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 주周 ( BC770~BC221 ) 제자백가 - 주례, 도덕경, 효경,

지식창고지기 2009. 5. 31. 21:36

주례 周禮


유가의 9경·12경·13경에 속하는 고대의 예법에 관한 3권의 책 가운데 하나.

〈주관 周官〉이라고도 한다.

나머지 2권은 〈의례 儀禮〉·〈예기 禮記〉이다. 예부터 주공(周公:BC 12세기)의

저술로 간주되어왔으나 현대 학자들은 이 책이 BC 300년경에 무명의 이상주의자가

휘찬(彙撰)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수세기 동안 〈주례〉는 〈예기〉와 합쳐져 6경에 포함되었다.


〈주례〉는 유가 사상뿐만 아니라 법가 사상의 영향도 받았다.

천관(天官)에서 통치 일반을, 지관(地官)에서 교육을, 춘관(春官)에서 사회적·종교적 제도를,

하관(夏官)에서 군사를, 추관(秋官)에서 법무를, 동관(冬官)에서 인구·영토·농업을 다루었다.

12세기에 오래전에 유실된 〈악경 樂經〉 대신 6경에 포함되면서 특별한 평가를 받았다.

〈주례〉가 한국에 전래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이미 삼국시대에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주례〉는 고려시대에 주요 유교경전의 하나로서 국가 교육기관의 공식과목으로

채택되어, 1109년(예종 4) 국자감(國子監)에 설치된 7재(七齋) 중의 하나인

구인재(求仁齋)에서 전강(專講)되었다.

〈주례〉가 불교와 도교에 맞서는 유학의 윤리와 경세사상을 담고 있는 까닭에,

고려 말기에 성리학이 발흥하면서 성리학자들 사이에 〈주례〉를 중시하는 경향이

일어났다. 

조선왕조 개창에 핵심적 역할을 한 정도전(鄭道傳)은 〈조선경국전 朝鮮經國典〉에서

〈주례〉의 6관제도(六官制度)를 기본 모델로 하여 조선왕조의 통치규범을 제시했다.

그뒤 〈주례〉는 세종 때 16책으로 간행되어 일반에 널리 보급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새로운 사상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지면서 몇몇 학자에 의해

〈주례〉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윤휴(尹)는 〈주례〉를 연구하여 〈주례설 周禮說〉을 지었으며, 정약용(丁若鏞)은

〈주례〉에서 국가 기구의 원형과 어린도법(魚鱗圖法)의 연원을 구했다.

 

 

도덕경 道德經


중국의 고대 철학서.


〈도덕경〉이라는 이름은 한대(漢代:BC 206~AD 220)에 처음 사용되었으며,

그때까지는 이 책의 저자로 여겨지는 노자(老子)의 이름을 따서 〈노자〉라고 했다.

중국 최초의 위대한 역사가인 사마천(史馬遷)은 노자가 BC 6세기에 주(周)나라 조정에서

장서를 관리하는 사관(士官)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노자는 도가의 창시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도가는 도(道)를 강조한 여러 학파들

중에서 유일하게 '도가'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노자는 오랫동안 〈도덕경〉의 저자로 알려져왔지만, 이러한 믿음은 19세기에 들어와

크게 흔들리게 되었고 일부 학자들은 이 철학자의 실존 여부를 의심했다.

〈도덕경〉을 누가 썼느냐 하는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게다가 〈도덕경〉에는

이 책이 씌어진 연대를 알려주는 단서가 될 만한 다른 저서나 인물, 사건이나 장소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저술 연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BC 8~3세기에 걸쳐 폭넓게 퍼져 있다.


〈도덕경〉은 온통 혼란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나라에 다시 화합과 평안을 가져오기

위한 삶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는 지배층의 무절제한 낭비를 비판하고, 유교윤리의 특징인 추상적

도덕주의와 형식적인 예의에 바탕을 둔 사회적 행동주의를 경멸했다.


〈도덕경〉에서 말하고 있는 '도'는 이해하기 어렵고 신비주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어왔으며, 철학과 종교의 기본개념이 되어왔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도의 이론은 다음과 같다.

본질적으로 도는 '무위'(無爲)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위는 자연스러움, 즉 모든 일이

본성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불간섭('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면 도가 도전받지도 않고 도전하지도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기

때문에, 혼란은 끝나고 싸움도 끝나며 독선적인 불화도 사라진다.

도는 하늘이나 땅보다 먼저 존재했고 무궁무진하고 인위적이지 않으며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나 도로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나온다.

백성에게 '도'의 원리를 가르치면, 통치자는 모든 불평불만의 원인을 제거하여 나라를

지극히 평온하게 다스릴 수 있다.


〈도덕경〉의 인기는 엄청나게 많은 주석서가 잘 나타내주고 있다.

중국어로 씌어진 주석서는 350권이 넘고 일본어로 씌어진 것도 약 250권이나 된다.

1900년부터 지금까지 40권이 넘는 영역본이 출판되었다.

 

 

효경 孝經


유교 경전의 하나.

공자(孔子)와 증자(曾子)가 효도에 관하여 문답한 것을 기록한 책으로 13경(十三經) 중의

하나이다. 

저자에 대해서는 공자가 지었다는 설, 증자가 지었다는 설, 증자의 제자들이 집록(輯錄)

했다는 설 등 여러 가지가 있어 확실하지는 않으나 증자 문인들의 저술로 보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대개 진(秦)의 분서갱유 때 안지(顔芝)가 보관하고 있던 것을 한(漢)대에 그의 아들 정(貞)

이 펴낸 〈금문효경 今文孝經〉과 공자의 옛 집을 헐 때 발견된 〈고문효경 古文孝經〉의

2가지가 있는데, 〈고문효경〉에 규문장(閨門章)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내용에

큰 차이가 없다.


이 책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바탕으로 집안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 치국(治國)의

근본이며, 효도야말로 천·지·인(天地人) 3재(三才)를 관철하고 모든 신분계층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최고덕목·윤리규범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한국·일본 봉건사회에서 '효'가 통치사상과 윤리관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필수교과목으로 중시했으며,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여러 차례 간행하여 보급했다.

주석서로는 한대의 정현(鄭玄)·공안국(孔安國)이 각각 〈금문효경〉·〈고문효경〉에 주를

붙인 것이 있고, 이밖에도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어주효경 御注孝經〉,

송나라 진종(眞宗) 때의 〈효경정의 孝經正義〉, 주희(朱熹)의 〈효경간오 孝經刊誤〉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