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북송(北宋, A.D.960 ~ A.D.1127)

지식창고지기 2010. 5. 5. 19:00

(17) 북송(北宋, A.D.960 ~ A.D.1127)


― 중앙집권체제의 강화로 내부분열을 막아보려던 통일왕국의 시대


송나라 시대는 서기 960년에 건립되었고, 1279년에 원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 기간 중 금나라로 휘제(徽帝) 및 흠제(欽帝) 두 황제 및 종실 비빈들이 포로로 잡혀간 1127년을 기점으로 전후 두 시기로 나뉜다. 1127년 이전이 북송 시대이고 그 후부터는 남송 시대이다.


북송 때는 온 중국이 여전히 분열되어 북송과 함께 중국대륙에 존재한 비교적 큰 국가로는 요나라를 제외하고도 또 서하(西夏)와 대리(大理)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국가와 달리 송나라는 오대십국의 분열을 종식시킨 상대적으로 통일된 왕국이었다.


북송시대의 정부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여 권력이 황제에게로 집중되는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였다. 이 시기 북송의 사회와 경제는 뚜렷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또한 북송문화 역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학술상에서 이학(理學)은 유학을 진정한 철학으로 발전시켰으며, 사학에서도 큰 성과를 이룩하였고, 사(詞)는 특히 독특한 품격을 구비하여 일절(一絶)이라 칭해졌다. 고문(古文)이나 통속문학, 희극, 그리고 설창(說唱) 분야의 예술도 급속히 발전했다. 인쇄술, 화약, 나침반 등의 중국3대발명품 또한 북송 시대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상징한다.


또한 공명정대하기로 유명한 판관 포청천(포증, 999~1062)이 활약했던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이렇게 발달했던 북송은, 중앙집권체제의 강화를 위해 실시한 각종 조치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어 국력은 약해지고 백성은 가난하게 되었다. 이에 북송 시대 후기에는 왕안석(王安石)의 법개정으로 국력의 강화를 시도하였으나, 결실을 보기는커녕 도리어 당파싸움이라는 화근을 초래하였다. 또한 이로서 통치계급 내부의 모순은 이미 타협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기 1127년, 내우외환에 직면한 북송은 결국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황제들이 금나라로 끌려가는 ‘정강의 치욕’(靖康之恥)을 초래하였고 뒤이어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