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 주周 ( BC770~BC221 ) 전국시대 - 조, 제, 위, 연

지식창고지기 2009. 5. 31. 21:32


고대 중국의 봉건제후국.


전국시대(BC 475~221) 7웅(七雄) 중의 하나이다.

BC 403년 조나라를 세운 조적(趙籍)과 위(魏)·한(韓)의 지도자들은 진(晉)나라를 나누어 가졌다. 

조나라는 산시 성[山西省] 북동부와 중부 및 허베이 성[河北省] 남서부 방면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또한 제(齊)·위의 일부 영토를 빼앗는 등 한때 번영을 구가했으며, 그후 진(秦)과 겨룰 만한

가장 강력한 적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BC 260년 진에 의해 패배했다.

5만 명에 달하는 군사들이 전투에서 죽었으며, 약 40만 명의 병사들이 진군(秦軍)에게

포위되어 학살당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BC 771경~221)에 넓은 영토와 강대한 세력을 가졌던 나라.


BC 7~6세기 지금의 산둥 성[山東省]과 허베이 성[河北省]이 있는 화북평야에 있던

제는 많은 이민족지역을 합병하여 영토를 적어도 6배 이상 넓히면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전설적인 군주인 환공(桓公)과 그의 유명한 신하 관중(管仲)이 다스리는 동안 균등한

조세제도를 시행하고 군대를 창설했으며, 소금과 철을 국가가 독점 생산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세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능력을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적 관료제도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가 제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이 모든 제도를 완전히 확립한 것은

제가 처음이었으며, BC 651년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모아 동맹을 결성하여 북쪽의

산융(山戎)을 몰아내고 남쪽 초(楚)의 확장을 저지했다.

그결과 제는 중국의 패권을 장악했지만 그 지배는 오래가지 못했다.


환공이 죽은 뒤 국내에서 혼란이 일어나 새로 결성한 동맹의 주도권을 잃어버렸으며,

그동안 다른 나라들도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BC 4세기에 새로운 통치자가 나타나 다시 한번 중국 정치를 지배하는 주요세력이 되었고,

BC 3세기초에는 패권을 되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때부터 국세가 기울기 시작해 BC 221년 마침내 진(秦)이 제의 나머지 영토를 흡수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하에서 중국 전역을 통일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BC 770~ 221)의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


지금의 중국 중북부 산시 성[山西省]에 자리잡고 있었다.

위는 본래 BC 661년에 인접해 있던 진(晉)나라가 병합한 종속국이었다.

진은 BC 403년에 정식으로 3개의 작은 나라인 위·한(韓)·조(趙)로 분할되었다.

이후 위는 전국시대(BC 475~221)에 7웅(七雄)의 하나로 성장했으며,

BC 4세기 전반에는 인접한 나라들과 싸움을 계속했다.

몇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강대국이 되었으나, BC 341년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자 곧 쇠퇴하기 시작했다.

BC 225년 진(秦)나라에 의해 정복되어 곧 합병되었다.

 

 


BC 11세기 중국 서주(西周)시대의 봉건 제후국.


지금의 허베이 성[河北省] 북부와 랴오닝 성[遼寧省] 서쪽 끝에 있었다.

통치자의 성은 희(姬)이며 시조는 주 무왕(武王)의 동생 소공석(召公奭)이다. 수도는

 계(지금의 베이징[北京] 서남부)였으며, 전국시대에는 7웅(七雄)의 하나가 되었다.

연왕 쾌가 재위하던 기간에는 내란으로 인하여 제(齊)나라의 공격을 받았다.


소왕(昭王)이 재위하던 시기에는 조(趙)나라 출신의 악의(樂毅)가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군을 지휘했다.

이때 진(秦)·한(韓)·위(魏)·조·연의 5국은 연합하여 제나라의 70여 개 성을 공략했다.

연나라 장군 진개(秦開)는 동호족(東胡族)을 대파하여 북동쪽으로 영토를 확대했으며,

상곡(上谷)·어양(漁陽)·우북평(右北平)·요동(遼東)·요서(遼西) 등의 군(郡)을 설치하여,

한때 북방지역에서 크게 세력을 떨쳤다.


소왕이 죽자 악의는 혜왕(惠王)의 시기를 받아 조나라로 도망갔고, 그후 오래지 않아

연나라는 제나라의 공격을 받아 패했다.

그후 연은 다시는 세력을 떨치지 못했다.

BC 228년 진의 군대는 한을 멸하고 조를 공략한 다음, 이수이 강[易水]까지 진격해왔다.

연은 위급하게 되자 태자 단(丹)이 자객 형가(荊軻)를 보내 진왕(秦王) 살해를 기도했지만

실패했다. 

BC 226년 진이 연의 수도를 함락시키자 연왕 희(喜)는 수도를 요동으로 옮기고 태자 단을

죽여서 진에게 화해를 구했으나, BC 222년 연은 끝내 진에 멸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