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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산은 산인가 - 1. 문제의 상황

지식창고지기 2010. 1. 17. 20:10

4. 산은 산인가

    1. 문제의 상황

     

      나는 지금 산을 보고 있다. 그렇다면 산은 산인가· 아니, 산이 산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은 이미 산은 다른 것과 구별되는 바로 그 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와 다름 없이 오늘도 변치 않고 내 앞에 있는 저 산이 왜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렇게 변함없이 내 앞에 마주 서 있는 저 산이란, 다소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자기만의 본질을 지니고 독자적으로 실재하는 산이다.

    그런데 산을 이렇게 생각하고 나며, 그것은 불변의 '본질'을 근거로 하여 나타난'현상'이라는 상당히 형이상학적인 관점에 의해 우리가 사전에 각인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산은 산인가라고 묻는 것은 당연한 것을 괜히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우리의 시각 속에 잠재된 형이상학적 입장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우선 이 문제에 접근하는 통로를 '산은 산이다'라는 선의 화두에서부터 찾아보기로 하자.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산은 산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성철 스님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성철 스님이 처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옛부터 내려오는 선불교의 유명한 화두이다. 역대 조사들의 어록을 기록한 《속전등록(續傳燈錄)》(大正藏 51, 614c)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청원 유신(靑原 惟信) 선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 노승이 30년 전 참선을 하기 이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山是山 水是水)’으로 보였다. 그러던 것이 그 뒤 어진 스님을 만나 깨침의 문턱에 들어서고 보니, 이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더라(山不是山 水不是水).’ 그러나 마침내 진실로 깨치고 보니, ‘산은 역시 산이고, 물은 역시 물이더라(山祗是山 水祗是水)’.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서로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만일 이것을 터득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노승과 같은 경지에 있음을 내 허용하리라.

    이 설법에서는 완벽한 깨달음에 이르는 단계를 세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이것들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산은 산이다’ ‘산은 산이 아니다’ ‘산은 역시 산이다’의 세 가지가 된다. 첫번째 단계는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소박하게 긍정하는 태도를 말하며, 두번째 단계는 그런 긍정적 방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에 비해 세번째 단계는 그러한 부정을 통해 일체의 것이 있는 그대로 다시 긍정되는 대조화의 태도를 뜻한다.

    필자는 앞으로 이렇게 ‘긍정-부정-대긍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하이데거와 불교 사상간의 만남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통념 속에 잠복해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그리하여 인간과 자연에 관한 좀더 바람직한 관점을 찾아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