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일본에서 외국으로의 유학이 시작된 것은 1862년 막부가 네덜란드에 유학생을 보낸 것부터 조슈, 사쓰마 번 등도 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최초로 네덜란드 유학을 간 막부측 인사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로 1862년부터 1867년까지 유학을 했으며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을 직접 관전하기도 했습니다. 국제법, 군사지식, 조선이나 선박에 대한 지식을 배웠으며 귀국 후 막부군의 해군 부총재에 임명되었습니다. 유신 이후에는 유신 정부에서 일했으며 해군 중장, 자작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조슈 출신으로 유학을 했던 인사로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이노우에 몬타(井上聞多), 엔도 킨스케(遠藤謹助), 山尾庸三(야마오 요우죠), 野村弥吉(노무라 야키치)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1863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1864년에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유학길에서 영국의 압도적인 국력을 직접 목격하고 양이론자에서 개국론자로 변신했고 시모노세키 전쟁 이후(4개국 연합 함대와 조슈와의 전쟁)의 전후 평화 교섭 때는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유신 이후 초대 수상이 되었으며 초대 조선통감부 통감이 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격을 받아 죽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유학을 갔던 이노우에 몬타는 후에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로 개명했으며 태정관제 시대에 외무경, 참의를 지냈고 이후 농상무대신, 내무대신 등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사쓰마 번 출신인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는 유신 이후인 1871년부터 1878년까지 해군 사관으로서 영국에 관비 유학을 다녀왔으며 이후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1905)에서 공을 세운 일본의 제독입니다.
가츠라 타로(桂太郎)는 조슈번 출신으로 메이지 유신 후 독일로 유학을 간 인물입니다. 귀국 후에는 육군차관, 제삼사단장, 대만총독 등을 지냈습니다. 이후 내각에서 육군대신을 지냈으며 1901년에 수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여기에 이와쿠라 사절단(岩倉使節団)이라고 해서 유신 이후인 1871년부터 1873년까지 미국, 유럽 등을 순방한 일이 있었는데 사쓰마와 조슈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총 107명의 인원이었습니다.
이중에 사절이 43명, 수행원이 18명, 유학생이 43명이었습니다.
사절단에 참여한 주요 인물로는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를 비롯하여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이 있습니다.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는 원래 공경 출신으로 메이지 유신의 주축이 된 인물 중 한명입니다. 유신 이후 실질적인 정부 수반이었습니다.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는 사쓰마 출신으로 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와 함께 유신삼걸로 불리우는 인물입니다. 정한론으로 사이고 다카모리 등이 실각한 이후 실질적인 정부의 수반이 되었습니다. 1878년 암살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는 조슈 출신으로 유신삼걸 중 한사람입니다. 유신 이후 기도 다카요시가 초대 재상, 사이고 다카모리가 이대재상, 오오쿠보 도시미치가 삼대재상이었는데 사이고와 오오쿠보 간의 권력 다툼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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