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극과 문예
京劇 감상법
중국 전통 악극인 경극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중국 역사나 문학 작품에 나오는 유명인들이다. 예를 들어, 제갈량이나 조조, 양귀비와 측천무후, 또는 손오공 등 세인의 관심을 끌만한 역사의 주인공이나 풍운아들을 다루고 있다.
경극은 청나라 건륭제 시대 이후, 중국 각지에서 나름대로 발전을 거듭해온 360여 종류의 중국 전통 악극 중의 하나이다. 그래도 경극도 크게 북경 스타일과 상해 스타일로 나뉜다. 이를 각각 “경파(京派)”, “해파(海派)”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파는 연기자들의 기본기 훈련을 매우
엄격히 하면서 예술 규범 준수에 충실한 편이다. 이에 비해 해파는, 부단히 새로운 모습의 경극을 보여주려고 창의성을 강조한다.
중국의 전통 공연 가운데 최고로 자리매김한 경극의 한 장면입니다.
경극이란 영어로 <뻬이징 오페라>라고 번역하지요. 북경 지방에서 발전했기 때문인데, 거기에는 마오쩌뚱의 셋째 아내이자 문화혁명의 주역이었던 지앙칭이 한 몫을 했습니다. 그는 원래 배우 출신이었거든요.
검은 얼굴을 한 이는 정직하고 말수가 적은 인물이다. 또 자색 얼굴을 한 이는 침착하고 정의로운 역할을 맡은 것이고, 노란색 얼굴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인물을 뜻하며, 푸른색 얼굴 화장은 오만한 이를, 녹색 얼굴은 용감하지만 난폭한 사람으로 나온다. 끝으로 흰색을 칠한 배우는 교활하고 음흉한 사람이다.
약방의 감초격으로 극중에 웃기는 역할을 맡은 어릿광대를 “처우”라고 하는데 그는 코 주위와 눈 언저리에 하얀 분칠을 한다. 그리고, 연출중 사용되는 소품들도 나름대로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막대기에 털을 붙여 솔처럼 만든 것은 말을 뜻하고, 병사들이 들고 있는 깃발도 모양이 삼각형인지 정방형인지에 따라 병사수가 1만 명이냐 10만 이냐로 달라진다.
또한,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 뿔뿔이 흩어진 부모 자식이 서로 애타게 찾는 장면을 연출하고자 할 때는, 네 사람이 무대 위에서 음악에 맞춰 숫자 8의 모양으로 몇 바퀴 빙빙 돈다. 이런 방식들이 외국인의 눈에는 낯설고 무의미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런 묵계를 알고 감상하는 중국인들은 극중 내용에 푹 빠져 들게 마련이다.
三毛의 단편 감상
요즘 유행하는 <모교사랑>싸이트에 나의 초등학교 동아리도 모임터가 있다. 오늘 오른 글 가운데, 옛날 졸업 앨범 사진을 올려 보자는 내용이 있었다. 이 글에 대해 지금은 모 대학에서 영어학 교수를 하고 있는 동창이 반대의 글을 남겼다. 자신의 사진이 맘에 안 든다면서 올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대안으로 최근 가족 사진 등을 올리자는 의견에 나는 동의했다. 이래서 부랄 친구란 것이 허물없고 재미있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나는 졸업 앨범과 관련된 작품 하나가 떠올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남겼다.
(이야기 시작)
옛날 학창 시절을 되새길 수 있는 졸업 앨범과 관련해서, 내가 한창 중국어 공부할 때 읽었던 타이완의 유명한 작가 싼마오의 단편을 하나 소개할까해. 아주 딱 들어맞는 주제거든.
하루는 주인공 여대생에게 국민학교 동창회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어. 아주 오랜만에 보게될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약속 장소에 나갔지. 아니나 다를까 서로 몰라보게 달라진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면서 모임은 깊어져갔지.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누군가 가져온 졸업 앨범을 펴보게 되었지. 다들 박장대소하면서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옛날을 회상했지.
주인공 여대생도 문득 떠오르는 친구 얼굴이 하나 있었어. 그 친구 얼굴을 힘들게 기억해내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으면서 어서 그 앨범이 자기 앞에 오기를 기다렸지. 그러면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어.
주인공 남녀 두 학생의 이름은 잊었는데, 무대는 시골의 초등학교다. 주인공은 한 4,5학년쯤 된 같은 학교 동기생이다. 그 해 가을에는 걔네 반에서 학습발표회가 있었다. 주인공 둘은 동극에 출연했는데, 주인공 역은 아니었어. 남학생은 까까머리 병사 역을 맡았고, 여학생은 시종 역이었지. 연극 연습 전에는 이 둘은 한 반이면서도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지냈었지. 그런데 연극을 하면서 연출 상 둘이 함께 구석에 숨는 장면이 있었는데, 둘이 무대 중앙에서 벗어나 고요히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지. 그러다가 몇 번 거듭된 연습 중에 우연히 스킨쉽이 생겼지. 학예회가 끝난 후, 둘은 자기도 모르게 서로 상대방과 마주치면 가슴이 두근거려오는 것을 느끼곤 했지. 하지만 그 뿐이었어, 둘이 얘기를 나눈다든가 함께 놀이를 한다던가 하는 일도 없었지.
그런데 이 학교 애들도 우리네처럼 하굣길이면 몇몇이 짝을 지어 자기네 동네로 향하곤 했지. 그리고 그 무리는 항상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동패를 이루곤 했지.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는 이 두 주인공 아이들이 각기 반대편에서 친구들과 패를 이루며 논둑길을 걸어 집으로 가게 되었어. 당연히 심술궂은 남학생들이 시비를 걸었지. 여학생들 보고 논둑 아래로 내려서거나 뒤로 돌아가서 길을 양보하라는 거였지. 그런데 여학생 무리 중에 완력이 남학생 못지않은 애가 있어서, 순순히 양보 않고 버티게 된 거지. 시간이 지나면서 목청이 서로 높아지기 시작했지.
그러자 평소에 소심해서 주목을 받지 못하던 주인공 남자애가 상대편에 인연이 있는 그 시종 여학생이 있는 것을 보고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화의를 제의했어. 그랬더니, 남자애들이 일제히 주인공 남자애를 놀려대기 시작했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시종역할을 했던 계집애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냐면서 말이지. 아무튼 그 후로 친구들은 종종 이 둘을 놀려댔고, 정작 그 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 그러다가 졸업을 해서 서로 못 보게 되었지.
오늘 그 남학생은 이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기의 어린 시절 미묘했던 감정이 되살아났던 거지. 드디어 자기 손에 잡힌 졸업 앨범을 심드렁한 척 보던 여 주인공은 주인공 남학생의 사진을 찾게 되었어. 사진 밑의 이름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확실히 떠올랐지. 무심한 척 들여다 본 주인공 남학생의 어릴 적 까까머리 사진에 여주인공은 숨이 막혀옴을 느꼈지. 그 뒤의 일은 기억도 안 났어. 어떻게 그 모임을 끝내고 나왔는지 허둥대는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어. 심지어는 집 앞에서 택시를 내리면서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후다닥 대문 앞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운전사에게 좋지 않은 소리까지 들었지. 되는 대로 지갑을 열어 돈을 지불하고는 자기 방으로 후다닥 들어갔어.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 한참 눈을 감고 있었어.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살며시 뜬눈에 들어온 것은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하얀 달이었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뇌까렸어.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야기 끝).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사실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하나 있었지. 그것은 왜 주인공 여대생이 마지막 장면에 하느님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는 것일까 하는 거였어. 다음 날까지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기에 학교에 가서 중국어과 학우들에게 물어봤지. 남학생들은 거의 나처럼 내용 파악이 안 된다는 거였어. 나는 원문 해석은 분명히 맞게 했다고 말했지. 이야기가 돌고 돌아 한 여학생 후배가 정답을 말해줬어. 그 얘길 들으니까 아, 그랬구나 하면서 여자의 심리에 대해서 한 가지 알게 되었지. 그 대답이 뭐였을까...?(정답은 아래 문장을 거꾸로 읽어 보시라^^)
“다렸드 도기 사감 께님느하 서면하도안 에실사 는다었이행다 만천 이것 던았얺 지나만 속계 와자남 그 ,에기었이굴얼 긴생못 도무너 의리머까까 이진사 의생학남 옛 된 게보 날 그”
TV드라마 “罪證”
오늘 드디어 그 동안 시간 맞춰 보던 20부작 T.V 연속극 "쭈이 ᄌ헝"이 끝났다. 아마 원제의 의미는 "죄에 대한 증거" 정도 될 터였다. 재미를 들여 보던 것이라 조금 아쉬웠다. 이 드라마는 극의 완성도도 제법 높을 뿐만 아니라 촬영도 실감나게 현지 로케이션을 도입했기에 볼 만 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들의 연기와 수사팀의 연기가 실감났다. 이 드라마는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남자 주인공은 "루오어 페이 ᄉ흐"이고, 여자 주인공은 "린 한 삥"이었으며,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수사반장은 "띠 ᄌ하오 롱"이었다. 남자 주인공은 극중 동해 그룹의 이사장(혹은 회장)이자 대표 이사 이다(이하 "루오어 쫑"으로 표기). 여자 주인공은 그의 부인으로 중심병원 산부인과 과장의 유명하고 유능한 의사다(이하 "린 따이ᄑ후"로 표기). 둘 사이에 딸이 하나 있다. 루오어 쫑은 빈곤한 시골 출신 대학생으로, 아버지가 성장인 린 따이ᄑ후를 대학 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이 집안은 처음에는 아주 남부러울 것 없는 애정과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가정이었다. 그러다가 루오어 쫑에게 대학을 갓 졸업한 여자가 나타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가 예기치 못했던 여자의 등장으로 파국을 맞게 되는 스토리 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래 이 여자는 루오어 쫑 회사가 외국 바이어와 상담을 할때, 우연히 통역을 해 주었던 아르바이트 졸업반 학생으로 이름은 쉬리원 이다. 그런 그를 루오어 쫑이 정말 선의로(그는 사실은 아주 신사적이고 선량한 사람으로 그려졌었다) 취업을 시켜주었다. 한 달후 루오어 쫑이 유럽 출장을 다녀온 날, 그녀가 나타났다. 루오오 쫑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쉬리원은 고맙다면서 한 달 월급을 받았으니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루오어는 장기 출장 끝이라 집에 가야 한다고 거절했다. 그녀는 차 한 잔만이라도 하자고 졸랐다. 할 수 없이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으나 차가 식사로 이어졌고, 식사가 술로 이어졌다. 원래 그녀는 편모 슬하에서, 그것도 후처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나면서 남학생과의 관계가 복잡했다. 그녀는 어쩌면 아버지 같은,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갖춘 루오어 쫑 같은 남자를 마음에 그려왔는 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가 술에 취하면서 염세적인 발언들을 해대기 시작했고, 집에 못가게 된 루오어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집에 가기 싫다면서 차에서 잠들어 버렸다. 루오어쫑은 할 수없이 자신의 회사에서 그에게 마련해준 아파트로 데려가 재웠다. 아침에 소파에서 잠이 깬 그녀는 그곳이 낯설었으나, 침실에 루오어가 있음을 보고 어쩔 줄 몰라했다. 루오어 쫑도 잠이 깨어 지난 밤 일을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둘의 인연은 끝날 수도 있었으나, 쉬리원은 그 후 계속해서 루오어 쫑에게 연락을 했고 그에게 매달렸다. 처음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딸의 친구처럼 대하던 루오어 쫑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녀의 적극적 접근에 말려들어 관계를 맺게 되었다. 갈수록 그녀의 요구는 심해져 갔다. 심지어는 루오어 쫑이 결혼 기념일이기 때문에 집에 일찍 가야 한다는 날마저, 자기도 생일이라면서 막무가내로 못가게 만들 정도였다. 가짜 생일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술잔에 수면제를 타 루오어가 집에 못가게 만든 것이다. 이제 쉬리원의 요구는 지금의 처와 이혼하고 자기와 살자는 것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다가 비가 몹시 내리던 날, 그날도 하필이면 루오어의 장인 장모가 출국을 앞두고 식구들과 저녁 만찬을 하는 날이었는데, 그녀는 루오어 쫑을 불러내어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둘은 비를 맞아가며 해변가 끊어진 다리위에서 언성을 높여 가며 충돌했다. 루오어 쫑이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한 것 같지 않다면서 자신이 이미 임신을 했는데 이 애를 낳아서 온천하에 까발리겠다고 위협을 해댔다. 그러다가 성격이 불같은 그녀는 루오어 쫑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다리 끝으로 죽겠다며 달려갔다. 뒤따라간 루오어가 간신히 그녀를 붙잡았으나, 그녀는 난동을 부리다가 발을 헛디뎌 해안가 절벽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루오어 쫑이 간신히 그녀의 팔을 잡았으나, 그녀의 정신 분열적 요구에 힘들어했던 루오어 쫑은 그 긴박한 순간에 잠시 앞으로의 일을 가늠해 보고는 힘없이 손을 놓아 버렸다. 물론 곧 후회를 하는 장면이 나온긴 했다. 그러기에 돌아오면서 전화로110을 돌리기까진 했던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나는 두 가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당돌할 정도로 독점욕이 강한 쉬리원을 루오어가 애당초 허락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 그 중 하나고, 다른 하나는 루오어가 그길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마지막에 뇌까리는 대사이긴 하지만 첫발을 잘못 디디기 시작하니깐 계속 두 발, 세 발을 더욱 잘못 딛게 된 것이다. 이 때 만일 루오어가 경찰에 있는 그대로 신고했다면 최소한 그에게 살인이라는 죄는 씌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극이 이어지지 않았겠지만.
임신 3개월의 여자 시체의 발견은 곧 타살로 규정되어 수사가 시작되었다. 이 수사팀의 팀장은 "띵 ᄌ하오 롱"인데, 그는 우리식으로 따지면 청년 최불암인 탈렌트이다. 요즘 서, 너 편의 드라마에 겹치기 출연하고 있는데, 모두 형사 반장 역을 맡고 있다. 모두 비슷한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는데, 유능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천성은 착한데, 성격이 좀 급한게 흠으로 나타난다. 그는 "따 추완"이라는 대원과 "루 따지에"라는 여자 상관과 함께 이 사건을 파 헤친다.
미궁으로 빠질 사건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것은 죽은 쉬리원의 어머니 쩡혼쥔이었다. 쩡혼쥔은 착한 심성으로 자기가 낳지도 않은, 그리고 이미 남편도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처 소생의 두 딸을 성심껏 키워 왔다. 그녀가 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사진이 한 장 있었는데, 놀랍게도 사진 속의 인물은 자기가 25,6년 전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헤어졌던 첫사랑의 남자였다. 쩡혼쥔은 그길로 루오어 쫑에게 전화를 해서 만났다. 그녀는 옛날에 자기를 떠난 것으로 족할 것이지 어떻게 내 딸을 이렇게 만들 수가 있었냐고 따진다. 루오어 쫑은 옛날에 그녀를 버린 것은 자신이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 였음을 말하면서, 하필이면 그녀가 딸인줄은 몰랐다면서 사과한다. 그러면서 준비해온 돈을 내민다. 그 돈을 받으려 하지 않자, 죽은 딸은 할 수없다지만 하나 남은 딸과 살기 위해서, 또 딸이 외국 유학을 원하면 그것 마저도 자신이 부담하겠다며 회유한다. 그런 회유를 뿌리치고 그 곳을 벗어나 경찰에 신고하고자 뛰어가던 쩡혼쥔은 차에 치어, 루오어 쫑의 부인인 린 따이ᄑ후가 일하는 중신 이위앤으로 실려온다.
루오어 쫑은 그날 밤 비로소 부인에게 저간의 사정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한번은 루오어 쫑이 죽은 쉬리원을 집에 바래다 준 적이 있는데 그곳이 하필이면 중신 이위앤과 가까운 곳이어서 린 따이ᄑ후의 눈에 띤 것이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데리러 왔는 줄 알았다가 차에서 다른 여자가 내리자 깜짝 놀라 그 자리를 떠난다. 다음 날 그 집을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옛날 자신의 연적이었던 즉, 자기 남편의 첫번째 애인인 쩡혼쥔이 있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놀라면서 자기 남편이 이제껏 자신을 속여왔다고 괘씸해 하면서도 남편이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함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루오어 쫑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는 자기가 탈선을 했고 그 대상이 죽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자 했던 것인데, 어느 정도 남편 일을 알고 있는 부인은 남편의 말을 가로막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얘기함으로써 남편의 탈선 대상이 옛 애인인 것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루오어 쫑은 기가 막혀 말을 제대로 하지 않고 넘어갔다. 여기서도 안타까운 점이 발견되는데, 만일 린 따이ᄑ후가 남편의 부정을 눈치 챘을 때, 먼저 얘기를 꺼냈다면 이렇게 까지는 빗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병원에서 물혹 제거 수술을 받은 한 환자가 자신이 부인암에 걸린 것으로 잘못 알고 나서는 삶을 비관하여 병실에서 뛰어내려 죽겠다는 소동을 벌이는 와중에 응급실에 실려온 쩡혼쥔이 돌연사를 하였다. 지키고 있던 경찰과 간호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돌연사를 한 것이다. 부검 결과 간혹 있는 의료 사고로 처리되었다. 그러나 수사는 계속 진전되어 드디어 경찰은 루오어 쫑과 피살자의 관계를 밝혀내고, 수사에 박차를 가한 결과 루오어 쫑을 살인 혐의로 체포하게 된다. 여기에는 루오어 쫑의 비서가 결정적인 증언과 증거물을 제시한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 여비서는 간혹 걸려오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젊은 여자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루오어 쫑이 없을 때 다급하게 걸려온 그녀의 목소리를 우연히 녹음해 둔 것이었다. 내용은 죽기 바로 전의 절박한 호소이자 협박이었다.
루오어 쫑이 경찰에 검거되자 그를 구해내고자 린 따이ᄑ후는 자신의 여동생을 불러 도움을 요청했다. 자기 집안의 명예를 위해 처신을 올바로 해오도록 강요받고 자라난 두 자매는 부모님이 없는 사이에 벌어진 이 엄청난 사건을 둘이 해결하자고 결의했다. 언니는 동생에게 자신이 응급실에 실려 온 옛 연적을 절묘하게 살해했음을 밝히고, 그것은 그녀가 형부를 협박했기 때문에 자신이 자발적으로 저지른 것인바, 이는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결국 여동생은 형부인 루오어 쫑의 알리바이를 거짓으로 성립시켜 준다. 사실 경찰이 린한삥이라는 여동생을 찾아 갔을 때 처제는 형부 관련 사건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언니도 사건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연사한 쩡혼쥔이 교통사고가 나던 시간에 만난 사람이 루오어 쫑이라는 사실을 경찰이 밝혀 낸 것에 대해, 처제는 그 시간에 루오어 쫑이 만난 사람은 자기였다고 둘러댄 것이다. 이미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기에 그렇게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경찰이 물어왔다. 즉 그렇다면 3월 17일 비가 많이 오던 밤에도 같이 있었느냐고 물어온 것이다. 그녀는 아무 준비 없던 질문이었으나 곧 중요한 관계가 있으리라고 추측하고는 그날 밤도 형부와 자기가 함께 있었다고 위증을 한다. 이런 한편으로 처제는 형부를 위해 고위 권력층에 손을 뻗쳤고, 그 덕분으로 루오어 쫑은 풀려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루오어 쫑에게 처제는 사실대로 말하라고 다그쳤다. 곧 이어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처제는 형부의 뺨을 한대 때리면서, 언니의 질투심을 교묘히 이용해 언니로 하여금 살인을 하게 만들었다고 하면서 치를 떨었다. 그러나 이를 사실대로 부인에게 말하겠다는 형부를 막고 나선다. 결코 언니를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면서, 자기도 진실을 철저히 은폐하겠다고 말한다.
수사가 원점으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윗 선의 압력을 받아 더 이상 수사를 할 수 없게 된 수사팀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너무나도 뻔한 사건의 과정과 결말인데도 빽을 동원해 번복했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다른 각도에서 재수사할 결의를 다진다. 그것은 바닷가에서 있었던 딸의 사망 사고와, 병원에서 있었던 어머니의 돌연사는 원래 한 사건이므로 이번에는 병원에서의 사망을 캐보자는 것이었다. 수사팀은 딸도 의도적으로 살해했기에, 이제 그 진실을 알게 된 어머니마저도 범죄자가 공범을 끌어들여 살해했다고 보는 것이다. 처음 살인이 우발적으로 원시적으로 벌어진 것이라면, 병원에서의 사망 사고는 고도의 의료 기술을 가진 지능적 수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린 따이ᄑ후 수준의 의사라면 가능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결국 이 병원에 법의학 전공의를 수련의로 잠입시켜 병원에서 발생했을 일들을 추적했다. 그 결과 린 의사가 평범한 물혹 수술 환자에게 의도적으로 꾸며진 부인암 진단 결과서를 보게 하여 그가 자살 소동을 빗는 사이 약방에서 아무도 없는 사이 당뇨병 치료제를 훔쳐 옛 연적인 쩡혼쥔에게 주사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부검의는 진실을 규명할 수 없었던 것인데, 혈당치가 정상인 사람에게 혈당 치료제를 초과 주사하면 혈당치 이상으로 돌연사 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린 따이ᄑ후는 실력도 있고 정직한 의사이기는 했으나, 일을 너무 철저하게 처리해 "뼈속이 차다"는 뒷소리를 듣는 처지였다. 그랬기에, 주변 인물을 암암리에 수사한 결과 주사액 두 개가 없어졌다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채워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린 의사가 시켜 대학원생이 사온 주사약으로 바뀐 것이라는 사실 등이 밝혀진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린 따이ᄑ후는 외국에 나가 있는 어머니를 보고 싶다는 전화 통화를 하고, 다음날 수술 후, 스스로 손목 동맥을 끊어 자살했다.
다시 한번 범인 검거 순간까지 갔던 수사팀은 허탈해 하다가 루오어 쫑의 현장 부재 증명 증언을 뒤엎을 새로운 증인을 확보하게 되어 루오어 쫑을 검거한다. 새로이 등장한 증인은 바로 루오어 쫑의 딸과 그녀의 남자 친구였다. 루오어 쫑이 비가 많이 오던 날 저녁, 즉 내연 관계에 있던 쉬리원이 변사하던 날, 자신이 처제와 함께 저녁 늦은 시간에 있었다고 주장한 아파트 방에, 사실은 그 딸이 남자 친구와 들어가 밤을 샌 것이다.
처제는 다시 조카의 남자 친구를 찾아가 회유한다. 만일 사건 발생 시간에 자기와 형부가 그 집에 있지 않는 것으로 되면, 네가 사랑하는 여자 친구는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마저 잃게 된다면서, 위증을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많은 현금과 유학 보장을 내세우면서 회유해오는 여자 친구의 이모에게 이 남학생은, 자기도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기에 여자 친구가 아버지를 잃게 하고 싶지는 않다면서 기꺼이 위증하겠다고 한다.
드디어 재판이 벌어지던 날, 검찰 측과 변호사 측의 팽팽한 접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검찰이 유리한 듯 했으나, 증인으로 나온 처제와 딸의 남자 친구가 위증을 하는 바람에 루오어 쫑이 유리해 지는 듯 했다. 더구나 재판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이 집안의 배경을 중시한 검찰 고위층이 이미 한 사람이 죽었으니 루오어 쫑은 그냥 내보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귀국하자마자 집안의 변고를 알게 된 장인이 쓰러져 병원에 있는 터에, 루오어 쫑의 딸이 재판정에 나오지 않고 병실에서 실어증에 걸린 외할아버지에게 자기는 어쩔지 모르겠다고 울며 호소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자 그 옆에서 이심전심으로 남편과 대화하는 할머니가 거들고 나왔다. 너는 린 집안의 일원으로 꿋꿋한 삶을 살아야 하며, 이제 너도 다 컸으니 네 길을 네가 선택해야 하며, 오늘 만일 재판정에 나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손녀딸은 울면서 재판정으로 향한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딸은 자기 아버지를 위해 거짓 증언을 하지 않고 있었던 사실 그대로 얘기한다. 법정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러자 이모가 다시 조카딸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게 된셈이어서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위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증거를 대라고 한다. 이 순간에 또 한 명의 증인이 등장한다. 그것은 루오어 쫑의 장모였다. 그녀는 42년의 당 생활 경력을 걸고 진실을 말하겠다면서 사건이 나던 날 두 딸은 자기와 함께 사위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재판 결과는 불 보듯 뻔해졌다.
이 때, 그렇게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던 루오어 쫑이 재판관에게 발언권을 요청한다. 최후 진술 삼아서 시작된 루오어 쫑의 발언은 의미심장했다.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딸이었다. 딸은 이제까지 아빠를 몹시 사랑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이제까지 교육받기로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배웠기에 사실을 얘기했다는 딸의 말에 충격을 받고 루오어 쫑도 진실을 말하게 된 것이다. 그는 딸에게 광명정대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자신의 거짓을 고백하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그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였다. 그의 말로는 자기가 성공한 남자로써 행복한 듯 보였지만 사실은 자기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철저히 집안을 위해 살아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이전에 고백한 바 있지만 이 남자는 부인을 사랑하고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은 남편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을 은연중에 강요받았고, 그녀는 일대일로 자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소유물로써 자신을 사랑해 왔다고 한다. 루오어 쫑이 린 따이ᄑ후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20년 동안을 한결같이 출퇴근을 함께 했다는 것이 사랑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한편으로 아주 평범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생활은 없었기에 이 남자는 한편으로 공허함을 느껴왔던 것이다.
그는 말했다. 보잘 것 없는 시골 출신 대학생으로 지금의 부인을 처음으로 무도장에서 보았을 때, 이 순간 이후의 인생의 목적은 그녀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 꿈은 이루어졌고 그녀를 통해 뒷받침 받은 그의 사회생활은 화려한 성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문의 영광이었지 자신에게는 힘든 멍에였던 셈이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유리한 위증을 하고 있는 처제도 그렇고, 자살한 집사람도 모두 가문의 명예를 위한 행동이었다면서 그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결국 판결은 6년 징역형으로 결말지어졌다.
笑傲江湖
중국 무협지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김용이 쓴 소설들은 중화권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심지어는 고전 <홍루몽>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紅學>이 있는 것처럼, 북경대에서 <김용>을 연구 주제로 삼는 학문을 시작하자는 토론회가 열렸을 정도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笑傲江湖> 씨리즈 역시 김용 선생 작품을 중앙텔레비전 방송국이 드라마화한 것이다. 나는 텔레비전 방영 시간에 맞춰 짬을 내어 보는 것이 불편하고 감질나서 한 셑트의 VCD 40장을 구입했다. 모든 무협소설이 일정한 플롯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드라마도 일정한 틀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처음부터 무림천하 제1검은 아니고, 어떤 고비에서 신비한 책을 얻어 익히거나 아
니면 전설적인 인물을 만나 무공을 익히는 형식 등등. 또 항상 영웅호색이라고 주인공을 좇아다니는 여주인공이 나타나 그에게 도움을 준다든가 하는 형식 말이다. 아침 신문에는 벌써 이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움을 전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원작의 내용이 각색되었음에 불만을 표하는 것이거나, 혹은 소설로 읽어서 시청자 머리 속에 그려져 있는 남녀 주인공의 이미지와 이번 드라마에서 그려진 인물이 다른 데 대하여 불만을 드러내는 글들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소설과 드라마의 차이상 처음에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연출자의 의도, 그리고 요즘 시청자들이 웃음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부러 그러한 차이를 시도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이 작품에 빠졌다. 눈뜨고 일어나 씨리얼을 먹은 이후, 곧바로 "笑傲江湖" VCD를 보기 시작해서 밤 12시 잘 때까지, 그야말로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하고 브라운관만 바라보았다. 무려 23편을 보았다. 텔레비전을 통해 8편을 보았고, 어제도 VCD로 9편을 보았으니, 통틀어 40편을 본 셈이다. 비록 편집이 서툴렀고, 조잡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볼만한 드라마였다. 천하제일을 꿈꾸는 강호의 강자들을 빈 마음으로 제압한 남자 주인공 링후충(令狐沖)이 여자 주인공 런잉잉(任盈盈)과 함께 무림을 떠나 둘만이 유유자적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어찌 보면 너무나도 통속적인 무협소설이지만, 액션에 있어서 볼거리가 많은 드라마였다.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또 대사가 지나치게 고답적이지 않아 고전물임에도 불구하고 듣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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