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티베트는 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해야 했는가?

지식창고지기 2010. 6. 25. 11:37

티베트는 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해야 했는가?

 조은강

 

 

 7세기 티베트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공격할 정도의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국가였다. 그런 티베트가 현재는 왜 중국의 지배를 받는 약소민족으로 전락했을까? 티베트를 통일한 송첸감뽀(Songsten Gampo)왕 은 주변국가와의 평화관계를 위해 정략적인 결혼을 했다. 그가 아내로 맞이한 부인 중 한 명은 네팔의 ‘브리쿠티공주’고, 또 다른 한 명은 당나라의 ‘문성공주’이다. 그리고 이들 부인의 티베트 입성과 함께 불교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 후 불교의 성장은 기존 종교인 본교(Bon)와의 갈등을 초래하였으나 왕정의 보호 아래 성장해 갔다. 불교의 성장은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권력화해 갔다. 자연스럽게 종교(불교)와 왕권과의 갈등이 야기됐고 심토번왕국의 마지막왕인 랑다르마왕(glang dar ma)은 억불정책을 통해 왕권를 도모하기도 했다. 그는 승려들을 환속시켜서 강제로 결혼시키고 불경 등의 서적들을 불살랐다. 그러나 그 결말은 의도했던 대로 왕권의 강화가 아닌 토번왕국의 분열로 끝난다. 랑다르마왕의 개혁 실패원인은 억불정책에 불만을 품은 티베트승려에 의해 랑다르마왕이 암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후 티베트는 종교권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사회체제로 흥망성쇠를 계속해 왔다. 13세기 몽골은 원제국을 세운 이후 티베트와 단월관계를 갖는다. 이후 현(現)중국 판도에서 세워진 국가들과도 동일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청나라와의 관계도 원제국과 티베트와의 관계와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1911년 청나라의 지배자인 만주족에 봉기든 한족에 의해 신해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한족은 명나라의 맥을 이은 중화민국을 건국하게 됐다. 동일하게 다른 민족들도 자민족의 국가를 건국하려는 시도하였다. 청나라의 조공국이었던 조선도 1897년 고종의 황제즉위식을  통해 이전의 중국과의 종속적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대한제국으로 다시금 태어난다. 아쉬운 것은 이후 제주주의 야심을 가진 일본에 의해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이 이루어짐으로 대한제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몽골족도 1911년 청나라에 독립된 국가를 건국한다. 중화민국의 몽골의 독립 방해함으로 여러 난관을 겪었으나 러시아의 도움을 통해 현 중국 내 몽골자치구인 내몽골지역을 제외한 몽골지역의 완전한 독립을 얻어낸다. 위구르지역도 청나라 붕괴 후 독립국으로서의 기간을 누렸으나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군의 침략으로 인해 자유를 빼앗기게 되었다. 그 해에 티베트도 인도에 망명해 있던 13대 달라이 라마가 돌아와서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다. 그리고 티베트 내의 청나라 군대를 추방하였다. 이후 티베트는 약40연간의 독립국으로의 자유를 누렸다. 그 기간 동안 달라이 라마를 위시한 티베트정부는 근대사회에서 부적절한 관습과 제도들을 철폐하고 필요한 제도들을 만들어 갔다. 현대식 군사제도로의 개혁과 은행 및 화폐 발행, 우체국, 전신국 등을 개설하였다. 또한 외교부를 만들어 외국과의 국제관계에서의 권리도 행사했다. 그리고 여권을 만들고 비자발급을 함으로 티베트정부의 허락 없는 외국인의 티베트왕래를 제한했다. 그리고 2차 대전 중에는 중립국적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연합군의 전쟁물품의 운송에 있어서 비군 수용품의 운송만을 허락하는 등의 소극적인 도움을 주는 것에 그쳤다.
하나의 독립국으로 세워 나가려는 티베트가 봉건주의의 전통을 탈피면서 진행했던 개혁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독립국으로 세워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1950년 티베트가 중국에 점령당한 이유에 대해서 국제학적으로 본다면 당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인 미소양전체제로 진행해 가는 상황에서 중공의 티베트침략의 위기에 있음으로 유엔의 명백한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영국을 포함한 유럽은 2차 대전의 후유증으로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티베트문제에 참여할 여력이 없었다. 친영국인 인도의 개입반대 요구도 한 몫을 했다. 독립을 쟁취한지 얼마 안 된 인도는 티베트문제에 중국과의 마찰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엔이 티베트문제에 참여하지 않길 원했다. 그리고 당시 친자본주의 국가인 남한이 북한에 의해 침략당하면서 자본주의진영의 동북아진영의 경계에 위기가 발생했다. 결국 유엔은 티베트문제보다 지정학적으로 보다 중요한 한반도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결국 1951년 티베트는 17개 협약에 서약함으로 중국에 속하게 된다. 티베트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위에서 보듯이 국제적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국내적 관점에서도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티베트 내에서의 달라이 라마의 정치적 권력의 강화는 시가체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제2의 권력자인 판첸라마에게는 탐탁지 않은 일이었다. 청나라의 종속국이었을 때는 판첸라마가 시가체지역의 권력을 가진 티베트 제2의 권력자였지만 티베트가 완전한 독립국이 된다면 티베트 전체의 권력자인 달라이 라마의 권력이 보다 강화되게 됨으로 점차적으로 자신의 지위가 약화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로 다가 왔는데 판첸라마 9세 때 군대의 현대화를 위해 예전에 내지 않았던 세금을 내야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판첸라마는 티베트의 독립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로서 11대 판첸라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티베트를 제정일치의 국가에서 벗어난 세속정부로의 개혁을 추구하는 세력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1911년 독립이후 제정일치를 추구했던 13대 달라이 라마에 의해 이들의 계획이 발각되면서 숙청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근대화의 추진은 결국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인도의 티베트정부가 제정일치 사회에서 분리를 추구해 가는 것을 보면 결국 그 당시의 달라이 라마는 더 긴 안목에서의 미래를 볼 수 없었던 보통 인간인 한 지도자였을 뿐이었다. 랑다르마의 암살 이후 티베트만의 독특한 사회체제로 자리한 ‘제정일치’사회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종교의 정치권력화로 인해 근대국가로의 성장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결국 세속의 지식인 중에 달라이 라마 중심의 국가체제에 대해 불만을 품은 지식인층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런 자들은 티베트의 독립국가 체제가 아닌 한족 중심의 중국 속의 티베트 자치구에 만족하며, 친중파 지도자가 되었다. 

 만약 1911년 달라이 라마의 중심의 제정일치 사회가 아닌 일반인 중심의 세속적 정부를 세우려 했다면 현재의 티베트의 정치적 지위가 지금과 같은 중국 내 소수민족 자치구로 존재했을까 아니면 독립국이 될 수 있었을까? 어째든 현재 티베트는 엄연한 중국의 소수민족이며, 서장자치구로 존재한다.
 
 2010여 년 전 세상에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다. 그는 예언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만약 그가 다윗의 아들, 혹은 손자로 태어났다면 그는 세상이 극찬할 성군으로 불리어졌을 것이다. 언제나 가난한 자들을 배려해주며, 병든 자를 치유하며 백성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 참 선한 왕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는 불우하게도 다윗왕국이 폐망하고,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인 시기에 태어났다. 그 당시의 유대는 나라를 빼앗기고 다른 민족의 정치적 압박에 의해 제대로 숨을 못 쉬는 제 4세계인 것이다. 로마의 압제에 의해 독립에 대한 염원으로 목마르게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기쁨이 아닌 절망이었다. 자신들이 기대하던 모세와 같은 민족독립국을 세우는 메시아가 아니었다. 결국 독립 국가를 세울 수 없는 유대왕 예수에 대한 분노된 감정폭발로 유대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목 박는다. 그를 좇던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 이후 자신들의 생명도 위협 받을 것으로 인해 숨거나 도망을 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제자들에게 놀라운 기적은 시작된다. 국가 없는 소수민족의 슬픔으로 가득 찼던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는 은혜의 기적을 목격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이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며 영원한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게 된다. 이젠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한 백성들로 거듭났다. 이스라엘에 복음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풍요한 시기가 아니며 정말 소망이 끊어진 식민지의 시대이다. 국가 없는 민족으로 전락한 제4세계의 이스라엘은 정치적 자유는 없었으나 성령의 기름부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복음은 소망없는 민족과 백성들에게 더 강력하게 받아들여지며 성령의 역사도 더 강력하게 일어난다. 로마의 주변에서 시작된 천국복음운동은 결국 로마를 복음화 시키게 된다.


 조선 땅에  있었던 1907년도의 대부흥도 조선의 정치적 상황이 암흑기로 접어드는 순간에 이루어졌다. 우월감을 가졌던 동양의 사상은 서구의 근대과학의 힘 앞에 무력했다. 조선이 의지했던 중국은 영국에 의해 무참히 무너지고, 우리가 무시하던 일본이 조선을 장악해가는 상황 속에 조선은 영적 대혼란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 시기가 조선에겐 대부흥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고 이 기간 복음의 전파는 가뭄에 메말라 갈라지는 땅에 단비가 내리는 듯한 기쁨이 되어졌다. 일본의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는 당시의 조선의 기독교의 대부흥운동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한국은 정치적 자유와 독립을 잃었지만 심령적 자유와 독립은 획득하고 있고 하나님은 한국에 군대를 보내지 않았지만 성령을 보내셨다. 옛날 유대가 정치적 자유와 독립을 잃었지만 종교에 의하여 서양을 복음화한 것처럼 한국은 새로운 복음을 접하고 동양의 중심이 되어 동양을 복음화 하는데 공헌을 기대하고 있다."


 중국의 기독교의 역사 또한 모택동이란 강력한 지도자의 문화혁명의 탄압 속에서 초원에 자라는 풀들처럼 성장했음을 중국의 기독교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현재 중국은 1억5천의 선교중국으로 발돋움해 가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종교를 아편으로 취급하면 기독교에 대한 심한 박해 속에  누가 기독교의 부흥이 일어 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겠는가? 모택동의 중국문화의 파괴와 국민에 대한 강력한 억압은 중국인들을 영적 공허감으로 몰아넣었다. 반면 천국 소망을 가진 의연한 기독교인들의 복음과 삶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공허를 충족해주시기 충분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다만 그들에게 부요한 환경을 조성해주지 않는다. 종종은 그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환란과 고통 가운데로 들여보낸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영적 공허함과 갈급함을 갖게 하시고 주님께 돌아오도록 인도하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최상의 비전은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히말라야 피어있는 들꽃, 티베트. 이들은 너무 오랜 세월 티베트불교란 제정일치를 통해 주님께 나오지 못하게 하는 영에 묶여 있었다. 이들 가운데 추수할 일꾼들의 발걸음이 끊어진 적이 없으나 달라이 라마를 중심한 시스템 제정일치의 속에선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나님께선 결국 이들에게 자신이 믿던 종교의 한계성과 정치적 억압이란 환경 속에서 축복의 기회를 여시려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외몽골은 기독교의 인구가 5%이다. 이 놀라운 부흥이 있기 위해선 티베트와 동일했던 제정일치의 사회체제의 붕괴를 하나님은 만드셨다. 몽골은 사회주의체제 속에서 예전의 티베트불교의 종교적 끈이 끊길 수 있었다. 그리고 몽골의 사회체제의 붕괴이후 정치적 공허감까지 커지면서, 절대적인 진리인 복음 가운데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티베트가 중국의 소수민족이 되어진 데는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티베트민족을 향한 심판의 계획이 아닌 축복의 계획일 것이다. 티베트민족이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있으면서 티베트불교와의 영적인 끈이 많이 분리되어졌다. 또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받는 압박 속에 영적, 정신적인 공허감이 많이 팽배해 있다. 2008년 3월 에 있었던 라싸에서의 티베트사태는 티베트인의 상태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이다. 현재 티베트를 향한 수많은 중보기도와 선교사역이 진행되어지고 있다. 중국 내의 티베트와 북인도의 티베트, 네팔과 부탄 안의 티베트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수많은 무명의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복음 가운데로 돌아온 현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도 진행되어지고 있다. 현재 티베트의 복음화는 100년 전의 언더우드 선교사가 조선을 보며 고백했던 '뵈지 않는 조선의 마음"과 같은 상황이지만 분명히 주님의 비전, 티베트의 복음화에 대한 소망의 확신이 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심으셨습니다.
   ……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티베트민족은 ‘차마고도’에서 본 모습과 같이 기도에 열심인 민족이다. 이들이 주께 돌아오면 세계복음화를 위한 강력한 중보기도의 민족이 될 것이다. 또한 이들은 전사(戰士)민족이다. 그들은 7세기에 남한의 20배가 넘는 거대한 영토를 통일한 유목민족이다. 또한 그들의 역사 속에서 티베트인들의 용맹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도 티베트의 캄족의 용맹성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이들이 음식문화와 의류문화, 주거문화를 보면 얼마나 이동성이 쉬운 민족인가를 알 수 있으며, 그들의 역사는 이들이 전사의 민족임을 확인 시켜준다. 티베트민족이 예수 안에서 회복되어지면 복음 전파를 위한 강력한 영적 전사의 민족이 될 것이다.                 
 
 티베트민족은 수세기동안 영적 어둠 속에서 헤매며 살아왔다. 참 복음이 아닌 티베트불교의 영적 묶임 속에 자유 없이 살아왔다. 그들의 역사 속에 기독교의 선교역사는 짧은 편이 아니었으나 제정일치의 봉건적 사회제도 안에서 선교의 한계가 있었다. 하나님의 가장 큰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구원이다. 종종 복음을 받을 준비를 위한 국가적 민족적 위기를 겪게 되며, 그것이 당시에는 가장 절망이지만 복음을 통해 절망을 터널을 빠져 나올 때 그 순간이 주님의 축복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이 시점의 중국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티베트의 고통과 슬픔은 이 민족을 위한 주님의 축복을 위한 시간이다. 주요한 것은 이들이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티베트민족에게 나아갈 전도의 일꾼과 또한 이 민족의 부흥을 위해 기도해줄 중보기도자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들의 헌신이 있다면 주님은 그들의 헌신을 통해 티베트민족을 축복의 민족으로 회복시킬 것이며, 그들을 차세대 선교사역의 주체로 일으키실 것이다. 절망의 순간이 기회의 시간일 수 있다. 정말 이들을 복음화를 위해 수많은 주의 일꾼들이 일어나길 소망한다.

 

|출처:선교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