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자 曾子
BC 505~436경.
중국의 철학자. 이름은 삼(參).
자는 자여(子輿).
공자의 문하생이며 〈대학〉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대학〉은 〈예기〉의 한 부분이며 4서(四書) 가운데 하나로, 그는 여기에서 유가의
덕목인 충(忠)과 서(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유가에서 강조하는 '효'를 재확립하는 데 힘썼는데, "부모를 기리고,
부모를 등한시하지 않으며, 부모를 부양한다"라고 하여 효를
3단계로 열거했다.
환공 桓公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군주(BC 685~643 재위).
성은 강(姜), 이름은 소백(小白). 제 양공(襄公)의 동생이다.
양공 치세에 정국이 어지럽자, 소백은 화를 피하기 위해 거지방으로 도망갔다가 양공이
피살된 후 돌아와 정권을 잡았다.
관중(管仲)을 등용하여 개혁을 진행하고, '존왕양이'(尊王攘夷:왕을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침)를 호소했으며, 연(燕)나라를 도와 산융(山戎)을 정벌했다.
형(邢:지금의 싱타이[邢臺])과 위(衛:지금의 치 현[淇縣])의 두 나라를 도왔고,
오랑캐의 중원 침략을 막았다.
중원의 제후들과 연합하여 초(楚)나라를 공격한 뒤, 소릉(召陵)에서 맹약을 맺었다.
또한 동주(東周) 왕실의 내란을 안정시켰다.
여러 차례 제후들간의 동맹을 체결하여 맹주로서의 위신을 세워 춘추시대의 첫 번째
패왕이 되었다.
문공 文公
BC 673~628.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군주(BC 638~628 재위)로 춘추5패(春秋五覇)의 하나.
이름은 중이(重耳).
진 헌공(獻公)의 아들로, 헌공이 어린 이복동생을 후계자로 바꾸는 바람에 국외로 도망가
19년을 보냈다.
나중에 진(秦)나라에서 돌아와 즉위했다.
정치기강을 바로잡고 군대를 확충하며 통치에 전념해 국력을 증강시켰다.
BC 635년 군대를 보내 주(周) 왕실의 내란을 평정하고 주 양왕(襄王)을 모셔다
복위시키고 '존왕'(尊王)을 호소하면서 정치위신을 수립했다.
이후 제(齊)·진(秦)·송(宋) 등의 나라들과 연합해서 초(楚)와의 패권을 다투었다.
BC 632년 성복회전(城?會戰)에서 초나라 군대에 크게 승리했다.
그해 겨울 천토(踐土: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잉양[滎陽]의 동북 지역)에서 많은 제후들을
모아놓고 패주(覇主)가 되었다.
'역사의 숨결 > 역사(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주周 ( BC770~BC221 ) 전국시대 - 조, 제, 위, 연 (0) | 2009.05.31 |
---|---|
중국 주周 ( BC770~BC221 ) 전국시대 - 한, 초, 진 (0) | 2009.05.31 |
중국 주周 ( BC770~BC221 ) 춘추시대 - 안영, 자산, 좌구명 (0) | 2009.05.31 |
중국 주周 ( BC770~BC221 ) 춘추시대 - 부차, 구천, 관중 (0) | 2009.05.31 |
중국 주周 ( BC770~BC221 ) 제10대 여왕, 제11대 선왕, 제12대 유왕 (0) | 2009.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