."
다음 날 아침 그릅 전체 회의에서 보고자의 테렉스 낭송 보고가 끝 난 후, 중간 쯤에
앉아 있던 최 상무가 왕 회장을 향하여 목청 높혀 보고한다.
" 회장님!, 제다 지사의 정부장이 왕자를 한번 만나 보겠다고 합니다. 왕자쪽의 의중도
알아 볼겸, 만나 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 됩니다만,"
" 정부장이 그랬단 말이지?, 그래, 만나보고, 보고 하라고 해!."
몇 일 전, 최 상무와 M 변호사가 제다의 일차 히어링에 참석하고 귀국하여 왕 회장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 했을 때, 왕 회장의 반응은 매우 냉소적이었다.
" 그래, 우리가 재판에 지면,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 재판에 지면, . 재판에 지면 , 아무래도 현장에 작업중인 장비들이,. . 위험 할 것
같습니다. '
최 상무의 입에서 차마 차압 당 한다는 직설적인 표현을 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공사
자체를 몰수 당하고 매달 받는 수천만 불에 달하는 기성고 조차 동결 된다는 이야기는
더 더욱 할 수 없는 것이다. 직설적인 표현을 할 경우 그 다음의 강한 펀취를 여러번
경험한 바 있다.
" 멍청이 같은 놈!, 헛 것 만 보고 다니는 놈!, 아무 생각없이 다니는 놈!,"
얼얼하게 터지고는 " 아차!, 답변이 적절치 못 했구나 " 하고 자기 반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
" 계약서에 있는대로, 아이 씨 씨 에서 하자고 해 "
보고내용을 들을 만큼 들었다고 생각한 왕 회장이 씹어 뱉듯 내뱉는다. 왕 회장의
의식에는 사우디 법정도, 사우디 말로 진행 되는 재판 절차도, 사우디 판사도, 왕자도
안중에 없는 것 같다.. 명령만 내리면 쉽게 움직일 수 있는 한낮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순간 부터 왕 회장의 두뇌는 빠르게 회전한다. 수백가지의
가설과 대안을 순식간에 찾아 내는 것이다.
왕 회장의 직감력, 통찰력, 추리력, 추진력, 그리고, 사건을 요약 하는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다. 범인이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재능이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쓰는
근면과 사치를 모르는 절약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또 하나의 유산이다.
임원들은 곧 잘 왕 회장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뜻을 이해 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왕 회장이
" 계약서에 있는대로 아이 씨 씨에서 하자고 해! " 한 것이 H 건설사가 이 재판에서
최후까지 고수 해야하는 방향 설정이고, 최종 목표 인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
최 상무가 보고하기도 전에 왕 회장은 이미 현지의 압둘 변호사가 이틀 전에 내린 결론과
똑같은 결론을 멀리 떨어저 있는 서울에서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중식 후 10 분 단잠에 빠진 정부장에게 최상무의 전화가 걸려 온 것은 오후 2 시 경.
" 정부장!, 당신 프로포즈가 통과 됐어, 가서 왕자를 만나보고 자세한 내용을 왕회장에게
직접 보고 드리고, 나 한테도 결과를 알려주게!, 왕회장이 당신을 무척 신임하고 있어!"
( 최상무의 목소리가 밝은 걸 보니, 보고 도중 터지지는 않았군 , 다행이야! )
어제 오후 정 부장이 왕자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을 때, 왕자는 부재 중이라고 했다.
두세차례 시도 후 겨우 왕자와 통화가 이루어졌다. 면담을 요청하자, 왕자의 대답은
퉁명 스러웠다.
" 모든 것을 변호사에게 일임 했으니, 변호사를 접촉 하시오, 나를 만나도 소용 없어요 "
당연히 예견했던 답변이다. 우물 쭈물 하면 않된다. 강하게 나가야 한다.
" 사하 마티쿰!, H건설사 왕회장의 메세지를 전달 하려고 합니다. "
왕자의 숨소리가 잠시 끊기는 것 같다. (사우디 존칭을 쓰는 이 놈은 또 어떤 놈인가?)
왕자의 궁굼증을 자극했음에 틀림없다. 이렇게 해서 왕자와의 면담 약속이 이루어 진
것이다.
차는 이제 성지인 메카를 옆으로 하고 길게 뻗어나간 외각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메카는 예언자 마하메트의 탄생지로서 전 세계 6 억 이슬람 교도들의 제 일의 성지다.
수 많은 성소가 있으며, 카아바와 아브라함 신전을 포함한 모스크, 잠잠의 성스러운
우물, 성스로운 산 마르프 등이 특히 유명하다. 새로 확장 된 모스크 는 30 만명을
수용 할 수 있는 이슬람 사원이다. 이슬람 교도들은 일생에 한번 누구나 성지인
메카를 방문 하도록 되어 있다. 성지 순례는 (Haji) 이슬람 교도들이 지켜야 할 5 대
의무 중 다섯 번째 사항이다. 순례절기( 이슬람 월력 12 번째 달 )에는 전 세계에서
매년 삼 백 만명의 순례자들이 이곳 메카를 찾아 와 장관을 이룬다.
이 곳은 이슬람 교도가 아니면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정 부장이 언젠가 직접 차를 몰다 길을 잘 못 들어 메카의 관문을 들어선 적이 있었다.
놀란 경비병들이 소총을 들이대는 바람에 혼비백산, 줄행랑을 친 적이 있다. 그 후로는
길 잘못 드는 일은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메카 근처에 오면 긴장되고 경외심마저 느낀다.
메카를 지나자 길은 경사 진 구릉을 향하여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 정 부장은 이 근처에
이르면 장엄한 경관에 경외로움을 느낀다. ( 이 곳도 알라 신의 작품인가? )
사막지대에 이런 비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 지지 않는다.
홍해를 끼고 있는 사우디의 서부 해안 지역, 중앙 고원은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어 내린
해안 평야를 끼고 가파르게 솟아 올라 장엄한 급 경사면을 이룬다. 북부 헤자즈 지역은
해발 1,500 m 에 이르고 제다에서 남 쪽으로 800 km 떨어진 아씨르, 지잔에 이르면 해발
3,300 m 까지 올라간다. 고원은 북동쪽으로 내리막을 이루는데 용암과 자갈로 된 황무지는
아치형을 이루며 남쪽에는 한 반도의 3 배나 되는 큰 사막이 있다. 곳곳에는 활 모양의
가파른 산등성( Cuesta ) 이 장관을 이룬다.
산 등성이에 이르렀을 때, 정 부장은 잠시 차를 멈추고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천연의 방벽을
내려다 본다. 눈 앞에 전개 된 장관에 정 부장은 잠시 숨을 고른다.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눈 앞에 그랜드 캐니언의 절경이 그대로 전개 된다.멀리까지 이어지는 산 등성이는 끝자락이
하늘과 하나가 된다. 바로 보이는 산 등성이는 칼로 베어 낸 듯한 자국이 자연의 오랜 풍화
작용에 시달렸음을 말 해 준다. 발 밑으로 까맣게 내려다 보이는 협곡에는 듬성듬성 나무
그림자가 보이고 방금 지나 온 아스팔트 길이 꼬불꼬불 실타래가 되어 멀리까지 뻗어있다.
지형의 높고 낮음과 수 많은 굴곡이 한눈에 들어와 하늘과 땅을 한눈에 보는 것 같다.
사막지대에 이렇한 절경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절경이냐? "
정 부장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탄성을 내 지른다
" 인 샬라 ! "
옆에서 마하믇이 조용히 응답한다.
" 그래, 인샬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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