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분의 글이 끝났군요 글쎄요 이제 다시 가라면 여러분은 가겠다고 선듯 나설 분이 계시겠지만 저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더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젊음을 파 묻은 곳이지만 너무 아픈 기억을 돌이키고 싶즈 않기 때문입니다. 베드윈에 대한 이야기에서 유목민이란 처음 찾아 갈 때는 간과 쓸개를 다 내어 줄 것 처럼 사귀다가도 떠날 때는 그 집의 처녀를 보쌈 하든 아님면 무엇이든 이를 취하고 남의 피해에는 인정이 없는 민족입니다.
[낙타발바닥] 세기의 엽기 재판 ( 21 편 ) - 귀국 ( 완결 편 )
( 사랑과 정열의 꽃, 장미는 끝없는 사랑과 삶에 대한 정열을 상징한다. 정 부장의
귀국 길은 화려한 장미 꽃으로 수 놓아 졌다.)
그 때만 해도 이락은 " 죽의 장막 " 중국이나, " 철의 장막" 쏘련보다도 더 밀폐 된 사회주의 국가다. 외부에 알려진 정보란 고작 " 세계 제 3 의 석유 자원국 " 이라는 것 밖에 없다.
당시만 해도 이락은 한국인 여권에 붉은 글씨로 " 여행 금지 구역" 으로 표시되어 있는 국가이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쿠웨이트 지사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철저한 사회주의 통제 국가로, 인근 아랍 국가들과 몇 몇 동 유롭 공산주의 국가들과 교역이 있을 뿐,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들과는 교역이 없다고 했다.
이락의 공식적인 국가 통치 기구는 혁명 위원회( RCC )다. 1968 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알 바크르가 대통령 직과 혁명 위원회 ( RCC )의 의장직을 맡고 있었으나, 실질적인 권한은 혁명 위원회의 부위원장인 사담 후세인이 이미 장악하고 있었다.
* * *
사담 후세인, 훗날 미국과의 대립으로, 세계 제 3 위의 석유 자원국을 열등국으로 만들고, 그 자신 자기가 다스려 온 자국 국민들에 의하여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역사적인 인물. 끝없는 투쟁심과 그릇 된 영웅심으로 그의 일생은 파란 만장의 연속이었다.
1979 년 대통령인 알 바크르를 밀어내고, 전권을 장악한 사담 후세인은 1937 년 4 월 이락 북부인 티크리트라는 작은 농촌에서 출생, 중등 학교 시절부터 정치 활동을 하여 6 개월 간의 옥고를 치렀고, 1956 년에 아랍 바트 사회당에 가입, 1959 년에는 총리인 카림 카셈 장군 암살시도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여 다리에 총상을 잎은 채로 시리아, 이집트로 망명 생활을 하였다.
1962 년에는 이집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카이로 법과 대학에 등록하였으나, 그 이듬 해 이락으로 귀국, 새로 군사 쿠데타로 실권을 잡은 압둘 살람 아리프 정권에 의하여 반 정부 활동으로 다시 체포되었다. 옥 중에서도 열열한 바트당 활동을 전개하던 그는 옥 중에서도 바트당 부총재로 선출되는 위력을 보였다.
1967 년 감옥에서 탈출 하는데 성공, 1968년에는 같은 바트 당원 하산 알 바크르가 이끄는 쿠데타에 가담, 성공하여 1969 년에는 혁명 위원회의 부 위원장에 취임하여 알 바크르 정권의 서열 2 위로 부상 하였다. 쿠데타 당시, 후세인은 탱크부대의 제일 선두 탱크에 탑승하여 대통령 궁을 점령 하였다고 한다.
실권을 장악한 후세인은 1972 년 이락 내의 석유회사를 모두 국유화 하고, 정적들을 제거 하는 등, 철권 정치를 계속 하였다. 1979 년 드디어 병약하고 노쇄한 대통령 알 바크르를 밀어내고 명실 상부한 실권자가 되었다. 그는 곧 이어 같은 바트당을 재 정비 한다는 명목으로 당원 400 여명을 처형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 * *
" 사장님!, 좀 더 일찍 찾아 뵙지 못하여 죄송 합니다. 어디 불편 한데라도 없습니까?"
" 오!, 정 부장 어서 오게, 그 동안 별 일 없었나?, 일부러 먼데까지 찾아 왔네, 그려! "
최 상무로부터 귀국 하라는 명령을 받은, 정 부장은 서둘러 리야드의 유치장으로 해외 담당 사장과 리야드 이 부장에게 면회를 갔다. 콩크리트 바닥에 철책 창문을 두른 어두운 감방을 연상했던 유치장은 의외로 밝고 아늑한 환경이었다.
경찰 측에서 특별한 배려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방 두칸짜리 일반 사가를 얻어 유치장을 대신했다. 바닥은 콩크리트 바닥이 아니고 카펫이 깔려 있었으며, 창문은 철책이 아니라 밝은 색의 유리 창이었다. 화장실도 수세식은 아니지만 타일로 된 사우디의 전통 화장실이다.
밖에는 보초병이 2 명 배치 되어 있을 뿐, 집 안에서는 행동이 자유스러웠고, 실내 운동과 독서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했다.
단 외부와의 접척이 금지되고, 면회도 금지 되었다. 다만, 사식만이 허용되어 이 부장의 아내가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배달 하는데, 국 그릇, 물 주전자를 운반하는 보조 한 사람만의 동행을 허용한다. 따라서 면회를 하려면 식사 때 국 그릇이나, 물 주전자를 날라야 한다. 정 부장의 면회도 식사 배달의 보조자로서 가능 했다.
" 사장님!, 이제 보니, 유배 오신것이 아니라, 휴양 오신거군요? "
" 정 부장도 똑 같은 소리를 하는군, 오는 사람마다 똑 같은 소리를 해! "
사장이 유쾌하게 웃으며, 농담을 받아 준다.
" 사장님!, 무척 건강 해 보이십니다. 어디 편찮으신덴 없으십니까? "
" 건강 하다네,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이 부장 부인께서 수고 해 주시고, 틈틈이 대 나무 발목 운동을하고, 또 심심하면 독서도 하고,. . . . . . 아주 편한 생활을 하고 있지, "
" 대 나무 발목 운동이라니요? "
" 이렇게 한다네, 시범을 보여주지, "
사장은 한 쪽구석, 천장에 매달아 놓은 손잡이를 잡고, 발 바닥에는 둥근 대 나무 통을 밟고 서서, 통 나무를 앞 뒤로 굴린다.
" 어때?, 원숭이 재주 부리는 것 같지 않나?, 그런데, 이 놀이가 작난이 아니야, 운동 효과가 대단하고, 덕분에 밤에 잠도 잘 잔다네, "
이 분의 인간성이 그대로 들어난다. 만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뿐만 아니라 낙천적이고, 어린 아이처럼 순진한 면이 있다. 부하들의 어려운 점을 잘 돌봐 주고,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아, 모든 부하 직원들이 큰 형님 처럼 따른다.
정 부장이 이란, 바레인, 아랍 에미레이트, 쿠웨이트등 일차 중동 근무를 마치고 본사 복귀했다가, 2 차 중동 근무를 할 때, 제다 지사에 발령을 낸 것도 이분이다.
" 이 사람들이 심문을 하거나 따로 괴롭히지는 않습니까? "
" 그런 건 없어졌어, 처음에는 몇 번 불려 갔었지 ."
이 번에는 정 부장이 이 부장에게 시선을 돌리며, 짖궂은 농담을 한다.
" 여보게, 이 부장! 한참 바쁠 때, 이런데 와서 이렇게 유유 자적 해도 되는가?"
" 나야 뭐, 오고 싶어 왔겠나?, 사장님 보필하러 왔지."
힐긋 사장의 눈치를 보며 넉살을 부린다. 정 부장은 이런 분위기에 어지간히 마음이 놓였다. 이 곳에 도착하기 전 까지만 해도 폐쇄 된 공간에 찌들린 모습을 연상했던 수감자들이 이렇게 여유 있는 생활 하는 것을 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 지는 것을 느낀다.
정부장이 정색을 하고, 사장에게 바짝 다가 앉는다.
" 실은, 귀국 인사도 드려야 겠습니다."
" 대체, 무슨 이야긴가?, 무슨 일이 있었나? "
" 어제 아침 회의에서 결정이 된 모양 입니다. 왕 회장님께서 이락에 사람을 보내라는 지시를 하셨답니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이락이 앞으로 사우디 다음으로 큰 시장이 된답니다. 미리 가서 근거지를 잡으라는 것이지요 "
" . . . . . . . . . . "
정 부장은 사장이 침묵하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읽고 있었다. 사장은 왕 회장이 결정한 일이라면 나름대로 타당성이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정 부장이 귀국 인사를 오게 된 경위를 처음부터 유추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 결정은 어떻한 일이 있어도 번복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 그래, 언제쯤 귀국 할 예정인가? "
" 후임이 오는대로 업무 인수 인계하면, 곧 떠날 계획입니다. 2 - 3 일이면 후임이 오겠지요 "
이 부장이 옆에서 한 마디 거둔다.
" 어이! 정 부장! 이거 섭섭해서 어쩌지?, 이락으로 가면 한 동안 만날 기회가 없겠군,"
" 중동에 있는 한, 알라가 자네와 나를 오래동안 떨어져 있게 하겠나? 곧 또 가깝게 맺어 주겠지. 그 동안 몸이나 잘 간수하게. 인 샬라! "
* * *
리야드에 면회를 다녀 온 후, 정 부장의 예칙대로, 후임은 3 일 만에 제다지사에 부임 하였다. 한국에서 온 것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주베일 중동 본부에서 2 년차 근무하고 있던 전 부장이다. 전 부장은 정 부장과 대학교 동기 동창이다.
전 부장과의 만남은 그 이전 중동 본부 업무회의에 참석 했을 때 만났고,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 했다. 서로 통성명을 하다보니 같은 학교, 동기임이 밝혀졌다.
320 명 동기 중, 가깝게 지낸 사이가 아니었다면, 얼굴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15 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한국이 아닌 먼 이국에서 동문 수학을 만났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두 사람의 학창시절 회고담은 정 부장이 제다를 떠나는 날까지 밤 낮없이 계속 되었다.
정 부장은 후임, 전 부장이 제다 지사에 부임한 지 일 주일만에 귀국행, 대한 항공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대한 항공 노선이 제다에까지 연장 된 것은 불과 일 년 남짓하다.
새로 취항하는 듯한 비행기 내는 한국 근로자들로 붐볐다. 모두가 귀국 길이 즐거운 듯, 여기 저기에서 담소가 끊이지 않는다. 오래간만에 보는 여승무원의 제복 차림도 신선하다. 기내를 잔잔하게 흐르는 " Welcome to my world " 곡이 피로에 지친 승객들의 영혼을 잠 재운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차고 공중으로 떠 오르는 순간, 정 부장은 조용히 눈을 감는다. 지난 3 년 여의 중동 생활이 동영상이 되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정 부장은 자신의 중동 생활이 시작 된 시점을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1975 년 4 월 8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첫 발을 내린 이 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타임 머쉰에 몸을 맡긴 채,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이란에 이어,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 에미레이트, 사우디등을 섭렵 하는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그리고 세상은 더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배웠다.
비행기가 구름 사이를 뚫고 오를 때쯤, 머리 속에는 김포 공항에서 반갑게 맞이 할 아내와 큰놈, 작은 놈의 얼굴이 환하게 다가온다. 정 부장은 어느덧 깊은 잠에 빠져 꿈 속에서 가족들과의 재회를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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