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원(中國庭園)
먼저 中國庭園에 대한 짤막한 소개로 중국정원을 이해한 후 준비한 주제를 말하고자 한다. 중국 고대의 정원예술은 중문 문화에 있어 한 송이 아름다운 꽃과 같다. 중국 각지에 현존하는 고대의 정원은 아름다운 풍경과 특이한 건축으로 중국과 외국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중국 고대 정원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했다는 점이다. 고대 정원 설계가들은 정원을 만들 때 대장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인조정원과 절묘하게 융합시켜 그 안에서 대자연의 기이한 봉우리, 특이한 돌, 흐르는 물, 호수의 수면, 이름난 꽃, 아름다운 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마치 그림 속에서 노니는 것과 같이 표현했다.
中國 故代庭園의 구도는 함축과 변화, 굴곡의 특징을 지닌다. 정원의 길은 구불구불하면서도 아늑하다. 풍경 속에 풍경이 있으며 발걸음을 뗄 때마다 펼쳐지는 경관이 중시됐다. 정원 내부의 건축은 자연 풍경과 하나로 융합되고, 건물 외관이나 양식도 변화가 다양해야만 한다. 정원에 핀 화초와 나무는 높낮이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4계절 내내 자태를 뽐낸다.
중국 고대 정원의 또 다른 특징은 詩畵예술과 정원이 절묘하게 하나로 융합 된다는 점이다. 정원 建築物에 걸에 걸린 편액, 기둥에 쓰여진 대련, 기둥에 그려진 그림, 대들보의 조각 등은 중국 고대 정원예술의 독특한 풍격을 이뤘다.
中國 古代의 정원은 대체로 北方의 皇室庭園과 南方의 個人庭園의 두 종류로 나눌수 있다. 北方의 皇室庭園은 종종 산이나 호수에 직접 건축됐고, 각 지역 건축의 정수가 집중돼 있다. 황색의 유리기와, 주홍색의 화랑의 기둥, 순백색의 옥돌로 조각한 난간, 정교하게 새긴 대들보, 그림이 그려진 기둥은 모두 색책가 화려하며 아름답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명한 皇室庭園에는 北京의 頤和園과 北海公園, 承德의 避暑山莊 등이 있다. 南方의 個人庭園은 대부분 蘇州와 南京, 杭州, 楊州 일대에 건축됐다. 蘇州의 拙政園과 留園, 無錫의 寄暢園, 楊州의 開園 등이 개인 정원이다. 개인정원은 비록 면적이 넓진 않지만 건축가의 절묘한 배치로 정원안에는 산과 물이 있고 경물이 변화무쌍해 자연스럽고도 고요하다.
承德의 避暑山莊- 현존하는 중국의 가장 큰 황실정원, 아름다운 경치와 시원한 날씨로 피서를 즐기기에는 좋은 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蘇州의 拙政園- 소주에서 가장 큰 개인정원으로, 주요 건물들이 물가에 세워져 있어 자연스럽고 우아하며 풍격이 독특하다. 蘇州의 留園, 北京의 頤和園, 承德의 避暑山莊과 더불어 중국의 4대정원으로 꼽힌다.
無錫의 寄暢園- 남방의 이름난 개인정원으로, 頤和園의 정원도 이곳의 건출양식을 모방했다. 청나라 乾隆皇帝가 이곳을 너무 좋아해 자주방문했다고 한다.
北京의 北海公園- 900년 역사를 지닌 북경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元나라때에는 궁전이었던 것을 明․淸시기에 황제의 정원으로 사용했다.
頤和園
頤和園(이허위안)- 世界文化遺産으로 登載된 中國北京地區 最大 皇室園林 北京市 北西부에 자리한 頤和園은 북경지구에서 지금까지 규모가 제일 크고 가장 완전하게 보전된 황실원림이며 중국 고전원림의 본보기로 손꼽힌다. 頤和園은 크게 萬壽山과 昆明湖로 이루어져있는데 萬壽山의 본명은 甕山이었고 북경 서산의 지맥으로 실은 높이가 60m도 안되는 작은 산이다. 그리고 昆明湖는 옥천산의 샘물이 흘러 甕山 앞에서 호수를 이룬 것이고 북경시구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이곳은 일찍이 12세기부터 金代의 장종이 이곳에 행궁을 지었고 몇 明代에 원정사, 호산원행궁을 건조하기도 했다. 특히 18세기 건륭제에 이르러서는 統治政權의 안정과 더불어 고전원림 건축은 역대 왕조의 조원 실천을 거치고 역대의 예술성과 승계 및 종합함으로써 그 수준이 최고에 이르렀고 황실원림의 건설도 전성기에 들어섰다. 1750년 건륭제는 생모 뉴후루씨의 효성 황태후의 환갑을 기념하여 청의원을 건조하도록 하였는데 공사기간만 15년이 걸렸으며 중국 북방원림의 웅대한 기상을 사렸을 뿐만 아니라 江南庭園의 수려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겸비하였다고 평가받았다. 또한 북경시구 북서구쪽 교외의 황실원림을 한데 이어놓아 하나의 완전한 원림 시스템을 구성함으로써 유명한 3산 5원, 즉 창춘원,
이화원은 규모와 풍경이외에 상당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곳이었다. 이화원의 가부분을 기능에 따라 정치활동구역, 황제 황후생활구역, 궁경유람구역 등 3개구역으로 나뉘었다. 특히 정치활동구역은 청대말기 많은 중대사가 모두 이곳에서 결정되었다.
이화원은 규모가 방대하고 풍경이 수려하기로 널리알려져 있으며 서산의 뭇 산봉을 차경으로 하고 건축군과 원내의 산과 호수를 일체화함으로써 경치가 변화무쌍하다.
이화원은 중국이 창건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있다. 1951년부터 중국은 여러차례에 걸쳐 자금을 투입하여 보수작업을 행함으로써 황실원림의 우우한 경관 배치가 재현되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이리하여 1961년 중국 국무원은 전국 중요문화재 보호대상으로 공포하였으며 1998년 이화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北海公園
中國 北京의 故宮 서쪽에 위치한 皇帝의 宮園이다. 北海를 중심한 北海公園은 바다라 부르기는 하지만 바다가 아니라 아름다운 인고호수다. 面積은 72만㎢ 이다. 北京에서 가장 오래된 900년 歷史를 지닌 公園으로 1925년에 開園했다. 北京市內의 十代 公園으로 꼽히고 있다. 元나라까지는 宮殿이던 것을 명청대에 이르는 皇帝의 庭園으로서 사용했고 元代 이래 王宮의 庭園으로 開放한 것이다.
十代 公園
넓은 정원 안에는 5개의 인공 호수가 있으며 경도 북쪽은 호수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이 세워져 있고 남쪽에는 단성이 있다. 호수 전체는 고대신화 선경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 북해공원은 ꡐ연못 하나에 산 셋ꡑ의 구조를 모방해 조선됐다.
북해는 북경 서쪽 교외에 있는 玉泉山에서 솟는 샘물을 끌어서 만든 인공호수로 그 규모가 자금성에 필적한다. 北海외에 中海․南海 및 什刹海 등 인공호수가 남쪽과 북쪽으로 이어지고, 북해에는 라마교의 白塔이 있는 인공섬인 瓊島이 있다. 瓊島는 아름다운 옥과 같다해 瓊華島라고 불리는데 금의 군대가 북송의 수도(지금의 開封市)를 무너뜨리고, 그 동북쪽에 있는 艮嶽에서 이름난 돌을 구해 북경으로 가지고 돌아와 그것을 기원한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북송의 수도 함락은 1126년의 일이었다. 섬에 라마교의 백탑이 세워진 것은 청의 順治 연간(1644~1661년)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섬이 완성되고도 500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그러나 이곳은 서민들에게 금지된 땅이었기에 이곳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모두 궁정인들에게 얽힌 일들이었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화려하게 색칠한 배를 타고 한가롭게 뱃놀이를 즐겼다. 허나 겉으로는 한적하게 보였을지 몰라도 머릿속으로는 바쁘게 음모를 꾸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白塔- 北海公園에서 한눈에 보이는 라마사원의 하얀탑으로 보여 白塔山이라 부르기도 하며, 1651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지진으로 붕괴됐고 그 후 다시 지어졌다. 한편, 멀리서는 제법 눈길을 끌고 신비감을 주는데 가까이 가면 벽돌로 쌓고 백회를 바른 몸체가 워낙 커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고, 더욱이 원추형으로 올라간 탑의 모습을 가까이서는 볼 수가 없어 아쉽다고 한다.
북해는 4인방 시대에는 폐쇄됐던 곳이지만, 지금은 개방돼 일반인들이 찾아갈 수 있는 명소가 됐다. 겨울이 되면 북해는 얼어붙는다. 18세기 청대의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이 쇠이빨이 붙은 구두를 고 얼음 위를 달렸다는데, 아마도 지금의 스케이트와 비슷한 것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중국의 스케이트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해가 고궁 바깥에 있었다 해도 皇城안에 있었기에 일반인들은 출입할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린 아무리 스케이트 역사가 오래됐다 해도 북해의 스케이트는 일부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스포츠였을 것이란 것 추측할 수 있다.
4인방- 江靑, 王洪文, 張春橋, 姚文元
한편, 섬으로부터 배로 서북쪽으로 건너서 조금만 가면 흙담에 둘러싸인 일각에 九龍壁이 있다. 이 구룡벽은 고궁 황극문 내의 구룡벽과 함께 유명하다. 북해공원의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는데 공원 남문입구 근처에 위치한 團城이다. 단성이란 環狀線을 따라 이어진 예전의 성벽 중 일부인데 볼만한 가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옥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玉甕도 있다.
宅第園林
宅第園林은 宮苑園林과 달리 황실이외에 발달한 원림을 일컫는 말이다. 宅第園林은 ꡒ천하의 원림은 강남에 있고 그중 소주의 정원이 가장 으뜸이다ꡓ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소주의 4대 원림은 宅第園林의 대표 할 수 있다. 그럼 소주 4대 원림 또는 四大名園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蘇州園林은 蘇州市에 위치한 크고 작은 정원지대를 통틀어 ꡐ蘇州園林ꡑ이라고 하며 남방 조림건축 예술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보통 정원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으나 그 안에 작은 산을 만들고 못을 팠으며 각종 수목을 재배하여 최대한 자연 풍치에 가깝도록 만들어 졌다. 蘇州園林 가운데 특히 저명한 것으로는 滄浪亭, 獅子林, 拙政林, 留園 의 四大名園 等이다.
이들 각각은 宋, 元, 明, 淸 時代의 建築樣式을 代表하고 있다
滄浪亭
宋시대 가장 대표적 정원이다. 蘇州에는 四大 名園이 있는데, 이 滄浪亭은 그 4대 명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약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집니다. 면적은 약 1ha로, 규모는 작지만 세련된 배치와 구조에 대나무가 잘 어울린다. 취령롱(翠玲瓏), 화창(花窓), 청향관(淸香館), 명도당(明道堂)이나 500명의 석각이 있는 오백명람사(五百名覽祠) 등이 유명하다. 滄浪이라는 이름은 屈原의 시 어부사(漁父詞)에 나오는 滄浪之水에서 따온 말이며 원래 滄浪亭은 오대 오월 광릉왕(光陵王)의 개인 정원이었는데 북송 때 시인 소순흠(蘇舜欽)이 이 정원을 사들여 물가에 滄浪亭이라는 정자를 지은 데서 정원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蘇州의 다른 정원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세련된 배치와 대나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獅子林
元시대 가장 대표적 정원이다. 元말기 1342에 조성된 대표적 정원으로 당시의 천여단사와 그의 제자가 그들의 선생인 중봉단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원이다. 원래 중봉선생이 절강 천목산에 살았고, 원내에 사자모양을 한 바위가 많아서 이름을 사자림이라 지었다. 정원의 전 면적이 약 1헥타 아르로 영롱한 태호석으로 이루어진 石仮山이 그 중 가장 유명하다. 이 산은 정원의 반을 차지하는데, 정원의 구조를 보면 남동쪽이 산이고 북서쪽이 연못으로 되어있다. 또 정원 둘레에는 회랑을 둘렀는데, 사면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위아래에 굴곡이 있고 회랑벽에는 67개의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宋代 4대 서예가인 소식, 황정견, 미비, 제양 등이 쓴 것이다. 또 문매각, 과폭정, 와운실,
拙政園
明시대 가장 대표적 정원이다. 蘇州 觀光이 核心이라할 수 있는 만큼 아름다운 정원이다. 北京의 頤和園과 承德의 避暑山莊, 蘇州의 留園 등과 함께 중국의 4대 명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면적은 약 5만 미터이며 그 가운데 3/5가 호수로 구성되어 있다. 拙政園은 원래당나라의 시민 육귀몽의 집이었다가 원대의 대광사로 바뀌었던 것은 명나라 때 왕현신이 중앙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칩거할 때 개축한 것이다. 拙政園이란 이름을 반악이 쓴 가운데 채소밭에 물을 주고 채소를 가꾸는 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위정이다.ꡑ라는 글귀가 있는데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留園
시내에서 4km떨어진, 蘇州 西北 留園거리에 위치해 있는 명대의 대표적인 정원이자, 소주 4대 정원중의 하나이다. 拙政園과 비슷한 시기인 1525년에 조성되었는데, 원래는 명대 한 관리의 사원으로 ꡐ동원ꡑ이라 불리다가 전쟁 중에서도 손실 없이 정원이 남겨지자 그 의미로 남을 留자를 써서 留園이라 改名됐다. 이후 1935년 정부에 의해 다시 손봐지고 어어 1961년에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留園의 총면적은 3핵타 아를로 동, 서, 중 세부분으로 나뉜다. 각각, 회랑, 자연경관, 진원풍경이라는 주제가 설정되어있는데, 그중 서원은 주로 토산으로 되어있고 산위에 단풍나무가 있으며 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회랑이 약 700m에 걸쳐있다. 또 소주원림 건축특색의 하나인 花窓이 留園內의 회랑에 각기 다른 모양으로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창문은 일종의 장식품일 뿐 아니라, 창문에 비치는 정원의 풍경들을 걸을 때 마다 시시각각 다른 그림으로 연출하면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 동원에 있는 관운봉은 한 덩어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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