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 주周 ( BC770~BC221 ) 춘추시대 - 안영, 자산, 좌구명

지식창고지기 2009. 5. 31. 21:23

안영

?~BC 500.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정치가.

자는 평중(平仲).


BC 556년 아버지 안환자(晏桓子)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제나라의 대부(大夫)가 되었다.

영공(靈公)·장공(莊公)·경공(景公)을 섬겼으며 근검절약하고 힘써 노력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최서가 장공을 살해했을 때 장공의 시체 위에 엎드려 곡(哭)을 했지만 사람들의 신망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했다.

BC 517년 혜성이 나타나 두려워 떨고 있는 경공에게 사치를 삼가고 세금을 줄이고 형벌을

가볍게 하면 재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간(忠諫)했다.

이같은 충직한 성품 때문에 관중(管仲)과 함께 제나라의 명신(名臣)으로 일컬어진다.

안자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안자춘추 晏子春秋〉(8편)가 있다.

 

 

자산 子産

BC 585(?)~522(?).


중국 춘추시대의 정치가.


성은 공손(公孫), 이름은 교(僑). 자는 자산.

정(鄭)나라 목공(穆公)의 손자이며 자국(子國)의 아들이다.

BC 554년 정경(正卿) 자공(子孔)이 내란으로 죽은 뒤 경(卿)이 되었다.

BC 543년 백유(伯有)의 내란 이후 정경의 위치에서 난을 수습한 뒤, 죽을 때까지 정나라의

정치를 지배했다.

당시 정나라는 북방의 패자인 진(晉)나라와 남방의 패자인 초(楚)나라 사이에 끼여 고초를

겪었으나, 자산은 그의 박식과 웅변으로써 두 나라의 세력 균형을 이용하여 일시적인

평화를 누렸다.

 

진·초 두 나라에 대한 공납의 부담을 줄이는 한편 국내의 농지를 정리·개척하여 토지세를

징수함으로써 국가경제를 부흥시켰다.

또 국내 귀족의 항쟁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법률을 만들고 중국 최초의 성문법(成文法)을

완성했다. 

그는 전통적인 봉건적 통치에 대하여 법치주의에 의한 통치를 실현했다.

자산은 유능한 정치가·외교가일 뿐만 아니라 합리주의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종래의 구복(龜卜)과 무사(巫師) 등을 통해 하늘의 뜻을 받들어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데서 탈피해 법을 토대로 하여 합리주의적으로 국가를 통치했다.

이 합리주의 사상은 이후 공자의 원시유교에서 주장한 인간 자각의 선구가 되었다.

 

 

좌구명 左丘明

?~?


중국 춘추시대(BC 770~476) 노(魯)나라의 태사(太史).

공자가 〈춘추 春秋〉라는 사서를 엮어서 제자들에게 전했는데, 좌구명은 제자들이 각자

말을 달리하는 것을 보고 공자의 참뜻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하여,

〈춘추좌씨전 春秋左氏傳〉 30권을 저술하여 〈춘추〉의 본뜻을 밝혔다고 한다.

좌구명이 공자와 호오(好惡)를 같이했다는 기록을 〈논어〉 공야장(公冶長) 편에서 볼 수

있으나, 그의 사적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분명하지 않다.

〈논어〉에 나오는 좌구명이 〈춘추좌씨전〉의 작자와 같은 인물이라고 전해지지만,

이 역시 진실여부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