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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산은 산인가 - 2. 산은 산이다 - 1) 하이데거의 존재자성

지식창고지기 2010. 1. 17. 20:11

4. 산은 산인가

    2. 산은 산이다 - 1) 하이데거의 존재자성

     

      ‘산은 산이다’라는 것은, 우리의 눈앞에 놓여져 있는 저것이 산이고 그것은 물이나 강이 아닌 바로 그 산이라는 뜻이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이러한 태도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일상적 태도 속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전제되어 있다. 첫째,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인식하는 주관과 그런 인식의 앞에 마주 서 있는 대상 사이의 관계이고, 둘째, 그 대상에는 그것을 바로 그런 것으로 있게끔 하는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것을 바로 그런 것으로 있게끔 하는 어떤 것’이란, ‘어떤 존재자를 그 존재자로서 존재하도록 가능하게 해주는 가장 본질적인 규정’을 말하는데, 하이데거는 이것을 존재자성(Seiendheit)이라고 부른다. 이런 ‘존재자성’은 존재자를 바로 그 자신이게 하는 존재자의 가능 조건이나 보편적인 본질로서, 존재자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상존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변치 않고 존재자를 그 존재자로서 계속 보편적으로 규정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존재자의 존재자성은 ‘영속적인 현존성(die sta촱dige Anwesenheit)’으로 간주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이러한 영속적 현존성으로서의 존재자성은 변화와 소멸에 반하여 동일하게 항존한다는 점에서 가멸적(可滅的)인 사물 존재에 비하여 본래적인 존재이고, 또 이렇게 본래적인 존재가 된다는 점에서 참답고 본래적인 것만을 추구해야 할 사유에서 언제나 모범이 되는 것이며, 더욱이 변치 않고 고정적으로 남아 있어서 마음대로 처리하기에 용이하다는 점에서 인간의 의지에 따라 존재자를 ‘처분할 수 있는(verfu촩bar)’ 장악 가능성의 근거(Grund)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산이 있다’는 것 또는 ‘존재자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엄청난 수수께끼이자 경이로운 사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존재자성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존재자가 존재한다는(da·Seiendes ist)’ 원초적인 사태를 자명한 것으로 여기고서, 그것을 단지 존재자 중심의 시각에서만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근원적이고 역동적인 사건을 사물화하거나 실체화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식으로 영속적으로 현존하는 존재자성을 찾아 떠나온 과정이 바로 서양의 전통적 사유 방식인 형이상학의 역사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철학에서 이데아(idea)는 ‘본래적으로 존재하는(ontos on)’ 어떤 모범적인 원형(paradeigma)을 뜻하는데, 이것은 한 사물 안에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그것을 현재의 그것으로 나타나도록 하는 본질적 형상(eidos) 또는 본모양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존재자성을 영속적 현존성으로 해석하는 효시가 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이 세상의 사물은 본모양으로서의 이데아를 불완전하게 모방한 겉모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영속적 현존성은 기독교의 시대인 중세에 훨씬 강화된다. 비존재일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점에서 신은 최대로 체류하고 최고로 충일하게 현실적인 존재자이며, 항구적인 지속성 그 자체인 것이다. 이에 비해 피조물은 신의 창조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피조물에서 현실성(actualitas)은 곧 인과성(causalitas)을 의미하게 된다.

    이처럼 현실성의 본질이 중세에는 창조주의 인과적 작용력에 있었지만, 신 대신 인간이 모든 존재자의 척도와 중심으로서 유일한 주체(Subjekt)가 되는 근대에는 그것이 인식 주체의 표상적 작용력에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표상 작용(Vorstellen)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소박하게 수용하거나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자기 앞에 몰아 세우는 것(Zustellen)이고, 앞으로 나가 지배하며 마주 세우는 것이며, 그렇게 세워진 것을 포착하여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표상적 대상화를 통해서 주체는 존재자를 자신의 통제하에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Verfugbares)’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길을 터놓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라는 기술 지배의 시대에 이르러 존재자의 대상화는 인간까지 포함한 존재자 전체의 부품화로 극단화된다. 그 결과 영속적으로 현존하는 존재자성의 파악을 통해 존재자를 장악할 수 있었던 인간조차도 얼마든지 효율성에 따라 대체 가능한 존재자로 전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제까지 논의한 존재자성에 맞추어 ‘산은 산이다’를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산은 산이다’, 즉 ‘산은 산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산은 이데아의 불충분한 모상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고, 중세에는 ‘산은 신의 창조 작용에 의한 피조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며, 근대에는 ‘산은 주체의 표상 작용의 대상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고, 현대에는 ‘산은 기술적 지배를 위한 부품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