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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발바닥] 세기의 엽기 재판 ( 15 편 ) - 미래의 주거 문화 아파트 사업

지식창고지기 2010. 3. 10. 20:20

제가 글의 분류를 낙타발바닥이라고 붙인 것과 앞으로 게재할 글과는 일맥상통한 것 입니다. 전 중동이라면 넌 저리가 납니다. 여러 선배님들께서는 어떠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중동생활 마지막은 쿠웨이트에서 했습니다앞으로 두 달에 걸치어 전하는 글은 우연히 획득된 글로 실제 H건설에서 있었던 일로 모두 실제 인물로서 저가 모시던 분들로 우리 중동 건설시장 개척사의 아픈 한 단면입니다. 이 분들의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의 발전된 조국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글을 쓰신 분은 제목을 “세기적 엽기 재판”이라고 붙이었음을 상기시켜드립니다.

 

세기의 엽기 재판  ( 15 편 ) - 미래의 주거 문화 아파트 사업 [중]

 

 

직원들 사이에는  분양에 대한 찬반 양론이  제기 되었다.

 

" 무조건 분양을 받는 것이 유리 할 거야!."


" 아니야, 아파트는 아직 일러! "


" 알아 보니까, 일반 분양이 않되니까, 직원들에게 돌리는 거라고 하던데."


" 값도 일반 주택보다 배 이상 더 비싸지 않아?, 변두리 조금만 나가면 대지 50 평 건평 30 평짜리  단독 주택을  5 백만원이면 떡을 친다고 하던데, .. .."


" 압구 정동은 변두리 중에 변두리라고 하던데, . . . ."

 

직원들간에는 아직 아파트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부동산에 대한 신념도 없을 때다. 생소한 아파트에 천만원 단위의 자금을 투입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정 부장은 대학시절 모 교수로부터 들은  지대론( 地代論) 강의 내용을  떠 올렸다. 산업 사회에서의 땅이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산업 사회에 있어서의 모든 재화는 생명의 한계가 있고 시간이 갈 수록 그 가치는 줄어 듭니다   제품이나 생산품은 물론이고, 화폐까지도  이자의 개념을 확대 해석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는  유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의  땅값, 즉, 지대만은 산업 활동에 편입되어 있는 한 그 가치는 시간이 지날 수록 증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 재화에 적용되는 공식은 땅에 대해서는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

 

정 부장은 즉시 본사 주택 사업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이런 경우, 해외 부서를 통 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실무 부서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입수 할  수 있는 것이다.

 

" 한 부장!,  안녕 하시요?,  제다 정 부장이요! "

 

" 오!, 정 대감!, 웬 일이시요?, 전화를 다 주고? "

 

" 요즈음 매우 바쁘다면서?, 도시개발회사 만들어서 사장 되는 것 아니요? "

 

" 원, 세상에, 내가 사장되면 정대감을 부사장으로 모실까? "

 

" 그건 그렇고, 아파트 분양에 대한 전문을 받았는데,  스토리가 어떻게 되는거요?"

 

" 어!, 그거, 눈 딱 감고 사 두구료, 앞으로 전망이 좋을 테니까.'

 

그 날 한 부장으로부터 전화기를 통하여 귀속 말로 얻어 들은 내용에 정부장은 또 한번  왕 회장의 결단에 놀라움을 금 할 길이 없었다.

 

중동에서 벌어 들이는 외화는 실로 막대한 금액이었다. 매달 미화 1 억 불에 해당하는 외화가 국내로 송금 되었다. 당시 재무부 고위 관리가 1 억불 재정차관을 얻기 위하여 유롭 금융시장을 2 개월이나 헤메고 다녔어도 끝내 성공하지 못 하던 시절이다.

 

왕 회장은 그 때부터 사업의 다각화와 세계화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미 자동차와 조선업은 궤도에 올라 해외 수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주 업종인 건설과 자동차와 조선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하여 각 종 부품을 생산하는 10 여개의 자 회사를 만들어 수직 계열화에 성공 하였다.

 

1977 년과 1978 년은 왕 회장 개인적으로도 전성기를 예고하는 전초 시기였다. 1977 년 4 월 13 대 전경련 회장에 추대되어 금 후 4 대를 연임하며 경제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릅 전체 매출이 1 조 3 천 3 백 억원에 달 하여 국민 총생산( GNP )의 7 %에 달 하는 실적을 올렸다. 1976년도 매출액 4 천억원에 비하면 무려 3 배 이상의 성장을 기록 한 것이다.

 

1977 년 8 월 미 경제 전문지 " 포츈"은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 H " 그릅을 1976 년도 세계 500 대 기업 중 278 위에  올려 놓았고, 이듬 해에는 다시 98 위로 올려 놓았다가 또 그 다음  해에는 다시 78 위로 ( 78 년 매출 , 36 억 불 ) 상향 조정 하였다. 1978 년 5 월  국세청에서도 1977 년도 납세액 141 억원 을 납부한  " H "  건설이 납세 순위 1 위라고 발표 하였다. 
 
뿐 만 아니다,  인천에 있는 제철회사를 인수하고, 서소문에 있는 서울 고등 학교 부지를 동시에 인수 하였다. 재계에서는 두개 의 큰 덩어리를 한번에 인수 한 왕 회장의 자금력에 대하여  경외로움 마저 감추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