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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산은 산인가 - 2. 산은 산이다 - 2) 불교의 자성

지식창고지기 2010. 1. 17. 20:12

4. 산은 산인가

    2. 산은 산이다 - 1) 하이데거의 존재자성

     

      ‘산은 산이다’ 또는 ‘산은 산으로서 있다’는 것을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산은 자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자성(自性)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불교 교학 체계의 핵심인 연기이론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인도 고전어인 산스크리트로 pratl·yasamutpa·a인 것을, 조건이라는 뜻의 연(緣)과 발생이라는 뜻의 기(起)로 의역해 놓은 것이 연기(緣起)이다. 연기란 세상의 모든 것들은 수많은 조건(pratl·ya, 緣)들이 함께(sam) 결합하여 일어난다(utpa·a, 起)는 ‘상호의존적인 발생’을 의미한다.

    일체의 현상이 이런 ‘상호의존성(pratl·yasamutpannatva, 緣生性)’의 원리에 따라 성립한다고 할 경우, 무수히 많은 조건들이 서로에게 개입하여 끊임없이 변화해 갈 것이기 때문에 영원 불변하게 남아 있는 것은 있을 수 없고(無常, anitya), 혼자만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자아 같은 것도 있을 수 없게(無我, ana·man) 된다. 즉 연기이기에 무상이고 무아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자기만의 동일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여기는 자아(我, a·man)라는 것도 사실은 물질(色, ru·a)과 감수(受, vedana·와 표상(想, sam.jn··과 의지(行, sam.ska·a)와 식별(識, vijn··a)이라는 다섯 가지의 요소들이 인연 따라 일시적으로 결합된 잠정적 가합태(五蘊假合)에 불과할 뿐, 나라고 하는 고정된 실체가 따로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처럼 모든 것이 여러 조건들과 요소들이 화합하여 연기한 것이고, 그래서 무상이고 무아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요소들 자체는 독자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의문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된 것이 부파(部派)불교의 일파인 설일체유부(說一切唱· Sarvastivada)의 자성 개념이다. 설일체유부의 논사들은 일체 존재의 궁극적 요소들로 75종의 다르마(dharma, 法)를 상정한 후, 이것들은 현상의 활동 면에서는 생성 소멸하지만, 그 궁극의 본체 면에서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나 계속해서 존재한다고 여겼다.

    그들에게 있어서 세계는 마치 한편의 영화와도 같은 것이었다. 즉 설일체유부에게서 자아란, 요소들의 집합체인 명목상의 존재로서 실체적 자아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순간적인 빛을 말하는 각 요소(다르마)들만은 마치 영화 필름의 각 컷트들처럼 실재한다는 것이다.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필름의 컷트 컷트는 다르마로서 실재하는 것이지만, 스크린에 비친 일체의 활동이나 나의 모습(자아)은 이 본체적 필름에 의해 드러난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요소들의 복합체는 가합태로서 비실재이나, 요소들 자체는 실재라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75종의 다르마가 실재한다는 것은, 자아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며, 무아는 곧 다르마의 실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설일체유부가 자아의 실재성을 부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각의 순간적 요소들을 받아들인 결과 야기되는 지속성의 문제를 설명해야될 필요가 있었으므로, 그들은 ‘항상 존재한다(恒有)’고 여겨지는 이면의 기체(基體), 즉 자성(自性)을 믿게끔 되었다. 그리하여 설일체유부에서는 현상적으로는 찰나적 생멸을 하지만, 본체적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걸쳐 항유하는 자성적 75법을 상정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자성(自性, svabha·a)이란 문자 그대로 ‘스스로 있다(sva-bha·a)’는 측면에서는 ‘자기만의 존재 방식을 지니고 있는 것’을 뜻하고, ‘언제나 있다(sarvada·bha·a)’는 측면에서는 ‘삼세의 매 찰나마나 실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는 ‘자기 존재’를 후자는 ‘지속 존재’를 뜻한다는 점에서, 자성은 독립적 개체(제1실체)와 보편적 본질(제2실체)이라는 양의성을 지닌 서양철학의 실체(substantia) 개념과 상당히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 이야기한 자성 개념에 맞추어 ‘산은 산이다’를 살펴보기로 하자. ‘산이 산으로서 있다’는 것은 설일체유부식으로 표현하면, ‘산은 색법으로서 자성적으로 있다’는 말이 된다. 즉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저 산은 매 찰나마다 변화해 가는 무상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특정한 모양과 색깔을 지닌 어떤 물질적인 것이라는 점, 다시 말해 색법(色法, ru·a-dharma)이라는 점에서는 삼세에 걸쳐 실유하는 자성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무상한 변화 과정을 인정하면서도 그 배후에 연속적으로 항유하는 기체적(基體的) 요소를 상정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변화 현상 이면의 불변적 본체를 존재자성이라는 형식으로 찾고자 한 서양의 전통적 형이상학의 발상법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삼세에 걸쳐 항유하는 자성과 영속적으로 현존하는 존재자성은 산을 산으로서 있게 하는 근거와도 같은 것들이고, 여기에 토대를 두고 있기에 ‘산은 산이다’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