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 가장 많이 숭배하는 조왕신(神) 이야기
조왕신(부뚜막신)은 중국 민간신앙에서 가장 널리 숭배되는 신선이다. 조왕신은 고대 신화 속 신선으로, 옥황상제가 집집마다에 파견한 관리이다. 조왕신은 해마다 황제에게 보고를 올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왕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해마다 부뚜막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풍습은 지금도 이어져 중국인들은 매년 음력 12월 23일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조왕신에 대한 전설로 지금까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이전에 장생이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처 정향은 용모가 단정하고 성정이 아우 온순하고 총명했다. 부부 사이의 금슬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생은 해당이라는 미인을 보고 한 눈에 사로잡힌다. 해당은 장생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계획적으로 그에게 접근해 첩으로 들어갔다. 해당은 정부인 정향을 질투하고 시기해 결국 장생과 정향의 사이를 이간질해 정향을 쫓아냈다.
그 후 장생과 해당은 얼마 못 가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가난뱅이로 전락했다. 해당은 돈 없는 장생을 떠나 재가해버리고, 장생은 홀아비가 되어 구걸하며 목숨을 겨우 연명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한 겨울 어느 날, 장생은 배고픔과 추위에 떨다가 한 부잣집 문 앞에 쓰러지고 만다. 다행히 그 집 하녀가 장생을 발견해 그를 주방으로 데려간다. 목숨을 건진 장생이 정신을 차리고 그 집의 주인 마나님을 보았는데, 뜻밖에도 자신이 내쫓았던 정향이 아닌가! 부끄러움과 후회로 정향을 볼 낯이 없었던 장생은 부뚜막으로 숨어버렸다.
주방에 있던 걸인이 사라지자 이상하게 여긴 정향은 부뚜막 아궁이가 막혀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아궁이를 열어보니 장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불에 타 죽은 뒤였다.
걸인이 바로 자신의 전남편임을 알아본 정향은 슬픔에 잠겨 얼마 못 가 숨을 거두었다. 이 일을알게 된 옥황상제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친 장향을 조왕신(부뚜막신)으로 봉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주방에 조왕신과 그의 아내인 정향을 함께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조왕신이 남자인가 여자인가에 대해서도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경학가들은 조왕신을 할머니 혹은 아름다운 아가씨로 해석하고, <잡오행서>, <경조전서> 등의 책에서는 조왕신의 이름, 자, 외모 등을 언급하며 때로는 남자, 때로는 여자 신선이라고 적고 있다. 현재 민간 신앙 속의 조왕신은 나란히 낮아있는 노부부이거나 남녀, 즉 조왕신과 조왕부인의 화상으로 자주 볼 수 있다.
한편, 조왕신 자신은 선계에서는 위치와 지위가 애매모호한 신선이고, 항상 주방 구석의 부뚜막에 틀어박혀 종일 매캐한 연기를 마시고 있는 처지. 게다가 온갖 산해진미를 구경만 하고 냄새만 맡을 뿐 정작 먹어볼 수도 없으니 참 실속도 복도 지지리 없는 신선이 되겠다.
이런 대우를 받으니 조왕신의 기분이 꿀꿀할 수 밖에. 본래 조왕신은 옥황상제의 명으로 인간세계의 집집마다 몰래 잠입해 인간들의 모든 것을 캐내기 위해 속세로 내려온 스파이 신선으로, 황제에서 백성들까지 모든 인간들의 사생활- 왕서방과 진낭자가 어젯밤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는지, 앞마을 암캐와 뒷마을 수캐가 어찌어찌 눈이 맞았는지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도 그의 레이더망을 피해갈 수 없었다. 조왕신은 부뚜막에 숨어 그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옥황상제에게 그대로 보고했기 때문에, 때로는 인간의 수명을 줄이고 재복을 떨어뜨리기까지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조왕신의 파워가 강력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조왕신에 대해 깊은 신앙과 경외심을 갖는 듯 하다. 그럼에도 조왕신에 대한 실제 대우는 형편 없었다. 주방에서 일하는 하인들은 상전이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라도 매일 먹을 수 있는 반면, 조왕신은 일년에 한 번 차려주는 제사인 송행연이 전부였던 것.
이 송행연은 한나라 때의 한 사내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는 효성이 지극했던 사내였는데, 그의 효성에 감동받은 조왕신은 사내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 그를 축원했다. 황공하였던 사내는 지극한 예로 조왕신을 대접하기로 하고 노루를 잡아 후하게 제사를 지내주었는데, 그 이후로 소위 대박이 터져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때부터 노루는 조왕신의 제삿날에 반드시 쓰는 고기가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반 백성이 노루 고기를 상에 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 황실 의식이 아니고서야 조왕신의 제삿상에 이런 후한 대접은 당연히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래도 예전에는 돼지머리, 양머리니, 생선에 술이라도 있었건만, 이제는 조왕신 화상에 물엿(조왕신이 단 것을 먹고 옥황상제에게 달콤한 말만 해주길 바라는 뜻) 좀 묻히고, 술 지게미, 설 떡 정도로 옥황상제께 말씀 좀 잘 올려주십사 입막음(?)을 대충 해줄 뿐이니, 조왕신의 처지도 많이 딱해졌다. 이런 열악한 대우에도 조왕신은 옥황상제에게 집주인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않는 신선이다. ‘스파이’라는 본분에도 불구하고 참 심성이 너그러운 신선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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