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당(唐, A.D.618 ~ A.D.907)
- 이태백의 시와 양귀비의 미모로 상징되는 중국 역사 최고의 전성기
당나라는 중국 봉건 사회에서 가장 강성한 시기로, 건국 초기에 사회의 안정과 정치적 개명을 몹시 중시하였다.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치세에는 오곡이 풍성하고 백성이 안락한 생활을 누린 ‘정관의 치세’(貞觀之治)를 이루었으며, 현종(玄宗) 황제 이융기(李隆基)의 치세에는 국력이 몹시 강성하여 역사에서는 이를 ‘개원의 성세’(開元盛世)라고 칭한다.
정치상에 있어서 당은 위진(魏晋) 이래의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를 폐지하고 진일보 개선된 과거제를 시행하여 양호하고도 질서 있는 정부 관리 시스템을 건립하였다. 경제상에 있어서는 세금제도에 있어 균전제(均田制)를 추진하고 조용조(租庸調)를 실행하며, 황무지의 개간과 농업 및 잠업(蠶業 - 누에치기)을 장려하여 농업과 수공업이 모두 전대미문의 발전을 이루었다. 당의 문화와 과학 사업 역시 공전의 번영을 이루었는데, 특히 시가(詩歌) 발전에 있어서는 중국 고전 시가의 최고봉으로 발전하였다.
당나라 시대는 그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성한 국가 중의 하나로서 주변 인접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당의 번영과 강성한 배후에는 심각한 내우외환이 잠복하고 있었으니, 이융기 집정 후기의 당조는 이미 쇠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755년 폭발한 장장 8년간의 ‘안사(安史 -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은 당나라의 국력을 전부 소진시켰으며 당나라는 이로써 재기불능이 되었다. 후에 비록 헌종(憲宗)의 중흥이 있었지만 구제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875년에 폭발한 ‘황소(黃巢)의 반란’은 당나라 정권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당은 이로써 각 지역에서 일어난 군벌들에 의한 혼란과 전쟁 속에 빠져버려 이름만 존재하는 멸망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907년, 주온(朱溫)은 당나라의 마지막 황제를 압박하여 제위에서 물러나게 만든 다음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니, 이로써 당나라는 멸망을 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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