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와 문성공주(文成公主)
당(唐)나라 정사인 ‘구당서(舊唐書)’ 토번(吐蕃)열전이 ‘장안(長安·현재의 서안)에서 서쪽으로 8000리 떨어져 있다’고 전하는 토번이 현재의 티베트이다. 7세기 초 정복군주 송짼감포(松贊干布)가 티베트 고원을 통일하며 강국으로 부상했다.
송짼감포가 20만 대군으로 공격하자 당 태종은 이부상서(吏部尙書) 후군집(侯君集) 등에게 보기(步騎) 5만을 주어 싸우게 했으나 송주(松州)에서 작은 승리를 거두었을 뿐이었다. 당 태종의 해결책은 문성공주(文成公主)를 송짼감포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구당서’는 송짼감포가 “군사를 퇴각시키며 사신을 보내 사죄하고 혼인을 청하니 당 태종이 허락했다”며 현실과 거꾸로 기술했다. 태종은 고구려 침공에도 동참했던 강하왕(江夏王) 이도종(李道宗)에게 문성공주를 호송시켰다.
‘구당서’는 송짼감포가 ‘군사를 백해(柏海)까지 이끌고 와서 도종에게 사위의 예를 취하면서 매우 공손하게 대했고, 중국 복식의 아름다움을 보고 위축되고 창피스러워했다’고 강국 티베트에 붓으로 복수했다. 장장 3000여㎞에 달했던 문성공주의 혼인길은 수많은 야사를 만들었다. 다른 강은 모두 동쪽으로 흘러 청해호(靑海湖)로 들어가지만 문성공주의 눈물이 보태진 ‘도류하(倒流河)’만은 거꾸로 서쪽으로 흐른다는 것이나 티베트 수도 라싸에 공주의 요청으로 지어졌다는 대소사(大昭寺) 앞의 버드나무도 그녀가 심은 것으로서 ‘공주 버드나무(公主柳)’ 또는 ‘당나라 버드나무(唐柳)’라고 전해진다는 것 등이다.
송짼감포는 679년 세상을 떠나고 문성공주도 고향 땅을 못 밟아보고 이듬해 세상을 떠나는데, 서기 703년에는 측천무후도 양옹왕(養雍王)의 딸을 금성공주(金城公主)로 삼아 송짼감포의 손자 치데쭈짼(棄隸?贊)에게 다시 보냈을 정도로 티베트는 시종 당의 우위에 있었다.
티베트가 중국에 점령당한 것은 한국전쟁 와중인 1950년 10월이다. 중국은 티베트 역사를 서남공정이란 이름으로 이미 빼앗았다. 동북공정으로 공격받고 있는 우리에게 달라이 라마에 대한 미 의회 골드메달 수여로 또다시 불거진 티베트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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