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시대 반란 반역의 역사
一. 단군조선 삼한관경 외 천자국 우하은주(虞夏殷周)의 반역
1. 우(虞) 천자 순(舜)의 반역
순은 서기전2343년경 출생이며, 20세이던 서기전2323년에 아버지 유호씨를 따라 환부의 직을 수행하면서 요임금을 깨우치러 갔던 단군조선에서 파견된 인물이다.
서기전2314년 30세에 요임금에게 등용되어, 서기전2294년에 섭정이 되었고, 서기전2288년에 요순9년대홍수가 발발하여 곤을 치수담당으로 봉하였으나 치수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서기전2284년에 순은 요임금을 유폐시키고 위협하여 선양받아 천자자리를 찬탈하였고 유주, 영주, 병주를 함부로 설치하였다. 서기전2280년에 치수담당 곤을 처형하고 곤의 아들 우를 사공에 봉하고 치수를 맡겼다.
우가 22년간 치수를 하였으나 마무리를 못하자 순임금에게 간하여 단군왕검께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니, 이에 순임금도 백성을 위하여 상국 단군조선에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천자임을 인정받게 되었다.
서기전2267년 단군왕검의 명을 받들어 태자부루가 도산회의를 주관하고 사공 우에게 치수법을 전수하였다. 유주와 영주는 폐지하여 단군조선 삼한의 영역에 편입시키고 병주는 그냥 두었다. 이후 중국 천자 순임금은 서기전2247년경까지 20년간 5년에 한번씩 순회하던 태자부루에게 치수경과 등 국정을 보고하였다(虞貢의 事例).
서기전2247년 이후 순임금은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유주와 영주를 다시 설치하였고, 서기전2240년에 즉위한 2대 부루단군이 유주와 영주를 정벌하여 폐지하고 이때부터 유호씨는 순을 제거하기 위하여 둘재아들 유상과 치수에 공이 많은 우에게 명하여 협공하도록 하였다.
서기전2224년에 우의 군사가 창오의 들로 도망하던 순임금을 죽여 아버지 곤의 원수를 갚은 꼴이 되었다.
2. 하우(夏禹)의 반역
서기전2224년에 창오의 들로 도망하던 순임금을 죽여 아버지 곤의 원수를 갚은 우는 곧 군사를 몰래 모으고 무기를 보수하여 자칭 하왕이라 하면서 독단을 차려 반역하였다. 이리하여 단군조선의 정치제도를 모방하여 제후를 마음대로 봉하고 조공하도록 강요하니 백성들이 이러한 폭정을 피하여 수만명이 도망하여 나오므로, 우가 국경을 봉쇄하여 버렸다.
서기전2198년 우는 모산의 진중에서 죽고 그 아들 계가 왕이 되어 유호씨와 전쟁을 계속하였으나, 수만의 군사로도 수천의 군사밖에 안되는 유호씨에게 번번히 패하니 그무리가 격앙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하나라 왕과 백성들이 우매하여 가르치기 어렵다하고 군사를 물려 월식주(파미르고원 서쪽. 수메르, 유럽지역)와 성생주(파미르고원 남쪽. 인도지역)로 가르침을 펴러 떠났고, 되돌아와서는 그 후손들이 단군조선의 교부(敎部. 문교부에 해당)의 직을 세습하였다.
3. 천자국 하, 은, 주의 반역
순, 우의 반역 유전자를 이은 하은주의 여러 왕들은 주변의 나라를 침략하는 등 전쟁을 일삼아 홍익인간의 정치이념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전쟁광이나 다름없는 하은주의 여러 왕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단군조선의 제후국에 해당하는 주변의 이족(夷族)들이 이를 정벌하였고, 정치에 간섭하고 견제하였다. 그러나 결국 하은주의 나라가 모두 그들의 법에 의하여 스스로 망한 꼴이 되었다.
하걸왕은 처음에는 단군조선이 후원군을 보내와 은탕의 침입을 중지시켰으나, 단군조선 군사와 조약을 위반하므로 결국 구이의 군사와 은탕의 군사의 협공으로 걸왕은 남소로 쫓겨나고 은나라가 건국되었다. 즉 은나라는 단군조선의 직접적인 후원으로 건국된 나라이다. 은탕의 재상 이윤은 단군조선의 선인 유위자의 제자이다.
은주왕은 폭정을 일삼아 동이출신인 강태공의 보좌로 주무왕에게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건국되었다. 주나라도 춘추전국시대를 지나면서 자체내의 내분으로 결국 망하고 서기전221년 진시황이 통일하여 스스로 천자보다 위가 되는 황제라 칭하였다.
二. 단군조선 삼한관경 내의 반역 또는 반란
1. 열양 욕살 색정(索靖)
서기전2177년 열양의 욕살 색정이 약수(弱水)에 종신자치(終身자置)에 처해졌는데 이후 사면되어 약수에 봉해지니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 한다. 색정의 죄명은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나 아마도 단군의 명을 어기거나 백성들을 잘못 다스린 것으로 추정된다.
*약수는 흉노의 활동지역에 포함되는 태원 서쪽의 황하북류와 황하남류 사이에 북쪽에 위치한 황하의 지류에 해당하는 강으로 추정된다.
*종신자치 : 죽을 때까지 가시나무로 둘러쌓인 울타리속에 같혀 지내는 형벌. 주로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든다.
*열양은 요동이라고도 하는데, 당시의 요동은 발해만 서쪽지역의 어느 곳이 된다. 요동과 요서를 구분하는 선은 당시 지금의 북경근처를 흐르는 영정하를 기준으로 보면 되는데, 요동은 천진동쪽과 난하서쪽에 있는 고하의 하류 서쪽 사이 지역으로서 옛날에 요동국이 있었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요중12성 가운데 번한성의 서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번한성은 서기전323년 기자의 먼 후손인 기후(箕 言羽)가 연나라 역왕이 자칭 왕이라 칭하자 연나라 자객에게 시해당하여 번한 자리가 비어 있을 때 군사를 일으켜 번한성을 선점하여 왕이라 칭하고 단군의 윤허를 받아 정식 번한이 되었고 이후 동쪽에 있던 번한의 수도 험독으로 입성한 것이 된다.
*흉노는 단군조선으로 보면 "서쪽지역"에 해당하는데, 고구려의 계루, 연나, 소노, 절노 등 오부의 방향과 관련된 말로 보이는데, "하늬바람"의 하늬는 서쪽을 가리키는 말로서 이 "하늬"와 통하는 말로도 추정된다.
*소위 흉노족은 단군조선의 일부 족속으로서 서기전6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팽창하여 서기전2세기경가지 선비, 몽골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한 적이 있다.
2. 강거(康居)의 반란
강거는 티벳지역의 나라로 보이는데, 서기전2175년에 강거가 반란을 일으키자 지백특(支伯特)에서 정벌하였다 한다.
*주로 티벳지역은 파미르고원의 동쪽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서안의 서쪽에 해당하는데, 백족(백이, 서이, 서융)의 무리로 추정된다.
*삼위산과 서안사이의 지역에는 견이의 활동지역인데, 고대중국은 이 견이를 견융이라고도하고 경우에 따라 서융이라고도 싸잡아 부르기도 한다. 견이는 황족(黃族. 황이)의 일파이다.
3.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반란
서기전2173년 두지주 예읍이 반란을 일으키니 여수기가 그 추장 소시모리(素尸毛犁)를 참하였다. 이후 이 예읍은 소시모리로 불리다가 음이 변하여 우수국(牛首國)이 되었다. 소시모리의 후손에 협야노라는 자가 바다로 도망쳐 삼도에서 천왕을 참칭하였다.
*두지주 예읍은 예국(濊國)의 제후 여수기가 봉해진 나라의 한 읍으로서 그 추장인 소시모리가 반란 주모자였는데, 여수기가 토벌하여 소시모리를 처형한 것이다.
*소시모리의 후손에 일본의 국조신이 되는 천조대신(대열령존=요하유)이 있고 그 후손에 협야후 배반명과 형제들이 있었는데 그 형제들 중 신무(神武)라는 자가 서기전667년 협야후를 따라 삼도의 반란을 진압한 후 서기전660년까지 사이에 다른 형제들을 모두 제거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천왕이라 참칭하였다. 이것이 일본역사의 시작이다.
4. 청해(靑海) 욕살 우착(于捉)의 반란
서기전1984년에 청해욕살 우착이 군대를 일으켜 궁성을 침범하니 9대 아술단군이 상춘으로 피하였고, 구월산의 남쪽에 신궁을 지었다. 우지(于支)와 우율(于栗)에게 명하여 토벌케하여 죽였다. 3년 뒤인 서기전1981년에 아사달로 환궁하였다.
*청해가 정확이 어느 지역인지는 불명인데, 아마도 송화강 아사달(하얼빈) 부근에 가까운 지역으로 추정된다.
*난을 진압한 우지와 우율은 우착의 친족으로 보인다.
*서기전1984년부터 서기전1981년가지 3년간 상춘의 신궁에서 지낸 것이 된다. 이 신궁은 나중에 색불루단군이 서기전1285년에 22대 단군으로 즉위한 곳이다.
5. 우현왕(右賢王) 색불루(索弗婁)의 혁명
서기전1286년에 조부인 우현왕 고등을 세습하여 우현왕이 된 색불루는 21대 소태단군이 서우여에게 단군자리를 물려주려 하자 여러차례 간하여 말렸으나 끝내 듣지 않자 스스로 부여의 신궁에서 즉위하니, 소태단군이 옥책과 국보를 전하고 선양하게 되었고, 서우여를 폐하여 일반인이 되게 하고 스스로는 아사달에 은퇴하여 붕어하셨다.
*우현왕 고등(高登)은 개사원 욕살로서 서기전1289년에 귀방을 습격하여 멸망시키고 서북의 땅을 차지하여 세력이 강해졌고, 이에 단군에게 우현왕에 임명해 줄것을 청하여 끝내 우현왕에 봉해졌다. 고등을 두막루(豆莫婁)라고도 부른다. 개사원(蓋斯原)은 개원(開原)의 땅으로서 지금의 심양에 해당하는 지역이며, 장당경이 있는 곳이다.
*귀방은 단군조선의 서남쪽 지역이 되고, 은나라의 북쪽이 되는 지역으로서 태원부근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색불루가 22대 단군이 되었는데, 고씨(高氏)이다. 서기전239년 해모수가 고리국(구려국) 출신으로서 북부여를 차지하여 서기전232년에 단군조선을 접수하니 북부여 시조라고 하고 또한 고구려라고도 부른다. 고구려의 먼 시조가 곧 고등으로서 고구려는 고등을 제사지내 시조로 삼은 것이 된다. 해모수를 천왕랑, 천제자라 함은 곧 단군조선 고씨 단군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말이 된다.
*색불루단군은 장당경에 고등왕 묘를 세웠다.
*색불루는 군사력으로 단군자리를 차지하여 소위 성공한 쿠데타의 주인공이다.
*색불루가 단군자리를 소태단군의 의사에 반하여 차지하자, 제후들과 백성들이 등을 돌렸는데, 색불루단군이 서우여를 번한으로 봉하고 개천령 등이 제후들을 설득하는 등 하여 결국 단군으로 인정받았던 것이 된다. 이후 일부 사서에서 소태단군까지를 단군조선의 역년으로 기록하고 이후에는 조선이 아닌 부여시대로 기록하는 까닭이 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단군의 나이를 1908세라 하여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426년까지 단군조선으로 기록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서기전1286년의 사건으로 군신관계 즉 나라는 없어지고 아버지와 아들의 대를 이은 역사로 비유하고 있다.
*두막루라는 말은 "큰머리", "큰마루"의 뜻으로 고구려 재상인 대막리지와 통하는 말이 된다. 서기전108년에 동명왕 고두막한도 두막루이다.
6. 신독(申督)의 반란
서기전1250년 변방의 장수 신독이 병력을 믿고 반란을 일으켰는데, 색불루단군은 백성들과 함께 영고탑으로 피하였다.
서기전1237년 가을 7월에 신독을 주살하고 백악산아사달(상춘, 부여)의 신궁으로 환궁하였다.
*신독의 반란은 서기전1250년부터 서기전1237년까지 약13년에 걸친 반란이다.
*영고탑은 재난이 있을 대 피하여 살던 이궁(離宮)이다. 고대중국도 주나라 춘추전국 시대에 이궁을 지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7. 융안(隆安) 엽호(獵戶) 우화충(于和沖)의 반란
서기전426년에 융안의 사냥꾼 우화충이 장군을 자칭하며 수만명의 무리를 모아 서북 36군을 함락시키고 겨울에 도성을 에워싸고 공격하니 43대 물리단군은 좌우 궁인과 종묘사직의 신주들을 모시고 배를 타고 피난하여 바닷가로 가셨다가 붕어하셨다.
당시 백민성 욕살 구물이 어명을 받들어 군대를 일으켜 장당경을 선점하니 동서압록의 18성이 원조하였다.
서기전425년 3월에 큰물이 도성을 흡쓰니 적병들이 큰 혼란에 빠져 구물안군이 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정벌하여 우화충을 죽였다. 이에 구물이 여러 장수의 추앙을 받아 3월 16일 하늘에 제사지내고 장당경에서 즉위하였다. 이에 나라이름을 대부여(大夫餘)라 하였다.
*우화충은 장군이 아닌 사람으로서 장군을 참칭하여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킨 것이고, 구물은 백민성 욕살로서 단군의 명을 받아 군대를 일으켜 장당경을 선점하고 동서압록 18성의 원조를 받은 것이다.
*물리단군은 상춘의 신궁을 탈출하여 강을 따라 내려와 아마도 지금의 요하하류에 도착하였으나 붕어하고, 이때 욕살 구물이 상춘의 남서쪽에 있는 장당경을 선점하여 거점으로 삼으니 지금의 요하가 되는 서압록과 지금의 압록강이 되는 동압록 사이의 18개의 성주(욕살에 해당)들이 원조를 한 것이다.
*서기전425년 3월에 진압군들은 상춘 신궁의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수공(水攻)을 행한 것이 된다.
*음력으로 3월 16일은 단군왕검이 돌아가신 날로서 어천절(御天節)이라 한다.
*장당경은 중부여지역에 해당한다. 상춘은 북부여에 해당한다. 송화강아사달 즉 하얼빈 지역은 숙신에 해당한다. 그래서 전기조선을 숙신으로, 후기조선을 부여로 기록하거나 대칭으로 사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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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 삼한관경 외로서 고대중국의 주변에 있던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되는 서족의 서융(서이=백이=백족)과 남족의 남만(적이=적족)과 중국내륙 동쪽의 동이에 해당하는 역사는 고대중국과 인접하여 있어 고대중국의 기록에 전해지고 있으나 대체적으로 상세한 것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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