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일본)

일본문학 - BRITANNICA

지식창고지기 2010. 2. 10. 17:26

BRITANNICA에서 일본문학을 살펴보면,

 

일본문학

日本文學

Japanese literature

상대(上代)에서 현대까지 약 1,400년 동안 일본인이 일본어로 쓴 문학의 총칭.

일본문학은 원시사회의 제사나 종교적인 행사와 결부되어 발생했다. 고대 일본민족에게는 문자가 없었으므로 문학은 구송적(口誦的)인 형태로 발생·성장해왔으며 6세기말에서 7세기초에 대륙으로부터 한자가 들어오고 표기방법이 발전하면서 기재문학의 시대가 열려 현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 색인 : 중국어). 따라서 문학의 전개양상을 서술하는데 적절하게 시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종래 일본문학의 시대구분은 문학형성의 지역적 기반과 배경이 되고 있는 정치·문화의 중심지에 따른 구분, 계급에 의한 구분, 순수한 시대별 구분 등 여러 가지 구분법이 시도되어왔다. 이 구분법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나, 여기서는 상대·중고·중세·근세·근대(현대 포함)의 5기로 구분하여 서술하기로 한다.

 

상대(야마토 시대)

794년 헤이안쿄[平安京 : 지금의 교토 시[京都市]로 천도하기까지 대체로 야마토[大和 : 지금의 나라 현(奈良縣)]가 일본의 정치·문화의 중심이었으므로 이 시대를 야마토 시대라고 부른다.

7세기 초엽 중국문화와 더불어 들어온 한자의 음훈(音訓)을 원용한 표기방법이 고안·발전됨에 따라 구송되어오던 문학을 문자로 기록할 수 있게 됨으로써 기재문학이 일본에 출현하게 되었다. 8세기 이후에 성립된 문헌 〈고지키 古事記〉·〈니혼쇼키 日本書紀〉·〈후도키 風土記〉 등에 남아 있는 구송문학의 흔적에서 일본문학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국가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기재문학이 싹트게 되었다. 일본 최고의 문헌인 〈고지키〉·〈니혼쇼키〉는 국가통일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황실 중심으로 기록·편찬된 것으로, 여기에 기재된 많은 신화· 전설· 가요는 원시사회의 유산이 아니라 율령국가(律令國家)의 정치적 의지에 의해 인위적으로 체계화된 것이다. 〈고지키〉는 712년 겐메이 천황[元明天皇]의 명을 받아 오노 야스마로[太安萬侶]가 찬록(撰錄)한 것인데 일본의 국문체를 살린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상·중·하 3권 중 상·중 2권은 거의가 신화·전설이고 하권 끝에 역사적인 기술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상권은 신대(神代)를 다룬 것으로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 조화삼신(造化三神)이 출현하는 데서 시작하여 남신 이자나기[伊邪那岐]와 여신 이자나미[伊邪那美]에 의한 국토창조가 서술되어 있고, 이어 오쿠니누시노미코토[大國主命]에 의한 이즈모 구니[出雲國]의 헌납, 천손(天孫)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가 휴가[日向] 지방 다카치호 봉[高千穗峰]에 강림하여 국토를 경영하는 데서 끝맺고 있다 (→ 색인 : 창조신화). 중권에는 역대 조정과 부족의 계보, 진무 천황[神武天皇]의 동방정벌, 일본 국토 건설의 영웅인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倭建命]의 원정, 그리고 이와 관련된 수많은 전투와 연애를 소재로 한 가요가 수록되어 있다 (→ 색인 : 족보학). 하권에는 닌토쿠 천황[仁德天皇]에서 스이코 천황[推古天皇]에 이르기까지의 전설과 닌토쿠 천황을 중심으로 한 많은 가요가 실려 있다.

720년에는 덴무 천황[天武天皇]의 셋째 왕자 도네리 친왕[舍人親王]이 칙명을 받아 〈니혼쇼키〉 30권을 편찬했다. 신대로부터 지토 천황[持統天皇]까지를 편년체(編年體)로 엮은 것으로, 〈고지키〉가 국내적·전통적 입장에 선 것임에 반해 〈니혼쇼키〉는 대외적 의식이 강하며 중국 역사서를 본떠 정연하게 구성되어 있다. 〈고지키〉·〈니혼쇼키〉에 실려 있는 약 200수의 가요는 고대인의 생활을 담은 민요적 성격의 소박한 가요이다. 713년에 내려진 칙명을 받아 지방의 여러 구니[國]에서 찬진(撰進)한 〈후도키〉는 나라 시대[奈良時代]의 것으로 보이는 〈이즈모후도키 出雲風土記〉를 비롯하여 하리마[播磨]·히타치[常陸]·히젠[肥前]·분고[豊後]의 5개 〈후도키〉 외에 여러 구니의 〈후도키〉 일문(逸文)이 전해지고 있다. 〈후도키〉에도 신화·전설·설화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고지키〉·〈니혼쇼키〉에 비해 민중의 생활을 많이 전하고 있다. 일본의 신화는 구성요소가 복잡하면서도 통일성이 있다. 그것은 국가와 왕실을 향한 구심적(求心的)인 정신이 작용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따라서 산문적·비예술적이다. 고대인의 생활에서 신앙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신에게 드리는 기도가 점차 의식화됨에 따라 노리토[祝詞]·센묘[宣明]가 출현했다. 노리토는 종교의식에서 신에게 드리는 기도문이며 센묘는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 왕이 신과 문무백관 및 국민에게 고하기 위해 발포하는 칙서(勅書)이다. 노리토의 문장은 반복·대구·열거 등의 수사법을 구사하여 장중하다. 센묘는 용언의 어미나 조사·조동사 등을 일자일음(一字一音)의 만요가나[萬葉假名 : 한자의 음만을 따서 표기한 것]로 작게 표기하는 표기법을 썼는데 이를 센묘가키[宣命書き]라고 한다.

〈만요슈 萬葉集〉의 성립

귀족과 지식인 사이에 개인의식이 싹트고 문학적 자각이 뚜렷해지는 한편, 한자가 보급되면서 일자일음식의 만요가나가 발달하여 개인의 심정을 단카[短歌 : 음수율 5·7·5·7·7의 정형시] 또는 조카[長歌 : 음수율 5·7·5·7……5·7·7]에 담은 와카[和歌 : 한시에 대해 일본 고유의 시로서 주로 단카를 말함]가 융성하게 되었다. 마침내 〈만요슈〉 와카의 특색인 웅대하고 힘찬 가풍의 이른바 만요초[萬葉調]가 형성되었고 6, 7세기경에는 5·7조 정형(定型)이 확립되었다. 이 시대의 와카를 집성한 것이 일본 최고의 가집 〈만요슈〉(759년 이후 성립)인데 전20권으로 4,500여 수가 실려 있다. 작자층은 천황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며 지역도 전국에 걸쳐 있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작가(作歌)연대는 약 130여 년 간으로 629~759년, 즉 7, 8세기의 노래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여러 사람의 손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보이나 오토모 야카모치[大伴家持]가 최종적으로 집대성한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록된 와카는 소몬카[相聞歌 : 이성을 연모하는 노래]· 반카[輓歌 : 죽은이를 애도하는 노래]·조카[雜歌 : 주로 궁정의 공식행사와 관계가 있는 노래] 등으로 분류·편찬되어 있다. 〈만요슈〉는 시풍에 의해 4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아직 상대 가요의 소박함이 남아 있는 시대로, 대표 시인으로는 여류시인 누카타노 오키미[額田王]를 들 수 있으며, 특히 왕실 시인이 많다. 제2기는 덴무[天武]·지토[持統]·몬무[文武] 3대 왕에 걸친 시기로서 개인의 의식이 두드러지고 표현기술도 진보하여 만요 시풍이 확립한 시기이다. 대표 시인인 가키노모토 히토마로[杮本人麻呂]는 특히 조카에 뛰어났으며 일본 와카 사상 최대의 시성(詩聖)으로 인정되는 시인이다. 제3기는 나라 시대 전기로 만요 최성기이다. 주정적인 노래에서 객관적인 노래로 옮겨가는 시기로, 개성적인 시인이 배출되었다. 대표 시인으로서는 단카와 서경가(敍景歌)에 뛰어난 야마베 아카히토[山部赤人], 야마노우에 오쿠라[山上憶良], 오토모 다비토[大伴旅人] 등이 있다. 제4기는 나라 시대 후기로, 시풍은 이지적·기교적이어서 다음 헤이안 시대로 이행하는 징조가 보인다. 오토모 야카모치가 대표적인 시인이다. 각 시대에 따라 시풍의 변천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오는 소박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남성적인 시풍이라 할 수 있다.

 

한시문(漢詩文)

율령문화가 전개됨에 따라 궁정귀족 사이에서 한시문이 활발히 씌어졌다. 〈가이후소 懷風藻〉(751)는 나라 시대까지 약 100년 동안 제작된 작품 120편을 수록한 한시집으로, 대부분이 육조시(六朝詩)의 영향을 받은 5언시(五言詩)여서 독창성이 부족하다. 772년에는 중국의 시론을 일본 단카에 적용하여 와카의 이론화를 꾀한 후지와라 하마나리[藤原浜成]의 〈가쿄효시키 歌經標式〉가 성립되었다.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