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 주周 ( BC770~BC221 ) 전국시대 - 한, 초, 진

지식창고지기 2009. 5. 31. 21:29


중국 전국시대(BC 475~221) 7웅의 하나.


개국군주 한경후(韓景侯 : 이름은 虔)는 춘추시대 진(晉)의 대부 한무자(韓武子)의 후손이다.

한건은 위사(魏斯)·조적과(趙籍瓜)와 진을 나누어 차지한 뒤, BC 403년 주(周)

위열왕(威烈王)에 의해 제후로 봉해졌으며, 도읍을 양적(陽翟 : 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위현[禹縣])에 세웠다.

전국시대 초기에 한은 위·조와 연합하여 중위안[中原]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갔다.


BC 375년 한의 애후(哀侯)가 정(鄭)을 멸하고 신정(新鄭 : 지금의 허난 성에 속함)으로

도읍을 옮겼다.

영토는 지금의 산시 성[山西省] 동남부와 허난 성 중부를 차지했다.

서쪽으로는 진(秦)·위(魏), 남쪽으로는 초(楚), 남동쪽으로는 정, 동쪽으로는 송(宋)과

이웃하고 있었다.


전국시대 중기의 진과 제(齊)가 대치국면을 형성한 뒤, 중위안에 위치한 한나라의 땅은

두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BC 294년 진이 한을 공격했으며, 이듬해 이궐(伊闕)의 전투에서 한·위 연합군이 진에게

패배했다. 

이후 한은 계속 진에게 잠식되다가 BC 230년 진에게 멸망당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강성했던 열국(列國) 가운데 하나(BC 771~221).


춘추전국시대말부터 20세기초까지 중국을 유지시킨 국가체제의 원형을 만든 나라의 하나였다. 

BC 8세기초 역사에 등장한 초는 그당시 중원(中原)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남만(南蠻)이라

불리던, 지금의 후베이 성[湖北省] 부근 남중국 양쯔 강[揚子江] 계곡의 토지가 비옥한

지역에 자리했다.


중원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후난 성[湖南省] 지역 대부분을

점령했고, 일반 백성들도 중국의 말과 관습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당시 중국은 나라 전체가 수많은 작은 제후국들로 분할되어 있었고, 주(周)나라의

천자(天子)는 작은 직할영지를 제외하고는 제후국에 대한 모든 지배권을 이미 오래 전부터

상실한 상태였지만, 제후들은 아직도 형식적으로는 천자를 받들고 있었다.

초는 이같은 관례에서 벗어나 왕호를 사용함으로써 명목으로나마 존재하던 주나라의

종주권을 완전히 제거해버린 최초의 국가였다.


초는 급속히 중원진출을 시도했지만, BC 7세기에 열국들이 초에 흡수당하지 않기 위해

연합하여 대항함으로써 그것은 일시 중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는 그후 400여 년 동안 패권을 다투는 강국의 위치를 계속 유지했다.

BC 3세기에 초는 동부의 제(齊)와 서부의 진(秦)과 함께 마침내 다른 작은 나라들을 모두

병합하고 패권을 쟁취하기 위한 마지막 투쟁을 필사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결과 초는 BC 223년 멸망했고 2년 후 진이 중국을 통일했다.

천하통일 후 불과 15년 만에 진이 붕괴하자, 초의 귀족출신인 항우(項羽)가 이끄는

반란군은 옛 초나라의 왕족을 중국의 새로운 황제로 옹립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초나라는 항우가 휘하의 장군이었던 유방(劉邦)에게 패할 때까지 겨우

몇 개월간 존속했을 뿐이다.

그후 유방은 한(漢:BC 206~AD 220)나라를 세웠다.

 

 


중국 최초의 대제국(BC 221~206).


진은 중국의 대체적인 국경선을 확정짓고 그후 2,000년간 이어진 기본적인 행정체계를 확립했다.

통일제국 진은 BC 771~221년 중국에 분립한 여러 소제후국들 중 하나인 진(秦)에서

발전한 나라였다.

진은 이 소제후국들 가운데 비교적 한화(漢化)되지 않은 나라였으며 매우 호전적이었다.

진은 전략적 요지인 웨이수이 강[渭水] 유역을 점령했다.


BC 3세기 중반에서 BC 2세기말 사이에 진국공(秦國公)은 전국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되는

엄격한 법률체계를 만들고 전국에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다스리는 군·현을 설치하는

등 권력을 집중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러한 개혁을 바탕으로 서서히 주변국가들을 정복하고 강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BC 247년 어린 영 정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재상인 이사(李斯)와 함께 정복사업을 완성하고 BC 221년 진 제국을 세웠다.

또한 스스로를 시황제(始皇帝)라고 칭하고,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엄격하고

권위주의적인 정치를 폈다.

서체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도로를 정비하였으며, 만리장성을 쌓았다.

BC 213년 국가에 대한 비판적인 사상들을 없애기 위해 의서(醫書)와 같은 실용적인

서적들을 제외한 모든 서적을 불사르게 했다(분서갱유).


이러한 가혹한 조치에다 전쟁과 건설에 드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과중한 세금이

부과되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피폐해졌다.

결국 BC 210년 시황제가 죽은 후 반란이 일어나 BC 206년 진은 멸망하고

한(BC 206~AD 220)이 창업되었다.


진대에는 2개의 대규모 토목사업이 있었다.

하나는 만리장성으로 기존의 여러 짧은 성들을 연결시켜 만든 것이었고,

또 하나는 거대한 궁전인 아방궁(阿房宮)으로 그 안에 면적 450㎡의 강당이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예술적 기여는 당시 형성되기 시작한 한자의 서체를 단순화하고

통일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